빨갱이 광풍입니다. 공중파 TV 뉴스에서는 연일 김정은으로 시작되는 뉴스 꼭지가 3개 이상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조금이라도 김정은을 옹호하면 바로 '빨갱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고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분명 김정은은 옹호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지탄 받고 사라져야 할 인물입니다. 문제는 그런 김정은을 똑같이 비난하지만 현 정부와 대통령을 비난하면 "너 빨갱이냐?"라는 시선입니다.
딸이 물었습니다 "아빠는 공산주의자야?" "응 난 공산주의자야" "그럼 엄마는? 나도 공산주의자야?" 이 말을 듣고 있던 아빠는 이렇게 말합니다 "점심 도시락을 안 싸온 친구가 있어. 넌 그 친구에게 어떻게 할꺼야?" "난 점심 같이 나눠먹자고 할거야" "왜? 돈이 없으면 나가서 일하라고 하지 않고 왜 나눠먹어?" "나눠먹는 걸 보니 넌 공산주의자야" 아빠와 딸의 대화가 현 세태를 반영하는 것 같아서 미소가 지어지면서 동시에 씁쓸했습니다. 나눠먹자고 하면 열정과 노오오오력이 없다면서 거지 근성이라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한국 사회가 영화에 잠시 투영되었습니다.
여기서 아빠는 '달튼 트럼보'입니다 '달튼 트럼보'는 헐리우드의 아주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입니다. 그가 쓴 시나리오 중 유명한 시나리오는 '로마의 휴일' '스파르타쿠스' '브레이브 원' 등이 있습니다. 아카데미 각본상을 2회 수상한 아주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입니다. 그러나 이 유명한 '달튼 트럼보'가 한 동안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살았습니다. 이름을 숨기고 활동한 이야기가 바로 영화 '트럼보'의 주된 줄거리입니다.
매카시 열풍에 희생당한 '달튼 트럼보'
2차 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새로운 적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 적은 어제의 동지였던 소련입니다. 공동의 적인 독일이라는 전체주의 망령을 격퇴한 미국과 소련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발톱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두 나라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아이콘으로 부상하면서 전 세계를 자본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제 3세계로 3등분해서 내편 아니면 니편이라는 이분법적인 세상으로 변질됩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눠주는 것을 추종했던 '달튼 트럼보'는 공산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매카시 의원'이 미국 내 공산주의자를 색출하자는 '매카시 광풍'을 일으키고 이 광풍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지목받고 감옥에 가게 됩니다.
이 '매카시 광풍'은 헐리우드에게도 불어오게 됩니다. '반민조사위원회'는 영화계 인사들을 청문회에 세워서 누가 공산주의자인지 불라고 압박합니다. 이에 몇 명의 배우들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 공산주의자를 지목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동료를 배신하는 변절자도 생깁니다.
그렇게 공산주의자로 지목 받은 '달튼 트럼보'는 감옥에 가게 됩니다.
'달튼 트럼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난 미국을 사랑한다 그러나 단지 이견을 말했다고 잡아간다는 것은 옳지 않다"
집의 기둥 하나가 무너지면 나머지 기둥도 무너진다고 호소했지만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 속에서 19명의 공산주의자였던 헐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는 감옥에 가게 됩니다. 마음이 아픈 것은 트럼보와 공산주의자 친구들에게 변호비를 대라고 자금을 지원했던 배우가 자신이 살겠다면서 트럼보 등의 실명을 밝혀서 결정적인 타격을 줍니다.
가명으로 활동하는 '달튼 트럼보'
그렇게 감옥에 갔다온 트럼보는 가족들과 함께 이사를 합니다. 이미 '마녀 사냥'을 당해서 어느 영화사도 '달튼 트럼보'와 공산주의자 시나리오 작가를 사용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이에 '트럼보'는 가명을 써서 활동을 합니다. 무려 11개의 가명을 사용해서 영화 시나리오 공장장이 됩니다.
가족들은 분업을 하면서 아버지의 시나리오 작업을 돕습니다. 심지어 자신들에게 해꼬지를 한 영화사와 협력하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이에 같은 공산주의자 시나리오 작가인 '하이드'는 불 같이 화를 냅니다. 어떻게 자신의 사상을 쉽게 버리냐며 개인의 성공을 위해서 자존심을 버렸냐고 다그치죠.
이에 '트럼보'는 재판이 지겹지지 않느냐면서 이미 진 게임을 계속 하는 것 보다 판을 바꿔서 자본주의식 복수를 하자고 다그칩니다. '트럼보'에게 있어서 자본주의식 복수란 바로 거대한 성공입니다. 성공하면 빨갱이라도 우러러 보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역이용하자는 것이죠.
힘든 과정입니다. 이름을 숨기고 활동해야 하고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면 시나리오 작업을 공장 돌리듯 해야 합니다. 점점 날카로워지는 '트럼보' 결국 딸의 생일까지 챙기지 못하는 못난 아빠가 됩니다. 영화는 크게 2가지의 줄거리를 보여줍니다.
하나는 '트럼보'가 세상의 편견과 싸우는 과정이고 세상과 싸우면서 괴물이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과정입니다. 누구보다도 아버지를 따르던 딸과의 갈등은 작게 눈시울을 적십니다.
트럼보의 재능을 알아보고 지원해주는 친구들
트럼보는 성공을 위해 달리기 시작했고 서서히 그 성과가 드러납니다. '로마의 휴일'을 가명으로 작성했는데 이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습니다. 집에서 온가족과 함께 TV로 지켜보던 '트럼보' 가족들은 환호를 합니다. 그러나 그 기쁨을 집 밖으로 새어 나가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입소문은 헐리우드 안에서 터져 나가고 거물급 배우가 되어가고 있던 '마이클 더글라스'가 찾아옵니다.
자신이 연기를 할 영화 '스파트타쿠스'를 멋진 영화로 만들 수 있게 각색을 부탁합니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흥미를 더해줍니다. 여기에 2주간의 크리스마스 휴가 때 '영광의 탈출'의 감독인 '오토 프레밍거'가 자신의 만들 영화 '영광의 탈출' 각색을 부탁합니다.
일복이 폭발한 트럼보는 '오토 프레밍거' 앞에서 바로바로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 작업을 합니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장면이 나옵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시나리오를 쓰면 오프닝 크레딧에 '달튼 트럼보'라고 올리겠어요"
이에 화들짝 놀란 '트럼보'는 더 열심히 타자를 칩니다. 가명으로 활동할 수 밖에 없었던 '트럼보'에게 실명은 금기이자 사형선고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 2명의 지원과 후원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족의 도움 속에서 트럼보는 저주와 편견과 악담이 가득한 세상을 향해서 자신의 이름을 들고 나서게 됩니다.
빨갱이라는 실체 없는 적을 만드는 극우 보수의 세상
영화 내용 자체는 아주 흥미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특히, 미국과 같이 빨갱이 논쟁이 끝난 나라에서는 그냥 옛날 이야기 정도로 취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에 사는 사람에게는 다르게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트럼보'가 살던 1950년대에서 한치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보수는 항상 적을 만듭니다. 적이 있으면 "저기 빨갱이가 나타났다"라고 외치면 됩니다.
이런 것은 잘못된 행동 아닌가요?. 이건 불합리합니다. 고쳐주세요. 바꿔주세요라고 국민들이 요구하면 "저 산 너머에 빨갱이가 살고 있어요. 그 빨갱이가 언제 우릴 공격할 지 모릅니다. 그러니 모두 죽창을 들고 빨갱이를 죽이러 갑시다"라고 외칩니다.
빨갱이 마술은 항상 성공했고 앞으로도 성공할 것입니다. 그렇게 빨갱이라는 마술피리에 홀려서 모두 손에 손에 죽창을 들고 빨갱이를 죽이러 갑니다. 이런 우화가 한국은 우화가 아닌 실화가 되었습니다.
빨갱이 약빨이 안 먹히면 소수자를 지목하면 됩니다. 미국에서는 흑인이고 성소수자이고 한국은 성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을 합니다. 세상의 적은 없으면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빨갱이라는 효과 좋은 빨간 약이 있기에 굳이 다른 약을 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시선으로 보니 영화 후반엔 기분이 쭉쭉 쳐지더군요. 우울했습니다. 빨갱이 광풍의 원조 국가는 이제 회상하면서 1950년대의 미친 광끼를 미안해 하고 반성하는 영화를 만드는데 한국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성공한 빨갱이는 처단할 수 없다는 자본주의의 비열함
트럼보는 자신의 성공을 세상에 밝힙니다. 가명으로 쓴 아카데미 각본상 2개가 자신의 작품이라고 밝힙니다. 1개도 받기 힘든 것을 2개나 받았습니다. 이런 큰 성공에 미국 국민들은 '트럼보'를 향한 자신들의 경멸어린 시선을 숙입니다. 그러나 성공만이 트럼보라는 빨갱이를 받아 들이는 이유는 아닐 것입니다.
1960년대는 미국 역사상 가장 화창한 봄날이었습니다. 초고속 성장을 하던 시기라서 사람들의 각박한 마음에 여유가 찾아왔습니다. 경제 성장이 크게 되면 진보 세력이 늘어난다고 하죠. 사람들의 마음도 해빙기가 찾아오고 그런 여유로움이 많이 핀 세상에서 '케네디'라는 중도 보수 대통령이 탄생합니다.
"세상엔 영웅도 악당도 없습니다. 오로지 희생자만 있습니다"
트럼보는 공산주의자이지만 소련을 동조하거나 이롭게 한 행동은 안 했습니다. 단지 소련과 세상을 보는 시선이 비슷했을 뿐이죠. 그러나 같은 시선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은 트럼보를 처단했습니다.
트럼보는 큰 상을 받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세상엔 영웅도 악당도 없습니다. 오로지 희생자만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세상은 희생자를 찾고 있습니다. 잘못을 했으면 가해자가 그 사과를 해야 하는데 애먼 희생자를 세우거나 잘못의 실체가 불분명할 때 시선 돌리기용 또는 애먼 희생자를 내세워서 사람들 앞에 던져 놓습니다. 대중들은 그 희생자를 물어 뜯으면서 자신들의 분노를 퍼붓습니다.
요즘 한국 사회를 보면 희생자만 가득한 세상 같습니다. 온갖 편견과 잘못된 정보로 피해를 받는 희생자. 달튼 트럼보는 자신을 고발한 반역자 친구를 포근하게 감싸면서 세상을 끌어 안습니다.
우리 안의 트럼보들은 없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경제가 침체되면서 사람들 사이의 삭막함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날이 선 사람들 사이에서 트럼보 같은 단지 이견을 보인다는 이유로 집단 구타를 당하는 사람들은 늘어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