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티스 리그니 어벤져스니 이런 거 잘 몰랐습니다. 80년대 초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자마자 TV를 켜면 슈퍼맨과 배트맨 그리고 원더우먼과 아쿠아맨 등이 나와서 세상을 구원하는 만화 영화를 봤습니다. 마치 크리스마스 때 교회에서 받는 종합 선물세트 같았죠. 일요일 오전 9시 전후에 하는 이 만화 때문에 교회를 몇 번 빼먹을 정도로 열중하고 봤습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배트맨과 슈퍼맨은 서열 1,2위를 다투는 지 독수리 5형제의 1,2호처럼 으르렁거린 기억이 살짝납니다. 그 모습에 동생들과 함께 넌 누구편이냐고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보더라도 슈퍼맨은 날아 다니고 능력도 월등한반면 배트맨은 날지도 못하지만 로빈과 함께 주요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DC 코믹스의 저스티스 리그>
정의를 위해서 뭉쳤다는 저스티스리그는 그렇게 잊혀졌습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으로는 쉽게 재현할 수 있지만 이걸 영화로 재현하기에는 불가능 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흘러서 2000년대 중반부터 메이저리그의 내셔럴리그와 아메리칸 리그 같은 경쟁 리그인 마블코믹스의 아이언맨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마블코믹스 소속 히어로들이 CG빨로 무장하고 서서히 부활하더니 어벤져스라는 히어로 리그를 영화로 재현하면서 돈을 쓸어 담아 버립니다. 이에 DC코믹스도 빨간 팬티를 벗은 슈퍼맨을 내세우면서 서서히 저스티스 리그의 영화판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2016년 봄 드디어 저스티스리그의 시작을 알리는 첫 영화가 상영합니다.
배트맨과 슈퍼맨이 왜 싸우는데?라는 질문에 어설픈 대답을 한 <배트맨 대 슈퍼맨>
4월에 개봉할 마블코믹스의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는 어벤져스리그 소속의 히어로끼리 싸우는 신기방기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주먹다짐을 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이런 신기방기쇼가 시작되기 전에 저스티스리그는 아예 시작부터 자신들의 리그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싸움질을 시켜 버립니다.
저스티스리그의 3대 축인 배트맨과 슈퍼맨 그리고 원더우먼을 투입합니다.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제목처럼 두 남정네가 멱살 잡이를 합니다. 이유 불문하고 두 슈퍼히어로의 대결은 흥미롭스빈다. 그런데 의문이 듭니다. 배트맨은 슈퍼히어로라고 하기엔 초능력이 있는 히어로가 아닙니다. 어벤져스로 말하면 블랙위도우나 호크아이나 캡틴 아메리카 같은 인간형이죠.
반면, 슈퍼맨은 외계인이자 진짜 초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입니다. 하늘을 날고 눈에서 광선이 나갑니다. 초등학생과 대학생이 싸우는 대결입니다. 그런데 싸웁니다. 일방적인 싸움일 것 같지만 사랑꾼인 슈퍼맨에 없는 것을 배트맨은 가지고 있습니다. 이간이 신에 근접할 수 있는 방법은 기술력입니다. 인간은 초능력이 없지만 뛰어난 지능으로 인공지능을 만들어서 인간의 단점을 극복할 능력이 있습니다.
배트맨이 그렇습니다. 뛰어난 기술적인 능력으로 슈퍼맨의 약점을 이용해서 대등한 경기를 합니다. 철갑 슈트를 입고 눈에 불을 키고 동시에 슈퍼맨의 능력을 저하 시키는 특수 무기를 써서 대등한 대결을 합니다. 이렇게 초딩과 대딩의 싸움은 중딩 끼리의 주먹다짐으로 변합니다. 이 액션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두 슈퍼히어로의 고통의 단발마가 영화관을 채울 때 짜릿함이 가득합니다.
주인공들의 고통은 관객의 쾌락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싸우는 과정은 좋은데 그 싸움의 이유가 졸렬합니다.
2013년 개봉한 <맨 오브 스틸>을 강렬한 액션에 깜짝 놀랄 정도로 재미있게 봤습니다. 도시 하나를 철거할 작정인지 엄청난 파괴력을 보였죠. 특히 건물들을 도미노처럼 쓰러뜨리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제가 유심히 본 것은 <맨 오브 스틸>에서 여러 건물과 엄청난 액션을 보였지만 단 한 번도 사람이 건물에 깔려 죽거나 건물 안에서 죽는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평일 낮 시간인데도 건물에 아무도 없는 모습에 비현실적이다라고 느낄 정도로 건물이 엄청나게 쓰러지지만 직접적으로 사람이 건물 잔해에 깔려 죽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심의 등급 때문에 일부러 묘사 안 하는 것 같더군요. 솔직히 슈퍼맨 액션 정도면 인간들의 피해는 묘사하지 않는 것이 예의입니다.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슈퍼히어로의 액션 때문에 다친 사람들의 고통을 담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죠. 재미있잖아요. 슈퍼히어로 영화의 외전으로 소시민의 시각에서 본 슈퍼히어로 영화를 다큐 형식으로 담는 것이죠.
그런데 이 영화가 그걸 담았습니다.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은 2013년 개봉한 <맨 오브 스틸>에서 슈퍼맨이 조드 장군과 맞짱을 뜰 때를 배경으로 합니다. 영화에서는 여러 고층 빌딩을 파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파괴되는 건물 중에 배트맨이 소유하고 있는 브르스 웨인 건물이 있었습니다. 이 건물에서 싸움을 하던 슈퍼맨이 본의 배트맨의 낮버전인 브루스 웨인이 소유한 건물을 파괴하고 직원까지 다치게 합니다. 이런 모습에 분노한 배트맨은 외계인들의 전쟁을 분노에 찬 눈으로 바라봅니다.
배트맨은 아무리 인류를 구원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하는 슈퍼맨이지만 자신의 빌딩을 파괴하고 자신의 직원을 죽게하고 수천 명의 사람들을 죽게하는 슈퍼맨이 못 마땅합니다. 배트맨은 스스로의 도덕률을 가진 슈퍼맨이 개인의 도덕이 공공의 도덕과의 괴리가 있다는 것을 거북스러워 합니다.
반면, 슈퍼맨의 일반인 버전인 클락 기자는 고담시의 자경단인 배트맨 자체가 판사 역할을 하는 모습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서로의 정의에 대해서 반감을 가집니다. 크게 보면 서로 신경 쓸 일은 아닙니다. 서로 정의를 지키다가 약간의 부작용 같은 선의에 따른 피해가 있을 뿐입니다. 두 주인공이 싸울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두 슈퍼히어로는 싸움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이 정말 유치합니다.
남자들의 핵존심?
크게 보면 배트맨이 참 찌질해 보입니다. 슈퍼맨이 지구를 구하면서 본의 아니게 다친 사람들 때문에 열 받은 배트맨의 모습이 찌질이 같이 보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배트맨이 고담시를 구하면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준 공공시설물이며 다친 사람들은 생각 안 합니까? 제가 보기엔 배트맨이 초능력이 있는 슈퍼맨을 질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질투도 어느 정도여야죠. 슈퍼맨이 악인이 아닌데 슈퍼맨을 꿀밤 때리는 정도가 아닌 죽여버리려고 합니다. 당혹스럽습니다. 질투를 해도 죽이려고까지 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런데 죽이려고 합니다. 그런 증오심이 또 오래 가는 것도 아닙니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스토리가 구멍이라고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차라리 40대 독거남인 배트맨이 20대 커플에게 질투를 느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패줬다는 스토리가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별거 아닌 이유로 서로 죽이려고 싸우다가 한 순간에 헤이! 브라더~~ 하는 모습은 장난까냐~~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네요.
렉스 투터의 깐족력을 응원하다
두 슈퍼히어로를 싸우게 한 사람은 미치광이 과학자 렉스 루터입니다. 인간의 종족 특성이자 최고의 능력은 사기술입니다. 힘을 가졌지만 사랑만 쫒는 사랑사냥꾼 슈퍼맨과 너무 진지한 고담시의 정치인이자 자경단인 배트맨을 싸우게 만드는게 렉스 루터입니다.
슈퍼맨의 약점인 사랑하는 사람을 이용한 공격과 배트맨의 핵존심을 부축여서 손 안대고 코푸는 영리한 작전을 펼치죠. 이 렉스 루터의 깐족거림을 '제시 아이젠버그'가 아주 훌륭하게 표현합니다. 이 깐존력 9단의 렉스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시덥잖은 눈요기꺼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제시 아이젠버그의 조커 같은 깐족거림이 그나마 체다 치즈 같이 구멍이 숭숭한 스토리를 어느 정도 밀도 높게 채워주네요.
이 렉스의 깐족력을 응원했습니다. 슈퍼히어로 영화는 주인공인 슈퍼히어로의 능력이 재미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슈퍼히어로의 능력을 제단하고 측정할 수 있고 슈퍼히어로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강력한 절대악이 등장해야 재미를 보장하죠. 슈퍼맨처럼 뭘 해도 죽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그 즉기 영화는 흥미를 잃어버립니다.
그런면에서 렉스는 슈퍼맨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악당입니다. 그래서 응원했습니다. 응원한 이상의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합니다. 다만, 다크나이트의 히스 레저의 조커 이상은 보여주지는 못하네요
실제 주인공은 원더우먼
슈퍼맨은 위험에 처한 인간을 구하는 신적인 존재이고 존경을 받지만 마음 씨는 신이 아닌 평범한 남자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2명의 여자인 어머니와 애인을 구하기 위해서 불철주야 보디가드 역할을 합니다. 이 모습은 로맨티스트 같이 보이지만 사랑사냥꾼의 단점도 보입니다. 정치적 술수나 주고 받는 이익 계산에 약합니다.
반면, 배트맨은 오지랖 넓은 40대 아저씨 모습을 보이죠. 크게 보면 힘쎈 못난 남정네의 모습을 보입니다. 이 두 남정네의 핵존심 싸움에 방패를 든 원더우먼이 등장합니다. 둠스데이라는 강력한 괴물 앞에 원더우먼이 등장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최고의 장면입니다. 특히나 웅장한 사운드와 음악(Is She With You?)은 두 남자 슈퍼히어로를 초라하게 만듭니다.
다크 나이트의 음악을 맡은 '한스 짐머'가 '원더우먼'에 대한 무한 애정을 보이려는지 음악이 박진감 넘침을 넘어 주인공 이상의 포스를 느끼게 합니다. 출연 분량은 많지 않지만 적어도 배트맨 이상의 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임을 충분하게 보여줍니다.
강력한 등장, 군더더기 없는 액션, 할말만 하는 캐릭터는 깊은 호감을 끌어냅니다. 두 남자의 핵존심 싸움을 갈라낸 원더우먼이 실질적인 주인공이 아닐까 하네요
후질근한 배트카
배트맨 시리즈를 보는 재미는 액션도 액션이지만 배트맨이 타고 나오는 배트카, 배트 오토바이, 배트맨 비행기입니다. 모두 뛰어난 디자인과 성능으로 007의 본드카를 연상케하죠. 지금까지 배트맨 시리즈는 여러번 나왔고 그때마다 독특한 배트카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특히 '다크나이트' 시리즈는 텀블러라는 배트카와 그 배트카를 분해하면 배트포드라는 바퀴 자체가 구르면서 쉽게 반향 전환을 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죠. 그런데 <배트맨 대 슈퍼맨>은 배트카와 배트비행선이 나오지만 디자인적으로 큰 매력이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슈퍼맨 시리즈에 초점을 맞추서 그런지 배트맨의 탈 것에 대한 묘사가 성의가 없네요.
스토리는 아쉽지만 지루하지 않았던 2시간 20분
스토리는 엉망입니다. 특히 두 슈퍼히어로가 왜 싸우는지에 대한 설득력이 약합니다. 선행을 하다가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피해에 대한 고민이나 슈퍼맨 본인은 선이라고 하지만 일부 사람들에게는 악마가 될 수 있다는 정의에 대한 각자의 정의를 좀 녹였으면 좀 더 사유하는 재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없습니다.
잭 스나이더 감독은 이전 작 '와치맨'에서 슈퍼히어로의 철학적 사유를 잘 그리던 감독입니다. 그러나 성인물이 아닌 아이들도 볼 수 있게 하려고 했는지 복잡한 이야기는 거두었네요. 본인은 아버지 세대(배트맨)과 아들 세대(슈퍼맨)의 갈등을 보여주려고 했다는데 그게 잘 담겨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배트맨 대 슈퍼맨'은 볼만합니다. 액션이 많지 않지만 두 히어로의 등장만으로 영화관을 꽉 채웁니다. 여기에 원더우먼의 깜짝 등장도 짜릿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다고 합니다. 실망했다는 분들 대부분은 DC코믹스 원작을 본 분이나 잘 아는 분들입니다. 저 같이 원작만화 한 번도 보지 않고 별 관심이 없는 평범한 관객들은 이 정도면 만족합니다. 어벤져스나 X맨 시리즈 보다는 분명 아쉽기는 합니다만 이 영화 춘궁기에 이만한 영화도 만나기 힘듭니다. 어차피 볼 영화도 없어서 볼 수 밖에 없죠. 가볍게 보면 괜찮은 영화입니다.
40자 평 : 남자들의 핵존심 싸움이 치졸하지만 쌈 구경은 꿀잼
별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