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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생 로랑> 여성 옷을 만들었던 남자 둘의 이야기

by 썬도그 2015.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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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인지한 명품 브랜드 로고는 YSL이 겹쳐진 '이브 생 로랑'이었습니다. 어머니의 화장품에서 발견한 YSL이 겹쳐진 로고는 강렬했습니다. 그 화장품이 진품인지 짝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기억납니다. 이 YSL로고를 만든 프랑스인 '이브 생 로랑'이 여자가 아닌 남자라는 것입니다.  설마요! 어떻게 남자가 여자 화장품을 만들어요? 그런데 이 YSL로고는 화장품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인 여성들이 입는 옷에서도 등장합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남자가 여자 옷을 만들기도 하는구나. 이에 어머니는 유명 요리사는 남자라면서 남자도 여자 옷을 디자인할 수 있다고 다독여 주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이런 성에 대한 강한 관념은 느슨해졌지만 어렸을 때 받았던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네요.

 

<생 로랑>은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인 '이브 생 로랑'의 모든 부분을 담은 영화는 아닙니다. 1967년에서 1976년까지의 전성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그 전성기를 노년의 '이브 생 로랑'이 중반 이후부터 회상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1967년에서 1976년까지 시간순으로 구성한 것도 아닙니다. 

영화 첫 장면은 자신의 숨겨온 비밀을 호텔에서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면서 바로 1967년으로 넘어갑니다. 이런 시간의 뒤죽박죽은 심하지 않습니다. 그냥 몇 장면만 시간에 역행하는 장면을 배치했을 뿐 전체적으로는 1967년 '이브 생 로랑'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던 시절부터 그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1976년 패션쇼에서 폭죽을 터트리고 끝이 납니다. 

<생 로랑> 초반에는 이브 생 로랑(가스파르 올리엘 분)의 의사 가운 같은 흰 가운을 입고 의상 제작 현상에서 열정을 쏟는 모습이 보입니다. 건실한 성공한 청년 디자이너 모습을 보여주죠. 그런데 이 남자, 밤에는 클럽에서 흥청거리면서 불타는 밤을 보냅니다. 이 밤의 세계에서 만난 평생의 친구가 베티(아이멜린 발라드 분)과 룰루(레아 세이두 분)입니다. 영화는 이 두 뮤즈 같은 친구와 생 로랑 사이의 사랑과 일에 대한 열정이 펼쳐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 이성 뮤즈를 지나서 동성에게 눈길을 돌립니다.

 

생 로랑의 눈길이 멈춘 곳은 클럽에서 만난 자크(루이 가렐 분)입니다. 두 사람은 클럽에서 눈길 교환 후에 연인 사이가 됩니다. 영화는 중반부터 이 두 동성 커플에 대한 애틋한 눈빛을 비춥니다. 패션에 대한 영감은 베티와 룰루가 줬지만 삶에 대한 영감과 삶을 살아가는 에너지는 자크에서 받습니다. 생 로랑의 전성기 시절의 옷들은 이 로랑과 자크의 케미가 만든 창조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 로랑은 점점 자크의 늪에 허우적거리면서 일에 심각한 영향까지 주게 됩니다. 

자크와 함께 연인으로 지내면서 술과 마약에 너무 심각하게 물들어서 자기 몸을 제어할 수 없고 삶도 제어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방탕한 생활은 생 로랑의 동업자이자 이성적 판단으로 생 로랑이 링 밖으로 벗어나려고 할 때마다 링 안에서 싸우게 도와주는 코치 같은 역할을 하는 베르게가 나서면서 해결이 됩니다. 영화 <생 로랑>은 이 중반의 동성애 장면이 보수적인 분들에게는 불편합니다. 직접적이고 적나라한 묘사는 하지 않지만 끈적한 두 꽃미남 배우의 눈빛 교환만으로도 심히 불편하게 만들기 충분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생 로랑 역을 연기한 '가스파르 올리엘'과 자크를 연기한 '루이 가렐'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꽃미남 배우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끊어진 듯한 프랑스 미남 계보가 이 두 배우가 되살려 놓은 듯한 느낌을 주네요. 남자인 내가 봐도 두 남자 배우의 외모는 찬란하다 못해 황홀합니다. 

여러모로 이 영화는 눈을 호강하게 하는 시각적 재미가 풍부합니다. 두 꽃미남 주조연 남자 배우와 함께 패션계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베티 역을 연기한 '아이멜린 발라드'의 사랑스럽고 강렬한 외모와 올해 개봉할 <007 리텍터>에서 본드걸로 출연하는 룰루 역을 연기한  '레아 세이두'의 뛰어난 외모가 영화의 시각적 풍미를 쉴새 없이 제공합니다. 

여기에 클럽 장면에서 천박하지 않으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대단히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을 선보여서 제2의 벨 에포크 시대였던 풍요와 마약의 시대였던 1970년대의 화려함과 휘청거림을 아주 세련되게 잘 담습니다.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빼고 다 할 수 있었던 1970년대의 자유로움을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특히 영화 마지막 장면인 1976년 패션쇼 장면은 이브 생 로랑의 전성기 시절의 눈이 시릴 정도로 화려한 모습을 로랑이 좋아했던 화가인 몬드리안의 그림처럼 분할된 장면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생 로랑>의 아쉬운 점은 눈만 호강하지 뚜렷한 메시지가 없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먼저 이 영화는 생 로랑의 성공 과정을 직설적으로 말하고 싶어하지 않은 영화입니다. 생 로랑의 일대기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관객을 위한 것인지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서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부분 부분의 이미지를 던져 주면서 대충의 느낌만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서 생 노랑이 성공하는 과정에서 겪은 경영에 대한 분란은 그냥 말다툼 정도로 묘사하면서 슬쩍슬쩍 스냅사진처럼 툭툭 던지면서 지나쳐 버립니다. 심지어 이브 생 로랑의 패션이 패션계에 어떠한 영향을 줬는지도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따라서 명징한 기승전결의 할리우드 식의 드라마를 원하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가 아닌 작년에 개봉한 같은 인물을 다룬 이름도 비슷한 <이브 생 로랑>을 추천합니다. 패션피플이나 구차하게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느낌 가는 대로 움직이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분들에게는 영상이 주는 산뜻한 느낌들은 좋습니다. 그럼에도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과도한 노출 장면은 깜짝깜짝 놀라게 합니다. 

 

로랑에 대한 묘사도 대사로 전하지 않고 이미지로 전합니다. 자신의 가장 화려한 전성기였던 1976년 패션쇼를 무대 뒤에서 수줍은 소년의 미소를 띠고 훔쳐보는 듯한 생 로랑의 상기된 얼굴을 보고 있으며 수줍음이 천성이 생 로랑의 소심함을 잘 묻어냅니다. 이 소심함과 수줍음은 '가스파르 울리엘'에 의해 100% 이상으로 잘 재현됩니다. 영화는 이렇게 모든 것을 시각적으로 해결하려다 보니 이야기 전달력은 무척 떨어집니다. 중간중간 선문답 같은 추상적인 이미지가 던져지면서 약간은 난해하고 지루합니다. 여기에 2시간 30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은 패션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에게는 중간에 1,2번 졸 기회를 제공합니다. 

평생 우아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불안함 속에 살았던 '생 로랑',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그였지만 세상의 편견과 매년 새로운 옷을 창조해내야 한다는 창조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술과 마약에 허우적 거리면서 삽니다.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 이름으로 만든 이브 생 로랑은 기성복을 만드는 자신의 직업처럼 기성품 같은 인생에서 괴로워하다가 쓸쓸한 노년을 맞습니다. 
빛이 강할수록 어둠이 짙어지듯 '생 로랑'의 화려한 무대 이면의 어두운 뒷골목에서 힘들어하는 생 로랑을 느껴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감정의 정밀 묘사는 좋았으나 서사가 성겨서 여러모로 편하게 보기는 힘든 영화입니다. 마치 생 로랑의 전성기 시절의 스냅사진을 담은 앨범을 들춰 본 느낌이네요.  패션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만 추천합니다. 
40자평 :  이브 생 로랑의 전성기를 스냅 사진으로 찍어서 만든 순간만 있고 메시지가 없는 사진 앨범 
별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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