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19일 오전 5시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위치한 4층짜리 남일당 상가 건물 옥상을 점거하고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용산 재개발로 인해 그곳에서 권리금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게 된 중국집 주인, 호프집주인, 백반집주인 같은 세입자들과 가족들이 철탑을 만들고 경찰의 강제 진압에 저항을 했습니다.
그러나 강제 진압 과정에서 세녹스라는 휘발성 물질이 불에 붙으면서 세입자 2명, 전철연 소속 회원 3명, 경찰특공대원 1명이 사망했습니다. 이 참혹한 사건은 서울이라는 거대한 얼굴에 큰 상처를 냈고 앞으로도 이 상처는 아물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자비하게 철거를 한 곳은 지금은 부동산 경기 추락으로 텅 빈 공간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재개발을 한다면서 사람들을 토끼 몰이 하듯 몰았는데 정작 재개발은 하지 않는 블랙코미디가 펼쳐졌습니다.
그렇게 그 사건은 잊혀졌습니다. 벌써 5년 전 일이네요.
2014 올해의 문제소설이라는 책을 읽다가 이 용산 참사 사건을 다룬 소설이 있었습니다.
이기호 작가의 '나정만 씨의 살짝 아내로 굽은 붐'입니다. 아주 긴 제목이고 제목 자체가 특이합니다. 처음에는 나정만 씨는 누구고 아래로 굽은 봄은 또 뭐지?라는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봄이 아니라 붐이네요? 붐?? 호기심이 시동을 걸었고 잊혔던 사건을 다시 읽는 느낌으로 한 달음에 다 읽어 버렸습니다.
이 소설은 아주 독특한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소설가입니다. 그러나 소설가의 목소리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소설가는 아는 고등학생 동창의 인맥을 통해서 용산 참사 당일에 현장에 출동하지 못한 크레인 기사와 고깃집에서 인터뷰를 합니다.
대부분은 모르시겠지만 당시 용산 참사 당일 원래는 2대의 크레인을 이용해서 용산 철거민이 쌓아 올린 망루를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진압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크레인 1대가 무슨 이유인지 도착하지 않았고 1대의 크레인을 이용해서 거대한 콘테이너 박스를 공중에 띄워서 크레인 위에서 진압을 시도합니다. 그러다 큰 화재가 발생하고 많은 희생자가 나옵니다. 만약, 2대의 크레인이 도착해서 진압했다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경찰이 1대가 오지 않음에도 무리하게 강제 진압한 것이 문제일까요? 아무튼, 이 소설은 독특하게도 도착하지 못한 크레인 기사를 인터뷰를 합니다.
현장에 도착하지 못한 크레인 기사는 고기를 먹으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지방대를 중퇴하고 카고를 몰게 된 과정이나 여러가지 고생한 이야기 등등을 펼쳐냅니다. 그리고 용산 참사가 있던 당일날 왜 현장에 가지 못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인터뷰를 합니다.
현장에 가려고 했지만 동작대교에서 공익의 검문에 걸려서 다리를 건너지 못했습니다. 저도 몰랐는데 100톤이나 되는 거대한 크레인 트럭은 동호대교를 이용해서 한강을 건너야 하고 다른 다리는 다리에 무리를 준다고 해서 못 건넌다고 하네요. 그런 문제로 건너지 못했다는 말을 소설가 앞에서 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현장에 가지 못한 것이 다행이라는 소리를 합니다 만약에 갔다가 용산 참사가 났다면 자신의 크레인의 붐대가 휘어서 큰 낭패를 봤을 뻔 했다면서 다행이라는 소리를 합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용산 철거민들의 사고가 안타깝다는 말은 하지만 그건 인사치레고 자신의 안위만 챙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크레인 기사의 모습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TV를 보면서 정치인들을 욕하고 사회 비판을 줄기차게 하면서 정작 선거철만 되면 도덕성은 눈꼽만큼도 없는 그러나 아파트 가격 올려줄 능력이 높은 국회의원이나 구청장이나 시장을 뽑는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그러잖아요. 세상은 살짝 비겁하게 살면 살기 편하다고요. 이 말은 제가 고등학교 때 들었고 친구들과도 세상은 살짝 비겁하게 살면 딱 좋다는 말을 주고받은 걸 보면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미국도 마찬가지겠죠, 다만, 한국이 좀 더 심한 사회 같습니다. 그렇게 살짝 비겁한 크레인 기사는 그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소설가가 지금까지 인터뷰 내용을 모두 스마트폰으로 녹음했다고 고백을 합니다. 이에 크레인 기사는 스마트폰을 달라고 합니다. 그 녹음 파일을 방송국에 갖다 줄지 소설을 쓸지 시민단체에 줄지 알 수 없다면서 강제로 소설가의 스마트폰을 뺐다가 스마트폰을 망가트립니다.
남 이야기 하듯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인터뷰한 내용으로 인해 자신이 직장에 짤릴 수 있다는 공포가 엄습하자 나상만 크레인 기사는 힘으로 스마트폰을 뺏어 버립니다. 그리고 크레인 기사는 녹음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 자신이 오늘 한 이야기 중에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말해봐요... 아, 왜 자꾸 사람 말을 듣고도 눈만 감고 있어요? 내말이 틀렸어요? 형씨도... 그러니까 형씨도 나랑 비슷한 거 아니냐고요?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거고, 무서운 건 무서운 거 아니냐고요? 네? 내 말이 틀렸어요?
<나상만 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 중에서>
크레인 기사 나상만 씨는 소설가에게 너나 나나 비겁하고 찌질한 거 아니냐고 직설적으로 말하니다. 소설가가 나상만 씨를 인터뷰한 것은 비겁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경찰이나 현장에 있었던 크레인 기사나 희생자 가족을 인터뷰하는 것이 아닌 별 상관도 없어 보이는 현장에 없던 크레인 기사를 인터뷰하는 그 자체가 불의에 저항을 하고 싶긴 한데 그러자니 용기도 없고 세상이 무서워서 주변 인들만 취재하는 모습을 나상만 씨는 간파합니다.
나상만 씨야 인터뷰를 하면서 자기 목소리라도 내지 소설가는 이 소설에서 아예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음소거 상태로 나옵니다.
나상만 씨는 전형적인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의 이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용산 참사를 나상만 씨의 태도로 바라봤습니다. 나에게 받는 피해가 있냐 없냐부터 가장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안위 다음으로 먼 산 구경하듯 세상일을 안타까워하고 비판을 합니다.소시민들 대부분이 그렇게 삽니다. 교육이 잘못되었다느니 정치가 개판이라느니 하면서 정작 그 일이 내 자식에 관련된 일이고 내 일이 되면 자신이 하던 비판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시스템에 어떡하면 잘 적응할지부터 생각합니다.
이런 쪼잔스러운 삶이 평균의 삶입니다. 나상만 씨는 용산 참사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쓰려는 소설가의 공명심을 쉽게 무시해 버립니다. 너나 나나 다 비겁한 인간들이고 세상이 무서워서 바들바들 떠는 사람 아니냐며 소설가의 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소설은 실제가 아닌 작가가 허구로 만든 이야기지만 이기호 작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아주 강력합니다. 우리의 살아가는 살짝 비겁하게 사는 삶을 독특한 형식의 소설로 잘 그려냈습니다. 우리의 삶을 거울에 비춘 듯한 좋은 소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