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메라사진/사진전시회

서울사진축제에서 본 한성부터 서울까지 사진으로 보는 서울이라는 공간

by 썬도그 2014. 11. 28.
반응형

사진의 매력은 뛰어난 묘사력과 재현성입니다. 5차원을 이해하는 인류가 나오기 전까지 가장 타임머신에 가까운 도구는 사진입니다. 오래된 사진 한 장으로 우리는 쉽게 그 시절로 타임슬립을 하게 됩니다. 그 옛 사진을 전시하는 사진전이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서울사진축제는 올해로 3년 째 되고 있는 사진축제입니다. 2014년에는 서울이라는 공간을 주제로 한 '서울 시, 공간의 탄생'을 제목으로 하고 있습니다. 

 

11월 13일부터 다음 달 12월 13일까지 1달 간 전시를 합니다. 물론, 무료입니다. 



서울역사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여가의 탄생이라는 전시가 있습니다. 로비에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여가의 탄생은 서울 시민들의 놀이 공간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은 창경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지금의 30,40대 이상 분들은 현재의 창경궁이 창경원이었던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저도 어렴풋이 벚꽃 피던 창경원에서 어머니 아버지와 벚꽃 밑에서 김밥 까먹던 기억이 살짝 납니다. 동물도 보고 벚꽃도 보고 엄청난 사람에 치어서 빨리 집에 갔으면 하던 생각이 납니다. 


위 흑백 사진 뒤의 호수가 이 창경궁의 춘당지입니다.



창경원은 일제가 조선인들의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서 고궁에 무례하게도 놀이공원과 동물원으로 치장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해방 후에도 한참이 지난 80년대 초에 모두 거둬냅니다. 
과천 현대미술관과 동물원이 생기면서 이전 하기전 까지 창경원은 서울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습니다. 


일제의 잔재이지만 놀이공원이 딱히 없었던 서울시민들은 창경원으로 나들이를 많이 갔습니다. 여가의 장소가 바로 창경원이었죠


이 대온실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얼핏 보면 일제가 만든 온실로 보입니다. 저도 일제가 만든 온실인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고종 때 지어진 유리 온실입니다. 가서 보면 오얏꽃 문양이 가득한데 아시겠지만 조선 왕실을 표시할 때 오얏꽃 문양을 새겼습니다. 



여긴 어딜까요? 능동 어린이 대공원 같기도 하고요. 



여긴 창경원입니다. 놀랍죠. 1972년 봄, 상춘객 1만 2천 여명이 창경원에서 봄 나들이를 했습니다. 



이렇게 로비 공간을 하나의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네요. 창경원에서 다시 창경궁으로 바뀌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본 전시는 로비 입구 왼쪽에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서울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이 슬라이드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한국에 거주했던 선교사나 한국전쟁때 미군 그리고 한국 사진가들이 찍은 사진들입니다.



전시 공간은 큽니다만 2012년 2013년보다는 작아 보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올해가 서울사진축제 중에 가장 작은 규모 같다는 느낌입니다. 여러가지로 아쉬운 점이 꽤 느껴지네요. 그럼에도 옛 서울의 모습을 자세히 꼼꼼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올해는 현대의 서울이 아닌 한성과 경성 을 지나 서울까지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저 멀리 명동성당이 보이는 파노라마 사진도 있고



경복궁과 주변의 한옥들이 가득한 모습도 보입니다. 한옥은 2층짜리 건물이 없습니다. 이는 2층으로 올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땅이 넓은 것도 있지만 경복궁을 내려다 볼 정도로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는 생각 때문도 있죠. 

가장 큰 이유는 한옥의 전통 가옥 구조가 2층 구조가 아닌 것이 클 것입니다. 



한국에 온 한 선교사가 조선의 한양 거리를 보고 경악을 했다고 하죠.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도시가 북경인 줄 알았더니 한양이 더 더럽다면서 그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몇년 후에 그 선교사는 한양 거리가 아주 깨끗해졌다고 칭찬을 합니다. 
위 사진은 종로 대로입니다. 원래는 저렇게 큰 길이 아니였습니다. 위에서 보이는 기와집 앞에 초가집들이 즐비 했습니다. 그 초가집들은 가게들인데 그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팔면서 소와 말이 끌고 온 달구지에서 물건을 싣고 내렸습니다. 소와 말은 아무데서만 뿡뿡 쌉니다. 가뜩이나 좁은 길에서 소와 말이 똥을 뿡뿡 싸대니 거리 전체가 똥 밭이었습니다. 바로 바로 치우면 좋으련만 치워서 버릴 곳도 마땅치 않아서인지 그대로 방치했고 그 모습을 보고 선교사가 기겁을 했습니다.

이후, 초가집들을 다 허물고 도로를 넓혀서 전차도 놓으면서 길은 이전 보다 깨끗해졌습니다. 그리고 유럽에서도 보기 드문 큰 대로가 생깁니다. 



넓어진 광화문 앞길입니다. 양 옆에 육조거리가 있었습니다. 의정부, 이조, 한성부, 호조 등이 있었는데 지금의 정부청사 같은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광화문 교보문고 건물 뒤로 높은 빌딩이 요즘 올라가 있는데 그 빌딩 올리면서 육조를 발견하고 그 터를 이렇게 투명한 유리판 밑에 넣어서 시민들이 볼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여기가 어딘지 아는 분 많지 않습니다. 지금은 덕수궁으로 불리던 경운궁입니다. 경운궁은 거대한 궁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다리를 건너서 경운궁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저 다리는 지금은 사라졌는데 그 흔적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위 사진 왼쪽 상단에 보면 큰 벽돌로 툭 튀어 나온 곳이 있습니다. 바로 저기가 경운궁의 다리가 있던 곳입니다.



지금은 사라진 근현대 건물들의 사진도 가득 전시 되어 있습니다. 주로 일제 시대에 지어진 독일식 또는 유럽식 건물들이죠. 아직 남아 있는 건물도 몇 곳이 있지만 대부분은 사라졌습니다. 

한국 전쟁의 여파도 있고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진 곳들도 많죠. 



이번 전시회에서 눈여겨 볼 것은 경성 시절의 서울의 사진과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일제 시대하면 지워야 할 기억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치욕적인 역사를 후손들에게 알려야 다시는 그런 치욕스런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냥 지우려고만 합니다. 그런면에서 경성 시절의 서울 이야기를 발굴한 모습은 아주 좋네요. 

경성 시절 일제는 조선대박람회를 경복궁에 개최를 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만국박람회 같은 것이죠. 경복궁 여기저기에 현란한 현대식 건물을 지어서 많은 관람객을 유치합니다. 그러나 궁궐에 엑스포 같은 것을 하는 것이 불경스럽죠. 그러나 힘이 없던 조선은 그걸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나라 잃은 설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당시의 조선인들이 그런 모습에 울분을 토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일제시대를 암울한 시대라고 묘사하지만 정작 경성에 살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제를 그렇게 미워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깡패였던 김두한도 영화나 소설에서나 하야시하고 맞짱을 뜨지 실제로는 하야시 꼬봉이었다고 하잖아요. 

또한, 서민들은 조선놈이나 일본놈이나 윗대가리만 바뀔 뿐 똑같이 고혈을 빨리면서 살았을 것 같은데요. 


조선호텔에 대한 사진도 보입니다. 서울 시청 옆 환구단 앞에 있는 조선호텔은 병품처럼 생긴 호텔입니다. 


예전 조선 호텔 모습입니다. 지금도 외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호텔이죠



한국전쟁은 서울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2번이나 공산군에게 점령을 당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파괴가 이루어졌습니다. 
위 사진은 서울 조차장 미군의 폭격기가 파괴한 사진입니다. 미군의 뛰어난 공군력은 공산군의 거점을 철저하게 파괴 했습니다. 


파괴 직후의 사진입니다. 서울 조차장이 어디였을까요? 검색을 해보니 현재의 수색역 부근이 서울 조차장이었다고 합니다. 해방 바로 전에 일제가 완공을 했던 곳입니다. 사진을 보니 수색이 맞는 것 같네요.

수색역이 아닌 용산역이 서울 조차장이었습니다. 


서울을 수복하고 있는 미군입니다. 고마운 사람들이죠



대부분의 사진은 일본이 선교사가 촬영한 사진입니다만 해방 후 한국전쟁에는 한국 사진가들도 활약을 합니다. 대부분 미군의 용병으로 사진을 찍는 분들이 많았지만요. 남대문이 부근 같습니다. 



전쟁 후 서울은 재건을 합니다. 석기시대로 리셋된 서울이 다시 일어서서 뛰기 시작합니다.


박정희라는 전체주의자가 한국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경제 발전을 일으킵니다. 독재자라는 오명도 있긴 하지만 경제 발전 만큼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을 합니다. 물론, 그 경제발전 5개년 계획도 이미 전 정권이었던 민주당이 만든 계획 또는 미국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경제발전이라고 하지만 그런 이면까지 생각하면서 사는 우리가 아닙니다. 

지금도 박정희 정권 시절을 그리워 하는 50대 이상 분들이 꽤 많죠. 그 향수병 때문에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마치 조선시대의 왕위를 물려주는 모습을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게 되네요. 


당시는 모두가 대한민국의 부속품이 되어서 돌아가야 했습니다. 자유보다는 획일이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는지 똑같은 몸, 똑같은 옷, 똑같은 생각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다른 생각만 가져도 남산으로 끌려갔던 시절이죠. 


또한, 동상도 참 좋아했습니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많이 활용했던 동상을 서울 곳곳에 세웁니다. 박정희 정권 때 세워진 동상이 꽤 많습니다. 그러고보면 북한이나 남한은 동상 참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 동상 제작 행렬도 문민 정부가 들어선 후 멈추게 됩니다. 그러나 오세훈 서울 시장이 광화문 광장에 거대한 세종대왕 동상을 세우면서 다시 동상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동상이라는 허울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한국을 쥐락펴락 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표어의 정권이었습니다. 마치 일본의 하이쿠 같은 시 같습니다.
매년 반공 포스터 그리고 반공 표어를 숙제로 했던 시절이 떠오르네요. 그런데 저 표어를 단 현수대도 시대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위 직선형이 70년대 스타일이라면 



80년대는 무지개형으로 바뀝니다. 요즘은 저런 현수대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여긴 세운상가가 보이는 종묘 돌담길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불도저라는 별명이 있었던 김현욱 서울시장에게 근사한 건물을 지으라고 명령을 합니다. 이에 김현욱은 건축가 김수근에게 의뢰해서 현대식 건물을 짓습니다. 

세운상가는 하나의 상가가 아닙니다. 
종로쪽에 있는 현대상가, 세운상가, 청계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 풍전호텔, 신성상가, 진양상가가 하나의 세트이고 그걸 통틀어서 우린 세운상가라고 합니다. 보세요. 여러 상가가 쭉 나열 되어 있죠



1968년 종로부터 퇴계로까지 이어지는 국내 최초의 복합상가 건물이자 오피스텔 건물인 세운상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커팅식을 하고 있네요. 이 건물은 독특하게도 하층은 상가들이 있고 상층은 아파트로 활용 했습니다. 이 세운상가에 유명한 연예인들이 참 많이 살았습니다. 

이 세운상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슬럼화 되었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오세훈 시장이 싹다 허물고  종로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녹색축을 만든다면서 현대상가부터 허물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중단되고 맙니다. 세계금융위기로 거품이 빠지자 모든 계획이 스톱이 됩니다. 



세운상가가 세워지고 서울 곳곳에 시민 아파트가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지방에서 먹고 살기 위해 상경한 인구가 늘자 서울시는 시민아파트를 지어서 그들을 수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와우 아파트가 붕괴 되면서 개발 후유증도 생깁니다. 

이 와우 아파트 붕괴를 풍자한 노랫 가삿말로 가수 조용남은 강제 입대 하게 됩니다. 노래가 와르르르로 시작되기 때문인데 이에 심기가 불편한 권력자가 조용남을 군대로 보내버립니다. 그 시절은 그랬습니다. 


위 사진은 1990년 신림동 사진입니다. 물길처럼 구비구비 흐르는 하천의 모습이네요. 


지금은 거대한 아파트가 촘촘하게 꽂혀 있는 봉천동입니다.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였죠



여긴 난곡입니다. 2천년대 초에 여기도 싹 개발이 되어서 아파트가 가득 들어섰습니다. 난곡 개발이 알려지자 전국의 사진가들이 이 동네를 촬영했었습니다

이 난곡의 옛모습은 영화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에 남아 있습니다.
때론 영화가 과거를 기록하네요. 


(영화 해적, 디스코왕 되다 스틸샷)


이런 무계획적인 개발 시대를 지나 90년대가 되면서 뒤를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앞으로만 달려가던 서울은 주변의 환경과 미관을 생각하게 딥니다. 남산을 가로 막던 남산 시민 아파트도 파괴하고 남산 경관을 복원합니다




그러나 서울은 더욱 흉물스럽게 변해갑니다. 성냥갑 같던 아파트는 서울 전체에 촘촘하게 세워집니다. 미관보다는 편의가 중심인 도시의 한계이자 우리의 욕망이 대변 된 아파트 공화국이 만들어집니다. 


아파트와 함께 연립주택도 많이 만들어집니다. 몇년 전에 방한한 '윌 스미스'가 한국의 연립주택 옥상의 가득한 녹색을 보고 한국에는 옥상 정원이 많다면서 SNS에 올려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가 본 것은 옥상 정원이 아닌 녹색 방수페인트가 발라진 옥상을 본 것입니다. 그의 말대로 옥상 정원을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전시회 마지막 구간에는 서울을 기록한 사진작가들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저 멀리 불뚝 솟아 오른 롯데월드 타워가 보입니다. 저 빌딩에 대한 이야기나 할 말은 참 많지만 여기선 하지 않겠습니다. 




사진작가 백승우의 사진인데 서울의 여러 이미지를 재조립 해 놓았네요. 얼핏보면 맨하튼 같아 보입니다. 



전시회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http://www.seoulphotofestival.com/ 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장문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