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사람 중에서 어떤 한 사람을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한다. 전문 용어로는 '대상 선택'이라고 하며, 프로이트는 대상 선택의 기준을 의존적 대상 선택과 자기애적 대상 선택,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사람마다 생존에 절박하게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의존적 대상 선택의 기준은 다양하다. 권력이나 명예, 돈이나 쾌락, 심지어 가학성이나 모욕감도 무의식적 기준이 된다. 위 작품은 중세 묘지에 장식된 조각인데 피사나 피렌체 쯤에서 찍은 것 같다.
의존적 대상 선택이란 말 그대로 의존할 대상을 사랑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아기가 엄마에게 그토록 애착을 품는 이유는 엄마가 먹을 것을 주고, 보살펴주고, 정서적으로 교류하며, 생존에 필요한 것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사랑의 속성이 의존이듯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동적으로,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사람을 알아보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앞을 볼 수 없는 남편과 걷지 못하는 아내의 한 몸 같은 삶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부부는 서로의 눈과 다리 역할을 하며 어디를 가든 함께 다녔다. 나레이터는 그들의 삶이 얼마나 깊은 결속으로 맺어진 지극한 부부애의 전형인가를 이야기하면서 이혼율이 급증하는 이 시대에 귀감이 될 만한 사례라고 극찬했다. 아마도 그것이 사랑의 가장 핵심적이고 진솔한 속성이 아닐까 싶었다. 각자의 절박한 욕망을 얼마나 잘 충족시켜주는가,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에 사랑의 유지 여부가 달려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생존에 더 절박하게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의존적 대상을 선택하는 기준도 다양하다. 어떤 이는 권력이나 명예를, 어떤 이는 돈이나 쾌락을 선택한다. 오클랜드에서 만났던 그 말레이시아 여학생은 자신의 피학적 성향을 충족시켜줄 가학적 남성을 무의식적으로 찾아냈을 것이다. 의처증 남편과 거짓말쟁이 아내, 인정 중독인 남편과 칭찬 방어기제를 가진 아내, "나를 따르라" 식의 지배형 남편과 순종적이고 유아적인 아내 등이 서로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는 상대를 알아본다.
이십대 중반에 나의 이상형은 '백과사전 같은 남자'였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 자신의 무지와 무식을 날마다 발견하던 시절의 기준이었다. 지금은 백과사전을 책장에 꽂아두는 것으로 만족한다. 의존적 대상 선택의 기준을 가진 사람이 조심해야 할 것은 바로 그 기준이 되는 결함 속에 영원히 매몰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른 나이에 결혼하는 사람은 대체로 의존적 대상 선택의 기준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에 비해 너무 늦게까지 결혼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애적 대상 선택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본다. 그런 이들은 유아기에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순조롭지 못해 그 사랑을 자기 자신에게 돌린 이들이다.
자기애적 대상 선택의 특징은 우선 자기 이미지와 닮은 사람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점이다. 타인을 사랑할 때도 그 대상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대상에 비친 자기 이미지를 사랑한다. 자기 이미지가 미화되고 부풀려져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대상도 실제보다 이상화시켜 흠모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것은 상대방의 참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관계가 지속되면서 이상화된 이미지가 깨어지면 그 모든 잘못이 상대방에게 있는 듯한 실망감을 안게 되고, 사랑도 종말을 고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애적 사랑이 불행한 진짜 이유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나 공감, 배려가 없다는 점이다. 상대방에게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사랑하고, 자기 멋대로 사랑을 쏟아붓기 때문에 상대방의 의견이나 감정은 고려되지 않는다. 자신이 쏟아붓는 사랑에 대해 상대가 즐거워하는지 부담스러워하는지, 심지어는 경멸하고 혐오하는지조차 관심이 없다. 이런 사랑의 보편적 사례는 짝사랑이고, 극단적이고 불행한 사례는 스토커의 사랑일 것이다.
한 남성이 중년이 되어 아련한 그리움을 안고 대학 시절 첫사랑의 연인을 수소문해서 만났다고 한다. 그 남성은 첫사랑을 매우 아름답고 행복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만나러 나갈 때 기대와 흥분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그를 만나러 나온 첫사랑 여성이 이렇게 말하더라고 한다.
"그 시절, 나는 한번도 너를 사랑해본 적이 없어. 그냥 네가 하자는 대로 따랐을 뿐이지."
그 남성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그 후 한동안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호소하고 다녔다. 그 남성처럼 자기애적 사랑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내면과 공감하거나 소통하는 데 관심이 없다. 상대방의 감정이나 반응에는 상관없이 그저 자기 감정에 도취되어 사랑을 주고 또 줄 뿐이다.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는 채 아내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가부장제 남편들에게서도 그런 사례를 자주 본다. 그들은 소외감과 심리적 불편을 견디지 못한 아내가 어느 날 "이혼하자"고 하면 이유를 알 수 없어 당황하고 화부터 낸다. 꼬박꼬박 월급 봉투 가져다주고, 주말마다 외식도 시켜주고, 철마다 옷도 사주는 것으로 아내에 대한 사랑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사랑이 의존적 대상 선택이나 자기애적 대상 선택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사랑에는 그보다 더 미묘하고 자각하지 못하는 많은 기준이 있고 그것은 더 힘이 세고 즉각적이고 운명적이다. 프로이트가 발표한 '신경증 환자의 특별한 기준'이 그것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프로이트는 많은 신경증 환자들을 연구한 결과 그들이 사랑을 선택하는 몇 가지 기준이 있음을 알아냈다. 방해하는 제삼자, 최상의 가치, 연인을 구원하려는 태도 등 네 가지 기준이 그것이다.
그 중 가장 보편적으로 많이 보이는 것이 '방해하는 제삼자' 기준인 것 같다. '방해하는 제삼자'는 전형적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발현된 기준일 것이다. 오이디푸스 단계에서 아이들은 반대 성의 부모에게 깊은 애착을 드러내면서 동성의 부모를 방해하는 세력으로 느낀다. 이 시기에 충분한 애착관계를 형성한 후 자연스럽게 그 감정으로부터 떠나오지 못하게 되거나, 어떤 이유로든 그 욕구를 억압당하면 아이의 내면에는 반대 성의 부모를 욕망하는 마음이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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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사랑도 어찌보면 20대때 경제적이고 혼자 독립할수 없을떄 하는 의존형이었던거 같구
30대엔 자기애적인 사랑이었던것 같다. 그래서 나와 닮은 사람을 그렇게 찾고 다니나
보다. 그게 진정한 사랑이 아닌 소통이 단절된 사랑 .
지금도 사랑이라고 믿으면서 남을 괴롭히는 인간군상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