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책을 많이 읽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흥미도 없는 위인전집을 사주시는데 솔직히 위인전집 별 재미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내용이 뻔합니다. 개천에서 태어나서 용 되었다는 정말 어린 나이에도 지루한 내용에 그가 전기를 발견하든
세상을 구원하든 별 흥미가 없었죠. 어떻게 보면 위인전집 사주는 부모님들은 아이가 위인이 되길 바라는 부모입장만 강요
하는 모습 같아 보입니다.
국민학교(당시는 국민학교였으니) 4학년때인가 학급문고라고 해서 학생들 한 명씩 집에서 책 한 권을 가져와서 학급에 비치해 놓고
자습시간에 읽곤 했습니다. 그때 읽게 된것이 코난도일의 셜록 홈스 시리즈였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제가 책 읽는 재미를 알게 된 듯합니다.
그해 내내 코난도일의 셜론 홈즈를 읽으면서 지냈고 이상하게 저는 주인공 홈즈보다 와슨박사가 더 좋았습니다.
제 기질이 주인공 기질은 아닌가 봐요. 조연들이 더 친근하고 정이 가는데 아무래도 완벽한 주인공에게서는 인간미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후 SF소설 쪽으로 흥미를 얻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책을 끼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잡독을 하고 있죠. 장르를 안가리고 읽고 있습니다. 경제서적, 문학소설, 에세이집 정말 가리지 않고 읽고 있습니다.
어둠의 변호사를 친구가 권해주더군요. 추리소설 마니아가 있는데 상당히 좋은 책이라고 권하기에 어렸을 적 읽은 코난도일의 셜론홈즈와 고등학교 때 드라마로 본 아가사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도 생각나기도 하고요. 친구가 권해주면서 재미있는 말을 해주더군요
작가 도진기라는 분은 현직 판사인데 판사가 쓴 책이라서 그런지 현실적인 시선으로 봐서 그런지 더 몰입감이 있다구요
현직판사가 쓴 추리소설 어둠의 변호사
책을 읽으면서 선입견을 가지고 읽는 것은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만 초반에 판사인 것을 알리는 것은 선입견을 가졌으면 하는
맘에서 밝혔습니다. 그 이유는 이 책의 탄탄한 현실적인 법묘사가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복잡한 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범인을 확신하고도 증거가 없기에 잡지 못하는 모습이라든지
법의 심판보다는 어둠의 심판을 유도하는 모습등이 잘 묘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책을 다 읽은 느낌부터 이야기하자면 친구가 소개한 책을 설렁설렁 읽었습니다.
등장인물도 많지 않고 스케일도 작아서 (주로 서초경찰서 인근지역과 부산이 전부임) 뭐 이런 조막만 한 스케일인가 했습니다.
그렇게 설렁설렁 읽고 있는데 후반부에 반전이 일어나면서 어~~ 소리와 함께 새벽 4시까지 다 읽고 잤습니다 ㅠ.ㅠ
다음날 후유증이 컸죠.
이 책은 마치 1단 기어를 넣고 중반까지 덜컹 걸리면서 달리다가 후반부에 2단 기어를 넣고 속도를 내더니 3단 4단 5반까지 급가속을 하더니 마지막에 엄청난 반전의 유턴을 하고 다시 또 유턴을 하는 등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래서 제가 추리소설이 좋다니까요.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스토리텔링. 이 책은 서사적인 부분이 약한 흠이 있긴 하지만 그 스위스 시계처럼 정밀묘사되고 척척 들어맞는 퍼즐게임에 짜릿함까지 느껴집니다. 제가 얼마나 탄탄한지 알기 위해 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나
슬쩍 흘리는 글들을 체크했습니다. 그런데 이 도진기 작가분 그런 슬쩍 흘리는 복선까지 깔끔하게 뒤쪽에서 마무리해줍니다.
참으로 탄탄한 구성력입니다. 판사특유의 치밀함인가요?
거기에 이 어둠의 변호사는 다른 추리소설에서 볼 수 없는 주인공들의 심리묘사추리까지 대단히 촘촘하게 묘사하고 다루고 있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무기이자 행동거지가 되는 욕망을 추적하는 고진 변호사의 집요한 추적은 물증 같은 것보다 욕망이라는 심증을
예리한 눈으로 추적하며 완벽할 것만 같은 알리바이를 벗겨냅니다.
줄거리를 살짝 말하자면
주인공 고진은 어둠의 변호사라고 해서 법정에 직접 나서지는 않지만 뒤에서 사건을 진두지휘하고 남들이 잘 맡지 않으려는 사건을 맡아서 법을 준수하면서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가면서 의뢰인의 의뢰에 정확한 결과를 안겨줍니다
전직판사 출신인 고진은 “형사소송법과 온갖 구질구질한 절차를 거쳐서 겨우 고양이 눈물만큼 밖에는 처벌할 수 없는 법률의 굴레가 싫어서 법원을 나와 버렸다”는 문장으로 대변되는 주인공입니다. 즉 법의 처벌보다는 감정적인 처벌을 해야 할 사람들을 법 대신에 처벌해 주는 자경단 같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둠의 변호사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아주 뛰어난 추리력의 대가이며 마치 셜록홈스와 같은 존재이기도 하고요.
또 한 명의 주인공 아니 조연은 이유현이라는 서초경찰서 강력계 팀장입니다.
이 사람은 열정적인 형사로 경찰대를 나왔지만 펜대 굴리는 게 싫고 현장에서 사건을 배우겠다는 분입니다.
어둠의 변호사가 경찰력을 빌릴 수 없는 약점을 이유현이 커버해 주고 이유현이 사건이 막힐 때 고진이 조언을 해주면서 고문 같은 역할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둘은 공생관계입니다. 셜록홈스와 와슨 같다고 할까요?
고진에게 한 의뢰인이 옵니다. 그리고 그 의뢰인은 자신의 오빠가 재산상속을 1순위 딸로 정하고 2순위를 자신이 아닌
의붓형제에게 준다는 유언녹음을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자신에게 재산상속을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찾아오죠.
고진은 심드렁해 있다가 우면산 기슭에 있는 붉은 집에 찾아가게 되면서 사건은 시작됩니다.
주된 내용은 3대에 걸쳐 4번의 살인이 일어나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후반부의 반전의 반전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화하면 딱이겠네'라는 생각마저 들게 됩니다. 요즘 영화들 반전 한번 가지고는 별 느낌 못주죠. 영화 '인셉션'처럼
반전을 암시하는 듯 말 듯 하면서 끝내줘야 감질맛 나고 좋죠. 하지만 이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 첫 번째 붉은 집 살인사건
은 책장을 덮기 전까지 그 사건 전체의 전말이 드러나지 않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책장을 덮자마자 이 책이 시리즈임을 알고두 번째 라트라비아타의 초상을 읽고 있고 거의 다 읽어 갑니다.
현직판사라서 그런지 현실적 법의 테두리를 잘 알고 있고 특히 사건을 묘사하는 과정이 너무나 현실적이고 한국적입니다.
이게 이 추리소설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가 갖는 큰 힘입니다.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주된 줄거리 말고
그 디테일한 묘사 쪽은 현장경험이 아니면 묘사할 수 없는 강렬함이 있습니다.
좀 화가 나네요. 제가 박경철 시골의사를 좋아하면서 싫어하는 이유가 의사란 직업만 잘하지 경제박사와 인문학에도 조예가 깊은 모습에 화가 납니다. 한마디로 질투죠.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저로써는 그런 다빈치형 인간들이 롤모델이면서도 질투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도진기라는 분도 제 질투의 대상이 되겠네요 판사라는 직업을 가지면서 어떻게 이런 잘 빗어낸 추리소설을 만드나요? 일본이 추리소설의 강국이죠? 그러나 이 도진기 작가의 책도 일본의 추리소설 못지않게 짜릿함을 줍니다.
두 번째 책도 다 읽어가는데 3권은 언제 나오나요? 아쉽기만 하네요. 스케일이 작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 스케일이 작기에
정말 이야기가 많이 나올 것 같지 않은데 그걸 심리적인 측면과 사건의 재구성등으로 다각도로 다루면서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합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죠. 여행길에서 출퇴근 길에서 한번 읽어 보십시오. 시동 잘 안 걸린다고 초반 조금 읽고 덮지 마시고 후반의 힘을 믿고 읽다 보면 큰 재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