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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사진전시회

노동운동가이자 시인인 박노해. 사진가로 변신하다.

by 썬도그 2010.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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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박노해라는 이름을 모르면 간첩이었습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중학생인 저에게도 박노해는 알고 있었지요.
이르을 기억하게된 계기는 단순합니다. 이름 외우기가 참 쉬웠어요.

해받는 동자 
이렇게 풀어서 이름을 들으니 어느 누가 그 이름을 쉽게 잊을수 있겠습니까.  
박노해의 본명은 박기평입니다. 80년대 노동운동현장의 아이콘이었고 그가 84년에 쓴 노동의 새벽이라는 책은  공안정권에 의해 금서조치를 당하면서도1백만부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얼굴없는 시인이라는 별칭도 받았던 빅노해씨.  그는  공안정권에 쫒기게 되었고 결국 91년 붙잡히고 감옥에 갔다 옵니다.
91년에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독방에서 지내다가 98년에 특별사면이 됩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지 못했다면 그는 지금도 감옥에 있었을 것 입니다. 

변변한 노동단체도 없었던 80년대. 우리들의 누나 형님들은 공장에서  피를 쏟아가면서 근무를 했습니다. 열악한 노동환경에 많은 사람들이 골병이 들지만 정부는  그런것에 신경쓰지 않았죠.  지금의 중국의 모습을 떠올리면 됩니다.   그런 열악한 노동환경을 고발한 자가 바로 박노해시인이였습니다.   그리고 대학생들이  박해받는 노동자들을 위해  투쟁을 했습니다.

그 험난한 시대가 없었고 노동자들이 감옥에 가는 각오를 하고  투쟁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노동인권은 없었을 것입니다.
사장이 주는대로 월급을 받고  한마디에 짤리는 일이 비일비재했죠.  그러나 시대는 변했습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 소련이 붕괴되고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공산국가들은 하나둘  무너졌고 이념의 시대는 사라져 갔습니다.

박노해시인도  변한 세상에 변화를 가져 옵니다.  이념을 넘어 국내를 넘어 전쟁으로 박해 받는  중동으로 낡은 카메라 하나 들고  떠납니다

그리고 전쟁으로 삶을 박해 받는  팔레스타인과  이라크 쿠르드족을 카메라에 담았고 그 기록들을 지금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라크. 펄레스타인. 레바논등 전쟁이 끊이지 않는 중동으로 낡은 카메라 하나들고  10년동안 총 4만여점의 사진을 찍었고 그중 37점의 작품을 갤러리M에서 라 광야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http://www.ra-wilderness.com/ 를 참고하세요


전시장에 들어서면 중동사람들이 많이 먹는 샤이라는 차를 한잔 줍니다. 아랍식 홍차라고 하는데  그 한모금에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나 달고 강한 맛에 홍차에 우유를 탄 줄알았습니다. 그러나 차 색깔은 루이보스티차 처럼 맑았습니다.  너무 맛있어서 관람객중에는 더 달라는 분도 계시되군요. 전시장은 크지 않습니다.  작품수도 37작품으로 상당히 적은 수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구요.   또한 사진들도 크지 않습니다.   큰 사진이 될수 없었던것은 흑백필름에 35미리 낡은 카메라로 찍었기 때문이겠죠. 10년전에 중동으로 떠났다고 하시는데  그 10년전에는 지금같이 DSLR이 흔하지 않았죠.

그러나 관람객들은 정말 많았습니다. 386세대 엄마들도 보이고 아이를 데리고 온  분도 계시더군요. 정말 이렇게 인기 있는 사진전은 정말 오랜만에 보네요.  


사진들은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담고 있습니다.  보통의 사진전과 다르게 사진에 대한 캡션이  길게 달려 있습니다.
마치 보도사진 캡션설명처럼요. 그 캡션에는 정말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아픔이 묻어 나오는 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중 부분부분을 적어 보겠습니다.

중동에 강제로 심어진 민주주의, 선한 육식, 5105년의 기억을 간직하고사는 105살먹은 할머니
이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좀 해볼께요.  105살 먹은 할머니의 사진에는 이런 설명이 있더군요.  4대에 걸쳐 총 75명의 자식들과 함꼐  살았고  그 75명의 나이를 합쳐서 5105년이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한반도의 역사를  다 지켜봤네요. 

사진들은 대부분 전쟁의 고통에 시름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담고 있지만 희망의 몸짓도 담고 있습니다. 먹을 것을  찾아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누나와 남동생의 짠한 모습도 있었고  폭격으로  가족이 모두 죽고 혼자 살아 남은 13살 소녀의 모습도 있었습니다.

죽은자는 산자의 가슴에서 매일매일 다시 죽는다 라는 문구에서는 쿵하는 소리가 가슴속에서 들리더군요
이 얼마나 의미심장하고  사람 가슴을 짓누르는 문장인가요.  매일매일  죽음을 되새김질 하는 13세 소녀의 고통.

사진들도 참 좋았지만 저는 이 라 광야 사진전에서 본 문장들은  평생을 기억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문장이 많습니다. 


시리아에서는  쿠르드족에게 무자리드라는 무국적자 징표를 줍니다. 그 빨간딱지는  바로 삶의 레드카드라고 하는데 
나라 없는 민족의 설움은 어디다 하소연 할 곳도 없네요.  사진전을 보시다 보면  사진 옆에 빨간표시들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작품의 팔린갯수라고 하네요. 이 작품은 4개나 붙어있는데 4작품이 팔렸네요.  4작품이 아니죠.  이 작품을 4분이 샀고   사진은 그림과 달리 무한복제가 가능하기에  4분이 똑 같은 사진을 가지게 되겠네요. 


사진 대부분은 흑백사진입니다. 그러나 위의 3작품은 컬러사진입니다.  왼쪽의 사진이 가장 눈에 많이 들어 왔습니다.
두 꼬마아이가 탱크위에서 노는데  캡션을 읽어보니  저 아이둘은 형제인데  피난갔다가  고향에 돌아오니  친구와 집과 마을이 모두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파괴된 이스라엘탱크위에서  무자헤딘의 깃발을  한들에 흔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폭격으로 죽은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하늘에서는 폭격소리에 놀라지 말라고 소리소리로 위로합니다.
영화 더 로드처럼  희망이 없는  삶은  어떤 빛깔일까요?  파괴된  집들처럼 무채색이 아닐까요?  그래서 그랬나요. 박노해 작가는  그 들을 흑백으로 담았습니다. 사진들은  쨍하지 않습니다. 탁하고  필름입자가 보일 정도의 거친 사진도 많습니다. 그러나 쨍한사진이 만들어 내지 못하는  감성적인 시선을 이끌어 냅니다.  거친 삶을 살고 있는 그들에게 쨍한 사진보다는 흑백 필름카메라가 더 어울립니다.

 
사라. 후세인. 하산 .... 편히 잠들어
"폭탄소리에도 깨어나지 말고, 아프다고 울지 말고..."

전시장에는 박노해 작가님이 계셨는데 팬들에게 싸인을 해주었습니다.  사진촬영도 가능하다고 해서 몇장 찍어 봤습니다. 중동사람이 다 되었네요. 그 10년간의 여정이 얼굴에 묻어 나는듯 합니다. 



나의 시는 작고 힘없는 사람들. 그 이야기의 받아쓰기이고  나의 사진은 강인한 삶의 기도. 그 영혼을 그려낸 것이다.

주말에 갈곳 없으면  이 라 광야 전시회 보시라고 적극 추천해 드립니다. 맛난 싸이 한잔 하면서  지구 반대편에서 전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십시요.   비밀경찰의 감시속에서  박노해 작가를 위해서 쿠르드족 전통춤을 춘 아이들의 순수함처럼 가슴 따뜻해지고 울림이 있는 사진전이 될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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