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사랑만큼 힘든 것이 없다고들 합니다.
수십억 명의 사람들 중에 당신을 향하는 마음이 신성스럽지만 당신은 다른 사람을 향하고 있을 때 사랑은 외사랑이 됩니다.
또는 당신이 내 사랑을 몰라줄때 우린 짝사랑이라고 하죠. 그리고 사랑의 가늠좌가 서로에게 향할 때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르죠.
외사랑과 짝사랑을 넘어 사랑이 되기까지가 얼마나 힘이 들던지요. 쉽게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허준호 감독식의 외사랑과 짝사랑과 어긋 난사랑, 불륜의 사랑은 고리타분하고 지리멸렬하고 따분한 하품이 나옵니다.
허진호 감독이 다섯 번째 사랑을 들고 왔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한 번도 정식 사랑으로 넘어가지 못한 호감형 쌍방형 짝사랑이었고, 봄날은 간다에서는 냉혹한 현실적인 사랑이었으며
외출에서는 이루어질수 없는 불륜의 사랑이었으며 영화 행복도 한줄기 바람같이 사라져 가는 사랑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호우시절에서는 가장 따뜻하고 동화같은 사랑을 그렸습니다.
중국에서 우연히 만난 옛사랑 메이
건설장비 팀장인 박동하는 중국출장을 갑니다. 지진이 난 쓰촨(사천)이란 곳을 복원시키기 위해 중장비를 파는 회사의 팀장으로 중국으로 출장을 갑니다..
그곳에서 유학시절 옛사랑 메이를 우연히 만납니다. 메이는 두보의 체취가 묻어있는 공간에서 관광가이드를 하고 있었고 익숙한 영어 발음에
동하는 발길을 돌립니다. 그리고 둘은 오랜만의 해후를 하죠. 저녁에 만나기를 약속을 하고 메이는 어스륵한 밤에 동하와 술자리를 합니다.
그리고 옛연인이 그렇듯 옛 추억들을 말합니다.
내가 사준 노란자전거 기억나?
아니. 기억안나. 아 그 자전거 팔아버렸어!
자전거 탈줄도 모르는 메이에게 자전거 선물해 해준 동하를 메이는 타박합니다.
동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내가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자전거 탈 줄을 모른다는 메이의 말에 반신반의합니다.
유학시절 두 사람이 사귀었다는 사실마저 메이는 기억 안 난다거나 그럴 리가 없다면서 밀고 당기기를 합니다.
이 부분에서 전 이해가 안 갔습니다. 두 주인공의 나이대로 봐서는 많아야 30대 초반인듯한데 유학시절 기억이고 더구나 사랑한 사이라면
자전거 선물해준 것과 자전거 탄 기억을 기억하지 못하다니 좀 이해가 가지 않았죠.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임을 짐작을 했습니다.
메이와 동하는 서로의 기억을 끄집어내서 기억의 조각을 맞춰보는데 영 맞춰지지가 않네요.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 난감합니다. 메이는 동하에게 뻔뻔하면서 윽박지릅니다.
내가 너와 키스를 했다고?
그럼 지금 키스해봐. 내 입술이 너의 입술을 기억할 테니까!
동하는 난감해하죠.
메이는 왠지 모르게 동하에게 호감을 가지면서도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그 거리 둠은 마치 연인들 사이의 주도권 싸움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동하는 그 모습이 더 사랑스러워하며 옛 감정 속에서 메이가 인정 안 하는 자전거 타던 모습을 유학시절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핸드폰으로 메이의 자전거 타던 사진을 보내달라고 합니다.
둘은 짧은 만남 속에서 서로의 사랑이 왜 어긋났는지 살며시 얘기합니다.
왜 내가 보낸 엽서에 답장 안 했어?
응? 솔직히 얘기하면 처음에는 사회생활 때문에 바빠서 못했고 시간이 났을 때는 여자 친구가 있었어!
그 말에 메이는 눈물을 흘립니다.
서로의 헤어진 기억을 다시 떠올리면서 짧은 만남 후 헤어짐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메이는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동하에게 전화해서 선물을 준비했다면서 공항으로 달려갑니다.
메이도 동하에게 마음이 있지만 그 사랑을 말하지 못합니다. 마치 처음 시작하는 연인들의 사랑의 밀고 당기기를 하죠.
그리고 화면은 핸드헬드로 변하면서 두 사람의 감정을 대변하며 동하답지 않게(?) 귀국을 연기합니다.
다시 메이를 안다.
동하의 과격스러운 행동에 메이는 무너지죠. 그리고 둘만의 사랑의 밀주를 마십니다.
그러나 메이는 동하에게 다가 갈려고 하다가도 결정적일 때 머뭇거립니다.
사랑에도 때가 있다
사랑에도 때가 있습니다. 서로 좋아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어도 내 사랑의 고백 때문에 상대방이 떠날까 봐 머뭇거리는 사랑이 많죠.
친구사이에서 연인 사이로 발전하기까지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사랑을 포기할 각오로 사랑을 버릴 수 있는 과감성으로 고백을 해야죠. 하지만 그걸 넘지 못하고 고백 한번 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관계도 많습니다. 저도 그런 사이가 있었죠.
나 그때 너 무척 좋아했다.
나도 선배 좋아했었는데!
이런 말을 여자 후배가 결혼하고 얘 둘을 낳고 나서 말한 적도 있죠. 지나고 보면 왜 그때 고백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사랑은 때가 있죠. 영화 호우시절은 좋은 비는 내릴 때를 안다는 두보의 시처럼 동하와 메이의 지난 사랑을 탓합니다.
사랑의 울타리를 넘지 못함에 서로에게 원망하며 다시 시작하려고 감정의 싹이 죽순처럼 피어나죠.
하지만 메이에게는 다시 시작할 수 없습니다. 이 이상은 영화 예고편에 없는 내용이고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허진호 감독표의 다큐식 일상의 사랑과 갈등
허진호 감독의 영화들은 한결같습니다. 한결같이 냉정한 사랑, 현실적인 사랑을 말하죠. 동화 속 사랑에서의 해피엔딩보다는
라면 같은 현실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정원(한석규)처럼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떠나거나 외출에서처럼
두 유부남 유부녀의 불륜을 넘지 못하고 다시 현실의 사랑을 찾아 떠나가죠. 혹은 짧은 사랑 후에 현실로 돌아가는 영화 행복의 사랑과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울분에 사랑은 냉정한 거야라고 알려주며 라면 같은 현실적인 사랑을 찾아 떠난 이영애의 모습, 그리고 우리 다시 시작할까?라는 표정을 짓지만 사랑이 변할 수 있음을 이영애에게 배운 남자는 현실적인 사랑을 향해 떠나갑니다.
그의 영화에서는 모두가 현실적입니다. 로맨틱 코미디같이 억지 해피엔딩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허준호 감독의 영화를 보면 사랑에 관한 다큐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짜릿하고 달콤하고 눈물이 글썽이게 하지는 않지만
저런 게 우리 현실의 사랑이지 하면서 담배 한대 물게 되죠. 영화 호우시절도 현실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동하는 로맨틱 코미디를 생각하고 다시 시작할까 하지만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무뚝뚝해지며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허준호 감독 영화 처음으로 밝은 모습으로 끝납니다.
영화 호우시절은 짜릿하거나 설레거나 아름답거나 하지 않습니다. 허 감독의 영화류를 안 좋아하는 관객은 참 지루한 영화죠.
하지만 사랑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 사랑에 닳고 닳은 나이라면 이 영화의 낮은 호소력에 맞아! 저런 게 현실적인 사랑이지라고 말할 것입니다.
영화 속에 김상호 씨가 연기하는 중국지사장의 사랑의 훼방질을 보면서 낄낄대고 봤네요.
저도 사랑하는 사람과 몰래 데이트를 하다가 지나가는 선배에게 걸려서 3명이서 술자리를 하게 되었는데
선배라서 집에 가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둘 사이의 관계를 말할 수도 없고 짜증 나게도 그 선배는 눈치도 없이 술이 좋아서 술자리를
계속 따라다니다가 나중에 그때 좀 서운했다고 하니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ㅎㅎ 이런 모습들을 호우시절에도 잘 그려냅니다. 어쩌면 저런 난처한 상황을 잘 담을까.
고원원의 매력에 푹 빠지다
중국 배우 고원원의 인상은 참 매력적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여자 스타일이라서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의 여자배우들이 가지지 못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양이 같은 인상이라고 할까요? 큰 눈에 가냘픈 몸을 지니면서 때로는 당돌하고
때로는 수줍어하는 모습들이 외모와 참 어울리더군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매력에 저 여자배우 참 괜찮네 라는 생각이 영화 내내 들더군요.
총평
영화 지루합니다. 네 지루해요. 사건도 크게 있지 않습니다. 단 한 번의 큰 충격이 있긴 하지만 그 충격이 있기 전에는
쟤네 둘이 왜 저렇게 밀고 당기기만 하나? 생각도 들죠. 잔잔한 영화라고 하죠. 허진호 감독 영화들이 모두 잔잔한 영화지만 유난히 호우시절은 더 잔잔합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정원의 죽음이 있고 격정적인 울부짖음도 있습니다. 외출에서는 수많은 변곡점들이 있습니다.
봄날은 간다에서는 이상적인 사랑과 현실적인 사랑의 아웅다웅도 있죠. 하지만 호우시절에는 큰 감정의 변곡점이 딱 한번 있을 뿐입니다.
잔잔하다가 큰 변곡점을 지난 후 다시 예측하는 대로 사건이 진행됩니다.
그러나 이전 영화에서 보지 못하는 따스한 마무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나오는 영화죠
배우 정우성의 연기가 완벽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정우성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만으로도 이 영화에 잘 어울립니다. 고원원의 고풍스러운 이미지도 좋고요. 김상호의 감초연기도 좋습니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이야기의 움직임이 대나무처럼 곧고 식물적이라서 관객에게는 좀 지루한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옛사랑을 우연히 만난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는 분에게 권해드리며 사랑은 달콤하고 짜린한것이라는 10대, 20대분들보다는 30대 이상분들에게 추천해 드립니다. 좋은 비는 내릴 때를 알고 내리며 좋은 사랑은 사랑할 때를 아는 사랑입니다.
자전거를 다시 타기 시작하는 메이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의 기억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는 있지만 몸의 기억은 지울수 없음을 아니 기억 중에 가장 오래가는 기억이 몸의 기억임을 다시 한번 느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