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의 시사회를 보고 왔습니다.
UPI시사회관이 인사동쪽에 있더군요. 이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하 바스터즈)는 미국에서 개봉해서 1억 달러 이상을 올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최고 흥행작입니다. 타란티노 감독을 세계적인 감독으로 만든 펄프픽션을 뛰어넘는 기록이죠.
흥행도 흥행이지만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를 좋아해서 언제 개봉하나 학수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미국개봉한지 한 달 후인 10월 말에 국내개봉 한다고 하네요. 1달을 어떻게 기다리나 생각하고 있던 차에 시사회기회가 있었습니다. 시사회장에는 유명평론가와 이무영감독님도 보이더군요.
만약에 말이지 만약에~~~
역사엔 만약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린 만약이라는 단어가 허용된다면 과거의 치욕스러운 일을 바꾸고 싶을것 입니다.
만약이라는 말이 허용된다면 조선시대 명성황후 시해현장 앞에 1개 소대를 배치해서 다가오는 일본낭인들을 쓸어버리고 이승만대통령에게 북한이 쳐들어올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또한 이완용및 친일파를 죽이고 더 나아가 한국인들의 철전지 원수인 히로히토 일본 천황을 잘 담금질된 칼로 한국인들의 분노를 담아 베고 싶습니다.
하지만 과거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는 물리적으로 돌이킬 수 없다지만 소설이나 영화는 다릅니다. 어차피 허구의 세상을 그리는 영화나 소설은 그런 물리적인 제약을 받을 필요가 없죠.
우리에게 히로히토가 철천지 원수라면 유럽과 미국인 특히 유태인들에게는 철천지 원수는 바로 히틀러입니다.
그런데 이 히틀러의 죽음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총으로 자살했다고 공식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들리는 말에 의하면 U보트를 타고 아르헨티나로 탈출했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2개월 후에 아르헨티나 앞바다에 U보트가 발견되었는데 그걸 타고 도주했다는 소리도 많습니다. 아니면 유럽의 작은 동네에 농부로 위장해 살다가 편안한 여생을 마감했다는 소리도 있고요
영국의 데일리 메일지가 며칠 전에 히틀러에 관한 기사를 하나 내보냈는데 이 기사가 큰 방향을 일으키죠. 러시아에 보관 중인 히틀러의 유골이 남자 두개골이 아닌 여자 두개골이라고 밝혀져서 히틀러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론이 더 증폭되었죠.
2차 대전의 희생자와 유가족과 유대인들은 이 히틀러의 죽음을 눈으로 목격하지 못했고 정확하게 어떻게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 상태가 되었습니다. 2차대전후 독일인들의 사과와 진정성있는 사과를 통해 유태인들과 2차대전 희생자들은 그 상처를 치유해 가고 있지만 히틀러에 대한 분노는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안 것일까요? 영화적 상상을 마음껏 활용해서 히틀러에 대한 총알세례를 스크린에서 무차별적으로 퍼부은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독일군들을 덜덜 떨게 했던 개떼들 (바스터즈)
알도 레인 중위는 유태인출신의 미국병사를 꾸려 1개 소대를 만듭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게릴라 식으로 활약을 하며 독일군들을 괴롭힙니다. 이들의 활약은 어찌나 잔혹스러운지 히틀러까지 분노하게 하죠. 바스터즈는 독일군을 죽일 때 그냥 안 죽입니다.
죽은 독일군은 머리가죽을 베끼고(베끼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좀 잔혹스럽죠. 뭐 타란티노 감독 영화가 다 그렇지만) 산 독일군은 곰 유태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미군에게 방망이로 맞아 죽습니다. 이들의 잔혹성은 명성을 얻기 시작해서 독일군들을 넘어 히틀러의 귀에 까지 들어갑니다. 그리고 히틀러는 분노하게 되죠.
바스터즈는 유태인출신의 미군들과 함께 독일군이었으나 변절한 독일군도 껴 있습니다. 이 독일군을 바스터즈가 구출해서 한팀이 됩니다. 이 바스터즈의 나치에 대한 잔혹,유쾌,상쾌(?)한 복수극이 바로 영화 바스터즈의 주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독일 장교역의 크리스토프 왈츠
저는 이 영화의 주연은 브래드 피트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올해 62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사람은 브래드 피트가 아니라 크리스토프 왈츠가 받습니다. 왈츠는 이 바스터즈에서 독일군 장교로 나오는데 왜 이런 사람이 받았을까? 하는 초반의 의구심은 영화 끝날 때 사라져 버리고 오히려 브래드피트보다는 이 왈츠를 보는 재미로 영화를 보게 되더군요. 이 왈츠가 연기한 독일장교는 유태인사냥꾼이라는 별명을 가진 장교입니다.
영화 시작하자마자 프랑스의 외딴 농가에 가서 발음 좋은 프랑스어로 주인과 대화를 하고 조용히 주인을 설득합니다.
당신이 숨겨준 유태인들 (바닥을 가리키며) 이 밑에 있지?라고 물어보죠. 영어로 대화했기 때문에 바닥밑에 숨어있던 유태인들은 무슨 말을 했는지 자 모릅니다. 프랑스인은 울면서 손가락으로 숨은 위치를 알려주고 독일병사들에게 지시해서 가족을 몰살시키죠.
그리고 야비한 일본순사의 이미지가 묻어 나옵니다. 왈츠가 연기한 한스 렌다 장교는 이태리, 프랑스어등에 능통하고 머리회전이 빠른 장교입니다. 이 영화의 또 한 명의 주인공이죠.
영화 후반에 가면 이 한스 렌다 장교가 유쾌한 반전을 이끌어 냅니다. 이 영화는 브래드 피트의 우스꽝스러운 과장된 마초연기보다는 이 한스 렌다 장교를 보는 맛이 더 좋습니다. 영화 막판 크리스토프 왈츠의 연기에 빠지지 않을 관객이 없을 것입니다. 정말 연기 잘하더군요.
첨삭지도까지 해주는 친절한 영화
타란티노 감독의 재기 발랄함은 이 영화 곳곳에 묻어납니다. 이 영화 2차 대전 액션물 아닙니다. 따라서 액션장면이 거의 없습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총격전도 거의 없고요. 그러나 히틀러에게 직접 총알을 먹인다는 상상부터가 예사롭지 않은데 2차대 전물들이 대부분 비장미가 가득한데 반해 이 영화는 비장미보다는 곳곳에서 유머를 터트리는데 웃어도 되나? 할 정도입니다.
저는 이상하게 외국영화를 보게 되면 주인공들의 이름을 잘 못 외웁니다. 낯선 외국이름을 머릿속에 넣기까지가 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이 영화 친절하게 스크린에 첨삭지도까지 해줍니다. 얘가 괴벨스, 얘가 괴링, 그리고 한스 렌다가 재 등장했을 때는영화 앞부분에서 유태인가족을 무참히 사살한 영상을 살짝 넣어줍니다. 거기에 필름이 인화성이 좋다는 것을 영상으로 소개하는 장면에서는 시사회장 한쪽에서 이무영감독님의 특유의 웃음소리가 나오기도 하더군요.
대화와 음악이 이 영화의 매력포인트
무릅팍도사에서 출연자가 결정적 멘트를 하기 전에 나오는 음악은 바로 킬빌에서 나온 음악이었죠.
타란티노 감독은 음악을 잘 활용하는 감독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영화에서도 영화음악은 적재적소에 잘 들어가 있고 음악하나만으로 관객의 감정을 싹 바꾸어 놓습니다.
예를 들어서 한스에게 가족을 모두 잃은 유태인 처녀가 복수심에 불타오르면서 영사실에 있을 때 갑자기 아무것도 모르는 독일군 일병이 들어옵니다. 독일군 일병은 150명 가까이 미군을 죽인 전쟁영웅인데 이 유태인 처녀를(독일병사는 유태인인지 모름) 좋아하죠.
하지만 유태인 처녀가 거사를 치르기 전에 이 일병이 귀찮게 굽니다. 그래서 총으로 쏘게 되는데 그 장면 전까지는 거사를 앞둔 비장미가 흐르다가 갑자기 처량한 음악이 나옵니다. 순간 저 독일군은 아무런 죄도 없는데 저 유태인 처녀를 좋아한 것 밖에 없는데 라는 생각으로 슬퍼지더군요. 이런 식으로 음악으로 영화 분위기를 확확 바꾸기도 하고 이 영화를 한 편의 서부영화로 만들어 놓기도 합니다. 영화 내내 흘러나오던 기타 선율은 서부영화의 느낌을 나게 하더군요. 음악을 듣는 재미가 아주 좋은 영화입니다.
또한 이 영화의 또 하나의 매력은 대화입니다.
이 영화 러닝타임 2시간 30분입니다. 참 길죠. 그런데 2시간 30분 동안에 액션장면은 마지막 10분 정도가 다입니다. 그전에도 액션장면이 있긴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이 영화 액션영화 아닙니다. 그럼 2시간 30분을 뭘로 채웠냐. 바로 대화입니다.
이 영화는 소설책처럼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채터마다 대화장면이 많습니다.
특히 지하술집에서의 대화씬은 이 영화의 백미이죠. 대화가 참 많은데 그 대화들이 참 유쾌합니다. 갑자기 긴장하게 만들다가도 갑자기 웃기게 만들고요. 지하 술집장면은 정말 명장면입니다. 신분을 들키느냐 안 들키느냐의 머리싸움, 참 볼만합니다.
복수를 한다면 이들처럼
이 영화는 복수극을 다룬 영화입니다. 복수의 기둥은 두 개가 있습니다. 한스라는 독일군 장교에게 몰살당한 가족을 뒤로한 채 도망친(왜 한스가 유태인처녀인 쇼산나를 죽이지 않았을까요?) 쇼산나가 죽음을 불사하는 복수극과 마찬가지로 나치에 대한 분노심으로 똘똘 뭉친 유태인출신 미국병사들인 바스터즈의 복수입니다. 이 두 개의 복수는 하나의 꼭짓점을 향해 모입니다.
하지만 그들 각자의 방법으로 복수를 하죠.
이 영화에서 복수는 참혹스럽고 잔인합니다. 자비란 절대 없죠. 나치를 무조건 다 죽이지는 않습니다. 협조하면 풀어주는 자비를 베풀기도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나치들은 군복을 벗으면 나치임을 알 수 없기에 바스터즈들은 머리에 나치의 상징인 만(卍)를 45도 비튼 철십자가를 칼로 새겨줍니다. 그래야 평생 자신이 나치였음을 자신이 원하지 않던 밝힐 수 있으니까요.
바스터즈에게는 자비란 없습니다. 이들에게 법은 함무라비 법전에 있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입니다.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로 칸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심사위원장이어서 가능했다는 말이 있죠.
박찬욱감독의 복수 3부작과 마찬가지로 타란티노도 복수에 관한 영화 참 좋아합니다. 킬빌도 복수극이고 이 영화 바스터즈도 복수극입니다. 이 바스터즈는 역사가 복수하지 못한 나치에 대한 처절한 응징을 스크린에서 시원스럽게 해 줍니다. 이 영화는 유태인들이 보면 기립박수를 쳐줄 만한 영화이며 승전국인 유럽과 미국에서도 기립박수를 쳐줄 영화입니다. 정말 시원, 통쾌한 복수극입니다. 나치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칠수록 입에서는 낄낄거리게 되죠. 요것들아! 니들도 가스실의 공포의 체험을 당해봐 라식으로 낄낄거리게 됩니다. 독일에서도 이 영화가 인기가 좋은 것으로 봐서 나치를 옹호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이 영화를 떠나서 유태인들이 현재 팔레스타인들에게 하는 행동은 2차 대전의 나치들이 행동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 저는 크게 웃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은 정당한 복수고 팔레스타인들이 자살폭탄테러를 하면 테러라고 말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기까지 합니다. 물론 타란티노 감독에게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영화 솔직히 좀 지루한 면이 있습니다. 액션장면도 없고 대화로 재미를 이끌어가는데 중반에 좀 지루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30분은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황당스러운 반전도 있고 유머도 있고 화끈한 복수도 있습니다. 그 복수가 어찌나 통쾌 쇼킹한 지 관객들이 손뼉 쳐줄 만합니다. (미국에서는 기립박수 많이 나왔다고 하네요)
하지만 유태인에 대한 감정이 그렇게 좋지 않고 나치에게 총알 한방 맞아본 적 없는 동양권 나라에서는 이 영화가 크게 와닿지는 않을 듯합니다. 다만 같은 아픔을 나치가 아닌 일본에게 겪었던 우리로써는 이 영화를 보면서 왜 우리는 이런 영화 못 만드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작은 자괴감도 듭니다. 뭐 로스트 메모리스가 있긴 하지만 화끈한 복수극이라고 할 수 없고 우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영화 한반도에서나 영화 유령에서도 일본에 미사일을 쏠려다가 멈추면서 끝나죠. 그렇다고 쐈으면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발칙한 상상으로 과거의 일본전범들인 히로히토와 1급 전범들을 총알을 먹여주는 영화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독일나치와 달리 일본은 천황인 히로히토부터 아무런 제재를 당하지 않았고 1급 전범들 중에서 총리가 나오기도 합니다. 역사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모습에서 참혹함도 느낍니다. 지금도 한국의 정치권이나 재력가들 중에는 친일파들이 참 많죠.
총평
80년대 미드 중에 게릭슨 유격대가 있었죠. 이 게릭슨 유격대가 재미있었던 것은 나치군복을 입고 독일군들을 유린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또한 적진 한가운데에서 팽팽한 긴장감속에서 적진을 유린하는 모습도 좋았고요. 이 바스터즈도 비슷한 모습이지만 분노의 광기는 더 강합니다. 역사가 하지 못한 화끈한 나치 수뇌부인 히틀러, 괴벨스, 괴링에 대한 화끈한 복수극, 2차 대전의 영향을 받은 유럽, 미국인들에게는 박수를 받을만한 영화이지만 한국 같은 동양권에서는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하네요.
이 바스터즈는 대화의 재미와 음악이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과 유머,
화끈한 복수극 바스터즈. 10월 말 국내 개봉한다고 하니 타란티노 감독 팬이라면 꼭 보시라고 추천해 드리며 액션물인지 알고 봤다가 낚였다는 생각을 하실 분에게는 권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 액션영화 아닙니다. 복수를 한다면 바스터즈처럼 뼛속까지 복수해라!
다만 2시간 30분이 너무 길어 지루한 면도 있는 영화입니다. 언어의 유희보다는 액션의 유희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치에 대한 적개심이나 언어의 유희와 타란티노 감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적극 주천합니다.
저는 타란티노 감독 팬이라서 별점을 반개 더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