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후반 세기말이라서 그런지 유난히 재난영화가 많이 나왔습니다. 볼케이노(화산), 단테스피크(화산재) 아마겟돈(소행성), 딥 임팩트(혜성)등이 지구를 순번을 쪼개 먹었습니다.
재난영화는 하나의 틀이 있습니다.
먼저 재난을 예감한 선각자적인 주인공이 있고요. 그 말을 개무시하는 관리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재앙이 닥쳐오면 온갖 군상의 사람들의 절박함과 아비규환의 모습들이 담기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하는 모습에서 관객들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립니다. 그리고 재건의 발길을 부감으로 잡으면서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끝납니다.
이런 재난영화중 가장 톱으로 꼽고 싶은 것은 전 딥임팩트를 꼽고 싶습니다. 그래픽도 좋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스토리가 가장 뛰어난 영화였습니다. 로버트 듀발이 선장으로 탄 우주선이 혜성과 자폭하는 희생정신과 소원하게 지냈던 딸과 아버지의 화해와 쓰나미 앞에서 공포감에 떠는 모습들은 잊히지가 않네요.
반면에 볼거리는 더 화려했지만 억지스토리와 억지 영웅만들기로 일관한 아마겟돈은 남들보다 점수를 많이 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재난영화는 허리우드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규모의 미학은 허리우드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CG기술이 발전해서 단가가 떨어진 건지 일본에서도 재난영화를 만들더군요. 일본침몰 썩 좋은 CG는 아니었지만 재난영화를 만들었다는 자체로는 좋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일본침몰을 보면서 서울도 한번 물이건 불이건 혜성이건 좀 쓸어버리는 재난영화가 있었으면 하는데
서울이 아닌 부산 해운대가 첫 스타트를 끊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한국최초의 재난 영화로 알고 있는 영화 해운대를 관람했습니다.
영화평은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재난영화 매니아로써 보고 싶어 지더군요. CG가 어디까지 발전했나 알고 싶기도 했고요.
생각보다 썩 좋은 CG
시사회 평을 읽다 보니 CG가 엉성하다는 말들이 들리더군요. 재난영화의 주인공인 쓰나미가 엉성하다니?
재난영화가 재앙 수준으로 망하는 건가 할 정도로 걱정이 좀 되더군요.
그러나 영화 속에서 쓰나미는 공포감을 안겨줄 만큼 훌륭했습니다. 허리우드에 비교하자면 약간 미흡하지만 한국영화라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하면 썩 좋은 CG였습니다. 다만 몇몇 엉성한 CG가 눈에 확 들어왔는데요
그것만 빼면 물 CG는 대단했습니다. 적어도 저를 긴장하게 했으니까요. 그 컨테이너 상선은 안 넣었으면 하는 생각도 좀 들긴 하더군요.
전봇대씬은 한 상가 골목을 막고 찍었다고 하는데 집중적으로 잘 묘사해서 괜찮았습니다. 시체가 둥둥 떠가는 묘사등은 리얼하더군요.
영화 차우의 CG를 한스울릭이 담당했다고 했는데 정작 차우에서 거대한 멧돼지는 모션캡처 같아 보여서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해운대도 이 한스울릭이 맡았다고 하고 평들도 좋지 않아서 큰 기대는 안 했는데 기대를 안 해서인지는 몰라도 쓰나미 CG 아주 좋습니다. 돈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게 해 주더군요.
다만 너무 규모의 미학에만 집착한 나머지 20층이 넘는 빌딩을 넘어가는 쓰나미가 비현실적인 모습에 아쉽기만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주인공은 또 살아남고 ㅠ.ㅠ 쓰나미도 집중호우랑 비슷한가요. 어디는 수십 미터짜리 파도가 가고 어떤 곳은 10미터짜리가 가고 그런가요?
웃다가 울다가 감정선이 세심하지 못하다
좋은 영화는 관객의 감정선을 잘 조절합니다. 관객을 웃게도 만들고 울게도 만듭니다.
이 영화 해운대도 관객을 웃게도 만들고 울게도 만듭니다. 그런데 감정선이 잘 정제된 모습은 아닙니다.
이 영화 해운대에는 3명의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설경구와 하지원의 러브스토리,
설경구 동생으로 나오는 구조대원 이민기와 삼수생과의 러브스토리, 그리고 연구원으로 나오는 박중훈과 엄정화 커플이 나옵니다.
이 세 커플의 이야기가 출발총성과 함께 달리기 시작하는데 세 커플이 이어지는 모습은 없습니다.
박중훈 엄정화 커플과 나머지 두 커플과는 한 톨의 인연도 없습니다. 영화 끝날 때까지 모르는 관계로 나옵니다.
동생 이민기커플도 크게 연관되는 모습도 아니고요. 다른 커플들이 코믹적인 모습을 보일 때 관객은 박장대소를 하지만 바로 다음 장면에서 다른 커플은 찡한 장면을 연출합니다.
ㅠ.ㅠ 하나의 시퀀스에서 여러 가지의 감정을 각각의 커플들이 진행하다 보니 감정선이 심장박동 계측기처럼 요동칩니다. 웃다가 웃다가 웃다가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허무라는 감정선으로 영화는 진행됩니다.
영화 차우도 괴수영화답지 않게 코믹스러운 모습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는데 영화 해운대도 코믹영화가 아닐까 할 정도로 코믹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허리우드 재난영화에 길들여져서 그런지 재난영화에 약간의 코믹설정이 약방의 감초 같은 것은 윤활제 역할을 해서 좋은데 영화 해운대는 코믹캐릭터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박중훈커플만 빼고 (하지원도 빼야겠네요) 모두 코믹스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영화 해운대를 본 관객이라면 이 영화 코미디 영화인가 오해할 정도입니다.
엉성한 스토리 쓰나미의 위력을 낮추다
이 해운대는 스토리가 엉성합니다. 작가가 일부러 감정을 쥐어짜게 만든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캐릭터들 간의 관계가 엉성하고 결말도 좀 허술합니다. 먼저 주인공 설경구에 대한 말을 좀 해야겠습니다.
주인공 설경구의 미스캐스팅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지만 여기선 논외로 하고 설경구 캐릭터가 정의롭지 못하고 약간은 비열합니다. 하지원과 결혼하기 전에 숨겨놓은 비밀을 털어놓지 않습니다.
거기에 엄정화 캐릭터도 좀 이해가 안 갑니다. 쓰나미가 온다는데 장사망칠생각이냐는 소리는 헛웃음이 나옵니다.
거기에 박중훈은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중요직책의 사람이라면 쓰나미 오기 10분 전에 가족들의 생사만 걱정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모습이 현실적으로 그려졌다고 할 수는 있지만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있습니다.
자기 가족 물론 중요한데 수많은 부산시민들의 대피와 후속책을 마련해야 할 전문가가 자기 가족만을 생각하고 뛰어나가는 것이 과연 좋은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딥임팩트에서 여자앵커는 자신이 타고 떠날 헬기를 다른 사람을 타게 하고 아버지를 만나러 갑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뜨거운 포옹으로 화해를 하면서 쓰나미를 함께 바라봅니다. 그래도 몇몇 장면은 눈시울을 붉게 만듭니다. 이런 게 재난영화의 미덕이죠. 그 모습들은 좋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세심하지 못한 배려들도 좀 눈에 띄더군요.군인들이 치누크 쌍발 헬기로 옥상의 피난민들을 구조하는데 군인들의 군복이 미군들이 입는 군복입니다. ㅠ.ㅠ 요즘 한국군 군복이 바뀌었나요. 픽셀모양의 군복을 보고 미군이 구조하는 건가? 했네요
또한 빌딩까지 무너트릴 정도의 쓰나미가 지나쳤는데 부산의 다리는 멀쩡합니다. ㅠ.ㅠ위에서도 말했듯이 국지성 집중쓰나미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부산으로 국한된 스케일
쓰나미는 범우주적인 규모로 부산을 침몰시키지만 이 이야기는 부산으로 국한됩니다.
대부분의 재난영화가 국가적 아니 지구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쓰나미가 지구를 날릴정도는 아니었지만 영화 속 쓰나미는 전지구적인 관심을 받을 만 한데 이야기는 부산 이외로 나가지 않습니다. 규모는 거시적이나 이야기는 미시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
너무 악평만 썼네요. 그렇다고 이 영화 보지 말라고 하는 소리는 아닙니다. 제가 워낙 까칠하게 글을 써서요.
이 영화 볼만합니다. 먼저 별 넷을 준 이유는 CG의 훌륭함에 별 하나가 올라갔고요. 시의성에 별 반개 올라갔습니다. 더운 여름 시원함을 느끼게 하는 영화가 트랜스포머 2 때문에 졸았는지 거의 없는데
이 해운대가 그런 시원한 맛을 느끼게 해 줍니다.
거대한 쓰나미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압권이더군요. 분명 엉성한 장면도 있고 스토리도 빈약스럽지만
뭐 요즘 관객들 스토리 그렇게 따져가면서 보지는 않습니다. 스토리가 좀 더 탄탄하고 짜임새 있었다면 대박을 터트렸을 텐데 중박 이상정도 될 듯합니다.
쓰나미에 가상침공당한 부산이 모습을 보는 재미도 솔솔 하더군요.
그나저나 서울은 언제 한번 누가 안 쓸어주시나요?
트랜스포머 2가 광화문을 쑥대밭으로 만들려고 했었다는데 한국영화 중에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재난영화 하나 나왔으면 합니다. 서울, 경기도에 인구 2천만 명이 삽니다. 자주 가는 서울의 명소들이 폐허가 되면 관객들은 쉽게 감정선이 흔들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