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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내 기억속의 5,18 광주 민주화항쟁..

by 썬도그 2007.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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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진을 보니 오늘이 5,18이더군요.  이 한 장에 사진을 보면서 세상 정말 많이 변했구나 느끼게 하네요
어찌 보면 정말 암울한 시기의 희생정신을 기리자는 건데 어린 학생들이 웃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좋은세상에 태어난 거야..라고 자그마하게 말하고 싶어 지네요.

나에게 5.18은 무엇일까?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생이었을 거예요. 광주에서 무슨 일이 터졌다고
어른들이 말씀하시더군요. 전 서울에 살고 있었고 외가 쪽 친척들이 전라도분들이라서요. 귀동냥으로
들었습니다. 그때 어린 나에게 광주란 경기도 광주와 전라도 광주도 구분 못하던 시기였죠.
어른들은 수군거리긴 하지만 TV나 신문엔 아무런 소리가 없었죠. 그렇게 그 시절이 지나고
중학교를 가니 맨날 TV 틀면 대학생들 데모만 하고 우리 학교는 대학교랑 가까워서인지 수업을 못할
지경이었죠. TV에서는 반공 분자들이 분란을 일으켜서 대학생들 중에 빨갱이가 있다느니 간첩이 선동
한다느니 하고  그래서 전 그렇게 믿었죠.  대학생들중에 나쁜 형들 누나들이 많구나 하고.  고만 좀
하지 맨날 나라 망한다고 떠드는데..  그렇게 선과 악을 그어놓고 세상을 봐야 편하던 나이라
경찰은 선 데모하는 대학생 악으로 나누고 세상을 봤습니다.
어느 날 우리 동네 근처에서 데모를 하다가 저녁 8시쯤이 돼서 경찰에 쫓겨서 대학생들이 아무 집이나 마구 들어가더라고요.  그때 우리 부모님이 몇 명을 숨겨주셨고요. 전 그런 부모님이 이해 안 갔고
그 대학생 형들에게 많은걸 들었습니다. 대학생들이 데모하는 이유와  광주사건을 많이 말하더군요.
광주에서 도대체 뭔 일이 있었길래 대학생들이 광주 얘기를 하나 하고요..

고등학교가 되니 광주사태(그 당시엔 광주사태라고 불렀음)의 비디오테이프가 돌아다니게 되었고
몇몇 친구들은 그걸 형하고 보고 끔찍하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더군요. 전 보지 못했는데
그 테이프가 바로 독일 기자가 찍어서 독일에서 방송한 테이프이더군요.  나중에 국내 TV에서 방영하는걸
봐서 늦게라도 봤지만요.  그리고 군대를 갔습니다. 군에서 전두환이란 사람과 노태우란 사람이
잡혀가는 걸 보게 되었고 광주사태에 대한 전말이 밝혀지고 청문회를 하더군요.
청문회 들으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정말 저런 일이 있었구나 하면서요.
또 제가 있던 부대 간부들의 얘길 들어보니  이곳에 광주에서 죽은 시체들을 많이 싣고 날랐다고 하네요. 그래서 부대 체육관에 관으로 꽉 차고 피 비린내가 많이 났었다고요.   얼마나 무고한 사람들이
많이 죽었으면..

정권이 바뀌고 광주사태는 이제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바뀌게 되었고  정식으로 조사를 하게 되었고요.
또 한 번 나를 울리게 했던 것은 아마 영화 '꽃잎'이 아닌가 싶네요.


말로만 듣던 거랑 직접 보는 것이랑 다르듯이 영화 보면서 아 내가 어렸을 때 저런 시절을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은 모두 진실이 밝혀졌지만 그렇다고 다는 아니겠지요. 아직도
광주 민주화 항쟁의 발포책임자는 밝혀내지 못했고 최고책임자였던 전두환 버젓이 살아있고 그
아들놈이 운영하는 시공사랑 출판사와 리브로란 인터넷서점은 아주 잘 나가고 있고요.

참 왜곡돼도 한참 왜곡된 모습입니다. 

몇 년 전에 제5공화국 드라마에서 광주 민주화 항쟁을 리얼하게 묘사했는데 그거 보면서
그 드라마 게시판에서 너무 잔인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더군요.  잔인한 게 아니라 그 당시
실제로 저랬는데 말이죠.  제가 기억나는 게 청문회 때 어느 어머님이 증언하는데
어떤 여학생이 뛰어가다가 옆구리에 총알이 맞아 위에 있던 밥알들이 쏟아져 나온 것을
봤다는 증언에  놀라기도 많이 놀랬고 이건 거의 전쟁 수준이었구나라고 느껴지더군요.

나이 어린 분들은 잘 모르실 거예요. 그래서 저 첫 사진 학생들처럼 웃고 있는 거죠. 뭐
알고 있어도 저 나이엔 뭐든 보고 웃을 나이긴 하지만요.  광주에서 그런 일이 안 일어났더라면
아마 다른 도시에서 터졌을 것입니다. 박정희가 죽기 전에 하도 부산, 마산에서 데모를 많이 하니까
차지철이 10만 명 정도는 죽어도 꿈 쩍 안 할 자신 있다고 하던 것도 생각나네요.

그 당시 광주가 없었다면 또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을 것이고 시민들과 학생들이 뭉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죠. 86년인가요? 전두환이 노태우에게 간선제로 그냥 어물쩍 대통령 넘겨주려고 할 때  국민들에
의해 저지되었잖아요. 그게 6.10항 쟁이였구 이렇게 우리가 암울했던 시기를 지나게 되었으며
말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었던 것이요.  그 시발점이 광주였을 것입니다.

지금 광주의 모습을 다른 나라에서 많이 배워간다고 하네요. 부정에 맞서 싸우는 힘을 배워가는
나라들은 아직도 우리의 80년대 모습인 나라들이겠죠.   이런 성장통이 있었기에 민주화가 이루어
진 것일 것입니다.  그 시절 우리들의 형님들과 누님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고 글을 쓸 수
없었겠죠. 가끔 그런 사람들을 봐요. 광주폭동이라고 하는 사람도 봤고 제 친구는 술자리에서
그래도 전두환 때가 먹고살기 편했다고 하죠.  사람이 먹고살기만 편하고 억압받고 감시받고
내가 가고 싶은데 맘대로 못 가고 말하고 싶어도 맘대로 못하고 살아도 좋은지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기 좋은 나라는 전두환 때가 맞을지도 모르죠. 그냥 까라면 까고 내라면 내고 9시 땡 되면 전땡뉴스
시작하고.  그런 건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게 억압받고 살면 국가의 부속품이지
그게 사람 사는 것이겠어요.

또 유명 대권주자 중 한 분은 자기는 열심히 외화 벌고 있을 때 데모나함녀서 논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분도 있고요.  데모가 노는 건지 참 의심스럽네요. 전 몇 번 해봤는데  정말 놀 곳이 못되더군요.
왜 그리 매운지 말이죠.  차라리 막일을 뛰는 게 낫죠.


5,18일입니다.  후세에게 그날의 생생한 기록들을 물려줘야 할 것입니다. 그게 우리들의 몫이고
다시는 이 땅에서 국민 세금으로 만든 군대가 시민을 죽이는 일이 없도록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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