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극장이 예상대로 2024년 9월에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충격이라면 충격이지만 생각보다 충격이 크지는 않네요. 제가 가장 좋아했던 영화관 최근에는 가본 적이 없지만 영화관 갈 일 있으면 꼭 가곤 했던 영화관인 대한극장이 예상대로 2024년 9월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80~90년대 추억의 공간이었던 대한극장
대한극장에 처음 간 건 1988년 4월로 기억됩니다. 중간고사를 마치고 친구와 함께 대한극장에서 <피라미드의 공포>라는 지금은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당시는 위 사진처럼 멀티플렉스관이 아닌 70mm 대형 필름을 상영하는 국내 최대의 단관 극장이었습니다.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컸던 대한극장.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 그 거대한 스크린이 그리울 때가 많습니다. 영화 <집시의 시간>을 보고 비 내리던 충무로를 보던 그때가 생각나네요.
대한극장은 2천년대 초 큰돈을 들여서 현재와 같은 11 개관의 멀티플렉스관으로 재건축을 한 후 재개관을 합니다. 이 당시 대한극장은 시사회의 메카였습니다. 각종 시사회를 다양한 관에서 했었는데 이는 충무로라는 위치와 대한극장의 파워 때문에 많은 영화관계자들이 대한극장에서 시사회를 했습니다.
지금은 롯데시네마 건대, CGV 용산 등이 시사회장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지만 대한극장이 더 많은 시사회를 했습니다. 저도 2000년대 후반까지 각종 시사회로 인해 복도에 줄을 길게 늘어선 대한극장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옥상 정원은 다른 영화관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멋진 공간이었죠. 재개관 초기에는 장미를 잔뜩 심어서 장미정원으로 유명했고 영화는 안 보고 장미정원에서 음료를 마시던 분들도 많았습니다. 한쪽 끝에는 커피와 음료 제조 공간이 있을 정도였죠.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라고 2010년이 넘어서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합니다.
대한극장이 무너진건 프랜차이즈 멀티플렉스의 동네 침투 영향이 가장 크다
대한극장은 코로나 이전에 재정이 열악해져서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2층 고객휴게 공간을 사무실로 개조해서 자기들이 사용할 때부터 스피커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나와도 보수도 안 하고 시트와 각종 시설물이 부서지고 색이 바래져서 오래된 느낌이 가득해도 수리도 안 하고 방치하는 모습에 영화관 문 닫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2015년 이후 풍경입니다. 갈수록 관객은 줄고 주말 장사를 해야 하는 영화관이 오히려 주말에 관객이 적은 현상까지 보였습니다. 다른 영화관에서는 사람들이 꽉꽉 차서 미어터지는 대박 영화도 대한극장에서는 예매 없이 볼 수 있을 정도였죠. 이런 대한극장의 매출 하락은 복잡적인 영향이 큽니다만 하나만 꼽자면 프랜차이즈 멀티플렉스관이 늘어서입니다.
집 근처에 멀티플렉스관이 1개 있을 때는 시내 구경도 할겸 들를 곳도 있어서 대한극장에서 영화 보고 나와서 명동과 종로 일대를 돌다 오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갈 곳이 참 많은 중구와 종로입니다. 그러나 멀티플렉스관이 2~3개가 더 늘면서 굳이 시내를 나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면서 자주 안 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롯데시네마나 CGV보다 영화관람료가 1~2천원이 싸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죠. 게다가 대한극장은 사은품도 많이 주고 다양성 영화들을 참 많이 상영했습니다. 그러나 굳이 대한극장을 가야 하는 이유가 줄면서 안 가게 되네요.
1. 낡은 시설
2. 불편한 주차장
3. 주변에 살지 않으면 가기 쉽지 않은 먼 위치
이게 대한극장의 큰 문제점이었습니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는 리클라이너 관을 만드는 등 꾸준히 시설투자를 통해서 유입을 유도하고 투자를 했지만 대한극장은 영화관 시설이 20년이 다 되어가니 음향, 스크린 좌석 등등 모든 것이 올드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대형 아파트 단지도 없고 동국대 학생들은 방학 때는 학교에 오지 않기에 유입될 관객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명동 왔다가 오는 관객들이 있어야 하는데 명동 근처에도 영화관이 많아서 20분을 걸어야 하는 대한극장까지 오는 관객은 많지 않았습니다.
주차장도 문제였죠. 멀티플렉스관은 대형백화점이나 건물을 같이 이용하기에 지하 주차장도 크고 이용도 편리한데 대한극장은 주차하기도 편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작은 규모의 저예산 독립영화도 많이 소개하는 것이 매력이자 단점이 됩니다. 다양성 영화를 많이 상영하면 관객이 꽉꽉 차면 좋은데 그 마저도 거의 차지 않았던 것이 영화관에게는 좋지 못했습니다.
그럼 시설 투자를 했으면 나아졌을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2021년 8월 폐관한 종로 3가의 서울극장도 코로나 바로 전에 대규모 시설 투자를 했지만 결국 영화에 대한 인기가 떨어지면서 폐관을 결정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서울극장도 대한극장도 모두 연극 같은 영화가 아닌 공연장으로 바꾼다고 하네요.
넷플릭스의 영향이 없는 건 아니다
언론에서는 넷플릭스발 OTT의 영향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게 크게 틀린말은 아닙니다. 다만 넷플릭스의 폭발적 인기가 오르기 전에도 대한극장은 경영난이 있었습니다. 다만 쓰러지던 영화관에 결정타를 날린 건 코로나였고 코로나 시기에 더 큰 인기를 끈 넷플릭스 영향도 크죠.
넷플릭스를 경험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영화관람료의 과도한 상승으로 영화 1편 관람료가 넷플릭스 1달 월정액과 비슷하거나 비싸진 영향으로 영화관 자체를 사람들이 덜 가게 되었습니다. 저도 1주일에 1편 이상 보던 영화 습관을 무려 15년 만에 바꾸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1달에 영화 1편도 안 보고 있네요. 코로나 시기에도 1주일에 1편 이상 보던 제가 개봉 영화를 덜 챙겨보게 된 요즘이네요.
대한극장이 무너지고 그 다음은 전국의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가 될 것입니다. 영화관에 공급될 영화들이 크게 줄다 보니 돈 되는 영화에만 몰빵 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네요. 앞으로 영화관은 기사식당처럼 한 두 영화만 상영하는 일이 자주 일어날 듯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