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영화를 봤지만 어린 시절 이 영화의 충격적인 장면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지구의 지배자인 인간이 말 탄 원숭이들에게 원시인 같은 인간들이 사냥당하는 모습에 경악을 했네요.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반전은 영화 역사상 최고의 반전 TOP10에 들 정도로 엄청난 반전이었습니다.
새출발을 알리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2011년 개봉해서 2017년까지 이어진 혹성탈출 프리퀄 3부작을 보고 이 영화를 봐야 하느냐? 안 봐도 됩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간단하게 소개를 하고 시작합니다. 다만 영화에서 시저라는 이름이 자주 나오기에 알고 보면 좋긴 합니다. 그러나 시간 없으면 제가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인류는 치매를 치료하기 위해서 치료제를 개발했는데 이걸 원숭이에게 투여합니다. 그런데 이 치매 치료제를 맞은 원숭이가 인간처럼 똑똑해지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옵니다. 그렇게 유인원 최초로 말을 하는 유인원인 시저가 탄생합니다. 시저는 동물원에서 학대받는 유인원들을 보고 치료제를 훔쳐서 유인원들과 집단 탈출을 해서 숲으로 사라집니다. 그렇게 말하는 원숭이와 인류는 반목하게 됩니다.
시저는 평화주의자입니다. 인간의 품에서 자라서 인간에 따뜻함도 동물원에서 느낀 잔혹함도 잘 압니다. 그럼에도 인간과 원숭이들의 공존을 택하는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물론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우리 땅인데 말하는 원숭이들이 등장했다고 적대시하죠. 그러나 이 치매 치료제로 인한 바이러스가 인간을 짐승처럼 지능의 퇴화를 가져옵니다. 말을 잃어버린 인간은 원시인이 됩니다. 그렇게 인류는 지능 파괴 바이러스에 걸려서 말을 하는 원숭이들에게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난 시점에서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시작됩니다.
프리퀄 3부작에서 나오는 인물은 없습니다. 또한 주인공 노아가 시저의 후손도 아닙니다. 아예 존재 자체를 모릅니다. 그냥 새로 시작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자연과 공존하던 노아 부족을 침공한 유인원 왕국
영화 초반은 유인원 버전의 아바타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자연과 공존하는 노아 부족이 나옵니다. 몽골인처럼 새를 키우는 부족에서 노아, 안나야, 수나라는 삼총사가 맹금류의 알을 훔쳐서 자신들만의 새를 키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숲에서 인간 소녀를 만나게 됩니다. 이 소녀를 찾으려는 무리가 있었는데 원숭이 왕국을 만들고 있는 '프록시무스 시저'가 있습니다. 이 부족이 노아네 마을을 파괴하고 아버지를 죽이고 친구와 가족을 모두 노예로 끌고 갑니다.
노아는 복수를 꿈꾸면서 마을 사람들이 끌려간 곳으로 향하다가 노아처럼 프록시무스 시저 무리에 마을이 파괴되고 혼자 살아남은 라카를 만나게 됩니다. 라카는 시저라는 말하는 유인원의 시조에 대해서 말해주고 책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그렇게 둘이서 '프록시무스 시저' 왕국을 찾아가는데 자꾸 누가 쫓아옵니다. 그 인간 소녀입니다. 이 소녀는 다른 인간과 달리 옷을 제대로 입고 있습니다. 그렇게 원시인 같은 인간 무리를 만나서 소녀를 보내줍니다. 그런데 이때 '프록시무스 시저' 부하 무리들이 인간 사냥을 하게 되고 이 소녀도 잡혀갈 위기에 빠집니다.
이때 노아가 말을 타고 소녀를 구하러 올 때 소녀가 노아!라고 외칩니다. 말을 하는 소녀? 인간은 말을 못하는데 이 소녀는 말을 합니다. 소녀는 자신의 이름이 메이라고 합니다.
노아의 성장드라마이자 전쟁과 평화에 대한 깊은 물음을 묻는다
말을 하는 인간? 노아와 라카는 깜짝 놀랍니다. 그러고보니 행색도 다릅니다. 그런데 이 메이라는 소녀는 지능이 발달한 인간답게 자기 속내를 내보이지 않습니다. 자연은 거짓말을 안 하지만 인간의 특징이자 장점은 거짓말을 한다는 겁니다. 또한 속내를 내 보이지 않죠.
배고픈 소녀를 감싸주지만 이 메이는 자신의 지난 과거 이야기를 자세히 말하지 않습니다. 딱 봐도 그렇게 잘해줬건만 노아와 라카에게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 느낌입니다. 그러다 '프룩시무스 시저' 왕국에 잡힙니다. 메이는 뛰어난 지능을 가졌다는 이유로 프룩시무스가 극진히 대합니다. 이 프룩시무스는 수개월 째 거대한 철문으로 닫혀 있는 벙커를 열려고 합니다. 그 안에는 인간의 무기와 각종 지식들이 담긴 책과 각종 기술들이 있고 그걸 얻어서 급속 진화를 꿈꿉니다. 언제까지 전기지지미 봉으로만 싸울 수 없으니까요. 총이라도 가지고 싶은데 이 문을 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메이를 극진히 대접합니다. 메이와 노아는 그렇게 프룩시무스에 잡혔지만 둘은 탈출과 해방을 꿈꿉니다. 이 이후의 이야기가 꽤 흥미롭습니다.
이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은 이전 혹성탈출 프리퀄 3부작이 담은 주제를 이어받고 있습니다. 인간과 유인원이 공존할 수 있느냐 아니면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상하관계로 지낼 수밖에 없고 주도권을 위해서 끝없이 죽고 죽이고 경쟁을 하느냐에 대한 시선이 계속 이어집니다.
노아는 시저의 가르침을 이어 받으려고 하고 시저의 "유인원은 뭉치면 강하다"를 곡해해서 뭉쳐서 인간을 쓸어 버리자는 사이비 교주 같은 프룩시무스 같은 전쟁주의자가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의뭉스러운 인물이 메이입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전체적으로 보면 아버지에 대한 복수 및 부족을 다시 일으키려는 노아의 성장 드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문명인과 원시인의 구도도 보입니다. 자연과 공존하고 삶을 사는 노아 부족과 기술과 문명을 배워서 세상을 지배하려는 '프룩시무스 시저' 왕국의 시선은 좀 식상하긴 합니다. 워낙 <아바타>가 원주민은 선하고 기술 문명인은 악하다는 시선이 강했는데 이걸 또 답습하네요. 다만 다른 점은 노아가 기술을 배척하는 것이 아닌 책이라는 존재를 알고 스스로 더 단단하고 큰 마을로 만들겠다는 시선을 보면 기술과 자연에서 모두 가르침을 받겠다는 태도는 신선하네요.
성장 드라마 자체는 특이할 것도 큰 느낌이 주는 것은 없습니다. 그냥 평이한 성장드라마입니다. 그러나 제가 놀란 건 메이라는 캐릭터가 품고 있는 의뭉스러운 모습입니다. 과연 메이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메이저 러너> 시리즈를 연출한 '웨스 볼' 감독은 흔한 이야기를 담고 싶지 않았다고 했는데 실제로 영화는 기존 영화의 이야기와 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나중에는 어떻게 마무리 하려고 저럴까? 할 정도로 평범한 이야기로 끝이 나지 않습니다.
노아는 또 하나의 시저 같았습니다. 시저가 죽으면서 끝날 때 이 시리즈도 끝이 났구나 했는데 노아도 시저 못지 않게 현명한 리더가 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과거를 전혀 모르는 시저가 인간이 만든 아동용 그림책에서 원숭이들이 동물원에 갇혀 있는 세상이 과거에 존재했다는 걸 알면서도 인간과 협력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네요.
평화와 전쟁, 우리 인류는 점점 전쟁의 기운이 다시 끌어 오르고 있는데 노아같은 현명한 인간들이 세상을 리드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한 마지막 장면은 메이와 노아를 교차 편집으로 보여주면서 두 주인공의 시선으로 끝이 납니다. 꽤 흥미로운 엔딩으로 벌써부터 후속 편이 기다려지네요.
웨타 스튜디오의 엄청난 VFX에 홀려 버리다
원시인으로 분장한 엑스트라 말고 사람은 딱 2명이 나옵니다. 그리고 모두 유인원입니다. 침팬치, 오랑우탄, 고릴라 등등이 나옵니다. 스토리는 엄청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독특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스케일도 이전 3부작에 비해서 좀 약한 느낌도 듭니다만 이전 3부작과 다른 점은 VFX가 엄청납니다. 이런 크리처물은 야간이나 비 오는 날씨나 흐린 날씨로 묘사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야 제작비도 절감되고 어려운 빛 표현을 덜 해도 되기에 비가 오거나 어둡거나 흐립니다. 그래서 감흥이 많이 떨어지죠. 그러나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은 대부분이 낮 촬영입니다. 태양빛 아래서도 당당한 CG 크리처를 아주 잘 표현했네요.
그래서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CG입니다. 반지의 제왕, 킹콩, 아바타를 만든 뉴질랜드의 웨타 스튜디오에서 만들었습니다. 현존 최강의 CGI 실력을 갖춘 회사에서 만든 영화답게 CG가 엄청나네요. 제가 놀란 장면이 몇 장면이 있는데 오랑우탄이 물에 빠졌다가 나오려는 장면은 실제 털이 볼실거리는 강아지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엄청난 비주얼을 보여주네요. 털 하나하나가 살아 있고 어색한 장면이 하나도 없습니다.
털이 가득한 유인원이 물속에 빠지는 장면은 압권이네요.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눈동자 표현도 놀라워서 단박에 영화에 푹 빠지게 하네요. 분명 다 CG로 만든 캐릭터임을 알고 보면서도 진짜 같다는 생각이 가득 드네요. 랜더링 시간이 무려 9억 6400만 시간이라고 하니 엄청난 기술력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영화 홍보를 위해서 배우가 아닌 시각효과 감독이 내한해서 영화 홍보를 했을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CG만 볼만하냐 아닙니다.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메이라는 캐릭터가 주는 긴장감도 좋고 노아라는 주인공도 매력적입니다. 다만 아쉬운점은 후반 메이가 시저에게 잡혀 있는 상태인데 너무 자유롭게 움직이는 점은 좀 납득이 안 가네요. 그럼에도 엄청난 CG와 꽤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주 좋네요. 여기에 노아, 안나야, 수나라는 동료애도 좋네요.
어떻게 보면 유인원 버전 아바타 같은 느낌도 듭니다.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네요. 좋은 영화가 많이 개봉을 안 한 것도 있지만 <듄 파트2>보다 좀 더 신선한 이야기라서 좀 더 좋았습니다.
온 가족이 봐도 좋은 영화입니다. 다만 엄청나게 스펙터클하고 웅장함은 없고 드라마가 더 강해서 화려함을 지향하는 분들에게는 약간 심심할 수 있습니다.
별점 : ★ ★ ★ ☆
40자 평 : 좋은 이야기와 좋은 표현력이 만나서 일으킨 스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