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런 상상을 해보죠. 공룡처럼 인류도 소행성 충돌로 멸절하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까? 이런 상상에서 출발한 듯한 소설이 <종말의 바보>입니다. '이사카 코타로 소설이 원작인 이 넷플릭스 12부작 드라마는 2023년 여름에 오픈하려고 했지만 유아인의 마약 이슈로 무려 8개월이 지난 2024년 4월에 오픈했습니다.
12부작? 넷플릭스 드라마 치고는 꽤 길죠. 연출은 <마이 네임>과 <인간 수업>을 연출한 김진민 PD가 연출을 했고 극본은 <밀회>를 쓴 정성주 작가입니다. 기대를 살짝 했는데 내가 본 넷플릭스 드라마 중에 가장 진도 빼기가 버거운 상당히 지루하고 졸리운 드라마입니다. 소재 자체가 자극적인데 이렇게 지루하게 만들고 진도도 안 나가다니 저만 그런가 하고 페북에 올렸더니 다들 1화 보고 또는 2,3화까지 참고 봤는데 도저히 못 보겠다면서 그만두신 분들이 대부분이네요.
지구 종말 200일을 앞둔 인간군상들의 이야기을 담은 <종말의 바보>
소행성이 다가와서 공룡처럼 인류도 멸절의 위기에 빠집니다. 다만 지구 리셋은 아니고 소행성이 떨어지는 지역이 가장 큰 피해를 받고 다른 지역은 피해가 덜 합니다. 물론 30년 동안 지구는 소행성이 일으킨 먼지 때문에 빙하기가 오고 제대로 살아남는 인류는 많지 않을 듯합니다. 하지만 소행성의 직접 영향권에 있는 나라는 그냥 지구상에서 사라질 겁니다. 그 지역은 바로 한국, 일본, 중국 일부입니다. 소행성은 사할린 인근 바다에 떨어지고 이 피해로 인해 한반도는 사라질 겁니다.
원작은 소행성이 오기 8년을 담고 있다는데 긴박함을 위해서인지 드라마 <종말의 바보>는 200일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극적이고 간단 명료한 위기 설정의 재난 영화는 규모만 잘 담으면 재미는 쉽게 뽑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재미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액션이나 규모나 CG가 조악하냐 그렇지 않습니다. 촬영 장소가 한정되어 있지만 전체적인 규모나 인원동원이나 액션 장면은 꽤 좋은 편입니다.
그런데 3화까지 보는데도 뭔 이야기를 하는지 뭘 말하고 싶은지 무슨 재미를 추구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할 정도로 드라마가 힘이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연출자가 연출을 너무 못했고 스토리 자체도 별로입니다.
<종말의 바보>를 망친 3대 바보
<종말의 바보>를 망친 3대 바보가 있습니다. 이 3개의 바보가 드라마를 보다 포기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작 소설이 재미없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분명히 각색과 연출이 큰 문제로 다가오네요.
1. 플롯의 바보
플롯을 잘 사용하면 긴장감을 유발하고 이야기의 흥미를 잔뜩 뽑아 낼 수 있습니다. 재미없는 이야기도 플롯이라는 MSG로 살려낼 수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이야기의 구조를 잘 섞고 놓으면 이야기의 풍미는 더 커집니다. 그러나 이런 과거, 현재를 왕복하고 섞는 건 탐정 드라마나 형사 드라마 같이 의문의 사건 사고를 다를 때 유용합니다. 이런 재난 소재 영화는 그냥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무난하고 몰입도를 서서히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의 선택인지 모르겠지만 플롯이 드라마 전체의 재미를 망가뜨렸네요. 1화에서는 소행성 충돌 200일부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한차례 대혼란을 겪은 후 100일이 지난 시점입니다. 300일 후에 내가 죽을 줄 알게 된다면 다들 경악, 공포에 휩싸이게 되고 사회는 혼란과 무질서에 접어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남은 300일 내내 망나니짓을 하고 살 수도 없죠.
또한 우리 인간은 선택을 할 수 있죠. 곱게 죽을 사람들도 참 많을 겁니다. 드라마는 폭동이 지난 후에 어느 정도 질서가 확립이 된 200일부터 시작합니다. 그럼 300일 전에 그러니까 소행성이 지구 그것도 한반도 인근에 떨어진 것을 국가가 국민들에게 알린 시점부터 보여주면 참 좋죠. 그런데 이 드라마는 가끔 문뜩문뜩 보여줍니다.
마치 시청자 당신들이 300일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퍼즐을 맞춰봐 식으로 보여줍니다. 수시로 300일, 200일이 왔다 갔다 하니 집중이 안 됩니다. 보통 이런 재난 영화는 재난의 규모와 함께 무능한 권력자들의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진도를 빼야 하는데 이게 안 보입니다. 방금 3화 보면서 알았는데 대통령이 도망갔다고 하네요.
플롯의 바보입니다. 어떻게 플롯을 이렇게 짜니까?
2. 스토리 자체가 노잼인 스토리의 바보
주인공인 학교 선생님 세경은 아이들을 납치하는 납치범을 죽이겠다면서 살인을 감행하는 모습에는 이게 복수극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친구인 중위와 엮이는 걸 보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네요. 공동체들을 보여줄 때는 곱게 죽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삶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러니 이야기에 집중을 할 수 없네요. 분명 세경이 주인공인듯한데 이야기가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하는 산만한 내용에 노이즈가 가득 낀 라디오를 듣는 느낌이네요. 이리저리 주파수를 돌리지만 모든 이야기가 노이즈가 가득합니다.
스토리 중에 가장 이해도 몰입도 안 되는 스토리는 반란군과 교도소를 탈출한 범죄자들이 아이들을 납치해서 다른 나라에 판다는 설정은 이해도 안 가고 공감도 안 됩니다. 뭐 저 아프리카의 학생 집단 유괴에서 영감을 받은 듯 한데 한국이 아프리카 같이 치안이 약한 나라가 아니잖아요. 밤거리를 마음대로 배회해도 가능한 나라가 한국과 일본인데 군인은 어디 있고 경찰은 어디 있는지 저런 범죄자들이 시위 현장에 들이닥쳐서 아이들을 납치합니까?
군인들이 치안을 다시 유지하지만 총알이 없다고 합니다. 아니 이 대멸종 앞에서도 전기와 수도가 공급되는 걸 보면 사회 필수 시스템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방증이고 그럼 치안도 돌아가야 합리적인 설정이죠. 이건 뭐 뜬금없이 치안 부재를 꺼내 들고 있네요. 이런 공상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담으려면 핍진성이 뛰어나야 하지만 작가는 핍진성이 너무 떨어지는 설정을 해 놓았네요.
흥미롭게도 드라마에서는 어떤 곳은 치안이 작동하고 어디는 작동이 안 되는 등 갈팡질팡이네요.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도 물어보고 싶네요.
스토리 말고 설정 장면도 따지고 보면 문제가 많습니다. 딱 봐도 인천시를 모델로 한 웅천시에 풍력 발전기가 돌아가는 모습은 비현실적입니다. 풍력 발전기는 소음이 커서 도시 인근에 세우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로 흠이 너무 많이 보이네요.
캐릭터들도 그렇습니다. 누구에게 마음을 주고 따라가고 지켜보고 싶게 만들어야 하는데 여자 중위 캐릭터만 좀 지켜볼만하고 선생님도 선생님의 애인도 신부님도 다 친구인 듯한데 다 매력이 없네요. 3화까지도 진도를 이리 안 나가도 무료하고 지루하니 더 보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듭니다. 뭐 후반에 다른 이야기가 담기면 좋은데 용기가 잘 나지는 않네요.
여기에 중학생 캐릭터들은 동 떨어진 세계에서 사는 듯한 느낌까지 드네요. 아이들이 험한 일을 하는 걸 왜 어른들이 방조하는지 모르겠네요.
3. 차별성은 알지만 재미를 모르는 바보
재난 영화나 드라마에는 영웅이 등장해서 많은 사람을 구하거나 재난을 막습니다. 전형적인 서사 구조죠. 그러나 이 드라마는 영웅은 없습니다. 그냥 300일 후에 모든 사람들이 죽는다는 설정에서 인간들의 삶에 대한 태도와 행동을 통해서 반면교사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는 다른 재난 드라마와의 차별성입니다만 차별성만 있고 재미는 없습니다. 정말 재미가 없어요.
그러나 300일 후에 죽을 사람들, 200일 후에 죽을 사람들이 마치 지진이 난 후에 사는 사람들처럼 삽니다. 미래가 없다면 200일 동안 삶을 정리하는 과정이 초반에 좀 보여주면 좋으련만 이게 없네요. 오래 살지도 못하면서 아등바등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플롯으로 이야기를 꼬고 이야기 자체도 흥미가 없고 연출도 좋지 못하고 배우들의 연기도 딱히 눈에 확 들어오는 배우는 많지 않네요.
유아인의 이슈를 지우고 보더라도 정말 못 만든 드라마입니다. 최근 들어서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드라마 중에 재미가 없는 드라마들이 꽤 나오고 있는데 <종말의 바보>도 그중 하나입니다. 3화까지 보고 쓰는 리뷰라서 이게 전체를 다 대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재미없어도 계속 볼까 합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수정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