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성수동을 지나가면서 왜 이 동네는 이렇게 핫플레이스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동차 공업사와 각종 허름하고 낡은 70~80년대 지어진 공장 건물이 가득한 것이 준공업 지역인 독산동과 가산동과 여러모로 참 비슷했습니다. 성수동과 독산1동 가산동의 공통점은 준공업 지역이라는 점이고 최근 변화가 심한 동네라는 점입니다.
성수동은 대림창고와 어니언을 대표로 하는 대형 카페와 다양한 주제를 갖춘 콘셉 카페들과 음식점이 엄청나게 많고 계속 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수동은 젊은이들의 성지, 힙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고 이런 경향은 더 짙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독산동은 오피스텔만 올라가고 있네요. 자동차 정비소가 사라지고 건물 올리는 걸 보면 백퍼 오피스텔입니다.
이 차이는 뭘까요? 그건 가산디지털 단지라는 20,30대 직장인들이자 1인 가구가 많이 출퇴근을 하는 국가 산업 단지의 유무 때문이죠. 가산2,3단지는 정말 엄청난 규모의 지식산업센터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가보면 숨이 막힐 정도로 오피스 건물이 가득합니다. 숨이 막힌다는 이유는 중소기업이 엄청나게 많은데 쉴 공간인 공원 한 줌도 없고 먹자 골목도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있는 것이 롯데시네마와 가산 아울렛 매장이 좀 낫지만 회사원들이 쉬고 먹고 즐기고 회식할 공간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가산디지털단지는 삭막하기 그지 없습니다. 게다가 교통 지옥이라서 출퇴근을 차로 하는 분들은 교통 불지옥을 맛 볼 겁니다. 그러나 서울시는 아무런 교통 대책이 없습니다. 지금 몇몇 대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근본적인 개선책이 아니라서 앞으로도 교통 지옥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이런 삭막한 공간에 그나마 단비 같은 공간이자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 있는데 바로 독산역 1번 출구 1번 마을 버스 종점 바로 뒤에 있는 공장 기숙사 건물을 개조한 <예술의 시간>입니다.
예술의 시간의 K의 이름 전시회
좀 더 일찍 소개했어야 하는데 좀 늦었습니다. 예술의 시간은 영일프레시젼이 운영하는 갤러리입니다. 준공업 지역에 갑자기 갤러리?라고 할 수 있지만 오히려 문화 소외지역일수록 이런 지역 갤러리가 활성화 되어야 합니다. 금천구 독산동에 있는 <예술의 시간>은 주기적으로 다양한 미술전을 진행합니다.
관장님이 좋은 작가들 작품을 장시간 전시를 합니다. 입소문이 나서 주변에 사는 학생들이 참 많이 찾아오고 구경오더라고요. 특히 여중고생들이 차려 입고 수다 떨고 가는 모습 많이 봤어요. 아이들에게는 좋은 어른과 좋은 환경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면에서 <예술의 시간>은 좋은 환경임이 틀림없습니다.
<예술의 시간>은 영일 프레시전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는데 주말에는 근무를 안 하기에 토요일에는 차 몰고 오셔도 좋고 평일은 공장 차량들이 많아서 좀 버거울 수 있습니다. 주로 주변에 사는 분들이 많이 찾고 저 또한 집에서 10분 거리라서 가끔 들립니다. 2층에는 카페 독산이 있어서 커피와 음료를 마실 수 있습니다. 커피 가격은 아메리카노가 3,500원으로 적당한 가격입니다. 공간 넓이나 분위기 치면 싼 편이죠. 노트북 하는 분들도 좀 있지만 평일에는 골라서 앉을 수 있습니다.
데이트 하기도 좋죠.
K의 이름이라는 전시회는 2월 16일부터 4월 1일까지 진행을 합니다.
참여 작가는 맹성규, 민진영, 배지인, 임윤경, 현세진, 황예지 작가가 참여했습니다. 제목이 독특하죠. 이 K의 이름이라는 전시는 소재는 쉽습니다. 가족입니다. 전시명은 카프카의 소설 '성'에서 나오는 측량사 K에서 따왔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잉여 인간이 안 되려면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잉여 인간도 많죠. 집에서 돈은 못 벌어오고 뒹글거리면 집에서도 엄청난 구박을 받습니다. 그래서 가족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나지만 동시에 세상에서 받는 스트레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받아주는 것은 또 가족입니다.
가족은 적이기도 하고 아군이기도 합니다. 최근 가족을 소재와 주제로 한 영화들이 늘고 있고 특히 '고에레다 히로카츠' 감독은 유사 가족을 통해서 가족의 의미를 묻고 있습니다. 이런 가족의 의미가 느슨해지고 새롭게 정립되어가는 요즘의 가족에 대한 시선을 담은 전시회가 K의 이름입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작품들은 배지인 작가의 작품입니다. 사진들을 그림으로 옮겨온 듯 한데 얼굴을 구현하지 않아서 익명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걸 보면 딱 느껴지죠. 우리네 가족 앨범 속 사진들입니다. 배지인 작가는 사진 앨범 속 사진이 12세에서 멈춘 것을 눈여겨 봅니다. 그리고 사진을 함께 찍은 시절을 생각하죠.
그럴 수 밖에 없어요. 가족 사진을 찍자고 하면 자의식이 강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고분고분 찍었지만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같이 사진 찍기 싫어합니다. 그만큼 자의식이 커졌고 그때 몇 번 실망한 부모님들은 사진 찍자는 말을 거의 안 하죠. 그러나사진만 같이 안 찍을 뿐 남는 건 가족 밖에 없고 나가서 받은 상처를 달래주는 건 가족 밖에 없습니다.
현세진 작가는 이혼한 부모의 집에 각각 자신의 방이 있는 걸 중첩해서 그려 놓았습니다. 횟가루로 방의 도면을 중첩했기에 그냥 넘어 다니면 되지만 심리적인 벽으로 쉽게 넘어들 수 없음을 표현했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소설 <언어의 정원>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직접 쓴 소설입니다. 애니 <언어의 정원>에 없는 내용이 놀라서 깜짝 놀라고 있네요. 소설에는 주인공이 부모가 이혼한 생생한 묘사가 있습니다.
수 많은 아이들이 이혼 가정에서 자랍니다. 한참 예민한 나이에 이혼하는 부모가 참 많죠. 이혼하고 싶어도 대학교 가고 나서 하지 꼭 아이들 학교 생활 할 때 이혼을 해요. 뭐 아이들 생각하면 이혼을 참고 실제로 그런 이유로 20,30년 전만 해도 참고 살았지만 요즘은 그런가요? 칼 같이 이혼하죠.
이런 거 보면 부모 팔자 반 팔자라는 생각도 들어요. 남편 복 없는 여자가 자식 복도 없다는 말도 맞고요. 보통 여자들이 키우잖아요. 아빠들은 양육비도 잘 안 주는 배드 파더도 많고요. 이러면 또 아빠가 키우는 집들도 있다고 말하지만 제 주변에는 다 엄마가 키우고 그게 더 많아요. 이런 걸 보면 소설 헉슬리 소설 <멋진 신세계>처럼 공동 양육만이 정답이 아닐까 합니다. 그럼 또 어려서부터 부모라는 보호막이 없어서 아이들이 경쟁심만 생기는 건 아닐까 하기도 하고요.
임윤경 작가의 영상 작품은 이름 던지기는 공을 던지면서 이름을 부르는 간단한 게임입니다. 가족끼리 이름 참 안 부르죠. 야, 너나 아예 호칭도 안 부르고 바로 말하기도 하고요. 이름이 있죠. 있는데 안 불러요.
테트라포드 모양의 조형물도 있네요. 뭐 그리스어인 Chora는 마을이라는 뜻인데 자신의 삶을 작품에 투영했네요.
여기도 테르라포드가 있네요. 저 봉이 빙빙 돌아가는데 마치 이 안으로 들어오면 떼쥐해줄거야 같은 강한 경계심을 보여주는 듯 하네요. 사회적 거리 같기도 하고요. 가족이라도 지인이라도 친구라도 거리는 지켜줘야죠.
이에에도 다양한 작품을 2층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공간 예쁘죠? 노출 인테리어로 만들었어요.
여기는 3층 카페 독산입니다. 공간이 또 변했네요. 테이블을 조금씩 변경하고 있어요.
<예술의 시간>은 전시만 하는 게 아닌 지역민과 학생들이 참여하기 좋은 예술 참여 기회를 꾸준히 제공하고 있습니다. 관계노선도 작품 활동 참여도 가능합니다.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인스타 계정이니 팔로워하면 좋은 소식 많이 전달해 줄 겁니다. https://www.instagram.com/artmoment.doksan/
3층 카페 독산에도 전시 작품들을 볼 수 있는데 배지인 작가의 작품이 보이네요. 여름과 물놀이라는 2개의 작품이네요. 파란 빛으로 여름을 표현했네요.
카페 독산 커피 맛 좋아요. 전 손님 접대할 일이 생기면 주변의 정말 많은 카페들 중에 카페 독산으로 가요.
3층을 지나 4층에도 갤러리가 있습니다. 여기는 창문이 있어서 야외 채광이 필요할 때는 창문을 개방하는데 이번 전시회는 영상물도 있어서 막아 놓고 창문도 작품을 거치하는 용도로 바뀌었네요.
4층에는 맹성규 작가의 '세계로 트래블 어댑터' 시리즈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레고 블럭인줄 알았는데 가까이가서 보니 나라마다 다른 전기 콘센트 구멍 때문에 유니버셜 어댑터가 여행객 필수품이 되었고 그걸 이용한 조형물이자 체험품이네요. 체험이 가능하더라고요. 실용성은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조카가 차 안에서 삼촌 MBTI는 뭐냐고 물어보기에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워낙 주변에서 MBTI 노래를 불러서 좀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MBTI의 좋은 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단순히 몇 개의 질문 따위로 성격을 정의한다고요? 그게 말이나 됩니까? 대신 조카에게 내 성격을 차분히 설명했습니다. 전 말이죠 감성적이면서도 이성적이에요. F와 T가 이성과 감성을 표시하는 듯 한데 전 이성적이고 감성적입니다. 이걸 표현할 MBTI가 있나요? 없잖아요.
그냥 물어 보세요. 누군가를 알고 싶으면 물어보세요. 물어보면 됩니다. 가뜩이나 우리 부모님들 대화할 상대가 적은데 차분히 차분히 물어보세요. 그럼 대답 잘 해주십니다. 황예지 작가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40분 짜리 영상에 담았습니다. 작가분들의 든든한 병풍이 되는 분들이 부모님이고 한국에서 예술하기 정말 쉽지 않잖아요. 부모님 후원 없으면 또 쉽게 시작도 못하고요. 한 세대 전에는 그림이나 음악하면 커서 딴따라가 되겠냐면서 노발대발 하셨어요. 알죠 예체능하다가 망하면 크게 망하고 밥벌이 하기 어려운 것을요.
전체적으로 이번 전시회 K의 이름이라는 전시회를 보면서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작가님 부모님은 누구실까? 라는 생각이요. 가족이 애증의 관계라고 하잖아요. 밀물과 썰물처럼 증오심도 애정이 들락거립니다.
다음 주 토요일까지 전시를 하는데 너무 늦게 소개했네요. 촬영은 3월 초에 하고 이제서야 하네요. 이 전시회만 보려고 독산역까지 오라고 하기엔 좀 아쉽죠. 주변에 뭔가 즐길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겸사겸사 즐기는데요. 그나마 희소식은 2024년 가을에 걸어서 1km 거리에 서서울 미술관이 완공됩니다. 그리고 현재는 위 사진 길로 쭉 가면 가산아울렛 매장이 있어서 쇼핑하기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