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집 근처 미술관인 <서울대 미술관>에 들려서 좋은 사진전을 봤습니다. 초기에 가봤어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전시회 마지막 날에 보고 왔네요.
샤 모양의 전문이 인상적인 서울대 앞에 신림선이 개통되면서 전철을 타고 접근할 수 있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즘 서울대 참 말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점점 서울대가 미워지네요. 뭐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잘 가려내지만 인성 좋은 학생 가려내는 것은 못하는 학교네요.
'내 마음속의 오목렌즈'라는 전시회는 2023년 1월 13일부터 3월 5일까지 전시를 했습니다.
김정일, 임정의, 최봉림, 김재경 총 4명의 사진가가 촬영한 80,90년대의 서울 달동네를 촬영한 사진입니다. 취미로 담은 분도 있고 기록용으로 촬영한 사진도 있습니다. 어차피 사진은 시간이 지나면 기록 사진이고 사진 자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기록성을 가지게 됩니다.
서울대 답게 시설은 엄청나게 좋은 미술관이고 서울시립미술관 못지 않게 규모도 크고 외형도 미술관스럽습니다.
서울대미술관은 내부 계단을 통해서 2,3층과 지하 전시관을 들러볼 수 있습니다. 지하층에서는 전시를 하지 않네요.
1981년 12월부터 1982년 2월까지 서울 개발지구 40개를 담은 김정일 사진가
2층에는 김정일 사진가의 사진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서울시는 서울의 40여 곳을 재개발한다고 신문에 발표했습니다. 지금은 서울이 개발할 곳이 없을 정도로 개발이 다 끝난 상태지만 80년대 초는 이제 막 서울이 확장되고 재정비되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아파트 개발이 이루어지던 시기였습니다. 재개발은 마을을 싹 밀고 아파트를 심는 작업이라서 추억이 깃든 길도 건물도 싹 다 지웁니다. 그래서 누가 기록을 해놓아야 합니다.
그 기록을 김정일 당시 사진학과 학생이 기록을 했네요. 기간은 1981년 12월부터 1982년 2월까지로 전두환 정권 시절입니다.
어느 지역일지 궁금하실 겁니다. 보통 사진 촬영하면 장소나 제목까지 담는데 생각해보니 이 당시 서울 풍경은 지역성이 없었습니다. 다 가난했거든요. 어딜 가도 지방에서 올라와서 서울에서 일자리를 잡고 사는 달동네가 많았습니다. 위 사진은 전형적인 달동네 풍경입니다. 저도 저런 동네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유년 시절에는 불편한 줄 모르고 살았다가 부촌에 사는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우리가 잘 사는 게 아니고 비교하게 되면서 창피하게 느꼈던 감정이 아직도 생각나네요.
건물이라고 하기엔 어디서 가져온 듯한 물건으로 얼기설기 만든 가건물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이게 1981년입니다.
사진은 기록입니다. 사진 하나하나 미학성이 있는 사진도 있고 없는 사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기록매체입니다.
이 사진들은 봉천동 일대 사진으로 보입니다.
봉천동은 대표적인 달동네였습니다. 관악구, 동작구, 금천구 지역이 지방에서 올라온 분들이 참 많이 살았어요. 산 기슭에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습니다. 산 기슭에 사는 것은 무척 불편합니다. 대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버스에서 내려서 한참 올라가야 하고요. 대부분이 무허가 건물이라서 건물들이 튼튼하지도 않습니다. 도신 빈민들이 살던 동네입니다. 상하수도없는 동네가 많았습니다. 제가 살던 곳은 80년대 중반에 상하수도가 들어왔던 것이 기억나네요.
집에 수도가 들어온다는 것이 얼마나 편리한지 들어오기 전에는 몰랐죠. 집에 화장실이 없는 집도 많아서 이런 공중 화장실이 있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이 시절을 살았나 모르겠어요. 그래도 일자리도 많았고 돈 벌 생각만 있으면 힘들어도 취직할 곳은 많았습니다.
낡은 건물이 사라지고 있고 그 뒤로 타워크레인이 올라가 있는 상징적인 사진이네요.
여기는 압구정입니다. 뒤로 당시 고층 아파트 들이 올라가 있네요. 80년대까지만 해도 복도식 10층 정도 높이의 아파트들이 참 많았습니다. 지금은 국내 최고 가격의 아파트들이 있는 곳으로 변했네요.
산에 나무는 없고 건물만 가득하고 이게 서울 풍경입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죠.
2층 미술관 가운데는 서울시 지도가 있고 재개발이 발표된 지역이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한남동, 금호동, 옥수동, 신당동, 압구정, 행당동, 동숭동, 충신동, 창신동, 삼청동, 길음동 대부분의 동네가 산등성이가 있는 동네들이 많네요. 서울 땅이 평지가 거의 없다 보니 언덕은 서울의 얼굴이기도 합니다.
1983년부터 6년동안 재개발 예정 지역을 찾은 임정의 사진가
임정의 사진가의 아버지는 한국 기록사진계의 대부인 임인식입니다. 한국의 과거를 담은 흑백 사진 중에 임인식 사진가의 사진들이 참 많습니다. 그 임인식 사진가의 아들이 임정의 사진가네요. 대를 이어서 사진을 하는 사진가족이네요.
1964년 20살의 임정의는 아버지의 라이카 카메라로 금호동을 촬영했습니다. 이게 출사가서 찍은 것이 아닌 앞마당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해외로 이주하려다가 금호동에 정착을 했다고 하네요. 임정의 사진가는 1983년부터 6년 동안 서울대 환경대학원 연구팀과 저소득층 주거지 연구를 했습니다. 서울의 재개발 예정 지역을 찾아서 그곳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이 80년대만 해도 카메라가 많이 보급되어서 일반인들도 카메라가 많았지만 필름 가격이 비싸서 함부로 막 찍지 못하고 기념일 떄만 촬영했습니다. 전시회에서는 관악구 봉천동과 신림동 일대를 촬영한 사진을 소개하고 있네요.
여기는 1984년에 촬영한 신림 7동입니다. 지금은 난향동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신림동은 10동 넘게 있었는데 지금은 동이름을 다 다르게 하고 있네요. 동이 10동 넘게 있는 것 자체에서 알 수 있지만 갑자기 만들어진 동네들이 많습니다. 종로 보세요. 동이름이 다 다르죠. 오래된 동네라는 방증입니다.
신림 7동 현 난향동은 동이름보다는 난곡으로 더 많이 알려진 곳입니다. 서울시의 대표적인 달동네로 영화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합니다. 산 기슭에 가득한 집들이 밤에는 별빛처럼 변하는 곳이기도 했죠. 달동네라는 이름은 80년대 인기 드라마 똑순이가 나왔던 <달동네>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달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고 포근함이 깃든 단어였지만 달동네에 산다면 살기 불편한 동네라는 인식이 강해서 사는 사람들은 듣기 안 좋아했던 단어이기도 합니다.
영화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80년대 개발 광풍이 불던 시기의 서울과 변두리 풍경을 보시려면 <우묵배미의 사랑>, <바람불어 좋은날>이 당시 생활 풍습과 환경을 잘 보여줍니다.
산에 나무보다 더 많은 집들이 가득한 동네. 관악구는 최근까지 이런 동네가 있었다가 재개발이 확정되고 집들이 철거되고 있더라고요. 이제 관악구도 이런 저층 불량 주택이 가득한 동네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물론 재개발 지역에는 대형 아파트들이 들어올 예정입니다.
조금 좁은 골목길은 뺄래를 널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빨래를 피해서 지나가기도 했었죠. 길을 보니 비포장도 포장도 아닌 것으로 보이네요. 지금은 비포장 길을 만나기 어려운 서울입니다. 흙 받고 싶으면 공원을 가야 하고요. 그러나 80년대는 비포장이 기본 값으로 겨울만 되면 얼어 붙은 땅이 녹으면 진흙길이 되어서 신발 사이에 낀 진흙 빼내야 했습니다.
흑백필름은 촬영 후에 크게 확대 출력할 사진을 찾기 위해서 밀착인화를 합니다. 그냥 필름을 다 올려 놓고 인화지에 노광을 줘서 밀착 인화를 한 후에 확대경으로 사진들을 살펴보고 크게 인화할 사진을 셀렉팅합니다. 참 불편하고 오래 걸리는 작업이지만 전 이 인화 시간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봉천동의 모습이네요.
이 사진은 마을 전체를 담고 있어서 보기 좋네요. 마음 같아서는 드론을 띄워서 담은 사진들이 많았으면 하는데 항공 촬영도 쉽지 않은 시절이고 이런 동네 개발 하기 전에 정부나 시에서 동네 기록을 할 마음도 생각도 못했던 시절입니다. 서울시장 행사장이나 촬영할 줄 알았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몇몇 단체들이 재개발 예정 지역을 사진으로 담지만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촬영하고 기록하지는 않더라고요.
기록의 소중함을 아직도 잘 모릅니다. 그나마 정부나 시에서 아카이브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긴 하더라고요.
난곡에서 바라본 여의도입니다. 위 사진 오른쪽 상단을 보면 저 멀리 63빌딩이 보입니다. 63빌딩은 엄청나게 커서 동작구, 관악구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송파구 롯데월드타워가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989년부터 2년 동안 서울 봉천동 등을 담은 최봉림
최봉림 사진가는 1989년부터 2년 동안 동작구 상도동에서 관악구 봉천동을 흑백과 컬러로 담았습니다. 이 사진들은 한 번도 공개되지 않다가 이번 전시회에서 소개되었네요. 앞에 소개한 사진과 다른 점은 인물이 사진에 담겨 있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골목길 사진으로 유명한 김기찬 사진가의 사진 속에도 아이들만 가득하죠. 왜 아이들일까?라는 생각을 해봤고 직접 물어보기도 했는데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이들은 카메라를 피하지 않고 어른들은 사진 찍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가난한 동네에서 사는 것을 자랑삼고 싶지 않아서겠죠. 그래서 아이들이 참 많이 담겼습니다.
또한 80년대 까지만 해도 초상권이라는 개념도 없었죠. 지금은 아이를 촬영해도 그걸 출판하거나 사진전을 하려면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모두 받는 것은 아니고 촬영 동의를 얻지 않고 촬영하는 사진가가 지금도 많긴 하지만 80년대 보다는 줄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허락 없이 찍었다고 사진가 멱살 잡이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이 사진 속 인물이 저라면서 사진 1장 달라고 하는 분들도 많고 오히려 영광이라고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고보면 사진 홍수 시대에 오히려 사진 인심이 사나워진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사진이 예전과 달리 무한 복제되어서 널리 멀리 퍼질 수 있기에 사진 촬영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 상식이 되었습니다.
서울대 미술관에서 대규모 사진전을 보니 아주 좋네요.
최봉림 사진가는 현재 삼청동의 사진 미술관인 뮤지엄 한미의 부관장으로 계시더라고요. 흑백 사진도 있지만 이러헥 컬러 사진도 있습니다. 저 산의 능선 참 많이 보는 능선이네요. 관악산으로 보입니다.
쓰레기를 공터에서 태우기도 했죠.
마당에서 목줄없이 키우는 강아지도 보이고 마당에서 학교 숙제를 하는 아이도 보이네요. 1990년대이니 한 10살 내외로 보면 한 1980년대 초중반의 아이들 같네요. 현재는 40대가 되었겠네요.
흥미로운 사진도 있는데 닭장에서 나온 닭들이 전봇대 위로 올라가 있기도 했네요. 닭도 방목했던 집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닭소리에 깨기도 했고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입니다.
이외에도 김재경 사진가는 2000년 경, 2010년 경 골목의 계단과 독특한 공간을 촬영한 사진을 전시했습니다.
기록성보다는 독특한 공간과 계단에 천착한 사진들이 많았습니다. 전시회 마지막날 가서 좋은 사진들 많이 보고 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