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TV? 이게 뭔지 모르는 분들이 참 많을 겁니다. 저는 알고 있지만 딱히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은 OTT 서비스입니다. 쉽게 말해서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와 비슷한 다양한 드라마, 영화를 중개하거나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는 서비스입니다. 물론 월정액으로 구매해서 봐야 합니다.
이 애플TV가 2022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코다를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넷플릭스보다 먼저 작품상을 받았다고 흥분을 했죠. 그러나 우리는 그보다 더 놀라운 작품 때문에 흥분하고 있습니다. 비단 우리뿐이 아닙니다. 이미 콧대 높고 한류를 은근히 무시하던 프랑스 미디어에서도 과할 정도로 극찬을 하고 있습니다. 문화 강국이라고 자부하는 유럽 주요 매체들과 미국 매체들과 전 세계 매체들이 3월 현재 올해의 드라마라고 칭송에 가까운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단 한 나라 일본만이 침묵하고 외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드라마는 일제강점기를 지나온 재일교포의 삶을 담은 드라마이기 때문입니다.
애플TV에서 공개된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로 만든 드라마 파친코
파친코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빠징코의 영어식 단어입니다. 이 파친코는 2017년 뉴욕타임스와 BBC가 선정한 '올해의 책'이자 베스트셀러 소설로 작가는 이민진 작가입니다. 이민진 작가의 인터뷰 영상은 유튜브에 꽤 많이 올라와서 이 작가의 뛰어난 통찰과 강단과 힘과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민진 작가는 역사학과를 나온 역사학자였다가 로펌에 잠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2은 일본인이라고 말하는 남편과 함께 일본에서 약 4년을 거주했습니다. 이민진 작가 스스로 이민자가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었는데 일본에서 한 10대 이민자가 자살을 한 사건을 유심하게 들여다봅니다. 그 10대 이민자는 자이니치라고 불리는 10대 재일동포 였습니다.
이민진 작가는 자신도 미국 이민자인데 왜 일본 이민자인 재일동포들은 왜 일본인들에게 무시 당하고 왕따를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지 궁금했고 한국 역사를 뒤적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파친코라는 베스트셀러 소설이 태어나게 됩니다.
이 소설 파친코를 애플TV가 무려 1000억을 투자해서 드라마로 만들었고 그 드라마가 대박을 내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미국 자본으로 만든 드라마지만 어느 누구도 이 드라마를 미국 드라마라고 하지 않고 한국 드라마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배우들을 보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윤여성, 한류 배우인 이민호와 신인 배우 김민하 등의 한국 배우들이 많이 보이고 연출자와 배우들이 재미교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국이 만들지 않아서 좀 더 객관적인 시선의 일제 강점기
어떻게 보면 미국 자본으로 만든 한국 드라마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중요한 건 자본인데 미국 자본이 이 이야기를 허락했다는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이 드라마의 스토리와 소재가 일본인들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고 일본 시장을 포기해야 함을 알면서도 지원을 했고 실제로 애플 TV는 일본에서 별다른 홍보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는 애플 TV가 이 소설이 악감정을 가지고 악다구니 같은 반일 소설이 아닌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인들을 흔들고 전 세계 이민자들의 서러움과 울분을 가득 담은 인류 보편타당성을 잘 갖춘 소설이라는 점을 눈여겨본 듯합니다.
전 파친코 1화를 보면서 가장 신기하고 놀라웠던 장면이 순사가 선자 집에 찾아온 장면입니다. 보통 이런 장면이면 눈썹이 10시 10분 상태인 순사가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면서 말보단 칼이나 채찍 같은 무기로 폭력을 휘두르고 말을 건네는 장면이 나올 겁니다. 항상 일제 강점기 순사는 악마들로 묘사되었으니까요.
그런데 한 순사는 전형적인 일본 순사 모습이지만 한 순사는 좀 더 이성적인 순사로 윽박 지르거나 폭력을 행사하면 조선인들이 반발해서 더 골치 아파진다면서 온건책을 보여주는 모습에서 좀 놀랬습니다. 한국 드라마와 다른 표현 속에서 이 드라마가 한국 배우가 나오지만 미국인의 시선으로 담은 드라마임을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피해 당사국이라서 항상 일제 순사와 일제를 어둡고 침울하고 악마로 그리지만 세상 모든 것이 그렇게 흑백 논리로 구분되기 쉽지 않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친일파 같은 인간들이 있듯 일제 순사 중에서도 상식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겁니다. 일제의 극단적 묘사가 아닌 어느 정도 현실적인 모습으로 그려서 좀 더 집중해서 볼 수 있었고 이게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일제를 미화하거나 두루뭉수리하게 표현하느냐? 그건 아닙니다. 일본 순사가 다가오면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이나 나라 잃은 울분을 술자리에서 말했던 어부를 폭력으로 다스리는 잔혹성도 보여줍니다. 이 드라마로 인해 수십 년 간 일제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으나 동양의 한 나라의 과거에 전혀 관심이 없던 서양인들이 예의 바른 일본인들이 2차 세계대전 이전 그리고 이후에도 재일동포에 대한 혐오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고 있다고 하죠. 항상 앞에서는 예의 바른 표정을 하던 일본인들이 왜 혐오로 무장해서 자이니치들를 괴롭히고 혐오하는지 궁금해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문화의 힘이 아닐까 합니다. 억지로 가르치고 알리려고 해도 안 되던 일을 한 드라마가 해내고 있네요.
일제와 일본인이 악마가 아닌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이 악마다
이민진 작가는 하버드 대학교 강의에서 한 관객의 질문에 식민지 역사를 가진 국가 국민을 모두 악이라고 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면서 진짜 악은 역사에 대해서 정직하지 않은 것을 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아주 중요한 말이자 경색된 한일관계를 푸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이 악마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험한 시위를 하는 그 사람들도 악마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위정자인 일본 정권을 잡은 사람들의 역사 왜곡과 역사에 대해서 정직하지 않은 그 마음과 태도가 악입니다. 문제는 이걸 그들이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거기서부터 한일관계를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일본 정권이 과거를 사과하고 인정하면 그걸 용서하고 함께 미래를 건설해야 하지만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듯합니다. 경제와 사회가 활력을 잃으면 극우들의 악다구니가 더 힘을 얻으니까요.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독특한 것은 한국의 극우는 친일적인 태도가 많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드라마 파친코는 일본이 숨기려고 하는 역사와 현실을 고발한 일본 고발 드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자를 통해본 4대에 걸친 재일동포의 고통을 담은 드라마 파친코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말이 있죠. 한국인들의 역동성을 잘 표현한 단어이지만 이 단어는 한국 근현대사에 대입해도 딱 맞는 단어입니다. 다만 그 역동성에 처참함이 뿌려져 있습니다. 드라마 파친코는 1915년부터 시작됩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나라 잃은 서러움을 겪은 조선인들의 고통을 지나서 한국 전쟁을 겪지 않았지만 그 전쟁의 고통을 70년 넘게 겪고 있는 자이니치라고 폄하의 단어로 불리는 재일동포들이 있습니다.
재일동포 이야기는 잘 아실 겁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제국은 많은 한국인들을 돈을 벌 수 있다고 꼬셔서 일본에서 강제노역 및 위안부 활동을 하게 하죠. 그렇게 수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넘어갔다가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에 정착하게 됩니다. 조국이라는 나라도 분단이 되어서 사상 선택을 요구받기도 합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지만 한국의 50,60년대에는 성공한 재일동포들의 자금이 한국으로 많이 흘러 들어와서 구로공단의 경공업 공장 짓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조국이 어려울 때 도움을 참 많이 줬죠. 그러나 한국이 잘 살게 되었을 때 우리는 재일동포들의 고통을 들여다봤나요? 지금은 달라졌지만 한때 재일동포를 배척하려는 행동들도 있었습니다.
일본에 사는 조선인들의 고통을 가장 잘 담은 영화가 2006년 한국에서 개봉해서 호평을 받은 일본 영화 <박치기>입니다. 재일동포 고등학생들의 울분을 담은 드라마로 영화 속에서 부르는 '임진강'은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노래입니다.
드라마 파친코는 일제강점기를 고발하지만 더 많은 부분을 일본에 사는 조선인과 그 후손들의 고통을 담고 있습니다. 이 이민자들의 고통은 미국인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많은 나라에 사는 이방인으로 취급받는 이민자들의 서러움과 울분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주인공 선자의 선자를 중심으로 한 4대에 걸친 잔혹하지만 강인한 서사가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네요. 주인공이 선자라는 여성인 점도 눈여겨 볼만합니다. 역사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면 가장 고통을 많이 받는 사람은 힘없는 사람들입니다. 소수인, 장애인 그리고 여성입니다. 여성들 특히 한국 여성들은 역사의 굴곡에서도 꺾이지 않고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텨온 위대한 어머니들이 많습니다. 이는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죠.
그래서 선자는 우리의 어머니 또는 할머니 그리고 우리 본인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역사의 파고에서도 키를 놓지 않고 항해하는 위대한 선자의 여정에 전 세계인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네요.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와 미장센이 가득한 파친코
이게 천억의 힘이구나 느낄 정도로 뛰어난 CG와 당시 시대상 재현을 너무 잘 재현했습니다. 그러나 돈만 많이 들였다고 좋은 빛깔의 드라마가 나오는 건 아닙니다. 뛰어난 연기와 그 연기의 뼈대인 스토리가 있어야죠.
제가 놀란 장면들은 CG를 가득 사용한 장면보다는 이 잠자리 잡는 장면입니다. 잠자리는 CG일 겁니다. 그런데 한순간 유년시절 잠자리를 잡아주던 아버지 모습이 어른거릴 정도로 너무나도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담았습니다.
별거 아닌 장면일 수 있지만 이 한 장면을 통해서 장애를 가진 아버지가 어린 선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드라마 연출력도 뛰어나고 화면을 구성하는 미술과 CG와 장면 구성력이 무척 뛰어납니다. 여기에 소설 원작은 시간순으로 보여주지만 드라마는 1915년과 1986년이라는 일제와 일본의 최고 전성기 시절을 교차로 보여주면서 흥미를 이끌어내는 연출을 가미합니다. 연출력이나 카메라 워킹, 미장센. 명작 드라마의 조건을 가득 담은 드라마가 틀림없습니다.
비록 1화만 본 상태라서 섣부르게 판단한다고 할 수 있지만 1화만 봐도 이 드라마의 미장센은 이 퀄로 끝까지 간다면 많은 사람들이 선자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하게 할 것이 뻔합니다. 그리고 배우들을 뺄 수 없습니다. 윤여정 배우야 워낙 유명하고 연기 잘하고 1화에 짧게 나와서 뭐라고 할 수 없지만 한류스타라는 꼬리표가 있는 이민우 배우의 연기에 박수를 보낸 해외 매체들이 많은 걸 보면 뛰어난 연기를 했네요.
전 아역 배우까지 저렇게 연기를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등장하는 배우 한 명 한 명 연기들이 좋지만 얼굴이 주는 힘도 무시 못합니다.
김민하 배우를 어디서 본 것 같지만 잘 생각이 안 납니다. 김민하 배우의 얼굴을 보자마자 저 얼굴이라면 신뢰가 가겠다고 느낄 정도로 얼굴이 주는 힘도 좋네요.
세상 모든 억압에 대한 고소장 같은 드라마 파친코
일본 일류 대학인 와세다 대학을 나온 재일동포들이 왜 파친코를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통해서 일본 안에서의 혐오감으로 사는 일본 속 혐오의 힘을 고발하는 드라마가 파친코입니다. 우리야 잘 알고 있죠. 매일 같이 혐한 시위를 하든 그 사람들을 요. 그러나 우리는 그 혐한 시위대에 맞서는 일본인들이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파친코는 전 세계 이민자들이 혐오와 멸시와 괄시와 이방인 취급 속에서도 살아나가려는 불굴의 의지를 담아서 감동을 자아내게 하고 있습니다. 좁게 보면 일제의 만행과 일본 속 재일동포들의 서러움을 담은 일본이라는 국가 고발 영화라고 할 수 있지만 크게 보면 세상 모든 억압받는 존재들이 세상에 보내는 고소장 같은 드라마로 느껴지네요.
또 하나 이 파친코가 좋았던 점은 사랑보다 혐오가 기본 태도이자 감정인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고 한국도 20대들의 남녀 젠더 갈등을 보면서 혐오가 사랑을 이기는 시대에 사는 엿같은 기분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드라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디 한국만 그럴까요? 미국도 인종 갈등이 더 강해지고 있다고 하죠. 전 세계 혐오로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경고장 같은 드라마가 파친코가 아닐까 합니다.
1화는 유튜브에 무료 공개되어 있습니다. 1화만 복용해도 효과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