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은 서울의 배꼽입니다. 또한 산의 높이가 높지 않고 적당하며 남산 N타워는 전파 중계소 및 전망대 역할을 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습니다. 또한 서울 도심의 마천루를 바라볼 수 있는 야경 맛집이기도 합니다. 또한 남산 둘레길은 봄부터 겨울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산책로로 인기가 높습니다. 그런데 이 남산에는 생각보다 동상이 꽤 많습니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이 아닌 남산에는 철갑 같은 애국지사 동상이 엄청 많습니다. 너무 많아서 동상 보존 지구인가 할 정도로 많습니다.
동상은 한국 또는 동양 문화가 아닙니다. 서양제국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영웅들을 칭송하기 위해서 높은 좌대에 금속으로 만든 거대한 동상을 광장에 세웁니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으려면 광장이 최고입니다. 그런데 남산의 동상들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남산 광장이라고 하지만 여기는 도심 같이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 아닙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처럼 도심 한 가운데 있죠. 그런데 남산은 도심이라기보다는 산을 품은 거대한 공원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곳에 동상이 있습니다. 그나마 안중근 의사 동상과 백범 김구 동상은 양지바른 곳에 있고 주변이 틔여 있어서 멀리서도 볼 수 있습니다.
유관순 상은 지나가다 우연히 봤습니다. 남산 둘레길을 돌다가 국립극장 쪽으로 내려가는데 단풍나무 사이에 거대한 동상이 있어서 가봤더니 류관순 상이라고 적혀 있네요.
저같이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나 들어가서 보지 아무도 찾지 않는 위치에 있네요. 보통 동상은 그 동상과 연관이 있는 지역이나 어떤 큰 업적을 이룬 위치나 여러 가지 동상 주인과 연관이 된 지역에 세웁니다. 그 마저도 요즘은 동상을 만들지 않고 만들어도 크게 만들지 않습니다. 지금은 공산국가나 거대한 동상을 만들지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동상 잘 안 만듭니다. 그래서 북한이 세계 최고의 동상 제작 기술이 있다잖아요.
동상 뒤로 가니 동상 만든 시기가 나오네요. 이 류관순 상은 1970년 10월 12일 만들어졌고 조각가 김세중이 만들었습니다. 만든 곳은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이고 서울신문사가 함께 만들었습니다.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남산에 만든 15개의 동상들
시기만 보면 박정희 대통령 시기이고 일제 장교 출신이라는 콤플렉스가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민족주의자로 치장하고 민족주의와 애국심을 국가 통치 원동력으로 삼기 위해서 남산에 15개의 애국지사 동상을 세우라고 지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 동상의 역사를 찾아보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1964년 5천 년 무구한 역사 속 조상 중에서 영웅 같은 분들을 서울시내 미대생들이 석고로 만들어서 중앙청(현 광화문 바로 뒤)과 남대문까지 이어지는 세종로에 37분의 선열조상상을 만들어서 전시를 합니다.
크기도 작고 석고상이라서 금방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 석고상에 색을 칠해서 전시를 했더니 많은 국민들이 이 석고상을 좋아했습니다. 민족 혼을 고취시킬 목적으로 잠시 전시를 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너무 좋아하다 보니 전시 기간이 늘어나게 되고 그 중간에 비가 오자 석고상이 얼룩지고 강풍에 넘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37분의 위인들을 담은 석고상은 흉물로 변해갔습니다.
이에 국민들이 우리의 위인들의 모습이 흉측하게 변해가고 있다면서 관리를 요청했지만 문화재가 아닌 단순 전시물에 국가 예산을 사용할 수 없다면서 문화재관리국은 관리를 거부합니다. 다만 이 여론을 참고해서 위인동상건립위원회를 만들어서 영구적으로 위인들을 볼 수 있는 동상을 서울 시내에 만들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여론 달래기 용이지 진짜 만들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1966년 이 동상 건립을 시작점이 된 사건이 일어납니다. 제1회 5.16 민족상 산업부문 장려상을 수상한 이한상 씨가 상금으로 받은 50만 원을 서울신문에 기탁합니다. 석고 같이 볼품없는 재질 말고 대리석이나 동으로 만든 동상을 만들어 달라고 상금을 기탁합니다. 이 사실을 서울신문은 신문에 보도하고 '애국선열 조상 건립운동'을 시작합니다.
국민 여론이 끓어오르자 여권 실세였던 김종필 공화당 의장은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 총재를 맡고 남산 및 서울 곳곳에 15개의 애국선열 동상을 만듭니다. 따라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가 아닌 한 시민의 기탁금으로 시작된 애국지사 동상 건립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박정희 대통령이 지켜만 본 것은 아닙니다. 평소에 가장 좋아했던 위인인 이순신 장군 동상 제막식 및 10개 이상의 동상 제막식에 직접 참가를 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좋아하는 위인이라서 이순신 장군이 위인 인기 순위 1위에 올랐다는 소리도 있죠. 15명의 애국선열 선정은 가계 인사 127명의 설문 투표로 결정했습니다. 따라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만든 리스트는 아닙니다. 제막식에 참여했지만 민간이 시작한 동상 건립 운동에 얼굴만 비췄습니다.
15명의 위인은 을지문덕, 김유신, 강감찬, 정몽주, 세종대왕, 이황, 이이, 이순신, 세종대왕, 정약용, 윤봉길로 정해졌고 1972년까지 동상 건립을 합니다. 각각의 동상은 당시 유명 기업들의 후원금으로 만들어져서 국민 성금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율곡 이이는 동양제과 이양구, 원효대사는 한진 조중훈, 퇴계 이황은 럭키화학 구자경, 유관순 열사는 동아건설 최준문, 포은 정몽주는 현대건설 정주영 등의 기업들의 돈으로 만들어집니다.
급하게 만들다 보니 위치도 고증도 제대로 안 된 동상들이 만들어지다
1호 동상은 충무공 이순신 동상으로 1968년 4월 27일 광화문 광장에 만들어집니다. 조각가 김세중이 만든 이 동상은 평소에 충무공을 흠모했던 박정희 대통령가 건립비 983만 원을 모두 냈습니다. 그러나 동상들은 잘 만들어지긴 했어도 고증을 꼼꼼히 하지 않고 이상한 모습들이 많이 보입니다.
충무공 동상을 보면 칼을 오른손으로 잡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왼손잡이였나요? 게다가 갑옷이 너무 길어서 롱코트처럼 보입니다. 저러면 움직이기 불편하죠. 칼도 조선시대 칼이 아닙니다.
게다가 위치가 이해 못할 위치에 만들어집니다. 당시 서울에는 동상을 지을 땅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남산 둘레에 만듭니다. 장충단 공원에도 꽤 많은데 여기는 광장도 아닙니다. 뭐 이해는 합니다. 단 몇 년 만에 15개의 동상을 만들어야 하니 위치 선정을 세밀하고 정밀하게 할 시간이 없었겠죠. 그래서 지금처럼 사람들이 찾지 않고 나무에 가려서 일부러 찾지 않으면 잘 모르는 위치에 세워집니다.
지금은 사라진 덕수궁 안의 세종대왕 상처럼 고궁 안에서 동상을 집어넣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청량리 세종공원으로 이전했습니다.
장충단 공원에는 정말 찾기 어려운 사명대사 동상도 있습니다. 보통 동상은 많은 사람이 보는 위치에 만드는데 하나 같이 구석진 곳에 있습니다. 이 동상은 이 애국지사 동상 운동의 발화점이 된 제1회 5.16 민족상 산업부문 장려상을 수상한 이한상 씨가 불교 신자이자 불교 신문 운영자여서 불교 인물인 사명대사 동상이 만들어집니다.
사명대사 동상은 근처에 동국대라는 불교 관련 대학이 있어서 그나마 맥락이 조금 있습니다.
그러나 사직공원에 조각가 최만린이 만든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 동상은 생뚱맞습니다. 지금은 이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 동상은 사직단 복원 공사로 인해 2015년 파주 자운서원으로 이전을 했습니다. 아래 대한뉴스 뉴스를 보시면 유관순 동상도 원래는 남대문 근처에 있었고 그나마 제대로 된 위치가 아닐까 했는데 1971년 장충단 공원으로 이전을 했네요. 오히려 순국선열을 홀대하는 느낌이네요.
구시대의 유물 동상
요즘은 동상 거의 안 만듭니다. 동상은 그냥 우상숭배의 또 하나의 행태입니다. 뭘 기리고 기념하고 하는 것을 꼭 동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동상 만들기를 좋아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북한입니다. 어찌나 동상을 잘 만들고 많이 만드는지 모르겠네요. 독재 국가들이 동상을 또 참 좋아하죠. 그래서 요즈 서구 국가나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는 동상을 안 만듭니다.
그럼에도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세종대왕 동상을 만듭니다. 이 동상도 참 말이 많았죠. 최근에는 저 세종대왕 얼굴이 세종대왕 어진이 없어서 김기창 화백이 만들었는데 어진이 없다 보니 김기창 화백은 자신의 얼굴과 비슷한 세종대왕 얼굴을 표준 영정을 만듭니다. 이걸 바탕으로 조각까지 만드니 저 얼굴은 세종대왕 얼굴이 아닌 김기창 화백의 얼굴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저 인자한 표정의 세종대왕 표정을 보면서 감사해하죠. 하늘에 있는 김기창 화백이 참 흐뭇해할 것입니다.
스스로 동상을 만들고 시민이 끌어내린 동상 이승만
이 남산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도 있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이승만 스스로 동상을 만듭니다. 보통 동상은 후손들이 만들어야 의미가 있지 생전에 만드는 것도 불경스러운데 스스로 만듭니다. 이는 김일성 같은 독재자들이나 하는행동입니다. 결국 이승만은 독재자 낙인이 찍히고 시민들에 의해 끌어 내려집니다. 4.19 혁명 후 분노한 시민들은 남산의 이승만 동상을 끌어 내리고 파고다 공원(현 탑골 공원)에 있던 이승만 동상을 끌어내린 후 도로에서 끌고 다니다 버립니다. 그 버린 걸 주운 고물상에서 고물로 산 이승만 동상을 보관하던 명륜동 주민이 10년 전에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독재자 이승만 동상을 다시 세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상 좋아하는 사람들은 독재 정권을 참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대통령이 아닌 카리스마 넘치는 왕을 원하는 사람들이고 그런 사람들이 동상 참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