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마다 영화를 누구보다 먼저 보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1달에 1편 또는 많아야 2편 정도만 봅니다. 예전보다 재미 있는 영화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이는 영화들이 재미 없어진 것도 있지만 제가 영화를 많이 봐서 어떤 영화를 봐도 흔하고 뻔한 내용이 나오면 못 견뎌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예술 영화나 매니아들이 좋아하는 영화만 좋은 영화로 판단하고 대중 영화는 낮게 보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대중 영화는 극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영화 흥행에 대한 촉이 좀 좋습니니다. 영화 <명량>, <국제시장>을 보자마다 이 영화는 천만 영화라고 직감을 했고 예상대로 천만을 쉽게 넘었습니다. 올해 초에 개봉한 <극한직업>도 천만이 넘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제 예상이 적중했습니다. <엑시트>는 대략 900만 정도가 들 것이라고 예상을 했는데 이것도 제 예상이 적중을 해서 최종 관객 942만 명이 영화를 봤습니다.
제가 <엑시트>를 1천만을 넘지 못한다고 본 이유는 1천만 관객 동원의 필수 요소 중 하나인 N차 관람 즉 2번 이상 볼만 한 영화가 아니라서 1천만은 넘지 못한다고 예상했는데 제 예상이 맞았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영화 흥행을 모두 맞추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영화판에서 활동 중인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흥행에는 수 많은 변수가 있습니다. 개봉하는 주에 붙은 경쟁작들을 살펴봐야 하고 스크린 점유율도 봐야 합니다. 여기에 입소문도 중요하죠.
영화를 잘 만들면 알아서 흥행이 되는 시대가 지났고 마케팅으로 첫 주에 옴팡 뽑아 먹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영화 흥행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은 책이 이하영 저자가 쓴 <영화 배급과 흥행>입니다.
시네마 서비스 전직 이사가 쓴 <영화 배급과 흥행>
네이버 포스트 흥행판(https://m.post.naver.com/cinehaha)를 가끔 지나가다 봅니다. 이분이 쓴 글들을 보면서 이분 업자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 업계의 이면을 빠삭하게 아는 분입니다. 보통 업자들은 블로그 운영 잘 하지 않습니다. 돈도 안 되는 걸 열심히 쓸 일이 없죠. 그러나 이분은 꾸준히 쓰더군요.
알아보니 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분은 한 때 거대한 영화 배급사였던 '시네마서비스'의 이사였던 이하영이라는 분이네요. 업자는 맞는데 현직은 아니네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매주 영화 흥행을 점치는데 그 내용이 꽤 흥미롭습니다. 언제 책으로 영화 흥행과 배급의 이야기를 담아주시길 바랬는데 드디어 책으로 나왔네요. 출판사는 아모르문디로 영화 관련 서적을 시리즈로 내놓고 있습니다.
책은 두껍지도 않고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재라서 이틀 정도면 다 읽을 수 있습니다. 1장에서는 영화의 탄생과 배급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영화가 상영하기까지는 3가지의 과정을 거칩니다. 첫 번째는 영화 제작이죠. 이렇게 제작한 영화를 배급사가 배급을 합니다. 그리고 배급된 영화를 영화관들이 상영을 합니다.
그런데 왜 영화는 유통이 아닌 배급일까요? 영화는 일반 상품과 달리 손이 많이 가고 변수가 참 많습니다. 그냥 공산품을 마트나 백화점에 넘기는 단순 유통이 아닙니다. 배급사가 영화를 얼마나 잘 포장하고(마케팅) 개봉관과의 협약과 언제 개봉을 하는 것이 좋은 지의 전반적인 일을 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규모 있는 영화 유통업체가 배급사입니다. 좋은 배급사는 협상 능력이 좋고 마케팅과 홍보 능력이 아주 좋죠. 그래서 제작사가 아닌 배급사만 보고 영화를 선택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영화 제작사들은 영화 배급사에게 독점적인 상영권을 주고 배급사는 영화관에 분배를 해줍니다.
이하영은 <영화 배급과 흥행>초반에 한국 영화의 배급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시작합니다. 이 한국 영화 배급에 큰 변화가 시작 된 것이 1990년 중반에 불어닥친 멀티플렉스관 열풍입니다. 지금은 당연한 풍경이지만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단관 개봉관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지금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처럼 10개 정도의 상영관을 함께 돌리는 멀티플렉스관이 생긴 이후로 배급의 판도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영화 제작, 배급, 상영을 한 회사가 모두 하는 수직 계열화에 대한 비판을 거의 하지 않고 있네요. 비판을 하고 있긴 하지만 크게 할애하지는 않습니다. 요즘 한국 영화가 재미 없어진 이유가 제작, 배급, 상영을 한 회사에서 하다 보니 재미 없어도 배급빨로 상영관빨로 입소문 나기 전에 첫 주에 본전 다 뽑아 먹으려는 행태가 많아지고 있죠. 게다가 대중성만 챙기니 영화가 붕어빵 찍듯이 비슷한 맛의 영화들만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수직계열화가 좋은 점은 의자 쿠션이 상영관 시설이 좋아진 정도 밖에 없습니다.
2장부터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먼저 영화 관객들을 3부류로 분리하는데
1. 개봉 첫날 보는 관객
제가 여기에 속합니다. 예전엔 시사회 초대도 많이 받아서 남들보다 1~2주 먼저 보고 블로그에 소개를 했는데 요즘은 상영 당일에 주로 보네요. 저 같이 영화를 가장 먼저 보고 입소문을 내는 관객이 있고 이 관객들이 아주 중요합니다.
2. 모방 관객
보고 싶은 영화가 재미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을 때 위험을 감수하고 개봉 첫 날 본 관객들의 평을 SNS나 블로그에서 접하고 영화를 선택하는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이 주로 개봉 첫 주 주말에 위험을 감수한 먼저 본 관객의 평을 참고해서 영화를 봅니다.
3. 다수결 존중 관객
영화가 흥행가도를 달리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이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영화는 대박이 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오지만 가장 흥미로운 건 첫 주말 관객수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주말 흥행 관객수만 뵈도 최종 흥행스코어를 대충 예상할 수 있다는 내용이 쏙 들어오네요. 먼저 주말 관객이라고 함은 금, 토,일 이 3일을 주말 관객이라고 합니다. 첫 주말 관객이 30만 명을 넘지 못하면 최종관객수는 100만을 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첫 주말 관객이 65만이 넘으면 최종관객수가 200만이 넘어서는 기준점이 되는 점과 90만이 넘으면 최종관객수가 300만을 넘기냐는 기준점이 됩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블랙머니는 지난 주말 90만 관객을 동원했으니 최종 스코어가 300만 내외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기준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죠. 이번 주에 돈 흡입하는 자매인 <겨울왕국2>가 개봉하고 이미 예매율이 84%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계절과 개봉한 주에 경쟁 영화가 얼마나 되는 지도 중요합니다.
한국 영화 흥행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명량>은 무려 1,700만 명이나 봤습니다. 이 기록은 앞으로도 깨기지 어려운 숫자입니다. 이 명량의 엄청난 흥행을 만든 것은 비였습니다. 당시 비가 계속 내려서 관객들이 영화관에 많이 몰렸다고 하네요. 하기야 비가 오는 주말이나 휴일엔 놀러가기 어려우니 실내 놀이터인 영화관에 많이 가게 되죠.
또 하나 흥미로운 궁금증인 왜 영화는 수요일에 개봉하느냐입니다. 20년 전에는 토요일이 개봉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금요일 개봉이 일상화 되었다가 어느날 보니 목요일로 바뀌고 최근에는 수요일이 정착이 되고 있습니다. 이 이유를 책 <영화 배급과 흥행>이 속 시원하게 소개하고 있네요.
영화 전산망이 구축되기 전에는 주말에 상영할 영화를 관련 관공서에 신고를 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주말에 영화 상영 스케줄을 변경하려면 이틀 전에 결정해야 합니다. 이에 목요일날 개봉을 하면 목요일 관객 반응을 보고 관객이 적은 영화는 주말에 퐁당퐁당 상영이라고 이른 아침이나 심야에 상영을 위해서 목요일날 개봉을 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지금은 관공서에 신고하는 룰이 사라져서 편리한 날짜에 개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개봉날부터 퐁당퐁당 상영을 하게 되었네요.
<영화 배급과 흥행>은 시즌 별 영화 흥행 요소와 비수기 성수기의 차이 명절 시즌의 예를 들면서 흥행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마블 시즌이라는 벚꽃 피는 시기에 개봉하는 마블 영화들이 있죠. 또한 최근 5년 간의 흥행판 분석을 하고 천만 영화들의 흥행 공식 등등을 소개하며 영화 흥행에 대한 속설과 상황들을 마지막 7장에 쏟아내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좋은 영화를 관객이 많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반만 맞습니다. 분명 좋은 영화는 영화 관객이 많이 들어오죠. 그러나 요즘은 영화 만듦새 못지 않게 배급과 상영을 지배하고 있는 CJ, 롯데시네마라는 두 개의 거대한 축이 흥행을 만들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따라서 흥행에 성공했다고 해서 모두 볼만한 영화도 아닙니다. 개봉 시기와 개봉 당시 함께 개봉한 영화도 중요합니다.
이 책 <영화 배급과 흥행>은 영화 흥행에 대한 이야기만 가득합니다. 영화 전반적인 제작, 배급, 상영 시스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나 한국 영화 전반에 대한 비판은 없습니다. 따라서 영화 흥행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 분들에게는 꽤 읽을만한 책입니다.
 | 영화 배급과 흥행 -  이하영 지음/아모르문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