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이 있지만 에어컨 바람을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잘 틀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선풍기 바람으로 견디고 있습니다만 지난 며칠은 너무 더워서 에어컨을 켰습니다. 새벽 2시 온도가 31도라는 믿기지 않는 온도에 에어컨을 안 켤 수 없었습니다.
아니 온도는 견딜 수 있습니다. 31도라도 건조하면 선풍기 켜고 잘 수 있습니다. 문제는 습도입니다. 왜 낮보다 밤이 더 견디기 어려울까 했는데 습도가 문제더라고요. 37도까지 올라가는 고온이라도 낮에는 습도가 50% 내외로 떨어집니다 그러나 밤에는 습도가 무려 90%까지 치솟습니다.
습도가 높으면 땀이 흘러도 잘 마르지 않습니다. 더운 건 참겠는데 습한 것은 정말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우나도 싫어합니다. 결국 어제 밤에는 에어컨을 켜고 자다가 중간에 일어나서 끄고 잤습니다. 에어컨은 온도도 낮추기도 하지만 습기를 제거하는 역할이 아주 큽니다. 자고 일어나니 방안 온도는 31도였지만 에어컨이 습도를 다 빨아서 실외기로 뱉어줘서 뽀송뽀송하게 잘 잤네요.
선풍기를 틀어서 시원함을 느끼려면 습도가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
<더위에 지쳐서 선풍기 바람을 쐬는 여자/작성자: tommaso79/셔터스톡>
에어컨 사용하면 실내 온도도 낮추고 습도도 낮춰서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선풍기는 팬을 돌려서 인공 바람을 일으킵니다. 이 인공 바람이 몸에 난 땀이 수증기가 되면서 주변의 온도를 낮춰서 시원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습도가 높아서 땀이 마르지 않는 열대야의 밤에 이 선풍기가 큰 효과가 있을까요?
미국 환경 보호국 EPA는 선풍기가 효과가 있는 온도는 35도 이하라면서 35도 이상의 온도에서는 선풍기만으로 열사병을 예방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많은 보건 기구들이 온도와 습도를 결합한 더위 체감 지수(Heat Index)에 따라서 선풍기 사용 지침을 정하고 있습니다. 이 더위 체감 지수는 온도와 습도를 결합한 지수로서 우리가 체감하는 온도이기도 합니다. 같은 온도라도 습도가 낮으면 더위 체감 지수는 낮고 반대로 습도가 높으면 더위 체감 지수는 높습니다.
시드니 대학의 운동 과학 부교수인 OLLIE JAY는 기온과 습도가 선풍기를 통해서 더위를 낮추는 상관 관계를 연구했습니다. 연구팀은 약물 등을 복용하지 않고 체온 조절 관련 질병이 없는 12명의 건강한 성인 남성을 온도와 습도를 관리할 수 있는 4개의 방을 체험하게 했습니다.
<온습도계/작성자: Wittaya Budda/셔터스톡>
12명의 남성들은 기온이 섭씨 40도에 습도가 50%인 더위 체감 지수(Heat Index)가 132.8인 습한 방과 섭씨 47도에 습도가 10%인 더위 체감 지수가 온도 114.8의 건조한 방에 들어가 의자에 앉게 했습니다. 습한 방과 건조한 방에는 남성들과의 거리1.2m에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남성들은 1.2m 떨어진 선풍기가 있는 방에서 2시간 동안 선풍기 바람을 쐬고 2시간 동안 선풍기를 꺼서 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남성들은 4일 동안 선풍기를 켠 습한 방, 선풍기를 끈 습한 방, 선풍기를 켠 건조한 방, 선풍기를 끈 건조한 방을 체험했습니다.
연구팀은 남성들의 심장 박동과 체온과 땀의 양, 혈압 등의 항목을 측정하고 방의 환경과 선풍기의 유무가 몸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연구팀은 습도가 높은 방에서는 더위 체감 지수(Heat Index)가 건조한 방보다 높았지만 선풍기를 가동하자 핵심 체온이 저하되어 심혈 관계의 긴장이 완화되어서 쾌적함이 증가했습니다. 반면 건조한 방에서 선풍기를 가동 시키면 핵심 체온의 상승이나 심혈 관계의 긴장이 높아지는 등의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더위 체감 지수(Heat Index)가 높은 덥고 습한 방이 선풍기를 틀면 시원함을 느끼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험 결과 덮고 습한 방이 선풍기를 틀면 더 시원함과 쾌적함을 느꼈네요.
<선풍기 앞에서 수박을 먹는 모녀/작성자: PR Image Factory/셔터스톡>
그 이유를 살펴보니 습도가 높고 온도가 높은 방에 있던 사람들은 땀을 쉽게 흘렸습니다. 이 몸으로 나온 땀이 선풍기 바람을 만나서 증발을 하면서 주변 온도를 낮춥니다. 반면 덥고 건조한 방에 있던 사람들은 몸의 수분을 유지하려고 땀이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땀이 없다 보니 선풍기 바람을 맞아도 땀의 증발 효과로 몸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더운 바람이 몸을 더 불쾌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연구자는 표본수가 많지 않고 남녀 노소, 약을 복용하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을 테스트한 연구 결과가 아니기에 일반화하긴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지금까지 덥고 습한 날씨에서는 선풍기가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오히려 덥고 건조한 곳에서 선풍기를 사용하면 오히려 더 불쾌할 수 있고 한국 같이 몬순 기후의 덮고 습한 땀이 줄줄 흐르는 지역에서는 선풍기 바람이 시원하고 쾌적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