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는 좀비라는 새로운 크리처에 큰 활력을 받고 있습니다. 부두교의 기생 캐릭터였던 이 좀비가 이제는 할리우드와 한국 영화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좀비에 대한 호불호가 강하고 좀비를 묘사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생각보다 한국 좀비 영화가 많은 것은 아닙니다. 또한 모두 성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영화 <부산행>이 한국 좀비 영화도 먹힌다는 길을 만들었지만 작년에 개봉한 조선 좀비물 <창궐>은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이 <창궐>과 설정이 상당히 유사한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이 1월 25일 오후 5시 190개국 시청자를 위해서 방영을 시작했습니다.
<창궐>과 비교하지 마라. 급이 다른 <킹덤>
작년에 개봉한 현빈, 장동건 주연의 <창궐>은 조선을 배경으로 한 좀비물로 왕권을 노리는 영의정과 세자의 다툼을 다루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와 동일한 설정의 드라마가 <킹덤>입니다. 따라서 두 작품은 비교를 안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비슷한 소재의 이야기가 연달아 나올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먼저 선보인 작품이 오리지널이고 뒤에 개봉한 영화가 아류 또는 베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만 제 경험상 그 반대가 많습니다. 어깨너머로 대작 영화의 정보를 빼내서 후딱 만든 영화가 먼저 개봉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창궐>의 아귀 설정은 만화 <버닝 헬 신의 나라>에서 가져온 듯 합니다. 2015년에 출간한 이 만화의 스토리를 만든 작가는 <싸인>, <씨그널>의 김은희 작가입니다. 이 김은희 작가가 자신이 쓴 작품을 드라마로 각색한 것이 <킹덤>입니다. 따라서 <창궐>이 <킹덤>을 배낀 것이지 <킹덤>이 <창궐>을 배낀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킹덤>과 <창궐>은 비교 자체가 민망할 정도로 그 품격 자체가 다릅니다. 액션은 창궐도 워낙 괜찮은 액션 장면이 많고 테크닉이 좋아서 비판할 구석이 많지 않습니다. 다만 당위가 떨어지는 액션 또는 화려한 액션을 지향하다가 오히려 흥미가 떨어지는 모습이 있다면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은 말 그대로 좀비 액션이 대부분입니다. 무섭게 달려오는 좀비 떼의 공포감을 살리기 위해서 많은 좀비 배우들이 엄청나게 달립니다. 자기 속도에 못이겨서 엎어지고 떨어지는 모습 하나 하나가 놀라울 정도로 연기를 잘 합니다. 감히 말하지만 드라마 <킹덤> 재미의 50%는 이 좀비 배우들이 했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연기들을 뿜어냅니다.
영화 <창궐>의 가장 큰 문제는 스토리였습니다. 당위가 떨어지는 스토리 때문에 극의 긴장감이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햇빛을 싫어하는 흡혈 좀비인 야귀들에 대한 특징과 약점과 처리에 대한 이야기를 <창궐>은 건성으로 합니다. 야귀가 낮을 싫어하면 낮에 불태우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낮에 야귀 시체를 처리하다가 밤이되면 어떡하냐는 대답에 바로 수긍을 합니다. 말도 안 돼죠. 해보지도 않고 포기를 하다뇨. 이런 식으로 너무 간단하게 야귀의 특징을 묘사합니다.
반면, <킹덤>은 역병에 걸린 사람들이 낮에는 햇빛을 피해서 어두운 곳에 숨어 있다는 걸 알고 낮에 시체를 태우려고 합니다. 또한, 역병에 걸린 사람들을 죽이려면 목을 쳐야 죽는다는 것을 싸움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됩니다. 스토리 자체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드라마 <킹덤>은 역병을 의인화 한 존재들을 통해서 권력 투쟁의 살벌함을 담고 있는 웰메이드 드라마입니다.
영화 이상의 미장센을 보여준 <킹덤>
고예산이 들어간 드라마라고 해도 CG나 액션이나 미장센 등은 영화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무래도 예산이 영화처럼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퀄리티가 좀 떨어지죠. 반면 영화는 2시간의 승부라도 1초의 영상도 허투로 담지 않습니다. 또한 CG를 비교하면 그 차이가 확 다릅니다.
<킹덤>은 다릅니다. 6부작 드라마인 <킹덤>은 1회 당 20억 원이라는 고액이 투입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CG 퀄리티가 아주 높습니다. 한양과 동래를 을 묘사한 인서트 부감 영상은 내가 본 한양 부감 영상 중 가장 뛰어났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촬영 장소가 세트장이 아닌 실제 고궁인 창덕궁, 창경궁에서 촬영을 했습니다. 제가 창경궁을 자주 가는데 그 창경궁에서 촬영을 한 모습에 좀 놀랐네요. 제가 알기론 정통 역사극만 고궁 촬영이 허가가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완벽한 허구인 <킹덤>을 가장 아름다운 고궁인 창덕궁과 창경궁에서 촬영 허가해 줬네요.
덕분에 가을이 되면 가장 아름다운 호수를 볼 수 있는 관덕정의 모습도 담겼네요. 전 세계인들이 보는 드라마라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아주 잘 담았습니다.
전 세계인들이 보는 드라마임을 잘 알고 있어서 그런지 미장센에 공을 들인 흔적이 꽤 많이 보입니다. 특히 한국의 아름다운 한복과 궁궐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모습들이 꽤 좋네요. 의상 고증도 꽤 좋습니다. 드라마를 보면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가을과 고궁과 한국 의상의 아름다움을 아주 잘 알 수 있을 듯합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좀비가 휩쓸고 지나간 빈민촌의 풍경을 너무 적나라하게 잘 담았습니다. 전 킹덤 미술팀과 분장팀에 큰 포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고퀄로 세트와 좀비 분장과 의복 등등 모든 것이 고퀄입니다. 드라마를 넘어 영화 이상입니다.
권력 다툼의 소용돌이가 주된 스토리인 <킹덤>
기존 좀비물들은 스토리가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복잡할 필요가 없죠. 좀비들이 달겨드는 그 자체만으로도 영화적 재미가 많은데요.그래서 월드워Z나 부산행은 스토리가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큰 재미를 줬습니다. 그럼에도 영화 <창궐>은 최소한의 스토리 구축도 못했습니다.
킹덤은 스토리가 아주 탄탄합니다. 1,2회는 배경 설정을 하다 보니 액션이나 좀비는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살짝 지루한 면은 있지만 1,2회의 배경 및 스토리 설정이 있었기에 3회부터 폭주하는 좀비와 스토리가 맞물려서 6회까지 훅하고 볼 수 있습니다. 드라마가 시작되면 왕세자인 이창(주지훈 분)은 강녕전에 있는 아버지의 볼 수가 없습니다. 두창에 걸려서 치료중이라는 말만 들릴 뿐입니다. 알현을 하려고 해도 영의정 조학주(류승룡 분)의 딸이자 세자의 계모이자 중전인 계비 조씨(김혜준 분)가 가로 막고 있습니다.
조선은 영의정인 조학주와 중전인 해원 조씨라는 외척 세력이 꽉 잡고 있습니다. 조학주는 이창 대신 자신의 딸인 계비 조씨가 임신 중인 아이를 낳아서 다음 왕으로 만들기 위해 이미 죽은 왕을 생사초로 강제로 살려서 좀비 상태로 만듭니다. 계비 조씨가 아이를 낳기 전에 왕이 죽으면 바로 세자인 이창이 왕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이걸 막기 위해서 죽은 왕을 죽지 않은 좀비 상태로 만듭니다.
아비인 왕을 만날 수 없게 되자 이창은 왕의 상태를 알기 위해서 동래(부산)에서 온 이승희 의원을 찾으러 호위무사인 무영(김상호 분)과 함께 동래로 향합니다. 궁궐을 몰래 빠져 나간 이창을 잡아서 죽이기 위해 조학주는 아들이 이끄는 기동대를 보내서 이창을 한양으로 압송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동래에 도착한 세자 일행은 이승희 의원이 운영하고 있는 동래의 병원인 지율헌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지율헌은 피가 낭자하고 죽창이 가득한 이상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지율헌을 살펴보다 마루 밑에 죽은 시체들이 있어서 근처 관아에 알려서 시체를 처리하라고 지시를 합니다. 그렇게 관아에 놓여진 시체들이 저녁이 되자 깨어난 후 관아 전체가 좀비 떼로 물들게 됩니다.
세자와 호위무사 무영은 이승희 의원을 찾다가 의녀 서비(배두나 분)와 뛰어난 무공을 지닌 영신(김성규 분)과 함께 이 좀비 사태를 해결해 나갑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드라마 <킹덤>을 보실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서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드라마 <킹덤>은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해원 조씨 일가와 세자 이창 세력간의 권력 다툼이 주된 이야기입니다. 이 권력 다툼은 허준호가 연기하는 안현대감과 의뭉스러운 인물인 조총을 잘 쏘는 영신까지 이어집니다.
이 권력 다툼은 같은 아버지와 딸 관계인 영의정 조학주와 중전사이에도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권력 관계가 주는 쪼임과 긴장이 꽤 진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 마저도 시즌 1에서는 맛보기 느낌이고 본격적인 권력 투쟁은 시즌 2에서 좀 더 짙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배고픈 헬조선과 역병이 만든 괴물 좀비
작가 김은희는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보면 역병이 돌아 수만 명이 죽었다는 글이 가끔 보인다면서 이 역병과 조선시대 민초들이 인육을 먹을 정도로 배고픔에 시달린 점에 착안을 해서 이 <킹덤>을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드라마 <킹덤>을 보면 좀비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좀비들을 역병에 걸린 사람으로 묘사할 뿐이죠.
이 역병에 걸린 사람들은 사람을 물어 뜯습니다. 딱 좀비죠. 그러나 이는 배고픔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1화에서 나온 좀비탑은 그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입니다. 배고픔에 살아 있는 사람을 물어 뜯는 모습들이 배고파서 죽은 귀신들 같습니다. 여기에 역병을 대하는 조선 관료들의 무능한 태도들도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낮에 시체를 태워서 제거해야 하는데 자기들끼리 도망을 간다거나 역병보다 권력 다툼에 집중하는 모습 등 전형적인 관료주의 사회를 보여줍니다. 여기에 죽어서도 양반과 상놈을 구분하는 죽은 사람에 대한 예우가 극진했던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통치하는 융통성없는 유교탈레반 조선을 적나라하게 비판을 합니다.
드라마 <킹덤>은 좀비를 공포의 도구로만 사용하지 않고 헬조선을 비판하는 도구 및 좀비 그 자체에 은유를 넣어서 조선 사회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전의 좀비물과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말은 꼭 해야 하는데 좀비 연기를 한 배우들에게 큰 상을 줘야 하지 않나 할 정도로 연기들이 엄청납니다. 부산행의 좀비들이 업그레이드 된 느낌입니다. 좀비떼가 달려오는 모습은 기겁을 하게 될 정도로 엄청난 액션을 보여줍니다.
규모의 액션보다는 스피드와 실질적인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 좀비떼의 질주는 잊혀지지가 않네요.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들
극찬을 받을 만한 드라마 <킹덤>입니다. 연출은 영화 <끝까지 간다>, <터널>을 연출한 김성훈 감독이 맡았습니다. 이 감독이 연출한 영화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 드라마는 다릅니다. 연출력이 꽤 좋고 카메라 앵글과 편집도 긴장감 있게 잘 연출했습니다. 주요 배우들의 연기, 연출, 액션 모두 별 5개 만점에 별 4개 이상입니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중전을 연기하는 김혜준의 발성과 연기가 농 익지 않고 설었습니다. 못 볼 정도는 아니지만 아쉬운 연기들이 많네요. 다행인 건 출연 분량이 많지 않네요. 배두나에 대한 지적들도 많습니다. 아무래도 사극을 처음 연기하다 보니 몸에 익지 않고 사극톤이 아니라서 낯설긴 합니다만 이 드라마는 정통 사극도 아니고 사극톤 보다는 일반적인 언어의 대사로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마도 영어 자막 처리하기 편하게 한 듯 합니다.
배두나의 연기도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튄다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런대로 볼만합니다. 대규모 액션이 없다는 것이 살짝 아쉽기는 합니다. 예를 들어서 대규모 폭발을 동반한 액션은 없네요. 이건 시즌2 1부에서 펼쳐질 듯 합니다.
강력추천합니다. 3회부터 6회까지 시간 순삭입니다. 이게 명품 드라마죠. 기존 공중파나 케이블TV에서 볼 수 없는 때깔과 액션과 스토리입니다. 시즌 2가 2월부터 촬영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시즌2부터 본격적인 시작이 될 것 같네요.
죽지 않은 왕을 모시는 나라. 죽은이가 산 자를 통치하는 유교탈레반 조선에서 굶어죽은 백성들의 울부짖음을 잘 담은 드라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