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끔찍한 사건 사고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매일 일어나지만 매일 모르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포털 뉴스를 보면 자극적인 사건 사고를 좋아하는 기자들과 포털 운영자가 자극적인 사건 사고를 메인 페이지에 자주 올립니다. 그런 뉴스를 볼 때마다 무서운 세상을 넘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용기가 잘 나지 않습니다. 특히 마음이 약한 계절에 놓인 사람에게 강력 범죄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염증만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포털 뉴스를 덜 보려고 합니다. 안 보는 게 상책이죠. 그럼에도 라디오에서 SNS에서 끔찍한 뉴스를 읽게 됩니다.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가끔 아주 끔찍한 사건 뉴스를 읽다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살인자를 자식으로 둔 부모는 무슨 죄일까?, 형제들은 어떤 고통을 받고 있을까?'
보통 우리는 범죄 가해자를 욕하지 그 가해자의 가족에 대해서 바라보지 않습니다. 바라봐도 똑같은 인간들이라고 생각하죠. 물론, 범죄자와 가족은 단지 가족으로 엮였을 뿐이지 범죄 자체에 대한 책임을 나눌수도 그렇게 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연좌제를 무척 경계합니다. 연좌제가 통하는 세상은 말 그대로 증오와 광끼의 나라이자 시대입니다.
누구나 가족이 연대 책임을 지는 연좌제의 부당함을 잘 압니다. 그런데 옆 집 남자가 사람을 죽였다면 우리는 그 가족과 평소처럼 지낼 수 있을까요? 저 같아도 이전보다 거리를 두고 데면데면하게 지낼 것 같습니다. 이런 행동이 언행불일치의 행동일까요? 말과 행동이 다른 일은 참 많습니다. 이런 행동을 하면 우리는 죄책감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이런 행동을 깊게 관찰하고 그 관찰에서 나온 인간 행동 또는 인간 심리의 통찰을 잘 담는 일본 소설가가 '히가시노 게이고'입니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용의자 X의 헌신>, <가면산장 살인사건>, <백야행> 등으로 유명합니다. 이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중에 <편지>라는 작품도 꽤 유명합니다. 이 <편지>를 2018년 12월에 일본의 TV 도쿄에서 드라마로 만들어 방영을 했습니다.
TV 도쿄의 TV 영화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
2018년 12월 19일 밤 9시 TV 도쿄에서는 드라마 스페셜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를 방영했습니다. 2시간짜리 드라마로 1부로 끝이 납니다. 한국으로 치면 KBS의 TV문학관 같은 1부작 드라마 시리즈입니다.
배우들은 한국에서 많이 알려진 배우는 많지 않습니다. 익숙한 배우가 없다보니 재미없지 않을까 했지만 이 드라마 생각보다 꽤 흥미롭고 소재와 스토리가 독특해서 흥미롭게 봤네요. 드라마 <편지>는 살인을 저지른 형을 둔 주인공이 겪는 범죄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의 고통과 현실을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범죄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들도 소수자이자 범죄 피해자입니다. 물론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고통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범죄자의 낙인은 범죄자에게만 찍히는 것이 아닌 그 가족들에게도 찍히게 되죠. 그 가해자 가족의 고통을 들여다 본 드라마가 <히가시노 게이고 편지>입니다.
나오키는 머리가 똑똑한 고등학생으로 형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명문대 입학을 꿈꾸고 있던 2003년 장애가 있던 형 츠요시가 돈 벌이가 궁해지자 절도를 하다가 마침 들어오던 할머니를 살해합니다. 이 사건으로 형은 교도소에 들어가고 동생인 나오키는 세간의 눈치를 피하기 위해서 고등학교를 자퇴합니다. 그러나 살인자의 동생이라는 주홍글씨는 어디를 가든 따라 다닙니다. 선술집에서 자신의 고등학생 친구들을 만난 나오키는 자신의 가족사가 드러나자 선술집을 그만둡니다. 이런 속 사정도 모르는지 형은 교도소에서 자신의 안부를 담고 동생의 안부를 묻는 편지를 자주 보냅니다. 동생인 나오키는 유일한 가족인 형에게 답장을 보내면서 지냅니다.
나오키는 재활용센터에 취직해서 일을 하지만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숨기고 운둔자처럼 지냅니다. 그러다 검열 표시가 있는 교도소에서 보낸 형이 보낸 편지를 회사 동료가 보게 되고 형의 범죄 사실이 다시 들통이 납니다. 그러나 좋은 직원들을 만나서 회사 생활은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나오키는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명문대 진학의 꿈을 꿉니다. 이 야간 고등학교의 선생님은 나오키의 뛰어난 실력에 놀라게 되고 용기를 북돋구어줍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연인 사이가 됩니다. 선생님은 엄청난 재력을 가진 집안의 규수입니다. 신분의 차이라고 할 정도로 두 사람은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뛰어난 두뇌를 가진 나오키의 다부진 모습에 부모들은 설득이 되어갑니다. 그러나 형이 살인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고 다시 나오키는 비슷한 연배의 선생님과 헤어집니다
이런 삶은 계속 됩니다. 나오키는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가는 곳마다 살인 전과가 있는 형 때문에 취직에도 삶에도 큰 피해를 받고 삽니다. 그런 나오키를 새로운 직장의 사장이 나오키의 고통을 알아봅니다. 새로운 직장인 양판점에서 일하던 나오키는 제품 도난 사고가 일어나고 내부자 소행으로 여긴 회사는 직원들의 뒷조사를 합니다. 그리고 나오키의 형이 살인을 저지르고 교도소에 있는 것을 알아냅니다. 아무 잘못이 없지만 나오키는 창고직으로 전출 당합니다. 사장은 창고에서 일하는 나오키에게 아주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합니다.
범죄자 가족에 대한 편견도 범죄의 결과이다
보통 이런 연좌제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나 소설은 연좌제의 문제점을 계몽하는 내용으로 담깁니다. 저도 그런 뻔한 내용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 전혀 예상 못한 이야기를 하네요. 나오키의 부당한 전출을 알고 있는 사장은 다시 원래 자리로 복귀 시켜준다고 할 줄 알았는데 선베 이야기를 합니다.
봉투 안에 있는 센베 중 하나가 독이 있는 센베가 있었는데 그 독이 든 센베를 꺼내서 버렸어! 자네라면 독이 없는 나머지 센베를 먹으려고 할까?
범죄자 가족에 대한 편견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좀 더 안전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안전 욕구라고 설명합니다. 뭔가 한 대 맞은 느낌입니다. 사장은 사람들의 편견은 자연스러운 행동이자 본능이라고 말하며 이 편견을 깨려면 숨고 피하지 말고 사람들과의 유대 관계를 늘려가면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드라마 <히가시노 게이고 편지>는 나오키도 범죄 피해를 받으면서 가해자 가족의 억울함이 범죄 피해자 가족이 되면서 억울함이 아닌 그게 세상의 이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받는 세상의 편견까지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형의 범죄로 피해를 받은 피해자 가족을 찾아갑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편지>는 상당히 세련된 이야기 구조를 보여줍니다.
이 드라마는 세상이 범죄자에게 보이는 편견이 악의보다는 안전 욕구라고 말하면서 가해자 가족이 겪는 고통까지 가해자의 범죄에서 파생된 고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부당한 대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그 범죄를 막게 하는 바리케이트가 가족입니다. 내 범죄로 인해서 가족이 고통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참고 참고 또 참습니다.
반면 가족이나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없는 사람은 쉽게 범죄 행위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관계 맺기를 많이 해야하고 사람이 관계가 끊어지지 않게 잘 관리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외부 세계와의 관계가 다 끊어진 사람들의 관계 복원을 잘 유도해야 합니다.
편지를 통해서 갱생을 하게 되는 나오키의 형
익숙한 일본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가 아니라서 좀 지루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단한 반전 스토리가 담긴 드라마도 아닙니다. 그러나 가해자 가족의 고통이라는 누구나 궁금하지만 결코 다루지 않는 소재를 평범하지 않고 비범하게 다룬 드라마입니다. 제목이 편지인 이유는 교도소에 있는 형이 피해자 가족과 동생에게 끊이 없이 편지를 보내는데 동생의 마지막 편지를 통해서 교도소에 있는 형이 자신의 잘못을 크게 깨닫습니다.
좋은 소설이자 좋은 드라마입니다. 이 <히가시노 게이고 편지>는 푹TV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