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 보면 스크린 속 여주인공과 잠시라도 함께 있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나 한번쯤은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판타지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실제 배우를 만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스크린에서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와 실제 배우는 같은 인물이지만 동일한 캐릭터라고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실제 배우가 이 세상에 없다면 스크린 속 여배우에 대한 로망은 더 커지게 됩니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그런 배우였습니다. 그녀가 주연한 영화를 최근에 봤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카사블랑카>를 보면서 얼굴에서 광채가 난다는 관용어를 실제로 목격했습니다. 많은 배우를 봤지만 '잉그리드 버그만'처럼 강렬한 배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배우. 그녀를 만나려면 그녀가 출연한 영화를 보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가 스크린을 뚫고 현실 세계에 나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일본 영화 <오늘밤, 로맨스 극장에서>는 이 귀여운 상상을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일본 판타지 영화 <오늘밤, 로맨스 극장에서>

일본 영화 중에 대작 영화나 액션 영화는 한국에서 인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본 대작 액션 영화도 한국에서는 수입조차 안 되거나 작게 개봉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본 영화는 너무 계몽적인 메시지를 담습니다. 악당은 시원하게 복수를 해야 하는데 '악당도 생명이 있잖아요'라는 식으로 도덕군자 같은 결말을 냅니다. 

딱 교과서 같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런 교과서적이고 계몽적인 메시지가 잘 먹히는 장르가 로맨스입니다. 일본 로맨스 영화들은 지고지순함이 아주 강합니다. 이는 한국 영화 로맨스 영화보다 그 깊이가 깊어서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인기 로맨스 영화를 많이 좋아합니다. 영화 <오늘밤, 로맨스 극장에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로맨스 영화입니다만 그 이야기가 좀 독특합니다.

1930년 대 흑백 고전 영화의 여주인공 '미유키(아야세 하루카 분)'는 영화 속에서 공주로 나옵니다. 3명의 동물 친구를 거느리고 모험을 합니다. 공주옷을 입고 왈패 같은 성격과 공주라는 신분으로 거침 없는 행동을 합니다. 영화는 개봉 당시에는 인기가 높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재미 도구인 영화에 대한 인기는 시들해집니다. 그렇게 '미유키 공주'의 영화는 찾는 사람이 줄다가 영화관 캐비넷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1960년 대가 됩니다. 오랜 세월 동안 찾는 사람 없던 미유키 공주의 영화를 켄지라는 청년이 로맨스라는 이름의 극장에서 영사기에 걸고 혼자 봅니다. 켄지(사카구치 켄타로 분)는 영화 감독이 꿈인 조연출입니다. 사고를 많이 치지만 영화에 대한 열정은 대단한 영화를 좋아하는 청년입니다. 켄지는 시간이 나면 오래된 극장에 가서 미유키 공주의 흑백 영화를 봅니다. 영화가 오래되어서 전체적으로 촌스럽지만 미유키 공주의 미모는 세월을 지나서 켄지 마음 속에 전해집니다.


그날도 켄지는 미유키 공주의 영화를 홀로 보다가 한 영화 매니아가 이 필름을 샀다면서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영화관 주인 아저씨의 말에 깜짝 놀랍니다. 그렇게 우울한 기분을 안고 미유키 공주 영화를 마지막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번개가 치고 극장이 정전이 되었다가 전기가 들어옵니다. 

밝아진 영화관 안에는 미유키 공주가 스크린 밖으로 나와서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켄지는 미유키를 일으켜 주려고 다가갔다가 맞을 뻔 합니다. 자신이 영화 스크린 속에 살다가 현실 세계로 나온 것을 인지는 하는데 여전히 공주라고 알고 있습니다. 켄지에게 시종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을 받들라고 합니다. 

좀 당혹스럽지만 켄지는 실제로 보고 싶었던 미유키를 직접 눈으로 보는 자체가 놀랍고 황홀합니다. 다만 흑백 스크린 속에서 살아서 그런지 미유키는 흑백으로 존재합니다.


미유키는 컬러로 된 세상을 보면서 연신 감탄합니다. 색의 향연에 놀라워하는 미유키. 그렇게 켄지는 미유키라는 공주를 모시면서 같이 동거를 합니다. 동거를 하지만 공주와 시종 관계라서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특히 공주는 자신에게 다가오려고 하면 매몰차고 쌀쌀맞고 도도하게 대합니다. 

온갖 수모를 당하고 막 대해도 켄지는 미유키 공주의 거칠고 막무가내 행동을 다 받아줍니다. 그러나 사건 사고가 계속 일어나고 도를 넘은 행동에 켄지도 불 같이 화를 냅니다. 그럼에도 켄지는 미유키 공주를 혼자 버려둘 수 없습니다. 미유키 공주도 이런 켄지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미유키 공주에게는 무시 당하고 시종이라고 불리우지만 열혈 청년 켄지를 흠모하는 영화 제작사 딸인  나루세의 도움으로 영화 감독으로 입봉하는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나루세는 켄지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지만 켄지에게 있어서 사랑은 미유키 공주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미유키 공주와의 사랑이 이어지기에는 큰 장벽이 있습니다. 


이 장벽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의 충분 조건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 <오늘밤, 로맨스 극장에서>는 그건 충분 조건이 아닌 필요 조건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잠시 쉬었다가 하죠. 


영화를 의인화 한 듯한 미유키 공주

<오늘밤, 로맨스 극장에서>는 로맨스 장르 영화이지만 코믹 요소도 많습니다. 허리우드 같은 거대한 영화사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1편의 영화를 만드는데 많은 스텝들이 존재하고 그들의 노고를 살짝씩 보여줍니다. 특히 절대미남 배우를 연기하는 키타무라 카즈키의 코믹 연기와 대사가 초반에 큰 즐거움을 줍니다. 

켄지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스크린 속에서 살고 있던 흠모하던 미유키 공주와 함께 스튜디오 곳곳을 다니면서 행복한 하루 하루를 보냅니다. 그러나 공주가 언제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갈지 몰라서 안절부절합니다. 소심한 켄지는 공주에게 직접 사랑 고백을 하지 못합니다. 영화 입봉이 결정되던 날 켄지는 사랑의 징표인 반지를 주면서 사랑 고백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미유키 공주는 자신의 비밀을 말합니다. 이후 켄지는 시름시름 마음의 병을 앓게 됩니다. 

켄지의 사랑은 이성에 대한 사랑일 수 있지만 보는 내내 전 영화에 대한 사랑으로 느껴졌습니다. 이 영화 자체가 하나의 완성되지 않는 시나리오로 시작됩니다. 병원에 입원한 한 노인이 쓴 시나리오를 한 간호사가 보게 되고 노인에게 시나리오 내용을 말해 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한 노인이 쓴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영화가 진행됩니다. 영화 자체가 영화로 만들지 못한 시나리오입니다.  마치 액자 구성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영화 자체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뿍 담고 있다 보니 켄지의 사랑은 이성에 대한 사랑을 빛 댄 영화에 대한 사랑으로 느껴집니다. 


전 영화를 참 좋아합니다. 매일이 영화 같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영화는 환상입니다. 그 환상을 보면서 우리는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습니다. 영화에 대한 좋아함이 심해지면 현실과의 괴리감 때문에 더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적당한 간격을 둬야 합니다. 마치 미유키 공주와 켄지처럼 간격이 있어야 합니다. 영화를 너무 사랑하는 켄지는 미유키 공주에게 다가가지만 미유키 공주는 그럴 때 마다 뒤로 한 발 물러섭니다. 

영화는 환상이라고 인정하고 그걸 즐기는 것과 영화에 푹 빠져서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실제 현실이 망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영화와의 거리가 멀어지면 영화를 덜 보게 되다가 안 보게 됩니다. 간격이 중요합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켄지와 미유키 공주의 간격이 마치 영화와 영화광의 간격 같아 보였습니다. 또한, 켄지의 미유키 공주에 대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영화에 대한 사랑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세상엔 존재 가치가 없는 영화는 없다는 로맨스 극장 주인의 말처럼 켄지처럼 1명이라도 찾는 사람이 있는 영화는 그 1사람의 기억 속에서 계속 상영 될 수 있습니다. 요즘 최신 영화를 잘 안 봅니다. 영화관람료가 비싸진 것도 있지만 볼 만한 영화가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오히려 명작이라고 알려졌지만 보지 못한 고전 명작 영화를 보면서 감탄을 하고 있습니다. 

최신 영화만 존재 가치가 있고 최신 영화만 소비하는 문화 속에서 흘러간 영화, 덜 찾는 영화를 여러가지 이유로 찾는 영화광들이 있습니다. 켄지 같은 영화광을 위해서 미유키 공주가 스크린을 찢고 감사함을 전해주는 듯한 영화입니다. 그래서 제가 더 감사했습니다. 고전 명화나 잊혀져 가는 영화를 즐겨 찾는 저에게 찾아온 영화 공주 같은 느낌입니다. 제가 너무 감정 이입을 했나요? 여러모로 이 영화는 영화광을 위한 위로주 또는 감사주 같은 영화입니다. 


사랑에 대한 물음을 하는 영화 <오늘밤, 로맨스 극장에서>

영화가 참 예쁩니다. 흑백 세상에 살던 미유키 공주가 컬러의 세상에 감탄하는 장면을 위해서라도 컬러플한 풍광들을 많이 담은 영화입니다.  특히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되는 장면에서는 그 장면이 주는 아름다움과 함께 색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굵은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렀습니다. 슬퍼서 기뻐서 우는 눈물만 있는 건 아닙니다. 

너무 아름다워서 흘리는 눈물도 있습니다. 유치한 전개와 진부한 클리세들도 있긴 하지만 영화가 주는 메시지와 장면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영화입니다. 특히 사카구치 켄타로라는 배우의 밝고 맑은 이미지는 너무나도 사랑스럽습니다. 여기에 아야세 하루카의 연기도 좋습니다. 두 배우의 캐미도 너무 좋습니다. 켄타로 배우의 맑은 이미지에 푹 빠져서 이 배우의 전작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위에서 하다 만 이야기를 다시 이어가겠습니다. 영화 <오늘밤, 로맨스 극장에서>는 육체적인 사랑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남녀가 만나서 육체적인 관계를 해야 사랑이 완성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고 완성은 아니더라도 육체적 관계가 사랑의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죠. 물론, 저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만 너무나 사랑하면 그것이 꼭 필요한 필수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관계를 만나기도 쉽지 않고 만난다고 해도 거품이 터지듯 자연스럽게 깨집니다. 영화 <오늘밤, 로맨스 극장에서>는 여기에 대한 물음을 합니다. 자세하게 쓰면 스포가 되기에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참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그렇다고 명작이나 별 4개 이상 명작은 아닙니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도 좋고 연출도 연기도 좋지만 은유가 많지 않고 깊이가 깊지 않아서 2번, 3번 되돌아 보게 하는 힘은 없습니다. 마치 달달한 캔디 같은 영화라고 할까요? 달콤하지만 그 달콤함이 아주 짜릿하네요. 오랜만에 보는 아름다운 로맨스 영화이자 영화에 대한 영화이자 영화광에 대한 고마움을 담은 영화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영화광을 위한 감사패 같은 영화

썬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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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0.01 16: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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