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후 100석도 안 되는 작은 상영관에서 조용히 영화를 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제 예상과 달리 상영 시간이 가까워지자 옆자리, 앞자리, 뒷자리가 차기 시작하더니 영화 상영 후에도 들어온 관객까지 포함해서 대략 90%의 좌석이 꽉 찼습니다. 2018년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작품이지만 예술성 높은 영화는 돈이 안 된다는 자본 논리로 인해 상영관도 많지 않고 상영관도 100석 이하 상영관에서 많이 상영하고 개봉한 지 1주일도 되지 않아서 퐁당퐁당질을 당하는 악조건에서도 입소문을 타고 오거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관객들로 꽉 찼습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담고 있는 영화 <어느 가족>

어느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좋아합니다. 지금 현재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입니다. 그가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에 녹아든지 7년이 되어가네요. 배두나가 주연한 2009년 작 <공기인형>을 볼 때만 해도 독특한 소재를 영화로 만드는 감독으로만 인지했지만 2011년 개봉한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을 보고나서 팬이 되었습니다. 어린이의 시선으로 본 따뜻한 감성에 푹 녹아 들었습니다. 

이후 2004년 작 <아무도 모른다>를 보고 눈물을 연신 닦아 냈습니다. 그리고 2013년 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보고 감동의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낳은 정, 기른 정 중에 기른 정이 더 높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런 기른 정에 대한 시선은 2015년 작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2016년 작 <태풍이 지나가고>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기른 정에 대한 방점을 2018년 <어느 가족>으로 찍었습니다. 

영화 <어느 가족>은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후속 작품 같은 느낌입니다. 두 영화는 상당히 많이 닮았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좀 더 직설적이고 직접적이라면 <어느 가족>은 좀 더 은유적이고 관객을 가르치려고 하기 보다는 가족은 무엇일까요?라는 진중하고 깊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연금과 도둑질로 근근히 살아가는 이상하고 행복한 도둑가족

어느 가족

오사무(릴리 프랭키 분)는 마트에 들어서더니 쇼타(죠 카이리 분)에게 눈짓을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 같은 두 사람은 능수능란하게 눈빛을 교환하면서 마트의 물건을 훔칩니다. 훔친 물건을 들고 집으로 향하다가 집 근처에 사는 꼬마 아이가 집 밖에 나와 있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합니다. 먹던 고로케를 주면서 집에 데려온 5살 유리는 하룻밤만 재우고 다시 살던 집으로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사무의 아내 노부요는 집에서 들리는 가정 폭력과 낳고 싶지 않은 아이라고 소리 소리 지르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유리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옵니다. 오사무와 노부요가 사는 집에는 여러명의 사람들이 함께 삽니다. 다 혈연은 아니고 각자 다 사연이 있습니다.


어느 가족

학교에 다니지 않는 쇼타는 주차장에 버려진 아이를 오사무 부부가 데리고 왔습니다. 시바타 할머니(키키 키린 분)는 이 식구들이 사는 집의 집주인이고 매달 전 남편이 유산으로 물려준 연금을 받습니다. 시바타 할머니를 따르는 아키(마츠오카 마유 분)는 윤락가에서 일하면서 돈을 법니다. 여기에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유리까지 함께합니다.

할머니, 엄마, 아빠, 이모, 남매 완벽한 대가족 같이 느껴지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모두 남입니다. 그러나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모두 한 밥상에서 밥을 먹는 식구입니다. 유리를 데리고 있는 것이 걱정이긴 합니다. 분명 부모님들이 찾을테고 말도 없이 데리고 있는 것은 유괴입니다. 부모는 선택할 수 없지만 가족은 선택할 수 있기에 유리에게 선택권을 줬지만 유리는 친부모에게 갈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게 유리도 이 도둑 가족에 합류하게 됩니다. 이 도둑 가족은 도둑질로 연명하는 건 아닙니다. 아빠 같은 오사무와 엄마 같은 노부요 모두 일을 합니다만 비정규직 노동자라서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할머니 시바타의 연금이 있긴 하지만 그걸로도 부족합니다. 그 부족한 생활비를 도둑질로 매꿉니다. 


도둑질의 거북스러움과 가족의 따뜻함이 동시에 스며든 이상한 가족

어느 가족

불꽃 놀이도 눈이 아닌 귀로만 들어야 하는 가난한 도둑 가족은 도둑질로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모습 자체는 거북스럽습니다. 특히 새식구가 된 유리에게가지 도둑질을 시키는 모습에 눈쌀이 지푸려집니다. 하지만 도둑질을 빼면 이 식구는 완벽에 가까운 정이 넘칩니다. 특히 엄마 같은 노부요가 자신의 직장에서 짤릴 위기에서도 유리를 지키기 위해서 직장을 포기하는 모습은 마음이 너무 아프고 뭉클합니다. 

오빠 같은 쇼타는 자신을 따르는 유리가 좋기도 하지만 동시에 친동생도 아닌데 여동생이라고 부르라는 아빠 같은 오사무의 말에 뽀루퉁합니다. 쇼타는 오사무를 아빠라고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오사무는 그렇게 원하지만 여전히 아저씨, 아줌마라고 부릅니다. 관객들은 도둑질의 거북스러움과 이 유사 가족의 따스함이라는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서 이 가족을 서서히 이해를 합니다. 이해 못한 부분은 영화 후반에 인터뷰를 통해서 풀어냅니다. 


사랑해서 때린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다

어느 가족

사랑해서 때린다는 '사랑의 매'를 믿고 있고 경험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참 많습니다. 특히 나이드신 분들은 그때 절 때려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잘 하시죠. 하지만 사랑한다고 때리는 모든 행동은 다 거짓말입니다. 사랑하면 때리는 것이 아닌 이렇게 꼭 안아주는 것이라고 노부요는  눈물을 흘리면서 유리를 꼭 안아 줍니다. 전 이 장면이 영화 <어느 가족>의 하이라이트이자 명장면으로 꼽습니다. 

비록 유리에게 도둑질을 시키지만 폭력은 절대로 용납도 이해도 못합니다. 이는 두 부부가 폭력에 시달렸고 그 고통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유괴로 오해할 수 있는 행동이지만 폭력 가정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것이 더 무책임하다고 느껴서 유리를 데리고 있습니다.


어느 가족

하지만 이들도 잘 압니다. 이 유사 가족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요. 그걸 직감했던 시바타 할머니와 함께 도둑 가족은 기차를 타고 바닷가로 갑니다. 쇼타 같은 아들이 갖고 싶었던 오사무, 유리같은 딸을 갖고 싶었던 노부요, 할머니 같은 따뜻한 품이 그리운 아키, 이혼한 후 혼자 살아가던 시바타 할머니는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이 다섯 가족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말합니다. 

바닷가를 갖다 온 후 할머니가 돌아가고 쇼타에게 심경의 변화가 생깁니다. 사춘기에 접어드는 쇼타는 점점 도둑질이 옳은 일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여기에 동네 구멍가게 할아버지가 보여준 또 다른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에 유리를 찾는 방송이 나오고 도둑 가족은 세상에 노출되게 됩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은유버전 같은 영화 <어느 가족>

어느 가족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동일한 주제를 가진 영화입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낳은 정과 기른 정의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다면 이 영화 <어느 가족>은 피를 나눈 가족이지만 뿔뿔이 흩어져서 살거나 서로를 증오하는 가족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놀고 마시고 즐기는 시간을 공유하는 식구. 영화는 이 가족과 식구의 차이점을 잘 담고 있습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피가 섞이면 가족이라고 하죠. 그런데 그 가족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족 때문에 불행하기도 합니다. 가족이 다른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상처를 주면 그 어떤 폭력과 상처보다 아프고 잘 아물지 않습니다. 

유리를 바라보던 노부요와 할머니 시바타는 친부모 대신 자신들을 선택한 유리를 보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지만 식구는 선택할 수 있어"

시바타 할머니가 노부요를 그리고 유리를 서로 선택했기 때문에 한 가족이 될 수 있었습니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가족이라는 인류 보편적인 소재에서 과연 가족이란 무엇일까? 완벽한 가족이 있을 수 있을까? 도둑 가족처럼 유사 가족이자 같이 밥을 먹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진짜 가족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친 가족에게 상처 받은 사람끼리 모여서 정이 넘치는 식구가 되는 모습 속에서 새로운 가족관을 정립합니다. 하지만 이런 가족이 흔한 가족도 주변에 흔하게 있는 가족은 절대로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환상 가족이자 신기루 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가족을 아름답고 정이 넘치는 완벽한 가족으로 담기 보다는 도둑질을 하는 가족으로 배치한 듯 합니다. 

그래야 관객들이 이 유사 가족에 푹 빠지다가도 도둑질을 하는 가족이라는 경계심을 가지게 하려나 봅니다. 감독은 친가족은 틀렸고 이 도둑가족이 옳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두 가족을 배치하면서 어떤 가족이 진짜 가족일까요?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집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낳은 정, 기른 정을 가족은 피가 아닌 함께 나눈 시간이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직설적인 모습이 강했다면 이 <어느 가족>은 어떤 가족이 옳다 그르다 말하지도 대사로 따박따박 담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 보게 합니다.


어느 가족

가출한 20대 아키는 가족은 돈으로 엮인 관계라고 말하지만 오사무는 고개를 저으며 가슴을 가르치며 정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많은 가족들이 돈으로 엮이고 있고 실제로 아키처럼 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그러나 돈이라면 너무 허무하죠. 돈 떨어지면 가족이 아닌 게 되나요? 이 도둑 가족도 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또한 돈 때문에 서로를 힐난하기도 하죠. 그러나 오사무가 노부요가 직장을 잃어도 화를 내고 우울해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퇴직금으로 쇼핑을 한 아내 노부요에게 잘 샀다고 칭찬을 합니다. 

돈 없이 살 수 없는 우리지만 돈 때문에 화를 내지 않는 도둑가족. 이 가족을 보면서 가족의 진짜 의미를 많이 깨닫게 되네요. 


명 배우들의 향연 <어느 가족>

어느 가족

아버지 오사무를 연기한 릴리 프랭키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부터 봤던 배우입니다. 연기 참 잘하죠. 특히 이런 구수한 연기를 참 잘합니다. 여기에 일본 영화에서 할머니 연기하면 떠오르는 배우인 '키키 키린'의 능숙하고 능청스러운 연기도 여전합니다. 쇼타를 연기한 '죠 카이리'는 <아무도 모른다>의 아역 배우를 연상케 하는 똘똘한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귀여운 유리를 연기한 '사사키 미유도 꽤 눈에 많이 들어오네요.

하지만 노부요를 연기한 '안도 사쿠라'의 연기는 신들린 듯 합니다. 따뜻한 엄마의 품을 연상케 하는 부드러움과 유리를 위해서 직장을 포기할 때의 강렬함과 강직함 그리고 검찰 심문에서 유리 이야기를 하면서 연신 눈물을 닦아내는 연기는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친 딸이 아니지만 정이 많이 든 유리를 떠오르면 눈물이 나지만 그걸 드러내고 흘리지 못하는 모습 속에서 마음이 너무 아파오네요. 

특히 노부요의 마지막 선택은 엄마의 선택이었습니다. 친 엄마는 아니지만 두 아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택한 엄마. 엄마 같지 않은 엄마, 아빠 같지 않은 아빠들을 넘어서 지 새끼들을 버린 천륜을 이기는 못되고 못나고 저열하고 비열한 부모들이 넘치는 현 세태 속에서 빛나는 연꽃 같은 연기였습니다. 

이외에도 단역으로 나오는 배우들도 유명한 배우들이 많습니다. 도시 고독남으로 나오는 이케마츠 소스케도 나오고 가정 폭력을 다룬 영화 <너는 착한 아이>에 출연한 '코라 켄고'와 '이케와키 치즈루'가 검사로 나옵니다. 전 두 배우를 잘 알고 영화를 봐서 그런지 감독의 배우 선택에 탐복을 했습니다. 분명 <어느 가족>은 가정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장면들이 많은데 이걸 이렇게 또 연결해 놓네요. 


진짜 가족이란 무엇일까?

어느 가족

많은 부모님들이 자기 자식을 내가 낳은 아바타로 여깁니다. 자식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객체이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자식을 소유물로 아는 사람들이 자식에게 폭력을 가합니다. 유리가 그런 존재였고 책임지기 싫어하는 부모가 쇼타를 주차장에 버립니다. 

노부요는 검사에게 말합니다. 남이 버린 것을 주운 것이 죄인가요?

우리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 팔자 반 팔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함께 식사를 하고 웃고 떠드는 식구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가족과 식구는 동의어가 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같은 집에서 살고 있지만 함께 한 식사 시간도 함께하는 시간이 거의 없는 가족과 혈육은 아니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식구 같은 존재를 통해서 가족을 재조명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진짜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가족이 해체되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럼 그 해체된 가족을 대신할 또 다른 가족들은 누구이며 대체재는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요? 여러모로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히로카츠 영화 답게 영화는 무척 쉽습니다. 이게 다 현장에서 배우들과 함께 만들기 때문에 생동감 넘치는 활어 같은 장면들이 참 많네요.  추천하고 또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가족과 식구  둘 중에 어떤 가족이 진짜 가족일까?라고 질문하는 영화

썬도그
하단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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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eighty4.tistory.com BlogIcon 운동하는직장인 에이티포 2018.07.31 16: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소개글을 보니 저 영화 잼있어보이네요.. 저 영화배우의 신들린 연기력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