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언제일까요? 사람마다 그 시기가 다르겠지만 저와 많은 사람들은 사춘기라고 생각할 겁니다. 흔히 중2병이라고 우리가 무시하고 병으로 생각하는 그 시기는 한 아이가 어른이 되는 성장의 과정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시기를 겪었음에도 놀랍고 신기할 정도로 그 혼돈의 시기를 무시하고 사회와 세상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르면 회초리를 듭니다. 

 사춘기 열병을 앓고 있는 소년의 사랑과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을 잘 담은 영화 한 편이 있습니다. 그 영화의 이름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입니다. 


아름답다고 소문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1983년 이탈리아 북부의 여름 별장에서 여름을 보내는 17살 소년 엘리오(티모시 샬라메 분)은 아버지가 교수입니다. 금수저에 가까운 유복한 집안에 태어난 엘리오는 피아노 연주와 작곡을 하면서 낮에는 별장 근처 강가에서 수영을 하고 배가 고프면 농장에서 키운 과일을 따 먹는 등 풍요가 철철 넘치는 생활을 합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아름답다는 소문이 자자한 영화입니다. 이 아름다움은 여러 곳에서 발화가 됩니다. 먼저 영화가 담는 이탈리아 북부의 풍광입니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는 이탈리아 북부의 풍광은 따뜻함 그 자체입니다. 수 많은 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봤지만 이 영화는 유난히 아름답게 담깁니다. 촬영술이 좋은 것인지 원래 동네 자체가 아름다운 햇빛을 간직한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난히 빛나는 풍경들이 많습니다. 한 폭의 그림 엽서 같다고 할까요? 영화는 여름 풍광이 주로 나오지만 영화 후반 겨울 풍경에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이건 크리스마스 카드에서나 봄 직한 모습이 나옵니다. 풍경 자체가 예술입니다. 

또 하나는 음악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O.S.T를 듣고 있습니다. 음악이 아주 아주 뛰어나네요. 익숙한 팝송부터 클래식까지 음악들이 적재적소에 잘 녹여져 있습니다. 특히 애잔하고 슬픈 장면에서 엘리오를 위로해주는 듯한 선율을 가진 노래들은 이 영화를 좀 더 오래 기억하게 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 두 주인공이 상당한 미남입니다. 이탈리아 소년들이 미소년들이 많은데 주인공인 엘리오를 연기한 '티모시 샬라메'의 미모가 출중합니다. 그렇다고 이탈리아 배우는 아니고 미국 배우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고 '티모시 샬라메'를 한 번 이상 검색해 보실 겁니다. 여기에 미국 청년인 올리버를 연기한 '아미 해머'도 핸섬 가이입니다. 여기에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은 이야기가 주는 힘도 좋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동성애를 다룬 퀴어 영화입니다. 영화에서 과한 표현이 있어서 살짝 역한 면도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무난하고 잘 다루었습니다. 


사춘기의 열병을 담은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배경은 1983년 이탈리아 북부입니다. 여름 별장에서 여름 방학을 보내는 엘리오의 별장에 교수인 아버지의 보조 연구원인 24살의 미국 청년 올리버가 찾아옵니다. 올리버는 6주 동안 별장에 머무르면서 아버지의 연구를 돕습니다. 올리버는 뛰어난 학식으로 교수인 아버지와의 열딘 토론을 합니다. 

교수인 아버지는 상당히 개방적인 사람으로 올리버와의 논쟁에서 지자 깔끔하게 자신이 졌다고 인정을 하는 깨어 있는 아버지입니다. 집안 분위기가 상당히 개방적이라서 아들이 담배를 피고 술을 마셔도 크게 터치 하지 않습니다. 아들이 좋다면 어디를 가든 신경 쓰지 않습니다. 


미국인인 올리버는 미국인 답게 상당히 박력이 넘칩니다. 수줍은 이탈리아 소년 엘리오에게 올리버는 낯선 이방인이고 넘치는 박력 때문에 무례하다고 생각을 합니다만 자신과 다른 올리버에 서서히 끌립니다. 올리버의 박학다식함과 남자다운 모습에 서서히 물들어가는 엘리오는 올리버가 연주를 부탁하자 일부러 자신만의 연주를 해서 엘리오를 당혹케 합니다. 하지만 사춘기 소년의 앙탈이라고 할까요? 귀여운 행동에 올리버도 엘리오에 끌립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금기시되는 동성의 사랑을 합니다. 엘리오는 자신만의 비밀 공간으로 올리버를 초대하고 두 사람은 점점 서로에게 빠집니다. 영화는 동성애를 다루고 있어서 거북한 분들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이 사춘기 시절을 지내온 분들은 이 시기를 잘 알겁니다. 사랑과 좋아함의 경계가 느슨한 사춘기 시절에는 주변의 모든 것에 영향을 받고 쉽게 깊게 빠집니다. 그게 사람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고 어떤 취미일 수도 있습니다. 

사춘기는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 같습니다. 속도 조절을 하는 엑셀과 브레이크의 작동법을 모르다 보니 자신의 얼마나 빠른지 어디로 가야 할 지를 잘 롭니다. 하지만 부모님과 사회가 하지 말라는 행동은 잘 압니다. 


엘리오는 혼란스럽습니다. 동성을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이성과도 가깝게 보냅니다. 성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엘리오는 점점 혼란스러워합니다. 자신의 사랑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닐까? 고민도 합니다. 사춘기 시절에 동성을 좋아해 본 경험들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겁니다. 이 영화에서처럼 육체적 관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더라도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면 쉽게 빠지죠. 저도 그랬습니다. 어리숙하고 미숙한 것 투성이인 나와 내 주변의 친구들을 보다가 완벽에 가까운 사람을 보면 좋아하게 됩니다. 

좋아함과 사랑의 경계가 없던 시기라서 그게 사랑인지 좋아함인지도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저에게는 교회 선생님이 그랬고 외삼촌이 그런 존재였습니다. 돌이켜보면 하루에도 여러 번 좋아하는 대상에 순위를 메기고 지냈던 적도 생각나네요. 어떻게 보면 사춘기 시절의 진정한 롤모델은 연예인도 유명인도 아닌 우리 주변에서 나를 변하게 만들고 영향을 주는 사람들 아닐까요?


여기에 사춘기의 사랑은 다 유통 기간이 있습니다. 학생은 1년 단위로 친한 친구를 떠나 보내고 새로운 친구와 사람을 만납니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사람들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보니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좋아함과 사랑함에 대한 유통 기간이 있습니다. 특히 수줍은 사춘기 소년, 소녀들은 고백도 하지 못하고 고백을 했다고 해도 길게 이어지기 위해서는 부던히 노력해야 합니다. 

6주 후에 떠나야만 하는 미국 청년 올리버를 향한 엘리오의 사랑도 그랬습니다. 조각상 같이 수백 수천년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닌 봄에 피고 지는 봄꽃처럼 엘리오의 사랑은 열병으로 끝날 것을 엘리오도 올리버도 잘 압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더 서로를 원했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엘리오는 성 정체성이 확고해진 소년도 아닙니다.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 남자였을 뿐이죠. 

사춘기가 그렇습니다. 긴 인생으로 보면 짧은 시기이기에 더 강력하고 가혹합니다. 


엘리오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명대사가 참 많습니다. 엘리오가 자신의 사랑을 프랑스 로맨스 소설에 빚대어서 은근히 전하고 그걸 알아채는 올리브의 모습이 은은하게 잘 담겨 있습니다. 영화 후반에 엘리오 아버지가 아들 엘리오에게 하는 대사가 아름답습니다. 가르치려고 하는 느낌 보다는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종교와 같은 포용력이 담겨 있는 명대사가 나옵니다. 이는 영화로 직접 확인해 보세요. 

엘리오 아버지 같은 분은 세상에 거의 없습니다. 어떤 부모가 저런 말을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에게 할까? 할 정도로 따뜻한 말을 해줍니다. 순간 엘리오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미 뭔가 되어 있어야 할 나이이지만 30살되 되기 전에 삶과 사랑을 완성해 버린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대사로 인해 뭔가가 되기에 부족한 나이는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올리브는 엘리오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자고 합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이름 바꾸기. 친하고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하는 흔한 이름바꾸기 놀이입니다만 동시에 둘만의 언어 둘만의 사랑의 암호이기도 합니다. 영화 <콜리 바이 유어 네임>은 엔딩 장면도 아름답습니다. 비록 퀴어 영화라는 한계가 있어서 모든 분들에게 추천하기는 어렵지만 꼭 이 영화를 퀴어 영화라고 국한해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사춘기 엘리오에게 있어 올리브는 사춘기 시절 나를 흔들어 놓은 모든 존재라고 봐도 되니까요! 

이 영화는 2부를 만들 예정이라는 소리도 있습니다. 20년 후의 모습을 엘리오가 아닌 올리브의 시선으로 담을 것이라고 하는데 제발 후속작은 나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피천득의 인연처럼 끝이 있어야 아름다운 거지 계속이라는 단어의 질척거림은 보고 싶지 않네요.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고 영화도 죽입니다. 사춘기가 또 온다면 그건 지옥이죠. 1번 이기에 첫사랑이기에 아름다운 거지 첫사랑을 다시 만난다고 첫사랑이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첫사랑의 이미지만 깨집니다. 

사랑은 죄가 없습니다. 다만 그걸 죄라고 여기는 어른들과 세상이 있을 뿐이죠. 사랑하면 좋고 아프고 백날 말로 듣고 영화로 보고 책으로 읽어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해봐야 합니다. 경험해봐야 합니다. 이왕 경험할 거 일찍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죠. 그 사랑의 경험이 주는 떨림과 아픔을 잘담은 괜찮은 영화입니다. 감수성 풍부한 당신에게 권합니다.

별점 : ★★★☆

40자 평 : 짧고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사랑스러웠던 사춘기열병을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담다.

썬도그
하단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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