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벚꽃이 피는 화창한 계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잔인한 계절입니다. 저에게 4월은 잔인한 계절이네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인 <이주연의 영화음악>이 4월 9일 마지막 방송을 하고 사라집니다. MBC 라디오는 봄 개편을 통해서 많은 프로그램을 폐지하거나 시간을 이동합니다.
정말 목소리 좋고 진행 잘하던 오후 8시에서 9시까지하는 <정유미의 FM 데이트> 자리에 <FM 영화음악>을 배치합니다. MBC FM 영화음악 라디오 프로그램 자체는 새벽 3시에서 오후 8시라는 프라임 타임으로 이동이라서 아주 좋은 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주연의 영화음악>의 이주연 아나운서와 PD, 소녀 세윤이라는 김세윤 작가와 써니 작가 김혜선 작가는 <FM 영화음악>에 함께하지 못합니다.
뉴스를 보니 영화배우 정은채가 2개월간 임시 진행을 한다고합니다. 하지만 이주연 아나운서는 함께하지 못합니다. MBC FM 라디오 봄개편 뉴스 기사를 읽어보니 MBC가 보다 음악에 집중하기 위해서 많은 프로그램의 시간대 조정과 폐지 및 신설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저녁 시간대에 절대 강자인 CBS 라디오를 잡기 위한 포석 같습니다. 사실 MBC FM은 작년 긴 파업기간에 음악만 내보냈습니다. 흥미롭게도 많은 청취자들이 음악만 나와서 좋았다는 쓴웃음 같은 소리를 했고 이에 놀란 MBC FM은 큰 반성을 했나 봅니다.
게스트랑 농담 따먹기나 하는 방송을 지양하고 좀 더 음악에 집중하려는 움직임 같네요. MBC는 FM 영화음악이라는 장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영화음악을 소개하는 이 라디오 프로그램은 2000년대 중반에 잠시 방송을 중단한 적이 있지만 1977년부터 올해까지 이어지는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입니다.
90년대 정은임 아나운서가 있을 때는 정말 많은 팬들이 생겼고 지금도 정은임 아나운서의 방송을 팟캐스트로 듣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서인지 2004년 폐지가 되었다가 다시 2006년 부활을 했고 이때부터 이주연 아나운서가 진행을 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프라임 시간대가 아닌 새벽에 진행하기 시작하고 오히려 차분하고 맑은 음성을 가진 이주연 아나운서와 잘 어울렸습니다. 이후 새벽 2시에 꾸준하게 방송을 하나 싶었는데 새벽 3시라는 라디오를 듣기 가장 어려운 시간대로 이동을 시킵니다. 이 시간대는 아침도 아니고 새벽도 아닌 정말 최악의 시간입니다. 하지만 한직으로 물러난 <이주연의 영화음악>은 꾸준히 매일 코너를 진행하면서 잘 이끌어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팟캐스트로 들으면서 응원을 했고 저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나의 최애 라디오 프로그램 <이주연의 영화음악>
글을 많이 쓰는 저에게 라디오는 친구같은 존재입니다. 2011년 경부터 매일 라디오를 듣고 있습니다. 라디오는 세상을 보는 창이자 글 쓰는데 도움을 주는 매체입니다. 그렇게 라디오르를 듣다가 영화를 좋아하는 제가 즐겨 듣게된 라디오가 영화음악 프로그램입니다. SBS와 CBS가 오전 11시에 영화음악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지만 SBS는 DJ의 영화 소양이 부족해 보여서 즐겨듣지는 못했고 CBS는 영화음악만 나와서 별로였습니다. 마치 재방송을 듣는 느낌일 정도로 오래되고 유명한 영화음악만 매일 틀어줍니다.
반면 새벽 3시에 하는 <이주연의 영화음악>은 매일 다른 코너를 진행하면서 평소에 듣기 어려운 영화음악과 영화 신작 또는 오래된 명화를 소개하는 코너를 진행했습니다. 영화에 대한 정보와 감성 모두 잡은 아주 질 좋은 라디오 프로그램입니다. 이주연 아나운서가 말했 듯 고퀄리티 라디오였죠. 비록 새벽 3시에 진행하지만 열정은 대단했습니다.
이주연의 영화음악을 통해서 정말 많은 작고 예쁜 영화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매주 1편 이상의 영화를 볼 정도로 저의 영화 선택 파트너였고 영화의 감흥을 함께 나누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특히 이주연 아나운서의 맑고 고운 목소리와 억만불짜리 웃음소리는 새벽을 밝히는 등대 같은 존재였습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즐겨듣는 이영음(이주연의 영화음악)이 4월 9일을 끝으로 사라집니다.
이 소식을 2주 전에 들었을 때 충격을 먹었습니다. 하루 종일 페이스북에 내 분노를 쏟아냈습니다. 우울해졌고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매일 같이 이영음 게시판을 들락거리면서 내 슬픔을 달래고 있습니다. 이주연 아나운서만 떠나는 것이 아닌 소녀 세윤, 써니 작가님까지 떠나는 모습은 더 충격이었습니다. MBC가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도 사회적 이슈를 거론하면서 세상을 응원했습니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정은임 아나운서가 생각났습니다. 정은임 아나운서는 오프닝 멘트에 사회 문제를 거론하는 등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인상깊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라디오 프로가 사라집니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긴 합니다. <FM 영화음악>은 이어지고 오히려 프라임 타임 시간으로 이동을 하니까요. 오후 8시는 청소년들이 집이나 학원으로 이동하는 시간이고 직장인들이 집으로 향하는 황금 시간대입니다. 주 청취자는 10대에서 30대 사이죠. 이 주시청층과 이영음이 어울리지 않다고 판단한 것일까요? 새로운 포멧을 도입하기 위해서 이주연 아나운서 대신 다른 DJ를 배치하네요. 이해는 하지만 영화음악에 이주연 아나운서를 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주연 아나운서는 반 영화인이라고 할 정도로 영화도 많이 보고 영화에 대한 소양도 뛰어납니다. 진행도 얼마나 잘하는데요. 아나운서라도 목소리도 발음도 좋습니다. 여기에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영화 소개 코너를 진행하는 소녀 세윤과 매주 3편 이상의 신작을 맛깔스럽게 소개하는 써니 작가까지 떠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네요. 그럼에도 이런 결정을 되돌이킬 수는 없을 듯 하네요
잘가요 이영음 그리고 다시 만나요
이영음 폐지에 분노는 우울이 되고 다시 분노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별을 준비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이영음 게시판에 감사의 글을 남겼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이주연 아나운서, 김세윤 작가, 김혜선 작가님 수고했습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저에게 영화의 감성과 지식을 많이 제공해 주었습니다.
특히 새벽 시간대에 근무하는 분들이나 새벽에만 풀어 놓는 많은 사람들의 고민을 따뜻한 언어로 감싸주었습니다. 이 따뜻한 온기가 제가 이 이영음에 푹 빠지게 한 요인이기도 합니다. 가장 아프고 슬퍼하는 사람은 이주연 아나운서겠죠. 이주연 아나운서는 매일 이별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영음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습니다.
슬픕니다. 4월 9일이 느리게 왔으면 합니다. 어떤 방송이 끝나면서 이렇게 슬픈 적은 처음이네요. 그만큼 제가 이 이영음에 푹 빠졌고 정이 많이 들었나 봅니다. 시간이 치유해 줄 것을 잘 압니다. 동시에 다시 돌아올 것을 믿습니다. 사실 이 이영음은 시즌 1, 시즌 2, 시즌 3라고 할 정도로 부침이 심했습니다.
지난 몇 년 간 MBC 라디오가 이영음을 냉대하는 모습이 아주 심했습니다. 그래서 개편 때마다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저 같은 열혈 청취자들이 많은 프로그램입니다. 어떻게 보면 MBC FM 라디오가 인기가 없는 이유는 들락거리는 라디오 DJ 때문이기도 합니다. 라디오는 정이 중요합니다. 한 번 정을 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한 번 정을 주면 쉽게 끊지 못합니다. 그래서 장수하는 DJ가 많아야 합니다. 그러나 MBC FM에는 장수 DJ가 배철수와 이주연 아나운서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주연 아나운서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네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떠난다면 이렇게 슬프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내린 결정으로 떠나는 모습은 잔혹하기만 합니다. MBC 라디오의 결정이 그래서 밉습니다.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겠습니다. 정말 소중한 프로그램이 사라진다는 것이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제 마음 한쪽이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낮에 이영음의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거리를 걸었던 그 수 많은 시간들이 떠오르네요. 잘가요 이영음 그리고 또 만나요 이영음. 내 인생 최고의 라디오 프로그램이자 반려 라디오였습니다. 수고 많았고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