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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그리스 경제위기와 로맨스을 엮은 놀라운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

by 썬도그 2018.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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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영화 수입업자가 이상한 제목을 지어서 영화를 오해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영화가 그렇습니다. <나의 사랑, 그리스>라는 제목만 보면 로맨스 영화처럼 보입니다. 2015년 개봉해서 누적관객 3만 명이 든 이 영화는 꽤 좋은 영화입니다. 연출과 스토리텔링이 아주 유려한 작품입니다. 뒤늦게나마 알게 되었네요


그리스 경제위기와 로맨스를 섞은 독특한 시선의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

그리스 영화하면 어떤 이미지가 거의 없습니다. '테오 앙겔로플로스'의 <안개 속의 풍경> 정도가 우리에게 익숙할 뿐 대부분의 그리스 영화가 국내에 소개되지 않거나 이 영화처럼 조용히 소개되었다고 조용히 사라집니다.

그런데 이 <나의 사랑, 그리스>는 꽤 흥미롭고 재미있는 괜찮은 영화입니다. 그리스어와 영어를 섞어서 말하고 있고 <위플래쉬>의 J.K 시몬스가 출연하는 등 익숙한 이미지가 많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사회문제와 로맨스를 섞은 독특한 시선을 가진 영화입니다. 영화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로스와 푸쉬케의 이야기 시작합니다. 사랑에 관한 영화라는 것을 암시하죠. 


영화는 부메랑, 로세프트 50mg, 두 번째 찬스라는 부제의 3가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옴니버스 영화이지만 영화 후반에는 놀랍게도 세 이야기가 하나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다프네와 파리스의 20대 커플 이야기입니다. 다프네는 집으로 향하다가 폭력배에 의해 큰 사고를 당할 뻔 합니다. 이때 시리나 난민인 파리스가 다프네를 구해줍니다. 파리스는 시리아 내전을 피해서 그리스에서 부메랑 등을 길거리에서 팔면서 생활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파리스는 다음 날 길거리에서 물건을 팔다가 버스에 탄 다프네를 봅니다. 반가움에 버스에 다가가지만 다프네는 애써 외면합니다. 아마도 이민자라는 신분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 듯 하지만 파리스가 전해준 사고 당시 떨어진 아이폰을 건네 받으면서 마음을 엽니다.

파리스는 미술학도였지만 내전으로 인해 미래가 불투명해졌습니다. 그리스로 도망쳤지만 가족도 없습니다. 그리스에서 살아보고 싶지만 그리스에 불어닥친 경제위기로 자경단에게 수 없이 위험을 당합니다. 캐나다 망명의 꿈을 끼우던 중 파리스는 다프네와 가까워지도 둘은 연인이 됩니다. 

그렇게 파리스가 캐나다로 떠나려고 하다가 다프네를 생각하면서 그리스에 남기로 결정합니다. 폐공항에서 기거하던 시리아 이민자와 파리스는 그리스 자경단의 습격으로 도망치게 됩니다. 파리스는 다프네 손을 잡고 도망치다가 다프네 아버지를 만납니다. 


화면은 바뀌고 로세프트 50mg이라는 제목으로 또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40대 가장인 지오르고는 바에서 스웨덴에서 그리스로 출장 온 엘리제를 만납니다. 두 사람은 원나잇을 즐기고 헤어지지만 지오르고가 자꾸 추근덕 거립니다. 그런 지오르고가 나쁘지 않은 엘리제는 지으로고와 불륜 관계를 지속합니다.

엘리제는 철의 여인입니다. 우울증 약인 로세프트 50mg을 먹는 지오르고가 나약해서 우울증에 걸린 것이라고 채근하죠. 엘리제가 그리스에 온 이유는 그리스 회사의 경영 악화로 무려 35%나 되는 직원을 감축하라는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그렇게 엘리제는 회계사 사무소에 입성한 후 무차별 적으로 직원들을 해고합니다. 놀랍게도 이 회사에는 지오르고가 있습니다. 서로를 모르고 만났던 지오르고와 엘리제. 엘리제는 자신이 아는 사람을 해고하려다가 주저합니다. 

그렇게 지오르고의 회사에서 매일 같이 해고 명령을 내리던 중 지오로고와 친한 회사 동료가 이번에 아내가 임신했다가 중절을 했다면서 자신을 지오르고 부서로 이동시켜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하지만 지오로고는 난감해 합니다. 그렇게 회사 동료는 회사를 떠납니다. 지오르고는 아내와 같이 살긴 하지만 6개월 째 별거 상태에 가깝게 지냅니다. 


그렇게 불륜 관계를 계속 하던 두 사람은 해고 당한 동료가 자살을 하자 큰 충격을 받습니다. 철의 여인 엘리제도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철저히 이윤만 생각하던 엘리제는 자신의 밑줄 하나로 한 사람이 죽자 충격을 받고 우울증 치료제인 로세프트 50mg을 찾습니다. 


마지막 이야기의 제목은 '두 번째 기회'입니다. 60대 독일 학자인 세바스찬(J.K 시몬스)은 마트에서 마리아를 만납니다. 같은 60대인 마리아의 도움을 받은 세바스찬은 매주 같은 시간에 만나자는 제안을 하고 두 사람은 로맨스를 즐깁니다. 


한 번도 여유롭게 살지 못하던 마리아에게 세바스찬은 '에로스와 푸쉬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에로스와 푸쉬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중에 두 번째 기회를 소개합니다. 에로스와 푸쉬케는 서로 사랑하다가 헤어졌지만 푸쉬케의 간절한 사랑이 하늘에 닿아서 두 번째 기회를 얻고 영생을 얻어서 사랑을 이룹니다. 

이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는 2가지 주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 경제위기로 그리스 가정의 퍽퍽한 삶과 사랑이 사라지고 증오가 넘치는 파시스트의 세상을 경계하는 목소리와 함께 불륜이라고 해도 자신의 원하는 사랑, 또는 새로운 사랑 또는 진정한 사랑을 찾으라는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 두 번째 시선은 공감은 가지만 동시에 가정을 파괴할 수 있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미워하고 사랑이 없는 관계로 살아가는 다프네의 아버지의 모습보다는 차라리 이혼을 하고 새로운 삶을 각자 살아가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을 합니다.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는 우리 주변의 사랑 방정식을 투영했습니다. 우리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 세대들은 아버지가 바람을 펴도 아내들은 참고 지냈습니다. 그게 가정을 지키는 방법이니까요. 그러나 그런 삶은 서로에게 지옥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소 민감한 목소리이지만 영화를 보면 차라리 이혼하고 새 삶을 사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잘 묘사를 합니다. 


또 하나의 시선은 그리스 경제위기입니다. 보통 로맨스를 주제로 한 영화에서는 사회문제를 금기시합니다. 그래야 로맨스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 영화는 독특하게도 그리스 경제위기를 적극적으로 다룹니다. 영화 초반 다프네의 아버지는 가게 3개를 운영하는 잘나가는 자영업자였지만 EU 통합 이후 그리스가 경제위기가 터집니다. 

2009년 그리스가 국가 부도 위기에 놓이자 EU는 긴급 자금을 수혈하면서 그리스를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지금까지 그리스 경제는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경제위기에 다프네의 아버지는 사업이 쫄딱 망하고 타고 있던 차까지 팔 정도로 경제가 궁핍해집니다. 아버지는 이 모든 경제위기가 시리아 난민 때문이라는 이상한 방향으로 화살을 돌립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도 경제가 좋아지지 않자 애먼 조선족에게 화살을 돌립니다. 물론 조선족의 싼 임금과 그들 때문에 일자리를 뺏긴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그들이 있었기에 한국 경제가 무너지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어떤 결과를 놓고 100% 이건 너 때문은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궁지에 몰리고 벼랑 끝에 서게 되면 이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하게 됩니다.

히틀러가 그랬고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들이 그랬습니다. 지금 한국은 조선족과 외국인 노동자에게 경제위기의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전형적인 파시즘입니다. 파시즘에 물든 아버지는 모든 것이 시리아 이민자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영화 후반에 이런 아버지의 못난 모습에 아내가 얼굴에 침을 뱉으면서 비난을 합니다.

"당신이 손가락질 하는 정치인이나 당신이나 똑같아"

40대 커플인 엘리제와 지오르고는 좀 더 적극적으로 다룹니다. 자유경쟁을 모토로한 자유경제 시스템이 전 세계에 보편화 되면서 부익부 빈익빈은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사회복지가 느슨한 나라들은 이 자유경쟁 시스템에서 무너지는 가정을 지키지 못합니다. 엘리제가 긋는 밑줄 하나가 한 사람의 생명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되자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안던 엘리제가 무너집니다. 돈만 보이던 엘리제에게 사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세바스찬(J.K 시몬스 분)은 마트에서 구매한 물건을 풍성하게 들고 나오는데 마리아는 맘 편하게 마트에서 물건을 사본 적이 없다면서 하소연을 합니다.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의 원제는 Worlds Apart입니다. 자본의 통합이 세상을 분열시키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분열되어가는 세상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그런 세상을 묶을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자본주의의 병폐를 강렬하게 지적했는데 이걸 로맨스 제목인 <나의 사랑, 그리스>로 이상하게 포장을 했네요. 
3개의 에피소드는 분열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외따로 떨어진 에피소드는 영화 후반에 하나로 묶입니다. 이런 옴니버스 형태의 영화는 이야기가 묶이더라도 잠시 한 공간을 공유하는 등으로 묶이는데 반해 이 영화는 아주 강력하게 묶입니다. 이 묶는 솜씨가 예사롭지 못합니다. 파편화된 세상이지만 멀리서 보면 하나로 묶여 있는 지구촌의 느낌을 줍니다. 그렇다고 묶여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담지는 않습니다. 

경제로 묶여진 지구는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사랑의 언어가 아닌 경제라는 언어로 묶여질수록 가정은 파괴되고 있고 파편화 되고 있습니다.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는 경제 문제로 가정이 파편화 되어가고 있는 모습을 잘 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억지 사랑을 꾸역꾸역 이어가기 보다는 마음이 원하는 또는 편하고 행복한 사랑을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좀 놀랐습니다. 이렇게 쉽게 세상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사랑의 의미를 찾는 미끈하고 매끈하게 연출을 한 감독이 누굴까 궁금했습니다.
감독은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로 이 영화가 처음 연출작이네요. 또한 에피소드2에서 40대 가장으로 나오는 배우이기도 합니다. 배우 겸 감독이네요. 아주 잘생긴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감독까지 하네요. 첫 연출작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연출력도 좋습니다. 영화 후반에 세 이야기가 하나로 묶이는 모습에서 적잖이 놀랐습니다. 

이 뛰어난 연출력 때문에 사회문제와 로맨스가 적절하게 잘 섞인 영화를 만들었네요.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경제위기로 붕괴되는 가정이 많아지고 점점 파시스트들이 늘어가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합니다. 


별점 : ★★★★

40자평 : 보는 사람에 따라서 사회 문제를 다룬 영화로 로맨스를 다룬 영화로도 보여지는 독특한 경제 로맨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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