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참 오묘한 매체입니다. 세상 거의 유일한 평등 잣대인 시간을 다루는 매체인 사진. 빈자도 부자도 시간의 잣대는 동일한 것에 큰 매력을 느낍니다. 동시에 빈자도 부자도 같은 사진을 보고 동일한 감정을 가지게 합니다. 현재를 담은 보도 사진은 자신이 서 있는 언덕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되지만 10년 이상 과거를 담은 사진은 빈자도 부자도 기억이라는 달콤한 소스가 뿌려지면 희미한 미소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30년 이상 오래된 흑백 사진을 보면서 감동을 합니다. 특히 정치적인 색채가 탈색된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담은 사진을 좋아합니다. 세상은 초 단위로 변하는 요즘이지만 인간의 살아가는 모습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100년 전 또는 50년 전 삶을 담은 흑백 사진에도 감동합니다.


사진의 매력을 처음 알게 한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

91년으로 기억됩니다. 당시는 지금 같이 건물 1층에 커피숍이 1개 이상 있던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다방 문화에서 커피숍 문화로 전환되던 시절 지금은 사라진 커피숍 체인점인 '오두막'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습니다. 오전부터 시작된 수다는 오후 늦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수다가 계속되다 보니 지루함이 밀려왔고 커피숍에 걸린 액자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중에서 제 눈을 사로잡은 사진이 있었습니다. 한 커플이 멋진 키스를 하고 있었습니다. 뒤 건물을 보니 유럽의 한 도시 같더군요. 마치 우연히 촬영한 듯한 이 사진은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이 사진의 영향으로 다음 해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 사진 동아리에 가입했습니다. 

사진 동아리는 제 사진 열정을 100% 충족해주지는 못했습니다. 취미는 취미니까요. 전역 후 혼자 사진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고 사진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사진에 대한 열정은 더 커졌습니다. 사진 열정이 커지면서 많은 사진 작가를 텍스트와 사진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로버트 카파'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91년 커피숍에서 본 사진을 촬영한 사진작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진작가의 이름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4명의 사진작가 중 한 명인 '로베르 두아노'였습니다






휴머니스트 사진작가 '로베르 두아노'

'로베르 두아노'의 사진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휴머니스트 사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촬영한 사진들은 일상의 아름다운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최민식' 사진작가와 비슷하지만 최민식 사진작가와 다르게 유머가 있습니다.

그의 사진을 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됩니다.


특히 바로 이 사진은 아주 유명하죠. 쇼 윈도우 안에 걸린 누드 그림을 본 여성이 놀라는 표정이 그대로 담겼습니다. 로베르 두아노는 이 사진을 우연히 촬영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두아노는 한 곳에서 진득하게 기다리고 있다가 촬영을 합니다. 


파리와 파리 교외에서 촬영한 '로베르 두아노'의 사진은 유머가 있습니다. 이 일상의 유머를 담은 사진은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아는 유명한 사진작가가 됐습니다.

이 로베르 두아노의 사진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 : 로베르 두아노>입니다. 2016년 제작되었고 2017년 8월 한국에서 개봉했습니다.


다큐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 : 로베르 두아노>를 제작한 사람은 두아노의 손녀입니다. 두아노의 부인과 가족 모두 두아노의 사진 유산을 관리하는데 할아버지가 남긴 사진과 영상물을 이용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합니다.

다큐는 두아노의 아버지인 증조부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어린 두아노는 파리 교외에 살면서 13살에 예술직업학교에 입학을 합니다. 거기서 사라져가는 석판인쇄술을 배웁니다. 판화와 사진은 많은 부분이 닮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무한 복제 기술의 총아를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된 것 같네요. 여기에 학교 주변을 수km 걷는 것도 좋아해서 거리 사진가가 됩니다.

다큐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 : 로베르 두아노>는 챕터를 나눠서 두아노의 삶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진과 인연을 맺은 후에 르노 자동차의 사진기사가 됩니다. 그러나 사측에 고용된 사진기사라는 시선과 자유롭지 못한 삶과 대기업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차에 르노 자동차의 해고 통지서가 날아오고 그렇게 자의반, 타의반 프리랜서 사진가가 됩니다. 

파리 교외에 집을 얻고 본격적인 사진작가로의 길을 걷습니다. 


다큐 전반부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두아노가 촬영한 사진 속 인물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고 깔깔대고 웃는 장면입니다. 두아노는 가족과 마을 사람들을 모델로 삼아서 사진 촬영을 하고 그 촬영한 사진을 잡지사에 보냈습니다. 

그렇게 촬영한 사진은 기록 사진이 되어서 동네 사람들을 웃게 합니다. 정작 사진을 촬영한 두아노는 이 세상에 없지만 그가 촬영한 아이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되어서 웃고 있네요. 이게 바로 사진의 힘이죠


'로베르 두아노'는 전쟁 사진가는 아닙니다. 2차세계대전 당시 파리의 레지스탕스를 촬영한 사진이 있지만 일부러 촬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평생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일상의 유머스러운 장면을 촬영했습니다. 또한, 패션 잡지사의 의뢰로 패션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좀 소프트한 사진들을 좋아했습니다. 두아노는 군대 자체를 혐오했습니다. 그래서 레지스탕스 사진을 촬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진이 기록이 되니 군대에 대한 시선도 너그러워집니다. 

 





사진 에이전시에 소속되어서 좀 더 안정적으로 사진을 찍던 두아노는 밤에는 여러 술집과 카페를 돌아 다니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드아노는 작가들과도 친했고 그들을 통해서 사진을 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같은 소재라도 색다르게 보면 달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친구 작가를 통해서 깨닫고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두아노만의 따뜻하고 온정 넘치고 유머가 있는 일상입니다. 


로베르 두아노의 친구 중에는 배우도 있습니다. 80년대 인기 배우였던 '사빈 아제마'와 영화 촬영장에서 만난 둘은 보자마자 스파크가 튑니다. 그렇다고 남녀 관계는 아닌 성과 나이를 뛰어넘은 우정이었습니다. 두아노가 처음부터 명성이 높았던 것은 아닙니다. 80년대 들어서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라는 사진이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프랑스 안에서도 명성이 서서히 오르고 있었습니다. 

로베르 두아노와 배우 사빈 아제마의 우정을 아제마의 인터뷰로 담았는데 이 부분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얼마나 친했는지 아제마에게 두아노는 뮤즈였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을 깨달은 노인의 혜안에 반했나 보네요. 


두아노는 흑백 사진만 찍은 것은 아닙니다. 흑백만이 사진이다고 생각하는 사진작가도 아닙니다. 인물 사진을 흑백으로 담던 두아노는 80년대 들어서 서서히 컬러 사진을 촬영합니다. 그러나 워낙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가 강렬해서 흑백 사진가로 알려졌을 뿐이죠. 


두아노의 지인들이 나와서 두아노와의 우정을 소개합니다. 그중 인상 깊었던 말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젊었을 때는 작은 것만 보인다네", "시선이 인상적인 부분에 끌리고 그걸 기록하고 간직하려고 하지 그리고 성장을 할수록 이 부분을 전체 속에 두어야 한다는 걸 깨닫지" 

두아노가 친구에게 한 말입니다. 이 말은 놀랍게도 영화 '유스'에서도 나옵니다. 영화 '유스'에서 늙은 감독은 제자들에게 망원경을 보면서 젊었을 때는 망원경처럼 가까이 보려고 하지만 늙으면 광각렌즈처럼 넓게 보려고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부분에 끌리는 젊음, 전체에 끌리는 늙음. 아마도 그 부분들을 다 경험했기 때문에 안 봐도 뻔하기 때문에 크게 보고 대충 짐작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면서 동시에 경험이라는 눈은 광각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명성이 높아진 80년대에 로베르 두아노는 많은 프랑스 배우들을 촬영했습니다. 이런 명성을 가져다준 건 놀랍게도 30년 전에 촬영한 사진 한 장 덕분이죠


바로 이 사진입니다. 1950년 라이프지는 '로베르 두아노'에게 '파리의 사랑'이라는 주제로 사진 촬영을 요청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진을 몰래 촬영한 캔디드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어떻게 우연히 저걸 다 찍었나? 할 정도로 다큐 사진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은 연극배우 지망생 배우를 섭외해서 촬영한 연출 사진입니다. 두 사람은 연인 관계여서 더 자연스럽게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파리 곳곳을 다니면서 사진 촬영을 했고 그렇게 촬영된 연출 사진을 라이프지에 제공합니다. 라이프지는 보도 및 다큐 사진 잡지여서 더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 사진이 다큐 사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은 명백히 연출 사진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 사진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저도 이게 연출 사진이라는 소리에 인상이 써지더군요. 다큐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는 이 논란을 다루지 않습니다. 그냥 연출 사진이다라고 소개하고 넘어가네요. 논란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네요. 변명이라면 아무리 프랑스 파리라고 해도 1950년대에 파리 길거리에서 키스를 하는 연인은 찾기 어려웠다는 설명이 붙습니다. 

물론 연출 사진이라고 봐도 이 사진은 참 좋은 사진입니다. 1950년에 촬영된 이 사진을 80년대에 포스터로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왔고 그렇게 포스터로 만들어진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는 전 세계에 불티나게 팔려 나갑니다. 한국도 이 열풍이 도착해서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의 많은 커피숍이나 팬시점에서 이 사진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진으로 인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전시되는 인기 사진작가의 반열에 오릅니다. 특히 일본은 광적으로 좋아할 정도로 그 인기가 높습니다. 

전체적으로 볼만한 다큐입니다. 밝고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사진 구경도 하고 로베르 두아노의 사진 세계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음악도 밝아서 경쾌하게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했던 만큼 두아노의 사진 세계가 깊고 넓어 보이지 않는 다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우리가 다큐 사진이라고 생각한 두아노 사진 중에 몇몇 사진은 연출 사진이라는 것은 큰 아쉬움이죠. 

그건 아마도 사진의 주제도 수시로 변하고 상업 사진가와 자신만의 사진을 담는 사진작가의 혼재된 생활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그냥 가볍게 볼만한 다큐입니다. 

썬도그
하단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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