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은 큰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작품상을 <라라랜드>라고 했다가 잠시 후에 <문 라이트>로 정정했습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라라랜드>가 받아도 좋고 <문 라이트>가 받아도 좋다고 할 정도로 두 영화를 모두 좋아하는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전 작년에 <라라랜드>와 비슷하거나 뛰어 넘을 영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문라이트>라는 영화가 있었네요.  

궁금했습니다. 얼마나 좋기에 많은 영화상을 휩쓸고 평들이 한결 같이 좋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 영화를 봤습니다.
줄거리를 끝까지 적기 때문에 스포일러가 있다는 점 미리 밝힙니다. 그런데 이런 영화는 줄거리를 알아도 느끼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내용을 알고 봐도 좋은 영화입니다. 


수평선처럼 자욱한 외로움을 가진 소년의 성장기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던 샤이론은 친구들의 폭력을 피해서 아무 집에나 들어갑니다. 그 아무 집은 후안(마하샬라 알리 분)의 마약 창고였습니다. 자신의 마약 창고에 있는 리틀이라는 별명을 가진 샤이론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런데 이 샤이론은 말을 한 마디도 안 합니다. 아무리 말을 붙여봐도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겨우 자신의 별명과 이름을 말합니다. 그렇게 후안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후안은 샤이론의 후견인이 됩니다. 

샤이론은 아주 연약하고 순수한 소년입니다. 내성적인 성격에 성 정체성의 혼란도 겪고 있습니다. 여런 여린 소년을 주변 사람들이 잡아줘야 하는데 엄마는 마약 중독에 걸려서 어린 샤이론을 말로 학대합니다. 정말 눈물없이 볼 수 없는 환경에서 하루 하루를 겨우 버티면서 살아갑니다. 이런 샤이론을 돕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명은 후견인이자 아버지이자 유일한 어른인 후안입니다. 

후안 아저씨는 마약 중개라는 나쁜 일을 하지만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인지 샤이론을 아들처럼 대합니다. 또 한 명은 친구인 케빈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샤이론을 괴롭혀도 케빈만은 샤이론과 스스럼없이 지냅니다. 


영화를 보면서 긴 한숨이 자주 나왔습니다. 어떻게 저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아니 어떻게 저런 삶을 견딜 수 있을까? 마약에 쩌들어서 사는 홀어머니 밑에서 사는 것도 쉽지 않은데 동성애라는 성정체성으로 인해 세상과 큰 벽을 쌓고 삽니다. 그렇다고 이 샤이론이 못된 아이도 아닙니다. 한 없이 순진하고 순수하고 수줍음이 많은 아이입니다. 

그나마 후안 아저씨가 이 샤이론을 품어줍니다. 영화 <문라이트>는 샤이론의 성장기를 담은 성장 영화입니다. 10대 초반 꼬마 아이 리틀과 고등학생인 샤이론 그리고 20대 청년이 된 블랙을 통해서 샤이론의 서글프고 서늘한 성장기를 담고 있습니다. 

"난 너무 눈물을 흘려서 눈물이 되어 버릴 것 같아" 

바닷가에서 유일한 친구인 케빈에게 하는 이 대사는 <문라이트>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사이자 마음을 흔들어 놓는 대사가 샤이론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눈물 그 자체가 되어버린 샤이론. 이런 샤이론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힘이 들 정도로 이 영화는 샤이론이 만든 외로움의 바다에서 둥둥떠서 달빛을 보는 느낌입니다. 


3명의 배우가 연기한 샤이론을 통해서 본 샤이론의 외로움

3편의 단편 영화를 이어 붙인 듯한 영화입니다. 연기하는 배우도 다 다른데 흥미롭게도 3명의 배우가 어린 샤이론 고등학생 샤이론 그리고 청년 샤이론을 연기합니다. 3명의 배우지만 느낌은 정말 비슷합니다. 특히, 이 영화는 서글픔을 잔뜩 머금은 눈빛 연기가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놀랍게도 
알렉스 R 히버트, 애쉬튼 샌더스라는 3명의 배우 눈빛이 너무 닮았습니다. 그 분위기, 그 처연한 눈빛으로 인해 3명의 배우지만 같은 샤이론이라고 느껴집니다.

이렇게 3명의 배우를 배치한 이유는 아마도 이 영화가 성장기를 다루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는 리틀, 샤이론, 블랙이라는 3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각의 챕터의 제목은 샤이론의 이름과 별명입니다. 리틀은 샤이론의 어린 시절로 성정체성과 학원 폭력과 어머니의 방황 속에서 부초처럼 외로움의 강에 흐르는 리틀을 담고 있습니다. 이 부초를 잡아준 것이 후안 아저씨입니다. 후안 아저씨는 어린 리틀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봅니다.

바닷가에서 한 할머니 이야기를 합니다. 흑인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달빛 아래에선 모두 파랗게 보이지"라는 말을 합니다. 파란 아이들. 아마도 그 파란색은 생기보다는 외로움의 상징색일 듯 합니다. 고등학생이 된 샤이론은 여전히 학원 폭력에 시달립니다. 내성적인 샤이론은 성소수자라는 놀림까지 받으면서 꾸역꾸역 하루 하루를 견딥니다. 여기에 후안 아저씨마저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기댈 곳이 없는 샤이론은 더 외로움이 가득한 심연으로 침몰합니다.

샤이론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은 유일한 친구 케빈입니다. 푸른 달빛 아래서 샤이론은 말합니다
"넌 울어 본 적이 있니? 난 너무 울어서 어쩔 땐 눈물로 변해 버릴 것 같아" 이 대사에 장탄식이 저절로 나옵니다.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으면 이런 말을 했을까요? 그 바닷가에서 친구 케빈은 샤이론을 위로해주며 샤이론의 성정체성을 완성시켜줍니다. 그렇게 샤이론에게 케빈은 첫사랑이 됩니다.


그러나 학교 폭력배의 강압으로 유일한 친구이자 첫사랑인 케빈이 어쩔 수 없이 샤이론에게 폭력을 가합니다. 엄청난 충격입니다. 유일한 세상의 끈인 케빈에게 맞은 샤이론은 다음날 그 폭력을 지시한 학급 동료를 의자로 패고 소년원에 갑니다. 


최근에 본 영화 중 가장 로맨틱한 장면이 담긴 '문라이트'

10년 만에 케빈에게 전화가 옵니다. 어떤 손님이 틀어 놓은 노래 때문에 전화를 하게 되었다면서 미스터 B로 불리는 샤이론에게 연락을 합니다.
샤이론은 어린 시절 후안 아저씨처럼 마약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수줍음 많은 청년은 갱스터랩을 틀고 비싼 자동차를 몰면서 마약상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색합니다. 어색하지만 후안 아저씨를 보면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후안 아저씨도 마음 따뜻한 사람이었지만 마약상이 되었고 이는 샤이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모습은 흑인 사회의 굴레 같기도 합니다. 아무리 선하고 착하게 살아도 주변의 어른들이 롤 모델이 되어야 할 어른들이 마약과 폭력에 찌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탈레반 마을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니 "탈레반이요"라고 했다는 말은 간과해서는 안될 풍경입니다. 

흑인으로 태어나서 미국 빈민가 마을에서 사는 삶의 거대한 굴레 속에서 샤이론이란 보석 같은 아이가 침전되어가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는 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 착한 아이가! 저렇게 맑은 아이가 저렇게 살 수 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에 잠시 눈물이 그렁거라게 되네요. 

케빈의 전화를 받은 샤이론은 차를 몰고 케빈이 일하는 음식점에 도착하고 10년 만에 케빈을 만납니다. 퉁명스럽게 지나가다가 들렸다고 하지만 케빈은 잘 압니다. 샤이론이 자신을 일부러 찾아 왔다는 것을요. 케빈과 샤이론의 음식점 장면은 명장면입니다. 긴 대사보다 서로의 눈빛과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한 음악 가사가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의 기운을 올려줍니다. 전 이 장면에서 제 얼굴이 다 붉어지더군요.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과 느낌이 충만한 이 장면은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사랑 충만 로맨틱한 장면입니다. 



파랗게 빛나는 샤이론, 샤이론이 너무 애처로와서 영화 내내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처럼 봤네요


후안 아저씨가 없었다면 샤이론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 주변 또는 내 주변에 후안 아저씨가 있을까요? 아저씨가 되었다면 후안 아저씨가 되고 싶네요.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영상과 음악에 대한 소개를 거의 하지 않았는데 영상미도 좋고 음악도 좋습니다. 이야기는 물론 좋고요. 아카데미 작품상 받을만 합니다.

별점 : ★★★★

40자평 : 달빛의 청아한 외로움을 가득 담은 문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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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4.26 1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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