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아버지가 아프셔서 근처 대형 병원에 잠시 입원해 계셨습니다. 수술을 앞둔 시점에서 젊은 의사가 저에게 수술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공포스럽고 떨렸습니다. 혹시나 안 좋은 말을 하지 않을까 떨렸지만 담당 의사는 정말 건조한 어투로 말을 합니다.

그렇게 한 10분을 설명합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심각한 일인데 이 의사에게는 흔한 일이고 직업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자 화가 좀 났습니다. 물론, 이해는 합니다. 매일 환자를 만나는 의사는 따뜻한 말 보다는 사무적인 말을 주로 한다는 것을요. 또한, 모든 의사가 그렇지는 않겠죠. 그런데 대체적으로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죽음이 익숙한지 참 건조하게 말을 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표정하나 감정하나 드러내지 않고 기계처럼 말할까? 이후 의사에 대한 반감이 생겼습니다. 그들에게는 흔한 환자일 수 있지만 가족에게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사들은 모르나 봅니다. 이런 생각을 저만 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일본의 한 병리학자가 죽음을 앞둔 환자 3,000명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 이 일을 '암외래 철학'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따뜻한 말을 전하는 방법을 담은 책 <위대한 참견>

위대한 참견의 저자는 참 독특한 분입니다. 시신을 부검해서 사망 원인을 찾는 병리학자이자 교수인 '히노 오키오'는 죽음을 많이 목격하면서 죽음 앞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분들을 위해서 '암철학 외래'를 진행합니다. 이 생경스러운 '암철학 외래'라는 것은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을 만나는 진료실에 차와 쿠키를 준비하고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쇼파를 준비한 후 암 환자나 그의 자족과 면담을 합니다. 청진기나 흰 가운 같은 의사를 상징하는 것은 다 지우고 평범한 이웃과의 만남처럼 환자 가족과 환자를 만납니다. 

히노 오키오 교수는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암환자의 두려움을 제거하는 치료가 아닌 견딜 수 있는 치유를 하는 분입니다. 그것도 청진기가 아닌 말로 치유를 해줍니다. 병에 대한 진단과 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지우고 그 시간에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되는 덕담같은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그는 이를 '위대한 참견'이라고 명명합니다. 그가 이런 일을 하게 된 이유는 2005년 한 환자로부터 들은 이야기 때문입니다. 


“불안으로 억눌리고 혼란스러울 때, 의사가 평온하게 그 마음을 받아들여주고 충고를 해준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저자는 의사들이 메우지 못하는 빈틈을 메우기 위해서 '위대한 참견'을 시작합니다. 제가 병원에서 느낀 것은 그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수술은 흔해서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라는 한 문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 젊은 의사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저자는 2008년 준텐도 대학병원에 '암철학 외래'를 개설해서 환자와 환자의 가족에게 언어 처방전을 무료로 해주고 있습니다. 사용법은 간단합니다. 예약을 하고 한 60분 정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야기가 큰 도움이 되었는지 3천 여명의 환자들이 찾아왔고 그들에게 맞춤형 언어 치료를 해주고 있습니다. 

암 선고를 받은 환자들의 약 30퍼센트가 우울 증상을 호소합니다. 우울하다는 것 자체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약으로 증상을 완화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암철학 외래에서는 우울 증상으로 힘겨워하는 사람에게 살아갈 희망이나 목적을 되찾아주기 위하여, 약 처방 대신 언어 처방전을 내주고 있습니다. 그 언어 처방전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입니다.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선생님은 무엇을 위해 존재합니까?” “어떻게 하면 남은 인생을 알차고 보람 있게 보낼 수 있을까요?”
<위대한 참견 24~25페이지>

이 <위대한 참견>은 환자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엮은 책입니다. 저자가 현장에서 경험한 에피소드가 많을 줄 알았는데 이 책은 그런 에피소드 보다는 저자 자신이 세상 또는 환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드을 엮은 수필집 같은 책입니다. 어떻게 보면 저자의 일기장에 쓴 일기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실제로 저자 '히노 오키오' 교수는 블로그를 일기삼아 꾸준하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 내용은 무척 가볍습니다. 저자 자체가 현학적인 언어를 극도를 꺼려하고 환자가 이해하기 쉽고 공감하기 쉬운 말을 건네줍니다. 특히, 다른 사람이 한 유용한 명언을 자연스럽게 섞어서 말합니다.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중에서 3장의 제목이 꽤 마음에 듭니다. 3장. 대부분의 일은 그냥 내버려두세요. 많은 사람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걱정이 더 늘어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암 환자라면 더 그렇죠.

"정말 중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들 고민하게 하는 것의 대부분은 아무래도 좋은 것들이에요. 그런데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럴 때는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면 됩니다"

<위대한 참견 89페이지 중에서>

내버려두기, 이게 참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환자가 되면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서인지 공포감에 눌려서 여러가지로 신경을 더 쓰게 됩니다. 그렇게 서서히 자신 안으로 침몰하게 됩니다. 


또 흥미로운 글은 "인생에서 가장 귀한 것은 모두 공짜다"라는 내용입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책은 저자의 머리 속에서 나온 말이 아닌 속담이나 명언을 발췌해서 소개한 후 편안한 마음으로 이끕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모습이 너무 가볍게 책을 쓴 것 아닐까 하는 오해가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삶에 대한 태도를 변하게 하려는 목적이 중요한 것이지 누가 말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실용적인 태도로 비추어집니다. 


또 인상 깊었던 글귀는 "무엇을 할까 보다 어떻게 존재할까"입니다. 남은 생에 무엇을 할까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살면서 못했던 것들을 해보려고 하죠. 저자는 무엇을 할까 보다는 어떤 존재로 기억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지 말고 남은 생 동안 자신이 어떤 존재로 남을지 고민하라는 말을 꺼내듭니다. 


"죽음은 똑같지만 삶은 다를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에 가슴에 팍 박힙니다. 죽음이라는 끝은 똑같지만 그 죽음으로 가는 여정인 삶은 다 다릅니다. 죽음의 결과는 동일하지만 가볍게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 고민 다 짊어지다가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자는 세상에는 그렇게 중요한 것들이 많지 않다면서 가볍게 떠나는 여정이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환자의 고민을 해소하려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 머릿속에 더 이상 고민하지 않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 계기가 되어주는 것이 언어들이겠지요. 어떤 대화라도 좋으니 대화를 많이 나눠 보십시요. 내 말만 하거나 혹은 반대로 상대방의 말을 듣지만 말고, 오고가는 대화를 하십시오. 무엇인가가 오고갈 때 발견되는 마음의 공간이 있습니다. 그런 공간을 찾고, 그 공간에 좋은 말로 빛을 비춰주는 것. 그것이 대화가 가진 힘입니다. 

<위대한 참견 123페이지 중에서>

전 이 글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솔직히 이 책에 저자가 적은 다양한 이야기와 충고 또는 조언의 글들은 공감이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습니다. 또한, 가벼운 글이라서 좋은데 깃털보다 더 가벼운 글들도 있습니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장점은 이겁니다.

환자와 가족 그리고 환자와 주변 사람들이 꾸준히 대화를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대화라도 좋다. 그러니 대화를 해라. 대화를 하다 보면 죽음에 대한 걱정 공포는 줄어들고 떠날 사람에 대한 기억은 더 늘어갑니다. 그 대화의 중요성을 책 가득히 담고 있습니다.


온기 있는 말들이 많이 담겨있습니다. 여기에 털실 같은 따뜻한 일러스트가 날이 선 마음을 평온하게 해줍니다.


재미있게도 책 마지막 부분에는 환자들 또는 마음이 아픈 분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다양한 명언들이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명언들을 제대로 전달하려면 자신의 경험에 녹여서 들려줘야 합니다. 그래야 진실된 마음 또는 힘 있고 온기 있는 말이 나옵니다. 환자와의 대화를 꾸준하게 하는 저자 같은 사람이 이런 명언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책을 읽어보면 이런 말은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을 심어줍니다. 현학적이고 현란하고 화려한 말로 아픈 환자나 주변 사람들의 상처를 치료해주겠다는 말 대신에 쉽고 편하게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건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위대한 참견>은 온기 있는 대화를 하는 요령이나 방법을 잘 알려주는 책입니다.  고통을 받는 사람의 말을 받아주기만 하는 카운셀러가 아닌 온기 있는 따스한 대화를 하는 용기를 주는 책입니다. 일본에서 10만 부가 팔린 이유가 그 온기의 언어를 말하는 법을 담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네요.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는 우울증을 다스리는 언어 처방전이고  환자가 아닌 분들에게는 대화의 소중함과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하는 책이 <위대한 참견>입니다. 

<출판사 인풀루엔셜에서 무상 제공 받아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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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xuronghao.tistory.com BlogIcon 공수래공수거 2017.01.07 09: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료를 잘 하는 의사는 환자에게 설명을 잘 하고 친절한 의사라는게
    제 지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