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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공공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영화 '너의 이름은'

by 썬도그 2017.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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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연말이 되면 제가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았던 영화 10편을 선정해서 발표합니다. 제가 선정한 2013년 최고의 영화는 '신카이 마코토'감독의 중편 애니메이션인 <언어의 정원>입니다. 얼마나 강렬했는지 아직도 제 책상 앞에 걸려있는 영화 포스터가 <언어의 정원>의 포스터입니다.  제가 <언어의 정원>를 선정한 이유는 애니의 신기원을 이루었다고 할 정도로 실사를 방불케 하는 뛰어난 작화에 넋이 나갔습니다. 마치, 각질 하나 없는 이상향을 담은 영상이었습니다. 여기에 스토리도 꽤 간결하면서도 폭발적이라서 후반 부에 벅찬 느낌에 감정의 둑이 붕괴되었습니다. 

여기에 음악은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이전부터 감수성의 성주인 '신카이 마코토'를 좋아했지만 이 영화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코토 감독의 신작인 <너의 이름은>이 일본에서 1천 640만 명을 동원해서 일본의 국보 애니 감독인 '미야자키 히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이은 역대 일본 애니 2위이자 일본 국내 영화 흥행 2위를 기록하는 초대박을 냅니다. 그러나 보통, 일본에서 대박이 났어도 해외에서는 소규모 개봉이나 아예 수입도 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런데 이 <너의 이름은>은 한국보다 먼저 개봉한 홍콩, 대만, 태국 그리고 미국 다음으로 시장이 큰 중국시장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얼마나 재미있기에 이런 초대박을 낼까요? 한국은 6개월이 지난 이 겨울에 늑장 개봉을 했지만 한국도 예매율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르고 닳은 식상한 소재를 식상하지 않게 담은 '너의 이름은'>

<너의 이름은>의 스토리는 좀 식상한 소재 2개를 엮어 놓습니다. 하나는 남녀 고등학생이 몸이 바뀌는 설정은 흔한 소재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의 흔한 소재를 더 추가합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영화 <시월애>에 남녀 주인공이 몸이 바뀌는 비빔밥 같은 영화입니다. 소재 자체가 신선미가 무척 떨어집니다. 이는 연출자인 마코토 감독도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흔히 남녀 주인공이 몸이 바뀌면 영화들이 흔하게 하는 진부한 행동을 이 영화는 한 동작만 소개할 뿐 몸의 변화에 대한 재미를 크게 담지 않습니다. 몸의 변화가 주는 재미보다는 도쿄에 사는 남고생인 타키(카미키 류노스케 분)와 시골에 사는 여고생 미츠하(카미시라이시 모네 분)의 삶의 변화에 더 초점을 맞춥니다. 신사를 지키는 전통의 굴레에 갇혀서 답답한 삶을 벗어나 도쿄라는 도시의 삶을 살고 싶어하는 마츠하의 도시에 살고 싶다는 비명 같은 외침은 쩌렁쩌렁하게 울립니다. 그런 미츠하가 도쿄에 사는 남고생으로 즐기는 꿈 같은 즐거움이 영화의 전반부에 미소 짓게 합니다. 

식상한 2개의 소재를 엮었지만 그 식상한 소재가 주는 흔한 진행 과정을 단축해서 보여주거나 다 무시해버립니다. 특히, 후반에 마츠하 가족 안에서의 갈등을 다 잘라버리는 모습은 신파에 묻히지 않으려는 마코토 감독의 몸부림에 희미만 미소를 지었습니다. 마코토 감독의 애니는 식상함이 찾아들면 그 즉시 사망합니다. 이 영리한 감독은 그걸 잘 알기에 흔한 2개의 소재를 엮으면서도 예측 가능한 부분 또는 눈물샘을 자극할 수 있는 부분을 그냥 도려내 버립니다. 

 

단조와 장조가 함께 섞인 애니 <너의 이름은>

영화가 시작되면 배경의 신인 아름다운 하늘을 지나서 한 줄기 별똥별이 구름을 뚫고 떨어집니다. 구름층을 뚫고 지상으로 낙하하는 별똥별의 모습을 보면서 역시! 마코토~~라는 감탄사가 나옵니다. 

장면은 바뀌고 두 주인공이 몸이 바뀌는 경험을 가볍게 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몸이 바뀐지 모르고 그냥 생생한 꿈을 꾸었다고 느꼈지만 매일 꾸면서 시골 소녀 미츠하와 도쿄 소년 타키가 서로 몸이 바뀐 것을 알게 되죠. 그리고 서로에게 지신의 얼굴과 손바닥 팔뚝에 메시지와 일기 앱에 자신이 행한 하루의 일과와 전할 메시지를 담아서 서로에게 의사를 전달합니다. 

이런 모습은 너무나도 흥미롭고 밝습니다. 쑥맥인 타키가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여자 선배를 좋아하지만 다가서지 못하는 모습을 타키의 몸에 들어간 마츠하가 여자의 맘을 헤아리면서 여자 선배와의 데이트를 주선합니다. 반면, 마츠하 앞에서 뒷담화를 하는 모습에 마츠하 몸에 들어간 타키는 카리스마 높은 걸크래시 행동을 해서 인기를 끕니다. 

이렇게 서로의 몸이 바뀌는 현상이 꿈이 아닌 1주일에 3~4번 바뀐 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기 시작합니다. 이과정이 식상하지 않고 짧으면서도 흥미롭게 다룹니다. 그럼에도 전 인상을 펴고 볼 수 없었습니다. 이건 흔한 조증 충만한 일본 애니이자 마코토 감독의 애니가 아니라고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신카이 마코토'감독이 연출한 애니의 장점은 단조의 슬픔입니다. 전작인 <언어의 정원>, 그의 최고작품인 <초속 5cm>의 슬픔이 깔린 잔잔한 스토리와 뛰어난 감수성은 마코토 감독만이 그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웃음 한 번 유발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떨림들 그대로 재현해서 많은 감정의 울렁거림을 끌어내죠.

그런데 이 <너의 이름은>는 초반부터 웃깁니다. 웃으면서도 불편했습니다. 마코토 감독 특유의 음습할 수 있지만 맑고 청초한 그 정밀한 떨림을 느낄 수 없어서 불편했습니다. 그러서 영화 초반에는 팔짱을 끼고 시큰둥하게 봤습니다. 정확하게 상영 40분이 지나고 음악이 한 바탕 지나간 후 드디어 마코토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펼쳐지고 드디어 깊은 감성의 썰물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지만 더 말하는 것은 이 작품을 보려는 분들에게 큰 타격을 주기에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스토리를 알고 봐도 좋겠지만 모르고 보면 더 좋기에 여기서 멈춥니다. 
그럼에도 분명하게 말할 점은 기존의 마코토 감독 영화들이 단조의 맑은 슬픔을 담은 애니였다만 이 <너의 이름은>은 장조의 밝음과 단조의 슬픔을 아주 잘 조율했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향이 줄어든 작화

제가 <언어의 정원>을 보고 놀란 것은 뛰어난 묘사력이 실사를 넘어섰다고 느꼈을 정도로 고퀄리티였습니다. 배경이야 워낙 유명해서 '배경의 신'이라고 불리웠지만 <언어의 정원>에서는 캐릭터마저도 실사 못지 않게 빛반사에 대한 묘사나 캐릭터 묘사력이 극강이었습니다.

같은 스토리와 연출이라도 영상이 SD가 아닌 HD나 FHD로 담기면 더 감동하는 것처럼 마코토 감독 애니의 큰 장점인 아름다운 배경이 수시로 펼쳐집니다. 솔직히 전반부의 식상한 소재를 펼쳐갈 때는 마코토 감독이 대규모 자본을 만난 후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렸구나! 라는 작은 탄식이 나왔지만 중간 중간 황홀한 배경을 보면서 역시! 마코토라고 느꼈습니다.

작화는 더 진화했습니다. 마코토 감독 애니의 약점인 캐릭터 묘사가 대폭 강화되었습니다. 먼저 작화 감독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파프리카>, 공각기동대 <이노센스>등의 일본을 대표하는 '안도 마사시'가 애니의 작화를 담당했습니다. 캐릭터 디자인도 유명 스텝이 참여했습니다. 그래서 이전과 다른 뛰어난 배경 못지 않게 보편적으로 좋아할 만한 뛰어난 외모를 가진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전 뛰어난 외모를 가진 두 주인공을 보면서 이렇게 보편적으로 잘 생긴 캐릭터와 밝은 캐릭터를 보면서 이건 '신카이 마코토' 감독 영화가 아니다라고 외면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제 마음을 알았는지 40분이 지나자 드디어 감수성이 가득한 스토리가 펼쳐집니다. 특히. 요즘 유행하는 사진 놀이인 '타임랩스'라는 시간 압축 표현 방식을 애니가 따라하는 모습이 너무 반가웠습니다. 여기에 애니 사상 최강의 단풍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배경의 신 답게 배경의 표현력은 최강이네요. 

 

대재앙을 겪은 모든 국가 국민들의 아픔을 달래주다

타키가 마츠하가 일어나자마자 눈물을 흘립니다. 뭔가 슬픈 일이 일어나서 눈물을 흘리는 것 같습니다. 이 눈물은 비극의 전조 같다는 생각도 저도 살짝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합니다. 희희낙낙하던 전반부와 달리 후반은 슬픔으로 치닫습니다. 

후반에 이 미스테리한 일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나오지만 그 눈물이 기쁨의 눈물인지 슬픔의 눈물인지는 관객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신기하죠? 우리 인간은 슬퍼도 기뻐도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고 보면 기쁨도 슬픔도 같은 뿌리인 듯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습니다. 적어도 영화관 안에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나서 마음에 거다란 멍울이 생겼습니다. 뭔가 크게 얻어 맞았는데 그게 누가 충격을 준 것인지 몰랐습니다. 영화를 보고 신촌 거리를 터벅터벅 걷다가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 정체 모를 눈물 속에서 이유를 찾았습니다. 찾지 못했습니다. 한 참을 더 걷고 서점에서 책을 뒤적이다가 내 마음 속 누군가가 귓속말을 해줬습니다. 

"세월호"

만약에 시간을 거스를 수 있다면 그 아침 배가 기울어졌을 때 당장 바다에 뛰어 내려라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각 객실을 두들기면서 어서 이 지옥에서 뛰어내리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시간을 거스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나 또는 세월호의 아픔을 느끼는 당신이 했을 행동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습니다. 세상은 영화가 아니기에. 반대로 생각하면 그런 행동을 영화는 가능합니다.

<너의 이름은>은 대재앙을 겪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영화입니다. 중국, 태국, 대만, 그리고 한국, 모두 대재앙의 이름은 다를 것입니다. 지진, 태풍, 여객선 침몰, 해일. 나라마다 거대한 공공의 슬픔의 이름은 다릅니다. 그러나 그 슬픔의 깊이나 넓이는 비슷합니다. 우리에게는 삼풍백화점, 대구지하철 참사, 성수대교, 서해 페리호 사건, 그리고 세월호라고 불리웁니다. 만약 그 거대한 슬픔을 미리 알았다면?이라는 부질 없는 가정을 하게 됩니다. 영화 <너의 이름은>은 그런 공공의 슬픔을 어루만줘 줍니다.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이 진짜 죽음

이름은 정체성입니다. 그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가장 확실한 텍스트 이름.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그 사람을 송두리째 소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천 마디의 형식적인 칭찬과 덕담보다 이름 한 번 불러주는 것이 가장 큰 덕담입니다.

애니 <원피스>에서 나오는 대사를 참 좋아합니다. 사람은 물리적으로 죽었을 때 죽는 것이 아닌 기억에서 사라졌을 때 죽는 것이라는 대사를 좋아합니다. 전 많은 사람들에게서 죽었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살고 있습니다. 저를 기억에서 잊은 사람에게는 전 죽었습니다. 

 

세월호 사고가 터진 후 많은 유가족들이 외쳤습니다. "잊지 말아주세요" 유가족들도 우리도 잘 압니다. 모든 것은 잊혀진다는 것을요. 그래서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외쳤습니다. 잊지 말아 달라고요. 2015년 4월 세월호 사고 난 후 1년이 지난 광화문 광정은 추모의 물결이 가득했습니다. 

영화 속 미츠하와 타키는 서로를 잊지 않기 위해 손바닥에 서로의 이름을 적습니다. 그 행동에서 무너졌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을 잊고 살았다는 반성이 나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그 반성은 신촌의 길가에서 흘러 내렸습니다. 

영화 <타이타닉>을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끕니다. 나라마다 문화가 달라서 웃는 장면은 다 달랐다고 하죠. 그러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동일했습니다. 슬픔은 만국 공통어입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대만에서 태국에서 그리고 한국에서도 슬픔에 동감하는 흥행이 진행되고 있네요. 

여기에 만국 공통어인 뛰어난 음악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깨알 재미도 있는데 <언어의 정원>의 국어 교사가 <너의 이름은>에 팬 서비스로 살짝 출연합니다. 그녀가 칠판에 쓴 시를 유심히 보시길 권합니다. 

 

만약에라는 슬픈 가정법으로 슬픔을 치유하는 영화

거대한 사건이 지난 후에도 이야기는 쭉 이어집니다. 그 말미의 이야기는 기억에 대한 우리 안의 풍경을 담습니다. 이 후반부는 마코토 특유의 아련함에 닿아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후반 뒷풀이 같은 이 부분이 없었다면 흔한 단짠의 영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애니는 애잔함을 넣어서 마코토 애니의 맛을 찾습니다.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개연성이 크게 문제가 되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간절함이 개연성의 성김을 매꾸네요. 연결을 끈에 빗된 가벼운 비유도 괜찮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애니 자체 보다는 애니가 담은 메시지에 더 큰 감동을 한 느낌이 강하네요. 애니는 별 3개 반 그러나 이 애니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좋아서 반개를 더 줘서 별 다섯 만점에  별 넷짜리 영화입니다. 

매번 말하지만 감수성이 마른 분들에게는 비추천합니다. 이 영화를 미스테리물로 볼 것이 뻔하고 그런 시선으로 보면 그냥 싱거운 영화일 수 있습니다. 세월호를 떠올리고 만약에~~라는 슬픈 가정을 수시로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적극 추천합니다. 그나마 마코토 감독 영화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영화입니다. 단조의 슬픔만 연주하던 마코토 감독이 장조의 발랄함까지 첨가한 스펙트럼이 넒은 애니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대재앙의 멍울을 가진 우리들을 위한 맑은 씻김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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