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은 일제시대에는 영등포 공업단지에 속해 있던 곳이었고 지금도 공장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많은 철공소들이 있는 곳입니다. 대부분의 공장들이 경기도 외곽으로 이전을 했지만 문래동은 여전히 철공소들이 많습니다. 이 공간에 대안공간들이 굉장히 많이 늘었습니다. 그 이유는 임대료가 싸기 때문이겠죠.
문래동 창작촌은 그렇게 탄생되었고 현재 서울사진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불쾌한 경험을 했습니다. 오후 3시부터 7시까지 오픈한다는 창작촌 대안공간들이 제 시간에 개방을 하지 않아서 전시회를 다 보지 못했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 있었는데 이 분노를 잠재운 공간이 바로 스페이스9입니다.
전시공간 지도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전시를 하는 꼬라지가 너무나도 괘씸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좀 떨어져 있는 스페이스9로 향했습니다.
스페이스9는 적벽식 건물로 굉장히 오래된 건물입니다. 문래동 건물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이 건물은 더 오래되어 보이네요. 전형적인 70년대 건물이네요.
스페이스9이 벽에 붙어 있는 공간에 들어서니
작은 탄성이 나왔습니다. 여전히 이곳도 아무도 없는 공간이었고 이렇게 개방해 놓고 관리자가 없어도 괜찮은 건지 좀 뜨악스럽네요. 꽤 잘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서까래가 그대로 노출된 공간인데 천정이 어두워서 그런지 벽에 걸린 작품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박부곤 트래킹 시리즈>
사진작가 박부곤의 트래킹 시리즈는 땅을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땅은 만물의 근원이며 균형과 질서를 유지하는 근원물질 같은 존재입니다. 인간은 이 땅위에서 나고 자라고 사라집니다. 인간이 만든 건물도 영겁의 세월 속에서는 그 존재를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박부곤 작가는 이 땅 위에서 장노출로 카메라를 개방하고 땅 위에 빛의 그림을 그립니다.
이런 빛의 움직임은 미스테리 써클 같아 보이네요.
<김전기의 성숙지대>
김전기 사진작가는 권력과 자본의 논리에 따라서 착취되는 자연과 용도가 다 되면 폐기 처분 되는 자연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자연을 개발해서 인간의 편안함을 유지하다가 필요없어지만 그대로 떠나버리죠. 그 인간이 떠난 자리에 자연은 원래 상태로 복원을 합니다.
이 작품은 꽤 흥미롭습니다. 군초소 같은 건물이 철조망 뒤에 있고 그 뒤에 키치적인 모조 조각품들이 있습니다. 조각이라고 하기엔 상업 용도의 소품이네요.
빛이 바래서 독일 군복이 되어버린 미군이 카빈 소총을 들고 있는 모형이 있네요.
그 옆에는 치마를 올리고 있는 마릴린 먼로와 황금말이 있습니다. 무슨 카페 마당 같아 보이네요. 여기가 어딜까요? 그러나 이런 공간은 전국에 꽤 많이 있습니다. 참 천박스럽지만 이게 또 한국적 풍경이죠
스페이스9는 이렇게 2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나무로 된 지붕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예전엔 이곳이 공장 건물이었을 같네요.
<이건영 PL.a.net 시리즈>
가장 관심이 갔던 작품은 이건영 사진작가의 PL.a.net 시리즈입니다. 붙여서 읽으면 행성을 뜻하는 Planet입니다.
딱 봐도 이름 모를 행성 같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들은 지구에서 촬영한 사진을 둥글게 담은 사진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황폐화 시킨 결과물입니다.
작가는 생산물 책임으로 번역되는 product liabilty(PL)라는 뜻에서 PL을 따옵니다. 제품을 제조하는 생산업자가 그 제품을 사용, 소비에 의해서 일으킨 생명, 신체의 피해와 손해에 대한 배상을 책임지는 의미입니다. 최근 세계 환경 단체가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폐기처분을 제대로 하라고 쓴소리를 했습니다. 그 회수된 스마트폰은 폐기물로 나올텐데 지구 환경을 더럽히지 않고 깨끗하게 처리하라는 쓴소리죠.
많은 기업들이 제품을 생산하고 수익을 내지만 그 제품이 용도폐기되면 지구를 오염시키는 물질이 됩니다. 이는 생산자가 제품 회수 및 처리까지 책임져야 한다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생산물 책임입니다. 또한, 생산물로 인한 사람의 피해도 생산업체의 책임입니다. 예를 들어 현기차의 급발진이나 라이터에 써 있는 1억원 배상 책임 같은 것이 생산물 책임보험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그물을 뜻하는 net를 더해서 인간이 만든 공산품같은 생산물이 지구를 더럽히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녹색의 이 행성은 딱 봐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떠오르네요. 참 아름다운 빛깔이지만 죽음의 빛깔이기도 하죠.
참 아이디어가 좋습니다. 자연과 인간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작품인데 행성 모양으로 담았네요.
스페이스9 이 공간을 자주 찾고 싶네요. 정말 꽤 좋은 전시공간입니다. 솔직히 사진전을 보는 재미보다 이런 공간을 체험하고 보는 것이 더 기분이 좋네요. 문래동 창작촌 촬영 간다면 꼭 들려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