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힘이 없으면 백성들이 고생입니다. 조선시대 말기 나라의 힘이 없으니 백성들은 이리 저리 팔려갔습니다. 일제에 의해 일본으로 강제 이주 한 동포들도 있고 러시아로 끌려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재일동포, 재러동포라고 합니다. 

이렇게 나라의 힘이 없을 때 가장 큰 피해를 본 조국을 떠난 사람들을 조국에 사는 우리들은 어떤 시선으로 볼까요? 재일동포라고 반가워하며 고생 많아습니다! 우리 이제 함께 살아요?라고 하나요.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을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취급을 합니다. 실제로 재일교포에 대한 한국 정부의 시선이나 우리들의 시선은 곱지 못합니다. 반은 한국인 반은 일본인이라고 생각하죠. 

왜 이렇게 배타적인지 배척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인들이 동포를 보는 시선은 딱 한 가지입니다. 잘 사는 나라의 동포는 인정해주고 우러러 보면서 못사는 나라에서 사는 동포는 낮춰봅니다. 그럼에도 이 시선에서도 벗어나는 동포들이 재일동포입니다. 재일동포는 잘 사는 나라 동포지만 일본이라는 우리가 가장 미워하는 나라에 산다는 이유로 같이 미워합니다. 

지금이야 많이 바뀌고 재일동포도 2세를 지나 3세가 되면서 일본인으로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갈등도 관심도 사라졌지만 30년 전만 해도 재일동포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을 고발한 다큐가 꽤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재일동포들도 한국 국적보다는 일본 국적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럼 사할린 동포는 어떨까요? 20대 이하 젊은 사람들은 사할린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분들도 참 많을 듯하네요


인사동 근처에 있는 '갤러리고도'에서는 사할린 동포들을 기록한 귀환이라는 사진전이 10월 26일부터 11월 1일까지 열립니다. 

이 사진전은 2인 사진전으로 90년대 기록사진을 기록한 사진기자 이예식과 최근에 사할린을 기록한 김지연 다큐 사진작가의 사진이 함께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예식 사진기자는 사할린의 유일한 한글 신문인 '새고려신문사' 사진기자로 사할린 동포 2세입니다. 올해로 나이가 67살인 아주 노익장입니다. 

약 70여 점이 전시되는데 이예식 사진기자의 사진이 50여점, 김지연 사진작가의 사진이 20여점 담겨 있습니다. 같은 공간을 다른 사진가가 다른 시대에 기록을 한 조인트 사진전이네요.


이 귀환이라는 사진전을 이해하려면 사할린 동포들의 참혹한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솔직히, 저도 지나가다가 잠시 들렸고 사할린 동포에 대한 다큐들이 한창 많이 했던 80년대 중후반에 본 기억이 전부입니다. 

이 사할린은 일본 4개의 섬 중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훗카이도 섬 윗쪽에 있는 섬으로 현재 러시아 영토로 되어 있습니다. 훗카이도 보다 위도가 높으니 당연히 아주 추운 지역이고 척박한 곳입니다. 이 사할린은 러일 전쟁 직후에 사할린을 일본 땅으로 귀속시킵니다. 이후, 이 척박한 땅을 개간하기 위해서 조선인 노동자를 배치합니다. 

처음에는 좋은 일자리 준다고 속이고 2차 대전 말기에는 강제로 징집해서 사할린에서 목재 채취와 탄광, 땅 개간 등 다양한 중노동을 강제로 시킵니다. 그렇게 한인 수가 늘어가게 되었는데 이 한인들 중에 일본 본토의 인력 부족과 징병으로 2차 징집을 또 합니다. 조국에서 사할린으로 강제 이주 당했는데 또 사할린에서 일본으로 강제 이주 당합니다.

이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도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스토리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일본의 항복으로 2차 대전이 끝이 나자 소련(러시아)은 다시 사할린 땅을 자신들의 영토로 귀속시킵니다.  사할린에 살던 일본인들은 영토를 빼앗기자 배틀 타고 일본으로 귀국을 합니다.


이 과정은 일본 애니 <은하철도의 꿈>에 잘 나옵니다. 이 애니에서 주인공은 아버지가 소련 강제 수용소에 끌려가는데 그 강제 수용소를 찾아가다가 눈길에 쓰러져서 죽을 위기에 놓였지만 근처에 사는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 아줌마에 의해서 목숨을 구합니다.  이 애니에서 아줌마는 일본인들은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신세 한탄을 합니다. 이 짧은 장면이 너무 강렬했습니다.

이게 사할린 동포의 비극입니다. 이억만리 동토의 땅에 강제로 끌려와서 다시 일부 가족은 일본으로 또 강제 징집 당했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일본인들은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조선호적을 가진 조선인들은 무국적자로 사할린에 남게 됩니다. 여기에 이승만 정권은 국내가 혼란스러운데 해외 동포까지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80년대 후반까지 무국적자 또는 소련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외지인 취급을 당하면서 사할린 땅에서 살아갑니다. 
다행히 80년대 후반 일본과 한국의 적십자가 이 사할린 동포 문제에 적극 나서고 90년에 소련과 한국의 국교가 회복되면서 사할린 동포들의 고국 방문을 넘어서 영주 귀국의 길이 열립니다. 

사진전 귀환은 이 90년대 초의 영주 귀국으로 한국으로 떠나는 풍경을 담은 사진들과 사할린에 남은 2~3세들의 사진이 담겨 있습니다. 이 사진전이 아쉬운 점은 이런 사실을 사진전을 통해서 알 수 없습니다. 약간이라도 사진들의 맥락을 알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서문 형식으로 적어 놓았다면 사진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없네요. 


사진들은 대부분 90년대 초반 사진입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많은데 처음에는 왜 우시나 했네요!


1990년 mbc가 주최한 행사에 가수 송대관과 주현미가 사할린 동포 앞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조국에서 유명한 사람이 오니 동포들은 얼마나 좋았을까요? 

90년대 초 한국 민항기가 사할린에 도착한 후에 승무원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후 꾸준히 사할린 동포의 국내 귀환 사업은 계속되었습니다.  이 영구 귀국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1세대들과 그 1세대 중에 한국에 신분을 보장해주는 가족과 친인척이 있어야 귀국이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아들 딸 같이 사할린에서 결혼하고 낳은 자식이 있는 분들은 갈등이 심했을 것으로 보이네요. 그러나 이 사업도  2015년 끝으로 영구 귀국 사업은 끝이납니다.


김지연 사진작가는 사할린에 남은 재러동포를 촬영했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도 살기 좋은 나라도 아니라서 귀국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건 제 어설픈 추측입니다. 암만 그래도 고향은 고향이고 미워도 고와도 고향이라서 잠시나마 관광겸 찾아오고는 싶겠죠. 그렇지 않아도 좋은 민간단체들이 사할린 동포들을 주기적으로 한국으로 초청하나 보네요.


사진의 힘은 보여주기입니다. 잊혀진 존재들을 발굴해서 다시 우리 눈 앞에 가져다 놓습니다. 그 다큐의 힘을 느낄 수 있은 사진전이 귀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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