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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벚꽃보다 더 아름다운 일본영화 앙 : 단팥 인생 이야기

by 썬도그 2016.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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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들은 국내에 잘 수입도 되지 않지만 수입되어도 아주 작게 개봉합니다. 그나마 일본 영화가 잘 만드는 애니나 공포물은 그나마 크게 개봉하지만 대부분의 영화들이 소규모 개봉을 합니다. 일본 영화들은 잔잔한 드라마를 아주 잘 만듭니다. 영화 <러브레터>같은 영화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한국의 <8월의 크리스마스>를 상영한 후 대박이 났고 많은 일본인들이 <8월의 크리스마스>를 기억합니다. 어떻게 보면 허진호 감독과 같은 감수성이 풍부한 감독은 한국에서는 돌연변이처럼 느껴집니다. 반면, 한국은 박찬욱, 김지운, 나홍진 감독처럼 에너지 넘치는 영화를 참 잘 만듭니다.

일본의 잔잔한 드라마 중에 추천할만한 영화를 만났습니다. 영화 이름은 '앙' 귀요미 의성어는 아니고 단팥소를 뜻합니다. 


벚꽃과 함께 시작하는 아름다운 영화 앙 : 단팥 인생 이야기

핫케잌에 단팥소를 넣은 일본식 핫케잌 같은 '도리야키'를 파는 센타로(나가세 마사토시 분)은 웬지 이 일에 큰 흥미가 없습니다. 손님에게 파는 음식에 들어갈지도 모르는데 틈만 나면 담배를 핍니다. 게다가 과묵해서 붙임성도 없습니다. 수다가 일상인 여중생들이 농을 던져도 '도리야키'를 주면서 나가라고 하죠. 뭔가 큰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 영화는 이 사연을 꺼내 보여주지 않습니다. 


벚꽃이 환한 웃음을 피어내고 있는 4월의 어느날 고목과 같은 70대 할머니인 도쿠에(키키 키린 분)가 이 도리야키 가게에 찾아옵니다. 

"시간당 3,000엔 받아도 되는데 알바를 하면 안될까요?"


센타로는 나이에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연로하셔서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라서 고용할 수 없다고 정중하게 거절을 합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 그렇게 물러나나 했는데 저녁 무렵에 찾아와서 자신이 만든 단팥소를 전달해 주고 갑니다. 센타로는 귀찮게 하는 이상한 할머니라고 생각하고 단팥소를 휴지통에 넣어 버립니다. 그러나 혹시나 하고 꺼내서 맟을 보고 동공지진이 작렬합니다. 

센타로는 이번에는 할머니를 모십니다. 지금까지 단팥소를 돈 주고 사서 사용했는데 할머니가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죠. 도쿠에 할머니는 소녀처럼 상기된 얼굴로 너무나 좋아합니다. 그런데 단팥소를 만드려면 해가 뜨기 전에 만들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센타로는 도쿠에 할머니를 보조하면서 단팥소를 만듭니다.

할머니는 단팥에게 힘내라!라는 소리를 하고 단팥의 소리를 귀기울입니다. 마치 단팥과 대화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단팥하고만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벚꽃과도 달과도 대화를 합니다. 마음이 참 넓고 모든 사물의 말에 귀를 열고 들어주는 묘한 할머니입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에게는 비밀이 있습니다. 이 비밀은 영화에 큰 반전을 가져다 주거나 알면 재미가 크게 훼손 되는 것은 아니지만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이렇게 밝히지 않는 것은 제가 이 영화를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렇게 센타로의 신임을 받은 도쿠에 할머니는 단팥소를 만드는 것을 넘어서 도리야키 판매까지 도와줍니다. 
너무나도 행복해 하는 도쿠에 할머니. 그러나 이런 행복도 길지 않습니다. 센타로는 이 도리야키 가게를 억지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큰 사건을 일으키고 이 가게를 운영하면서 빚을 갚고 있는 처지입니다. 가게 주인은 센타로에게 도쿠에 할머니를 안 좋은 소문이 있다면서 내보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센타로는 내보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버렸는지 손님이 뚝 끊깁니다. 

그렇게 센타로는 도쿠에 할머니를 떠나 보내게 됩니다.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듣기 위해서야! 

영화 <앙 : 단팥 인생 이야기>는 장애와 편견을 주제로 한 영화입니다.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새장 안에서 사는 강제적으로 갇혀사는 사람들의 고통과 자신 안에 갇혀사는 센타로를 벚꽃잎처럼 부드럽고 밝게 잘 담고 있습니다.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아도 죄인처럼 살았던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아닌 모든 것을 체념한 끝에 나오는 달관의 목소리가 영화 후반부에 벚꽃보다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우리 사장님 잊지마!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그러므로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는 ,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팥이 밭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그 목소리를 들어주는 도쿠에 할머니의 모습은 남의 말은 귀담아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하는 현대인들의 관습에 대한 치료법을 알려줍니다. 세상 모든 사물에는 각자의 목소리가 있다고 말하는 도쿠에 할머니를 통해 센타로는 서서히 자신이 스스로 만든 굴레를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장애에 관한 영화 중 이토록 아름다운 영화가 있었을까요? 기존의 영화들이 사회의 괄시와 편견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모습들이 많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비판 대신, 우리가 얼마나 자기 목소리만 내는 세상에 살았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합니다. 

유일하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중학생 와카나(우치다 카라 분) 캐릭터입니다. 이 중학생은 철없는 엄마랑 사는데 영화를 통해서 크게 변화는 캐릭터도 아니고 연결고리나 메신저 역할만 하는데 좀 더 캐릭터를 풍부하게 키우던가 싹 도려냈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키키 키린의 인생 역작

영화를 보면 저 배우가 나오면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있습니다. 그것도 주연이 아닌 조연인데 저 배우가 나오면 항상 재미있고 감동이 가득한 영화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배우가 있습니다. 

일본 영화에서는 '키키 키린'이라는 할머니 배우입니다.  주로 '고로에다 히로카츠' 감독의 영화에 단골로 나오시죠. 최근에 본 '태풍이 지나가고'에서도 특유의 발랄함을 보여주시네요. 할머니 배우 중에 가장 귀엽고 사랑스럽고 유머러스합니다. 일본의 노배우지만 정말 존경스러운 배우입니다. 연기도 참 잘하고 인상도 좋습니다. 감히 말하지만 이 영화는 '키키 키린'의 인생 역작이 아닐까 할 정도로 영화 전체에 푸근함을 가득 담아 놓습니다. 


마치, 달달한 도리야키처럼요. 단순한 스토리, 배경도 촬영 장소도 몇 곳이 되지 않지만 그런 것에 휘둘리는 영화가 아닙니다. 우리가 가했던 수 많은 폭력에 대한 반성을 하게 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따뜻해지는 영화입니다. 아들 같은 사장님에게 용기를 복돋아주는 도쿠에 할머니 같은 분들이 너무 보고 싶네요. 


센타로를 연기한 '나가세 마사토시'의 무뚝뚝한 연기도 보기 좋았습니다. 싫다 좋다를 내색하지 않던 사나이의 굵은 눈물이 저까지 흔들어 놓네요. 벚꽃 피는 나무 아래서 "도리야키 사세요"라는 대사 한 마디에 벚꽃보다 환한 미소가 지어지네요.

감독이 궁금했습니다. 이런 스토리를 이렇게 잘 살리고 감정선을 꼼꼼한 바느질처럼 잘 이어 붙인 감독이 궁금했습니다. 
'기와세 나오미'라는 여성 감독이네요. 참 영화 잘 만드네요. 단순한 스토리지만 좋은 배우와 과하지 않고 모자르지도 않는 담백한 연출이 꽉꽉 눌러 담은 공기밥 같은 영화였습니다. 

복잡할 필요 있나요?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세상을 단순하게 볼 수 있는 힘이 생기죠. 도쿠에 할머니의 그 따뜻한 손길이 가득 담긴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별점 : ★★★★
40자평 :  새장에 갇혀 사는 사람들을 위한 벚꽃보다 화사한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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