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에 돌란'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젊은 감독인데 천재적인 감각을 가진 감독이라는 칭송이 많았습니다. 20대의 젊은 감독인데 올해 칸 영화제에서 2등상이라고 할 수 있는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시상식자에서 눈물을 흘려서 눈꼴시럽다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말이 많은 감독 같더군요. 뭐든 인기가 많아지면 말이 말아지고 논란이 일어나기 마련이죠. 과연, 이 감독의 영화가 어떻길래 칭송도 비난도 함께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많은 영화 중에 가장 많이 추천하는 영화 <마미>를 봤습니다.
주위력 결핍 장애를 겪는 아들
영화가 시작하면 행동문제가 있는 자녀의 부모가 경제, 신체, 심리적인 위험에 처하면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부모가 동의하면 자녀를 공공병원에 위탁할 수 있다는 S14법이 자막으로 깔립니다. 이 자막은 이 영화의 흐름을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게 하는 자막이죠.
남편과 사별한 디안(안느 도발 분)은 아들인 스티브(앙투안 올리비에 필롱 분)을 위탁소 같은 곳에서 데리고 나옵니다.
아들과 함께 다시 살기로 하기 보다는 아들인 스티브가 위탁소에서 자꾸 사고를 치기 때문이죠. 아들 스티브는 ADHD라는 주위력 결핍 장애와 애착 장애가 있습니다. 디안에게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아들이지만 말 마다 욕이 한 가득이고 엄마인 디안의 목까지 조르는 극도의 폭력성을 보입니다.
아들이 극도의 흥분 상태가 되면 숨어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도 잘 알죠. 그래도 제어가 안되면 폭력을 쓰지만 아들을 때리고도 바로 미안하다고 할 정도로 아들에 대한 애정은 끔찍스럽게 많습니다. 전형적인 엄마의 모습이죠. 그렇다고 스티브와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아들 스티브의 개망나니 같은 행동이 참 보기 거북스럽더군요. 많은 망나니 캐릭터를 봤지만 스티브처럼 미친 활기가 가득한 캐릭터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얼음판을 걷던 어느날 디안은 아들의 제어할 수 없는 행동에 액자로 스티브를 내리쳐서 다리에 큰 상처가 납니다.
스티브의 큰 상처를 본 옆집에 사는 교사 카일라(수잔 클레망 분)가 스티브를 치료해줍니다. 그러나 스티브는 그런 카일라에게도 못된 말만 가득 내뱉습니다. 이런 아들을 둔 엄마 디안은 짐승같이 제어가 안되는 아들이 힘겹지만 에너지가 넘치는 아들 때문에 활기가 있는 일상이 되었다고 자조합니다.
스티브는 이런 아낌없이 주는 엄마와 옆집에 사는 카일라로 인해 서서히 길들여집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앞 부분은 스티브의 망나니짓만 보여주기 때문에 보는 것이 좀 거북스러웠지만 카일라가 투입되면서 영화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카일라는 2년 전부터 말더듬 증세가 있어서 교사직을 잠시 내려놓고 있었다가 스티브의 망나니짓에 폭발하게 되고 그 폭발 덕분에 말더듬 증세가 점점 사라집니다.
스티브는 너무나 외향적이고 카일리는 너무나 내향적인데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를 치료해줍니다. 그렇게 디안, 스티브, 카일리는 행복한 하루 하루를 보냅니다.
엄마라는 굴레를 벗어나고 싶은 디안
그러나 이런 행복도 스티브가 과거에 저지른 행동 때문에 다 날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스티브가 주인공이 아닌 엄마인 디안이 주인공임을 보여줍니다. 사실, 전 영화를 보면서 처음에는 스티브가 엄마를 보는 3인칭 시선을 담은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엄마의 시선을 담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영화 형식적으로 무척 감각적이고 놀라운 형식을 보여줍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인스타그램 화면처럼 정사각형 화면으로 담깁니다. 좌우에 레터박스라는 검은 띠가 생기는데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아닙니다. 계속 인스타그램처럼 담깁니다. 처음에는 젊은 감독의 색다른 시도인가 했습니다. 튀고 싶은 감독의 연출인가 했는데 아닙니다. 놀랍게도 이 정방형의 화면비가 중간에 한 번 그것도 아주 놀라운 방식으로 확 열어집니다. 좌우 레터박스가 사라지면서 제 동공도 확 열어지네요.
그리고 알았습니다. 이 영화는 디안이라는 엄마의 시선이라는 것을요. 그렇게 영화는 디안이 자유로움을 느끼면 화면이 열리고 불안, 초조, 스트레스와 절망이 쌓이면 다시 레터박스가 생깁니다. 그 화면비를 통해서 엄마 디안의 심리 상태를 아주 부드럽고 감각적으로 보여줍니다.
엄마 디안은 항상 불안하고 사는 것 자체가 버겁습니다. 바로 스티브 때문이죠. 남들처럼 편하게 살고 싶은데 아들이 망나니 짓을 하고 항상 싼 똥을 치우고 다녀야 하니 엄마라는 역할극을 집어 던지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습니다. 한 번 엄마는 영원한 엄마이고 모든 것을 감당하고 무너지지 않는 것이 엄마니까요.
아들 스티브는 이런 엄마를 너무나도 사랑합니다. 문제는 사랑이 집착이 되어버립니다.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이 사랑이잖아"라는 말로 두 모자는 서로를 굴레 속으로 집어 넣습니다. 영화 후반에 가면 디안이 꿈꾸는 세상이 잠시 펼쳐집니다. 쉽게 말해서 엄마가 바라는 아들의 모습, 엄마가 바라는 가정의 모습이라는 이상향이 펼쳐지는데 그 장면이 참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슬프게 다가옵니다.
엄마라는 굴레에 갖힌 디안, 그 굴레를 벗어버리기 위해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압니다. 자신은 엄마로서는 불합격이라는 것을요. 디안이라는 엄마에 대한 연민이 영화 후반에 가득 펼쳐지는데 그 연민이 무척 감각적이로 세련되고 뻔하지 않아서 무척 좋네요.
영상과 음악을 자유롭게 잘 활용하는 '자비에 돌란'감독
색안경을 끼고 봤습니다. 요즘 핫한 '라이언 맥긴리' 라는 젊은 사진작가처럼 에너지만 넘치면서 젊음이라는 객기를 상품화 한 사진작가류의 작가가 아닐까 했습니다. 그런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연출과 영상이 세련되어 있습니다. 먼저 화면 비율을 가지고 사람의 심리를 표현하는 감각도 좋고 영상도 극단적인 아웃포커싱이 가능한 카메라로 사람의 심리 상태를 아주 잘 묘사합니다.
별거 아닌 아이디어 일 수 있지만 그걸 영화 끝까지 잘 밀어부치더군요. 여기에 음악 선택이 아주 탁월합니다. 캐릭터들의 심리 상태를 적절하게 묘사하고 풀어주고 흔들어주는 음악을 적재적소에 잘 풀어 놓습니다. 팝송에서 클래식까지 아주 적절하게 잘 비벼냅니다. 이래서 '자비에 돌란' '자비에 돌란'이라고 하나 보네요. 바로 다른 작품을 디적거리게 만드네요.
엄마라는 이름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 '마미'
세상에서 가장 독한 사람이 지 자식 버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제 경험으로도 그 말이 맞습니다. 얼마나 독하면 하늘이 맺어준 인연, 자신이 만든 새끼를 버릴 수 있겠어요. 그럼에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영화 마미는 엄마라는 거대한 이름에 대한 보고서 같은 영화입니다.
엄마는 항상 내편이라는 거대한 믿음에 대한 영화가 <마미>입니다. 상당히 감각적이면서도 많은 느낌과 생각을 주는 꽤 좋은 영화네요. '자비에 돌란'감독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20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연출도 농염하고 세련되고 섬세하기 까지 하네요. 1편 보고 반할 수는 없고 다음 편을 보고 더 판단을 해봐야겠습니다
"넌 시간이 지날수록 날 덜 사랑하겠지만 엄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사랑하게 될거야"라는 대사가 잊혀지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