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테러방지법이 노리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자기검열의 일상화

by 썬도그 2016. 3. 4.
반응형

테러방지법이라는 전국민 감청법이 새누리당의 전폭적인 지지로 국회에서 통과 되었습니다. 이 테러방지법을 쉽게 설명하면 테러 의심자라고 경찰이나 국정원이나 검찰이 지목한 사람은 영장 발부 없이 쉽게 감청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도 국정원은 국민 대부분을 감청할 수 있었지만 테러방지법 덕분에 좀 더 쉽게 감청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테러범을 국정원이 임의대로 판단하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국정원이 너! 테러범이야라고 지정하면 그 순간부터 테러 용의자가 될 수 있습니다. 명명백백한 증거가 없어도 감청이 가능한 것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테러방지법에 관심이 없습니다. 또한, 난 테러범이 아니기 때문에 별 상관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대부분의 사람과는 무관한 법입니다. 

그러나 이 테러방지법이 가져온 막연한 불안감은 전 국민에게 퍼졌습니다. 그 막연한 불안감은 혹시~~나도?? 라는 생각이죠. 


테러방지법은 CCTV 같은 존재

우리는 수 많은 CCTV에 둘러 쌓여 있습니다. 골목 골목마다 길거리와 건물 안과 밖에 빼곡하고 촘촘하게 달려 있습니다. 여기에 자동차 블랙박스까지 일상화 되면서 도시의 거의 모든 일상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특히, 엘레베이터는 필수적으로 설치되어 있죠.

이 CCTV는 드라마 시그널에서 보여줫듯이 범죄를 잡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드라마 시그널에서는 주기적으로 이동하는 CCTV인 편의점 배송 차량에 달린 블랙박스 캠코더를 이용해서 수사를 펼치기도 합니다. 이렇게 CCTV는 그 뛰어난 효용성 때문에 큰 거부감 없이 전국에 설치되고 있고 점점 화질도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CCTV가 안 좋은 점도 있습니다. 바로 누군가가 날 지켜 볼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입니다. 

바쁜 출근길에 엘레베이터에 있는 거울을 보면서 삐져 나온 코털을 뽑거나 코를 파다가도 구석에 있는 CCTV를 보고 화들짝 놀라는 분들도 많죠. 잠시 잠깐 개인적인 공간인 줄 알았는데 누군가가 지켜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예전에 건물 엘레베이터에 설치된 CCTV를 모니터링 하는 곳을 들려 봤는데 가관이더군요. 한 10분 쳐다 봤는데 그 사이에 춤 추는 사람도 있고 코 파는 사람, 벽을 잡고 운동 하는 사람 등등 남 앞에서 하기 힘든 행동을 하는 사람을 몇 명 봤습니다.

이렇게 CCTV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도구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CCTV를 통해서 사고를 인지하고 범죄를 예방하는 효용이 크기 때문에 개인 사생활은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CCTV가 너무 보편화 되어서 혼자 있어도 남이 보면 창피한 행동을 잘 하지 않습니다. 하더라도 두리번 거리면서 CCTV를 찾아보곤 하죠.

또한, 항상 내가 감시 당한다는 느낌 속에서 모든 행동을 남이 보고 있다고 행동을 합니다. 그래야 실수를 덜 하게 됩니다.


테러방지법이 가져온 가장 큰 영향은 일반인들의 자기검열의 일상화

테러방지법이 통과 되면 국정원은 테러범을 넘어서 정부 비판 세력이라면 누구든지 쉽게 감청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국정원은 대선 개입 등의 큰 죄를 짓고도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었습니다. 권력에 취해서 비틀 거리고 있지만 자기가 권력에 취한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무차별적인 감청이 일어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난 테러범도 정부 비판도 하지 않기에 문제가 없다고요. 네 그런 분들은 국정원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부에 불만이 있고 을의 입장에서 갑을 비난하는 그 모든 행동이 테러분자로 낙인 찍힐 수 있습니다. 따라서 평생 억울한 일 당하지 않거나 억울한 일 당해도 입 밖으로 특히 디지털 매체에 그런 억울함을 하소연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랬다가는 여러가지 글들을 엮어서 정부 전복 세력으로 낙인 찍힐지 모르니까요. 
박정희 정권 때의 막걸리 먹다가 잡혀 갔다는 막걸리 보안법이 다시 살아 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도 사회 현상에 큰 관심이 없고 연성 뉴스나 섭취하고 정부 비판이건 뭐건 정치 자체에 관심도 불만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 일 것입니다.

그러나 CCTV처럼 누군가가 날 감시한다는 뒤통수가 따가운 불쾌함은 지워 버릴 수 없습니다. 이는 정치에 관심 있고 없고 정부를 비판하고 칭찬하고와 상관 없이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불쾌함입니다. 이런 불쾌함 때문에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다시 카카오톡이라는 정부의 손아귀에 있는 메신저를 버리고 텔레그램으로 아이폰으로 사이버 망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 뒤통수의 따가움 때문에 사람들은 정치 이야기를 자주 하던 사람은 정치 이야기를 줄일 것이며 사회 비판을 잘 하지 않던 사람은 더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어떤 말과 글을 공공장소나 남들 앞에서 또는 디지털 기록으로 남길 때 이전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할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이런 글을 써도 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이건 해도 되나?라는 생각을 하는 그 자체가 자기 검열입니다. 자기 검열은 주위의 반응에 의해 자신의 의견 표명을 스스로 자제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웃어줄까? 안 웃어주면 어떡하지? 그래 하지 말자!라고 발언을 하지 않게 되면 점점 더 자기 검열 수위는 높아지고 결국은 자기 표현을 제대로 못하게 됩니다. 이 자기 검열이 심해지면 행동 자체도 소극적이게 됩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가 노리는 것은 테러범 검거가 아닙니다. 테러방지법을 통해서 전 국민이 스스로 자기 목소리를 덜 내거나 안 내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사회 불만이 가득한 소리의 볼륨을 스스로 낮추게 하는데 있습니다.



이미 주변 사람들이 자기 검열적인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정치 이야기나 사회 비판적이 이야기를 하지 않던 친구는 술자리에서 "내가 이래서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라는 말로 자기 변명을 하기 시작했고 술자리에서 쓴 소리를 하면서도 이런 거 여기서나 말하지 다른데 가서 편하게 말하기 힘들게 되었다는 하소연도 했습니다.

공통적으로 이전보다 사회 비판이나 정부 비판을 덜 하게 될 것이라고 한 목소리를 내더군요. 이렇게 스스로 자기 자신을 감옥에 가두는 자기 검열이 만연하게 되면 정치 혐오는 더 심해지고 사회 비판의 목소리를 더 줄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가장 악독한 정치인이 당선이 되어서 세상을 자기 맘대로 쥐락 펴락 할 것입니다.

또한, 갑질 피해를 보는 을을 보고도 못 본 척 지나갈 것입니다. 괜히 도왔다가 나까지 피해를 입게 될 수 있드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불의를 보고도 더 많이 오래 참게 될 것입니다. 이게 바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만든 감시와 통제의 시대입니다. 소설 속 절대적 감시자인 빅브라더는 실체가 없지만 스스로 누군가가 날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억압자에게 순치된 삶을 사는 소시민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쾌락도 통제 당하고 주체적인 생각은 물론 주체적인 삶은 저급한 삶이라고 손가락질 하며 부모가 시키는대로 정부가 시키는대로 사는 것이 옳고 바른 삶이라는 거대한 생각이 우리 머리 위에 떠 다닐 것입니다. 너무 확대 해석하고 있다고요? 네 지금은 먼 나라 먼 미래의 이야기지만 한 번 사회의 흐름이 세상의 흐름이 바뀌면 속도는 가속될 것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