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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현대 예술에 대한 유쾌한 조롱을 담은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by 썬도그 2016.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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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이웃 분이 권했던 다큐이고 요즘 잘 나가는 거리 아티스트 중 가장 인기가 높은 <뱅크시>가 나와서 뒤늦게 찾아 봤습니다. 그러나 제목만 보고는 이게 뱅크시 관련 다큐인지 잘 인지하기 힘듭니다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라는 제목만 보고 어떤 내용인지 판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뱅크시에 관한 다큐라고 해서 아무런 정보 없이 본 이 다큐는 TV 맛집 프로그램들이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을 알바로 구입하고  멘트 조련까지 한 후 맛집 소개 브로커를 통해서 그 음식점에서 팔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서 맛집이라고 소개하는 맛집 예능 프로그램의 추악한 뒷거래를 까발린 <트루맛집> 이후에 가장 웃기는 다큐였습니다. 후반에는 이게 뭐지?라고 당혹해 하다가 서서히 깔깔거리면서 봤네요. 


<거리 예술가들을 캠코더에 담는 티에리 구에타>

다큐 도입 부분에서 뱅크시가 어두운 곳에서 얼굴과 목소리도 변조한 후 자신에 대한 다큐였는데 자신을 촬영한 사람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 사람 다큐가 되었다는 이상한 말을 합니다. 전 이말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이 다큐는 뱅크시 보다는 뱅크시를 옆에서 촬영했던 '티에리 구에타'를 소개합니다. 


티에리 구에타는 프랑스에서 건너와 L.A에서 구제 옷장사를 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티에리는 독특한 취미 아니 능력이라면 능력이 하나 있는데 세상 모든 것을 기록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의 죽음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 모든 것을 캠코더로 기록합니다. 항상 캠코더를 들고 다니는 티에리는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다가 자신의 사촌인 거리 예술가인 일명 '인베이터'의 작업을 목격하게 됩니다. 사촌은 '스페이스 인베이더'라는 고전 아케이드 전자게임 속 인베이더 캐릭터를 길거리에 붙이고 다닙니다. 

갤러리가 아닌 거리를 캔버스 삼아서 그림을 그리고 예술을 하는 이 독특한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던 티에리는 미국으로 돌아와서 다양한 거리예술가들을 만나게 됩니다. 처음에는 거리예술가들이 기겁을 했습니다. 자신들이 하는 행동인 건물 담벼락과 광고판 등에 낙서를 하고 스텐실 작업을 하고 스티커를 붙이는 행동이 불법이기 때문에 이걸 기록하는 자체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작업이 단발성이고 언제 지워질지 모르는 설치 예술이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기록에 대한 이중성 때문에 티에리의 별난 기록 습관을 허용합니다.

그렇게 시키지도 않았는데 계속 작업을 기록하고 심지어 도와주는 티에리는 거리예술가들의 친구가됩니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거리예술가를 캠코더에 기록하던 티에리는 거리예술계의 거물을 알게 됩니다.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 연락도 하기 힘들고 주변 거리예술가들도 연락처를 모르는 유령같은 존재인 '뱅크시'를 만나고 싶어합니다.


뱅크시는 미스테리한 인물입니다.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숨기면서 길거리를 자신의 화폭 삼아 다양한 스텐실 낙서를 하고 다닙니다. 뱅크시가 거물이 된 이유는 그의 작품은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문화계를 비판하고 세상을 비판하는데 그 비판력이 엄청나게 날카롭습니다. 저도. 뱅크시 작품을 보면서 이 사람은 다르다! 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예술과 사회 비판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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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랜드에 가서 울타리에 관타나모 죄수복을 입힌 인형을 설치해서 관타나모 수용소의 비인간적인 처우를 비판하고 이스라엘의 거대한 장벽에는 평화를 표현한 벽화를 그리는 등 세상에 대한 날선 그러나 누구나 고개를 끄덕거리는 비판을 담은 거리예술을 펼칩니다.

이 거물 뱅크시를 드디어 티에리가 만납니다. 티에리는 뱅크시에게 작품을 그릴 장소 및 픽업 및 핸드폰까지 주면서 지극정성으로 모십니다. 대신, 유일하게 뱅크시를 촬영할 수 있는 기회도 얻죠. 그렇게 두 사람은 신뢰 관계를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여기까지는 좀 지루할 수 있습니다. 기록광인 티에리의 독특한 버릇이라면 버릇이 흥미롭긴 하지만 딱히 매력적인 내용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다큐 후반에 박장대소하게 만듭니다. 



티에리 거리예술에 도전하다

거리예술가를 옆에서 촬영만 하던 티에리는 가만히 보니까 자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뭐 사실 거리예술이라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죠.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림 못그린다고요? 그림 그릴 필요 있나요? 예술가에게나 사진을 주고 편집해서 출력하면 그게 그림이자 이미지인데요.  그렇게 아는 거리예술가에게 자신의 얼굴을 담은 그림을 부타하고 이걸 인쇄한 후 거리에 붙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티에리는 직접 거리예술을 경험합니다. 그러다 뱅크시가 때가 되었다면서 자신이 촬영을 허락한 이유인 거리예술가들에 관한 다큐를 만들라고 합니다. 뱅크시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티에리는 자신이 촬영한 테이브를 뒤적이기 시작합니다. 티에리는 촬영을 한 후 그걸 제대로 기록도 하지 않고 그냥 창고에 넣어 버립니다. 촬영하고 확인도 안하고 그냥 테이프만 쌓아 놓았는데 뱅크시의 말에 부리나케 캠코더로 기록한 테이프를 뒤적여서 1시간짜리 '인생 리모콘'을 만들어서 뱅크시에게 보여줍니다.

60분짜리 예고편이라고 폄하하는 뱅크시는 티에리가 다큐 감독이 아님을 그때 알게되죠. 그리고 티에리가 기록한 테이프를 가지고 자신이 다큐를 만들기 위해 티에리에게 다른 곳에 가서 거리예술을 해보라고 권유를 합니다. 잠시 딴데 가 있으라는 말을 애둘러 말한 건데 티에리는 이걸 곧이곧대로 믿고 거리예술을 하러 갑니다. 그런데 이 인간 일을 저질러 버립니다. 



예술은 세뇌야. 미스터 브레인워시의 탄생

뱅크시는 저쪽에서 축구나 좀 하고 있어라고 했는데 축구나 좀 하라고 한 녀석이 유소년 클럽도 3부리그도 안 거치고 바로 프로에 입단해 버렸습니다. 티에리는 L.A의 방치된 건물에 거대한 전시회를 기획합니다. 이왕 거리예술가가 되려면 판을 크게 벌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죠.

평소에 티에리는 예술은 세뇌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술에 어떤 고귀한 가치가 있어서 사람들이 추앙할까요? 아닙니다. 인기 높은 예술작품은 단지 우리의 눈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앤디 워홀'의 공산품 같은 대량생산의 예술품을 보고 느낀 것이기도 하고 거리예술가들이 길거리에 수만 개의 자신들의 낙서그림을 그리면서 대중의 인기를 넘어서 화이트큐브라고 하는 제도권 미술계에서 새로운 미술 장르를 찾다가 거리예술을 돈을 주고 사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뱅크시는 자신의 작품을 길거리에 그리는 이유가 돈을 받고 그리는 그림이 아닌 누구나 경험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공공재 성격의 작품을 길거리에 그렸는데 이 뱅크시 작품이 수억원 대의 가격에 거래되는 모습을 씁쓸하게 봅니다. 

그러나 티에리는 그런 현대예술계의 헛점을 제대로 꽤뚫어 봅니다. 티에리는 기존의 이미지를 컴퓨터로 편집하고 살짝 왜곡하고 거기에 스프레이로 칠을 하고 대충 페인트 칠을 해서 자신의 작품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도 자신이 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조각가와 일러스트레이터 등을 알바로 고용해서 즉석에서 만들어 버립니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죠. 티에리는 말합니다. '제프 쿤스' 같은 세계적인 예술가도 그 사람이 직접 작품을 만들지도 심지어 자신의 아이디어도 아닌 작품도 있다고 말하면서 나도 그러면 왜 안되냐고 반문하죠. 그렇게 예술을 학교에서 전공한 것도 아니고 단지 어깨 너머로 본 예술을 직접 제조합니다.

그럼에도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팝아트에 거리예술인 낙서를 접목한 점이 좀 독특하다면 독특하죠. 그럼에도 이 다큐를 보는 사람이 실소한 이유는 작품을 너무 대충 만든다는 것입니다. 저렇게 만들어도 되나? 할 정도죠. 조악하기 그지없습니다. 티에리가 뭘 알겠어요. 대충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조수들이 다 만들어주는데요. 그래서 전 저 전시회 망하겠구나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티에리는 전시회 전에 자신이 도와줬던 거리예술가들에게 코멘터리를 부탁합니다. 뱅크시는 대충 써서 보내줬는데 티에리는 거물 뱅크시의 별 의미도 없는 코멘터리를 대형 현수막으로 만들어서 거리에 겁니다. 그 뱅크시의 코멘터리를 본 방송국과 지역 일간지 등이 취재를 시작했고 LA위클리는 올해에 놓칠수 없는 전시회로 극찬을 합니다. 

여기에 티에리는 미스터 브레인워시라고 필명을 사용하고 미술계에 등단을 합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초대박이 납니다. 전 재산을 걸어서 전시회를 초대형으로 기획 전시했는데 그 돈을 다 회수하고도 남을 돈을 법니다. 작품은 불티나게 팔립니다. 순간 멍해졌습니다. 아!!!! 이건가? 이게 현대미술인가?



현대미술을 실컷 조롱한 뱅크시

미술전이나 사전전에 가면 가끔 느끼는 것은 별 것도 아닌데 이렇게 인기 많은 이유가 뭘까? 할 때가 있습니다. 한 해외 유명 젊은 사진작가의 전시회의 줄이 엄청나게 긴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저 사람들은 뭘 알고 저 사진을 보는 것일까? 아니면 유명하다니까 유명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보는 것일까? 저 유명 사진작가가 만들어진 사진작가라면 어떤 생각이 들까? 

백남준의 말처럼 예술은 다 사기라는 말이 절실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내가 보기엔 똥 같은데 큐레이터는 된장이라고 하기에 다들 된장 냄새가 구수하네요라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들때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내 생각을 입밖으로 잘 내지 않는 이유는 그래도 전문가들이 잘 검증해서 전시하는 것이니 뭔가 가치가 있겠지라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다큐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는 이런 제 기대를 다 허물어 버립니다.

티에리 아니 미스터 브레인워시(이하 MBW)의 작품 제조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보면서 저렇게 아무 것도 없는 사람도 인기 예술가가 되는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현대예술이라는 것이 언론 한 스푼, 전문가 한 스푼, 유명 예술가 후원 한 스푼, 전시 기획자 한 스푼, 갤러리 한 스푼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생각되어지네요. 

이에 뱅크시는 확답을 피합니다. 티에리 아니 MBW가 천재일 수도 있고 예술은 사기라고 할 수도 있고 여러가지 판단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죠. 그리고 이 다큐의 감독 이름을 보고 또 한 방 충격을 먹었습니다. 전 뱅크시를 다룬 다큐라서 다른 다큐감독이 만든 줄 알았는데 감독이 뱅크시입니다. 


뱅크시는 사회도 비판하지만 기성 예술계도 싹다 비판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영국의 한 박물관에 자신이 장난질한 그림을 중간에 넣었는데도 그걸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서 현대인들의 허위의식을 떡실신 시켜버립니다. 

그리고 이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라는 다큐를 세상에 선보여서 만들어진 신화인 티에리 아니 MBW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죠. 이 다큐가 세상에 공개되자 MBW에 대한 논란이 심했다고 하죠. 많은 사람들이 현대 미술의 민낯을 보고 자신들의 허위와 미술계의 허술한 생태계를 지켜 봤습니다. 물론, 티에리가 천재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제 시선이 정답은 아니고 꼰대 같은 시선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 빛이 나는 것 보다는 온갖 치장을 하고 꾸며서 아름답게 빛나는 인공성이 너무나도 강한 모습이 과연 예술일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자연 미인이라서 칭송했는데 의느님인 성형 원장님 버프를 받은 인공 미인이라면 우리는 상관없어 인공미인이면 어때라고 할까요. 아! 속았다라고 할까요.



뱅크시는 자신을 도와줬던 MBW의 성공 과정을 세상에 보여주면서 다큐로도 세상 그것도 현대 미술을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그런데 이런 비판적인 시선을 담은 다큐를 티에리는 왜 허용을 했을까요? 아니 허용하지 않았는데 뱅크시가 지 맘대로 공개한 것일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단 유명해지면 모든 이야기가 자신의 명성을 앗아가는 것이 아닌 명성을 더 높게 만듭니다. 노이즈도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현대미술이자 팝아트라고 생각하니까요.

MBW는 마돈나의 베스트 앨범 커버 제작을 의뢰받는 예술계의 거물이 됩니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 티에리의 작품을 칭송합니다. 

후반부에는 너무 웃으면서 봤네요. 그런데 그 웃음 뒤에 씁쓸함이 한 줄기 흘러 나옵니다. 우리의 허위와 허세가 현대미술의 주요 원료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되네요. 오늘도 유명 사진작가 그것도 해외 유명 사진작가 사진전에 줄이 길게 서 있을 것입니다. 해외의 유명 화가 전시회에 아이들을 데리고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건 하나 묻고 싶네요. 정말 그 작품에 뭔가 크게 느껴서 직접 보고 싶은 것인가요? 유명하니까 보러 가는 것인가요?
뱅크시는 우리 안의 허세와 현대예술의 허위를 거리의 낙서가 아닌 다큐로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우리 안의 현대예술은 건강한가요? 혹시 만들어진 영웅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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