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촬영상, 각본상, 여우주연상(케이트 블란쳇), 여우조연상(루니 마라)가 후보에 오른 영화 캐롤은 평론가들의 후한 별점을 받은 영화입니다. 평론가들이 극찬을 하는 영화를 자주 보고 공감하는 영화들이 많아서 평론가들의 평점만 믿고 선택한 영화가 캐롤입니다.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 캐롤
영화 캐롤은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요즘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많아서 소재가 주는 차별성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또한, 예전보다는 동성애에 대한 관대한 시선도 많아졌죠. 그럼에도 이 영화는 특별한 노출도 거의 없음에도 동성애라는 소재가 무척 불편했던 검열위원의 폭력으로 청소년 관람불가를 받았습니다. 영화 다 보고 나와서 검색해보고 청불 영화라서 깜짝 놀랬네요. 여전히 한국은 보수적인 나라네요.
동성애 영화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영화의 배경과 원작이 독특합니다. 스토리가 독특한 것은 아니고 놀랍게도 동성애 소재의 소설을 1950년대에 나왔다는 것입니다. 원작자는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가명으로 이 책을 출간했고 많은 동성애자들에게 고맙다는 편지를 받았다고 하죠. 소설의 배경은 1950년대입니다. 미국의 1950년대는 동성애라는 존재를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지만 세상이 인정하는 시대는 아니였습니다. 동성애가 죄악시 되던 시절이 배경인 것이 최근의 동성애 영화와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입니다.
첫눈에 반하다
운명적인 사랑은 첫 눈에 반하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테레즈(루니 마라 분)는 캐롤(케이트 블란쳇 분)을 보자 마자 눈길을 뗄 수 없었습니다. 여자가 여자에게 반하는 것을 처음 경험한 테레즈는 이 이상한 감정의 정체를 알지 못합니다. 캐롤은 어린 딸의 선물을 골라달라고 권하게 되고 두 사람은 그렇게 만나게 됩니다. 캐롤이 백화점에 놓고 간 장갑을 소포로 보내주면서 그 답례로 캐롤은 테레즈에게 점심을 사주죠. 이렇게 두 사람은 계속 만나게 되면서 서로에게 끌리게 됩니다.
캐롤은 유부녀입니다. 그러나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인 남편과는 이혼 상태이고 양육권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혼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숨막히는 씨월드 때문도 있고 남편의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도 있고 아내의 동성애에 대한 어렴풋한 의심 때문도 있습니다. 그렇게 양육권 다툼을 하다 남편이 어린 딸을 데리고 집에서 나가버리자 캐롤은 테레즈에게 함께 여행을 가자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두 여자는 사랑의 밀월을 떠나게 됩니다.
창 밖의 사랑
바라 볼 수 밖에 없는 사랑이 있습니다. 마음의 창인 눈이 저절로 그 사람에게 향합니다. 누군가가 사랑에 빠진 것을 확인 하는 방법은 시선을 보면 됩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 그 사람을 보게 되죠. 테레즈가 그랬습니다. 테레즈는 캐롤을 보자마자 시선을 고정시킵니다. 딸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고 나서도 계속 그녀를 쳐다 봅니다.
그러나 다가갈 수 없습니다. 캐롤을 사랑하기에는 세상의 편견이라는 벽이 너무나도 큽니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를 숨기면서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창 너머로 캐롤을 봅니다. 이렇게 창 너머의 캐롤을 바라보던 테레즈는 캐롤의 차에 타면서 캐롤이라는 성의 창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캐롤이 구축한 동성애라는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렇게 캐롤과 만날 때면 캐롤이 만든 창 안에서만 사랑이 가능했고 다시 외부 세계로 나오면 창 밖의 캐롤를 바라봐야만 합니다. 영화는 유리창이 꽤 많이 나옵니다. 상점 안의 창과 자동차의 유리창. 창을 통해서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고 함께하는 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영화 캐롤에서의 창은 세상의 편견입니다. 동성애라는 존재조차 희미했던 시절이기에 그 둘의 관계는 모든 것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무척 조심스럽게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다가갑니다.
말 보단 눈길로 담은 사랑의 여정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을 알지만 그걸 말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다만, 눈길로 서로의 감정을 전하고 확인합니다. 영화에서는 두 주인공의 눈을 클로즈업으로 자주 보여줍니다.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의 눈길은 사랑 그 자체입니다. 전 동성애를 반대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적극 지지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퀴어 영화 잘 안봅니다. 불편한 영화를 일부러 보고 싶지 않거든요. 이 불편함은 동성애 자체에 대한 불편함이 아닌 흔하지 않음이 주는 낯설음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좀 다릅니다. 동성애를 다루지만 낯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동성애라는 소재를 소비하거자 자극제로 활용하지 않고 진짜 사랑하는 두 사람, 운명적인 두 사람의 사랑이라고 느껴질만큼 두 배우의 캐미와 호흡과 연기가 엄청납니다. 특히 케이트 블란쳇의 엄마 같은 포근한 시선은 사랑 그 자체네요. 관객마다 감정 이입하는 배우가 다르겠지만 저는 루니 마라가 연기하는 테레즈에 감정 이입을 하게 되네요. 동성애의 세계를 잘 모르는 테레즈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는데 캐롤이 큰 역할을 해줍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캐롤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테레즈의 영화라고 느껴집니다.
캐롤은 자신을 성정체성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권리를 찾는 강단있는 여자로 나오고 이 캐롤이 만든 조그마한 울타리에 테레즈가 함께 합니다.
지루한 초반, 사랑스러운 후반
호평이 가득한 영화지만 1950년대 소설이라서 그런지 영화의 리듬이 너무 느리고 지루합니다. 전반부에는 연신 하품을 하면서 시계를 여러 차례 들여다 보게 되네요. 두 사람이 사랑을 피워가는 과정에서 이렇다할 에피소드도 큰 변화도 없습니다. 그러다 두 사람의 사랑의 밀월 여행을 떠난 후 격정적인 사건이 터집니다. 세상 사람들이 터부시 되는 동성애를 알아 버린 것이죠.
이렇게 세상 사람들이 만든 유리창 너머로 두 사람은 내동댕이쳐지게 됩니다. 세상이 만든 편견이 오히려 하나의 울타리가 되어갑니다. 이 영화는 생각보다 흥미로운 영화도 그렇다고 무척 아름다운 영화도 아닙니다. 영화 전반부가 너무 느리게 진행되고 1950년대 공기를 제대로 느끼게 해주지만 빼어난 장면도 없습니다. 여기에 영화적 재미도 아주 크지 않아서 대중성도 낮습니다. 따라서 전 적당한 대중성과 큰 느낌을 주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느낌은 크지 않네요. 아마도 제가 기대가 컸나 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 캐롤은 두 배우의 열연이 눈에 아른거리네요. 아마 영화 보고 나오면 두 배우의 눈길만 기억 날 듯하네요.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느낌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우리가 타자화 하는 동성애를 간진한 사람들도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렬하게 느끼게 해주는 영화입니다.
바라 볼 수 밖에 없는 운명적인 창 밖의 동성애를 기품있게 담은 영화 캐롤입니다.
별점 : ★★★
40자평 : 바라 볼 수 밖에 없는 창 밖의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