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쩐다. 이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습니다. 며칠 전에 2015년 올해의 영화 TOP10 포스팅을 쓴 상태에서 TOP10 안에 들어갈 만한 영화가 또 등장했습니다. TOP10 중에 5위권 안에 들어갈 만한 아주 빼어난 수작을 2015년 연말 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에서 봤습니다. 그 영화의 이름은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입니다.
연극과 같은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영화가 시작되면 인기 스타인 마리아 엔더스(줄리엣 비노쉬 분)과 비서 발렌틴(크리스틴 스튜어트 분)이 스위스의 작은 도시로 향하는 기차에서 스케쥴 조정을 하고 있습니다. 왕년에 잘나가던 스타였지만 나이가 들어 중년 배우가 되어버린 마리아는 자신을 대스타로 만들어준 감독의 영화들을 상영하는 영화제에 참석하러 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기차 안에서 감독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됩니다.
감독의 영화제는 회고전이 되어버립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꽃과 같던 시절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그 이야기를 친구 같이 편한 비서 발렌틴과 함께 나눕니다. 그런데 이 영화제에서 클라우스라는 영국의 유명 연극 감독에게 흥미로우면서도 아주 거북스러운 연극 출연 제안을 받습니다.
자신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준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에 출연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말로야 스네이크'라는 연극은 단순한 소재가 아닌 그 연극 내용 자체가 하나의 영화라고 할 정도로 영화에서 아주 비중있게 다룹니다. 어떻게 보면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가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라는 노른자를 둘러싼 흰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
영화가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퍼즐 같아서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만 따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의 제목은 알프스 산맥의 이탈리아 부분 호수에서 만들어진 구름이 스위스 실스마리아로 넘어오는 과정을 산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뱀처럼 꿈틀 거리는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그 구름의 이름을 '말로야 스네이크'라고 불렀습니다. 영화에서는 이 말로야 스네이크라고 불리는 구름을 흑백과 컬러로 보여주는 꿈결 같다고 할 정도로 경이로운 구름을 클래식 음악과 함께 보여줍니다
그러나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내용은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젊은 여비서인 시그리드와 40대의 직장 상사인 헬레나는 연인 관계입니다. 두 사람의 위험한 사랑은 시그리드가 헬레나를 이용해 먹고 버리면서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헬레나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마리아는 이 시그리트 역을 통해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지만 헬레나 역을 맡았던 배우는 연극이 종연되고 연극처럼 실제로 자살을 합니다. 이 연극을 클라우스 연극 감독이 마리아에게 시그리트가 아닌 헬레나 역으로 제안을 합니다.
흥미로운 제안이지만 여간 껄끄러운 제안이 아닙니다. 자신과 대척점에 있는 헬레나 역을 하는 것에 대한 심한 거부감을 보이지만 동시에 약간의 매력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제 나이도 헬레나 나이가 되었고 예전처럼 큰 인기를 끌지 못하는 늙은 배우라서 이목도도 예전보다 많이 떨어졌습니다.
비서 발레틴의 펌핑질도 한 몫했죠. 비서 발렌틴은 아주 유능한 비서로 마리아에게 일을 소개하기도 하고 연극 연습 상대역과 술친구 등 마리아의 모든 것을 지원합니다. 영화는 이 연극 '말리야 스네이크'의 내용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소개합니다. 비서인 발렌틴과 마리아는 클라우스 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연극 연습을 시작합니다. 마리아는 연극 연습을 하면서 수시로 헬레나라를 이해할 수 없다면서 짜증을 냅니다.
이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과정이 자신의 비서인 발렌틴에게 하는 속마음인지 연극 속의 시그리트에게 하는 것인지 구분이 안 갑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 대사는 발렌틴에게 하는 것인가 연극 대사인가?라고 헛깔리더군요. 이렇게 영화는 아주 교묘하게 역할 일치를 유도해서 착시 현상을 일으킵니다.
3개의 연극을 보는 듯한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이 영화에 제가 놀란 것은 어떤 것이 연극 내용이고 어떤 것이 배우의 속마음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아주 정교하게 셋팅을 했습니다. 하나의 영화에서 무려 3개의 연극을 보는 느낌입니다.
첫째로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라는 연극을 영화 전편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둘째로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에서 헬레나 역할을 맡는 마리아와 헐리우드의 악동인 조앤(클로이 모레츠 분)이 시그리트 역을 맡는 영화 전체가 하나의 연극 같습니다. 실제로 영화는 연극처럼 1장 2장 에필로그 식으로 연극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자신을 키워준 연극에서 상대역을 맡고 새로운 신성이 시그리트를 맡는 모습을 통해서 하나의 별이 떴다가 지는 모습을 잘 담고 있습니다. 꽃이 시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고 나이들면서 관점의 변화가 생기는 것도 절묘하게 보여줍니다.
세번째 연극은 3명의 여배우의 실제 삶이 투영된 연극입니다.
이 영화는 3명의 여배우의 삶을 알고 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배우 '줄리엣 비노쉬'는 프랑스의 대표 여배우입니다. 이 비노쉬를 처음 봤을 때 어쩌면 저렇게 예쁜 배우가 있을까? 할 정도로 꽃처럼 아름다웠죠. 그런데 현재는 헐리우드 영화나 프랑스 영화 등 주연보다는 조연으로 많이 출연합니다. 이런 모습 자체가 영화속 마리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에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유부남 감독과 염문을 뿌려서 엄청난 여론의 지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조앤이 바로 유부남 소설가와 바람을 피는 역할로 나옵니다. 섭외를 할 때 크리스틴이 조앤역을 제안했지만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거부를 합니다.
영화 자체가 줄리엣 비노쉬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삶을 관찰한 분이 쓴 시나리오가 아닐까 할 정도로 두 배우의 실제 삶을 소재로 해서 영화가 영화를 넘어서 영화 밖의 배우의 삶까지 투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3개의 연극을 보고 있노라니 영화가 영화 밖의 배우들의 삶까지 다루는 환희를 느끼게 해줍니다.
이런 모습 때문에 제가 이 영화를 감탄하면서 봤습니다. 어쩜 이런 영리하고 능숙하며 아름다운 영화가 다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가 아름답다고 한 이유는 실제로 스위스 실스마리아의 아름다운 풍광을 수시로 보여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괄목할만한 뛰어난 연기도 큰 역할을 합니다.
배우는 어떤 삶이 진짜의 삶일까?
영화 '홀리모터스'는 12개 이상의 가면을 쓰고 사는 연극 배우의 삶을 하루에 담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홀리모터스가 자꾸 생각나네요 마리아는 자신이 젊은 시절 연기했던 시그리트 역에 헐리우드의 악동 조엔이 캐스팅 되었다는 소리에 구글링을 해서 조엔의 사진과 인터뷰 동영상을 봅니다. 그리고 그걸 보고 조엔을 알아갑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배우나 한 번도 만날 기회가 없는 셀럽들을 보는 방식이죠. 사진에 찍히고 동영상에 담긴 배우들이나 셀럽들의 모습이 실제 그들이 진짜 모습일까요?
마그리트는 공연 연습을 하기 위해서 조엔을 호텔 로비에서 만납니다. 그런데 인터넷과 달리 조엔은 아주 겸손하고 선배를 깍득하게 대우해주고 자기 주장이 강한 똑부러진 절은 배우였습니다. 그럼 이 싸가지 있는 조엔이 진짜 조엔일까요?
영화는 배우들의 삶을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영화나 연극 속 배역의 삶과 메스미디어를 통해서 보는 배우들의 삶 그리고 카메라가 꺼진 뒤의 실제 배우들의 삶을 영화에 다 담습니다. 그것도 그냥 담는 게 아닌 아주 세밀하고 정밀하게 잘 담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형식미와 주제 전달 그리고 배우들의 실제 삶이 투영되면서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느낄 점이 풍성해집니다. 마치 실스마리아로 다가오는 뱀처럼 빠르게 흐르는 구름처럼요.
실스마리아의 구름이라는 영화 제목처럼 구름 속을 걷다 나온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별점 : ★★★★
40자평 : 연극과 영화 그리고 영화 밖의 배우의 삶까지 영화의 재미로 만들어버린 영리하고 아름다운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