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는 2종류가 있습니다. 사회, 정치, 경제가 메인이 되는 일반 신문과 연예인, 스포츠, 국내외 가십 뉴스가 메인이 되는 스포츠 신문이 있습니다.
두 신문 중에 어떤 신문이 더 인기가 많을까요? 단연코 스포츠 신문이 인기가 많습니다. 대학생 시설 교실에 일반 종이 신문과 스포츠 종이 신문이 누가 들고 들어오면 스포츠 신문은 너덜너덜할 정도로 많이들 돌려 읽는데 반해 일반 신문은 몇 명 읽다가 많습니다.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스포츠 신문을 더 선호합니다. 저 같이 심각한 이야기 좋아하는 저 조차도 스포츠 신문에 실린 기사들을 더 많이 읽는데요.
연성 뉴스에 중독된 세상
위에서 말한 일반 뉴스의 기사들을 안 읽는 이유는 무겁기 때문입니다. 심각하고 무겁고 기본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오롯하게 이해가 가는 기사들입니다. 이런 뉴스를 경성 뉴스라고 합니다. 반면 '짧아도 너무 짧은'이라는 접두어가 있는 여자 연예인 몸매 사진, 국내외 연예인들의 추문과 스포츠 스타들의 활약들은 가볍습니다. 딱 읽으면 시원하고 자극적으로 짜릿하고 바로 바로 이해가 됩니다. 여자 연예인 몸매 이해하는데 무슨 기본 지식이 필요합니까? 이해하는데 오래 걸리나요? 이런 뉴스를 연성 뉴스라고 합니다.
연성 뉴스 달달하고 좋죠. 정치 뉴스 같이 당파적인 댓글을 안 봐도 되고요. 그래서 우리는 흔하게 그렇게 말하잖아요.
"여기서 정치 이야기 좀 하지마" 정치 이야기를 하지 말하는 이유는 공통 관심사가 아닌 니편, 내편으로 나눠서 언쟁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사회적 풍토 때문에 정치 뉴스는 혼자 섭취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 이야기는 언쟁일지라도 계속 대화를 해야 합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올바른 토론 문화가 없기 때문에 정치 뉴스 자주 읽는 저도 추천하기 힘듭니다.
연성 뉴스 얼마나 좋아요. 짧은 치마 입은 여자 배우 사진 보고 남녀노소 모두 우와~~~라고 감탄하고 유머 동영상을 보면 모두 깔깔거리고 웃고요. 연성 뉴스는 사랑스럽고 선하고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최근에 이런 연성 뉴스가 엄청나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인 위키트리와 피키캐스트 그리고 인사이트 같은 연성뉴스 전문 중계 사이트들입니다. 여기에 SBS도 연성뉴스를 전문으로 하는 스브스 뉴스(가끔 경성 뉴스도 하지만)가 등장했습니다.
사회의 이면을 보지 못하는 연성 뉴스의 폐해
배고픈 길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어떤 아가씨를 담은 연성 뉴스를 보고 우리는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아가씨의 따스한 마음씨에 포근함을 느낍니다. 대표적인 흔한 주변의 미담을 담은 연성 뉴스입니다.
그런데 이런 연성 뉴스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현상의 결과물만 보고 그 결과물만 섭취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왜 일어났는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만약 경성 뉴스였다면 배고픈 길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아가씨 미담을 소개하면서 현재 서울시에 있는 길 고양이 개체수를 소개하고 길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 올바른 행동인가에 대한 분석을 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길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반대하는 시민들도 꽤 많습니다. 그럼에도 사회적 합의로 길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문화를 확산해야 한다고 판단되면 어떤 행동을 시민들이 해야 하는 지도 알려주고 길 고양이와 함께 사는 지자체의 성공 사례를 담은 글을 통해 길 고양이를 만나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좋은 지도 알려줬을 것입니다.
그러나 연성 뉴스는 이런 어떤 현상의 결과물만 간단하게 스케치하지 그 사건 사고의 이면을 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자극적인 장면만 모아서 하나의 콘텐츠를 만드는 연성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교통사고 장면만 담은 영상물이나 강아지 고양이의 귀욤 떠는 행동만 짜깁기 해서 만든 연성 뉴스가 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지배하고 호령하고 있습니다.
어제 하루 종일 화제가 되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손을 김연아가 불편해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저게 왜 저렇게 중요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별 것도 아닌데요. 그러나 우리가 연성 뉴스에 묻혀 살다 보니 사소한 것에도 과도한 에너지를 쏟고 있는 듯하네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게 하지 못하고 현상들의 결과물에만 열광하는 경박한 우리들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 연성 뉴스입니다. 연성 뉴스 중독자들은 좀 더 자극적이고 짜릿하고 간단하고 이해하기 편한 뉴스만 찾게 됩니다. 이런 연성 뉴스에 묻혀 살다 보면 평생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지 못합니다.
연성 뉴스만 섭취하는 대학생들
4.50대 분들이 흔하게 하는 대학생 질타 시선은 우리 때는 머리에 빨간 띠 두르고 독재 정권과 맞서서 내가 아닌 세상을 위해서 싸웠다고 열변을 토하면서 니들은 지금 세상에 관심이나 있냐고 질타를 합니다.
저는 그런 흔히 말하는 386 분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분들의 이타정신은 인정하지만 80년대 이념 과잉 시대에 북한이 무슨 지상낙원인양 찬양하는 노선은 극도로 혐오합니다. 이 386분들이 지금의 20대를 질타하기 전에 항상 하는 말이 있죠.
"세상에 관심 좀 가져라"
이 말은 맞는 말입니다. 지금의 20대 분들 세상에 너무 관심이 없어요. 그렇다고 20대를 질타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20대가 세상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만든 세상을 만든 세대가 바로 지금의 40대 이상 기성세대들이니까요.
모르긴 몰라도 80년대에 현재처럼 대학을 졸업해도 태반이 취직을 못하는 시대였으면 화염병 대신에 토플책 끼고 도서관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당시는 3년 내내 시위를 하고 4학년 때 반짝 공부하면 대부분은 취직이 되던 시절이었죠. 먹고사는 것이 해결되었으니 다른 사람이 사는 모습과 이타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대학생들의 독재정권 타도!는 거룩한 행동이었습니다. 이는 우리들이 보고 배워야 할 행동입니다.
다만, 우리가 이랬으니 너희들도 이타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는 계몽적인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습니다.
사회에 무관심한 대학생들.. 70%가 "뉴스, 안 보거나 가십거리로 소비" 기사보기
위 기사를 보니 아쉽고 씁쓸한 생각도 들면서 동시에 제 20대가 생각납니다.
사회에 무관심한 대학생들을 질타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 또한 20대에는 뉴스에 관심 없었습니다. 여자 꽁무니 쫒아다니는 것이 주요한 생활이었지 정치, 경제에 관심 없었습니다. 대통령이 누군지만 아는 정도였죠.
그런데 제가 정치와 경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직장을 다니고 세금을 내면서부터입니다. 내가 번 돈을 세금으로 많이 뜯어가는데 그 세금을 정치인들이 애먼 곳에 쓰는 것에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내가 내는 세금을 주물럭 거리는 사람들이 고위공직자와 정치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의 행동을 감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공부했고 경성 뉴스를 꾸준히 읽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어느 정도 깨닫게 되더군요
이렇게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따라서 20대들이 연성 뉴스만 섭취하고 사회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이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다만, 90년대의 제 20대와 달리 현재의 20대는 다릅니다. 뭐가 다르나고요? 고통의 깊이는 같을지 몰라도 고통의 양이 커졌습니다. 7포 세대라고 하죠.
7포 세대란?
취업, 연애,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
취업, 연애, 출산, 내집 마련, 인간관계를 포기한 5포세대
취업, 연애, 출산, 내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까지 포기한 7포세대
90년대 제 20대는 저 중에 포기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비록 IMF의 직격탄을 최전선에서 맞은 총알받이 세대이고 IMF라는 엄혹한 시절이었지만 저기서 포기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7개를 포기한 20대가 되었네요. 누굴 탓하겠습니까? 이런 세상을 만든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40대 이상 기성세대들이 문제죠. 하지만, 세상만 탓할 수 없습니다. 20대 분들도 뭔가를 해야 합니다.
연성 뉴스만 섭취하지 말고 뭉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20대가 되었으면...
20대들에게 안 좋은 뉴스만 나옵니다. 20대들에게 안 좋은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정치인들입니다.
그거 아세요? 요즘 여당을 포함 야당까지 젊은 층에 대한 관심보다는 노년층을 위한 정책을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20대들에게 관심을 끊어 버린 듯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드라마 '프레지던트'의 최수종의 대사처럼 정치인들은 국민이 아닌 투표하는 국민에게 관심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20대는 68.5%, 50대는 82%였습니다. 정치인 입장에서 2,30대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보다 5,60대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 예전보다 20대 투표율이 많이 오른 것은 고무적입니다. 그러나 더 올려야 합니다. 그래야 정치인들이 20대를 챙겨줍니다.
더구나 전 세대 중에 가장 고통받고 있는 사다리 밑에 있는 세대가 20대 아닙니까? 이렇게 가다가 일본처럼 평생 알바만 전전하다 결혼도 못하고 늙어가는 프리타족이나 아버지 재산으로 먹고사는 니트족이 넘쳐 날 것입니다. 이미 그런 흐름은 시작되었지만 앞으로는 더 심해집니다.
투표 결과가 20대가 원한 결과가 아니라고 해도 낙심할 필요 없습니다. 대학생들이 뭉쳐서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아픈 표정만 하면 누가 도와주지 않습니다.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야 주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도와줍니다.
지금의 20대들은 비상 계단에서 굴러서 온몸을 데굴데굴 구르면서도 비명을 지르지 않기 때문에 누구 하나 비상구를 열고 다친 20대를 보지 못합니다. 생각나세요? 2011년 이명박 정권 때 대학반값등록금 대학생 시위를 했었습니다. 드디어 참다 못한 대학생들이 폭발하나 했고 기대가 컸습니다. 드디어 20대가 자기 목소리를 내는구나 했습니다.
이 대학생들이 시위에 놀란 이명박 정부는 전국 대학에게 매년 물가상승률보다 오르는 대학등록금을 동결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합니다. 이에 대학교들은 등록금 동결을 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흐름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특히, 18대 대선에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대학교 반값등록금을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나라 경제가 어렵다면서 대학교 반값등록금 공약은 2013년 2년 후로 연기를 합니다. 보통 이렇게 공약을 어기면 이해당사자인 대학생들이 또 다시 모여서 공약 연기에 대한 항의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시위도 없었습니다.
정년 연장도 프랑스에서는 대학생을 넘어서 고등학생까지 길거리 시위를 해서 겨우 철회를 시켰는데 한국은 아무런 저항도 없었습니다. 정년 연장을 하면 그 피해는 20대들이 받습니다. 정년 연장이 되니 당연히 신입 직원을 덜 뽑거나 안 뽑게 되죠. 이에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통해서 청년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하는데 자본이 청년을 어여삐 여겨서 청년 고용을 늘릴까요? 오히려 임금피크제를 적극 활용해서 신입 직원은 안 뽑고 임금이 깎인 기존 근로자를 그대로 굴리죠
정부가 청년 일자리 늘린다고 하던 말던, 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을 수십 조 쌓아 놓고 안 쓰던 연성 뉴스가 섭취하는 20대들이 많으면 권력을 쥐고 흔드는 자들의 입맛대로 세상은 흘러갑니다.
분명, 20대에게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쉽게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해도 머리만 아픕니다.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다만, 현재의 20대는 역사상 가장 고통받는 20대들입니다. 그럼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에 대한 관심을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늘려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20대들이 고통스럽지만 참고 견디는 이유는 50대 이상의 부모님들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사육당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엄마 아빠가 벌어온 돈으로 생활하다 보니 얼마나 사는 게 힘든지 잘 모르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엄마 아빠의 품이라는 보호막을 떠났을 때 부모님이라는 몰핀이 사라진 후의 고통 가득한 세상이 20대 앞에 놓여질 것입니다.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연성 뉴스도 읽으돼 더불어 경성 뉴스도 읽으면서 세상을 바라봤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