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세상에대한 단소리

빙봉과 종이접기 아저씨에 우리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

by 썬도그 2015. 7. 28.
반응형

개봉하자 본 <인사이드 아웃>은  요 근래 본 영화 중 가장 뛰어난 영화였습니다. 올해 최고의 영화로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를 꼽지만 드라마가 가장 뛰어난 영화로는 <인사이드 아웃>을 꼽고 싶습니다. 촉이 좋은 <무한도전>은 지난주 방송에서 <인사이드 아웃>의 슬픔이와 기쁨이를 적극 활용하더군요

정말 대단한 영화이자 좋은 영화입니다. <인사이드 아웃>은 우리 머리 속을 5가지 감정이 콘트롤 한다는 기발한 상상으로 만들어진 픽사 애니메이션입니다.  많은 분들이 기쁨이가 정답이고 슬픔이는 오류나 오답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긍정은 정답, 부정은 오답이라고 채점을 하는 세상에서 살다가 슬픔이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요. 한국 사회는 항상 그러죠. 우울해하고 슬퍼하면 옳지 않아!라고 말하면서 외로워도 슬퍼도 우울해하거나 울지 말고 웃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슬플 때는 강제로 웃기 보다는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눈물을 흘려야 감정이 정화됩니다. 


그래서 라일이가 유년시절 상상으로 만든 캐릭터 빙봉이 슬퍼할 때 슬픔이가 자신의 어깨를 빌려주었고 빙봉이의 슬픔을 달랬습니다. 슬픔은 웃음이 아닌 눈물로 정화시킬 수 있습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서 대부분의 아이 손 잡고 영화를 보러 간 엄마 아빠들이 눈물을 흘린 것은 슬픔이, 기쁨이 까칠이, 소심이가 아닌 이 빙봉 때문입니다. 

빙봉을 10대 소녀 라일리가 유치원생 시절 만들어낸 상상의 캐릭터입니다. 유치원생인 라일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짜집기 해서 빙봉이라는 유쾌한 상상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코끼리 코에 돌고래 목소리에 큰 꼬리를 가진 빙봉은 슬프면 캔디 눈물을 흘립니다. 

엄마 아빠 관객들은 빙봉을 보고 자신들의 빙봉을 머리 속에서 끄집어 냈습니다. 행복하기만 했던 유년시절, 내가 세상의 주인공인 줄 알고 천둥벌거숭이처럼 까블락 거려도 내가 왕자와 공주이기에 모든 것이 허용되고 용서되던 그 유년시절의 수호신 같았던 빙봉을 머리 속에서 꺼내서 영화를 보는 내내 꺼이 꺼이 울었습니다.

물론, 저도 제 빙봉을 만나서 부둥켜 안고 울었습니다. 빙봉은 유년 시절 그 자체였습니다. 유년 시절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 <인사이드 아웃>은 아이를 즐겁게 해주려고 같이 보러 갔다가 부모님이 울고 나오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빙봉과 비슷한 실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마이텔의 김영만 종이접기 아저씨입니다. 


김영만 종이접기 아저씨를 잘 모릅니다. 90년대 초 대학시절 나른한 주말 TV를 키면 한 아저씨가 나와서 종이접기와 불어펜 광고를 하는 것은 봤지만 이 아저씨는 잘 몰랐습니다.  그냥 광고 모델인 줄 알았죠


그런데 이 아저씨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네요. 공중파를 거의 안 보기 때문에 마리텔(마이 리틀 TV)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마리텔에 나온 김영만 종이접기 아저씨의 등장에 시청자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를 보고 뜨악했습니다.

아니! 이분이 누군데 등장만으로 눈물을 흘리나? 그래서 페이스북에 물어 봤습니다. 이분 어디서 나왔냐고 물었더니 90년대 초 KBS TV유치원 하나둘셋에서 출연했다고 하네요. 지금의 30대 분들이 초등학생이던 시절에 종이접기로 90년대 초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을 즐겁게 했나 봅니다. 

저는 당시 20대라서 김영만 아저씨에 대한 추억이 없지만 제 바로 밑에 분들이 이 아저씨에 대한 추억이 가득하군요. 
저는 왕영은, 길은정, 김병조, 이용식의 뽀뽀뽀 세대입니다. 그런데 좀 특이했습니다. 내 유년 시절의 연예인 또는 유명인이 TV에 나왔다고 해서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30대 분들은 눈물을 흘리네요. 김영만 아저씨가 마리텔에서 "어른 됐으니 쉽죠?"라는 말에 실시간 댓글로 어른이 되어서 쉽지 않다면서 ㅠ.ㅠ라는 온라인 감정도구를 꺼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현재의 30대들이 김영만 아저씨에 울컥하는 이유는 그 당시 시대상을 이해해야 할 것 같네요

1997년 한국은 큰 사고가 납니다. 성장통 같은 IMF를 맞이하죠. 당시 기억하는 40대 이상의 나이를 드신 분들은 잘 아실 거예요 . 자고 일어나면 TV광고를 하던 큰 기업들이 부도 처리가 되던 시절이었죠. 정말 살벌했습니다. 물론, 저도 그 IMF때 직격탄은 아니지만 유탄을 맞고 회사에서 짤렸습니다.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는 부도가 나서 친구는 원치 않는 이민을 해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1997년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이던 세대가 지금의 30대입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 가장 먼저 줄이는 것이 문화에 쓰는 돈입니다. 영화, 책을 사는 돈을 확 줄이죠. 지금의 30대들은 문화 생활을 넉넉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유일한 문화 도구는 TV였죠. KBS TV유치원은 당시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에게는 친구였습니다. 1998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TV유치원 하나둘셋에 나왔던 김영만 아저씨는 친구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아니 김영만 아저씨는 빙봉이었습니다. 유년 시절 기억의 1할 이상을 차지한 빙봉이었습니다. 우리가 빙봉과 김영만 아저씨에게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빙봉과 김영만 아저씨 자체에게도 있지만 그 시절 그 자체 때문입니다. 제가 어른됨을 느낀 것은 나이가 20살이 넘어서가 아니였습니다. 

어른됨의 시작은 두려움이었습니다. 평상시에는 느끼지 못한 두려움이 계속 밀려왔습니다. 그 두려움의 파고를 찾아가보니 그 끝에는 책임이 있더군요. 천둥벌거숭이 같이 지내던 시절은 책임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뭘 해도 책임은 내가 아닌 부모님에게 갔습니다. 그런데 내 행동의 모든 것이 나에게 향하고 내가 짊어져야할 것들이 많아지면서 두려움이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아이를 낳으면 이 책임감의 피크는 최고로 달합니다. 
아이가 주는 기쁨에 천국을 맛보지만 동시에 아이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어깨가 묵직해짐을 느낍니다. 그런 엄혹한 현실 속에서 부모가 아이였을 때를 살며시 떠올립니다. 그 유년시절의 앨범에는 빙봉과 김영만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새벽녘 보채는 아이를 재워 놓고 출근을 앞둔 새벽에 추억의 앨범을 들추다가 빙봉과 김영만 아저씨를 보고 눈물을 뚝뚝 흘리게 됩니다.



김영만 아저씨는 현재의 30대들과의 접속 암구호를 코딱지라고 했나 보네요. 가장 성공한 코딱지인 신세경이 나와서 많은 감동을 줬습니다. 전 마리텔도 보지 않고 김영만 아저씨에 대한 추억도 없지만 제가 공감하는 이유는 저도 빙봉과 같은 존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방황하던 라일리는 가출을 합니다. 가출을 할 때 라일리가 멈칫했던 것은 추억 때문입니다. 아빠와 엄마와 함께했던 추억. 그 추억이 우리가 인생이란 궤도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훌륭한 제동장치가 되고 조향장치가 됩니다. 

기쁨이 선이고 슬픔은 오답이었던 그 유년 시절을 지나면 세상은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고 5개의 감정이 아닌 5가지 감정이 섞이면서 만들어내는 일곱 빛깔 무지개보다 찬란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가질 때 어른이 되는 것을 관객에게 알려줍니다.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어른이 되었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유년 시절의 행복했던 추억입니다.

유년 시절의 코딱지 같은 친근하면서 말만 들어도 웃어버리는 그런 존재가 빙봉과 김영만 아저씨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