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영화계 키워드 중 첫손가락으로 꼽고 싶은 '키워드'는 <사회 고발성 영화의 증가>입니다
2월에 개봉한 <또 하나의 약속>은 거대 대기업 공장의 열악한 근로 환경과 처우에 대한 울분을 담았고 한 지방 도시에서 일어난 참혹한 집단 성폭력을 담았습니다. 이런 흐름은 비단 올해만의 일은 아닙니다. 2013년에도 <변호인>, <집으로 가는 길>, 2011년 <부러진 화살>, <도가니> 등 많은 사회 고발성 영화가 있었지만 2014년은 사회의 부조리를 직설적으로 담은 영화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사회가 그만큼 혼탁해졌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여기 또 하나의 사회 고발성 영화가 지난 11월 13일 개봉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비정규직 문제를 담대하게 담은 영화 카트
영화 <카트>는 2007년 한 대형 마트에서 계산원과 청소원으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나긴 노동 운동을 담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영화 카트는 선희(염정아 분)와 혜미(문정희 분)라는 계산원과 순례(김영애 분)라는 청소원으로 주축이 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부당한 해고에 대한 집단 항의를 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입니다.
선희와 혜미라는 두 여성 노동자를 통해서 평범한 아줌마들이 어떻게 노동 운동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게 되는 지를 아주 담담한 톤으로 담고 있습니다. 보통, 이런 사회 고발성 영화들은 주인공의 힘든 삶과 그 삶을 이겨 내기 위한 고군분투를 담으면서 후반에 거대한 권력이라는 악에 대한 통쾌한 승리를 담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 <카트>는 그런 뻔한 통속적인 신파극으로 담지 않습니다.
영화 <카트>는 우리가 사는 현재의 삶을 하나의 가감 없이 담백하게 담고 있는데. 이는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하나의 메시지라고 생각됩니다. 주인공이 승리하고 정의가 승리한다는 수많은 복제 된 이미지 같은 대중 영화들이 참 많고 그런 영화들은 높은 확률로 흥행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 <카트>는 그런 보장 된 성공보다는 단 하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뻔하지만, 맛 좋은 가공 된 이야기를 제거하고 눈뜨고 보기 힘들지만, 비극보다 더 비극 같은 우리네 삶을 끊임 없이 보여줍니다. 그게 참으로 견디기 힘듭니다. 그럴 때 마다 제 눈에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자본이라는 거대한 괴물에 맞서는 용기 있는 엄마들의 이야기
"누군가의 죽음보다 문턱에 찧는 내 발가락이 더 아픈 법이니까" - 웹툰 미생 사석 2화 중에서 -
대부분의 사람이 뉴스에서 보도하는 노동자들의 파업을 남의 일로 생각합니다. 오늘도 수많은 노사 분규 또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파업을 해도 큰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내 일이 아니니까, 남의 일이니까'라는 생각으로 애써 외면하면서 삽니다. 그러나 그 뉴스 속 억울한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면 주변에 손을 내밉니다. 그러나 수많은 과거의 내 모습을 한 사람들이 무관심하게 봅니다. 실제적인 절망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나의 억울함은 도와 달라는 비명에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때 절망의 늪이 시작됩니다. 영화 <카트>는 부당한 정리 해고를 당한 여성 노동자들이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와 손을 잡고 장기 투쟁을 합니다. 그 장기 파업을 하면서 편의만 있고 살가움이 없는 여사님이라는 호칭을 걷어내고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서로의 관심이 없고 관심을 가질 시간적 여유도 없었던 서로의 과거와 대형 마트에서 벗어난 서로의 삶을 공유하면서 사람 사는 모습을 복원해 갑니다.
그러나 세상의 시선은 차갑기만 합니다.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긴 파업 속에서 이탈하기 연대의 줄이 점점 느슨해지기 시작합니다.
자본이라는 괴물에게 이기려면 아주 긴 시간이 필요로 합니다. 자본은 그 시간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약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대형마트 측은 이런 노동자들의 장기 파업에 크게 당황하기보다는 긴 장기전을 하면서 알아서 파업에서 떨어져 나가도록 방치합니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당장 먹고살아야 할 돈을 벌어야 하기에 시간을 끌면 끌수록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수많은 다른 자본가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중심을 흔들면 조직이 쉽게 와해 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런 자본가의 잔혹함과 간교함을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고 연대의 결계를 끊지 않는 아줌마들과 여성 노동자들의 힘든 노력들이 눈물겹게 그려집니다. 이 눈물겨움은 이 영화가 스크린을 넘어 현실로 그 고통이 번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영화가 영화 속 이야기이자 과거의 이야기였다면 제 눈가에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 속 이야기가 비록 과거의 한 노동 운동을 담았지만 그 이야기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연대의식이 사라진 사회에 대한 호소문 같은 영화
영화 <카트>의 단점은 이런 구구절절한 을(乙)들의 눈물만 있기 때문에 밋밋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한 대형마트의 장기 파업만을 영화로 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르죠. 관객은 그 사건 자체에는 마음 아파할 수 있지만, 그 이야기를 2시간 내내 끌고 가기에는 초반에 너무 쉽게 지칩니다. 또한, 노동자의 연대가 같은 대형마트의 직원들로만 퍼졌다면 그 온기가 관객석까지 연결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 <카트>는 선희(염정아 분)의 아들 태영(디오 분)을 통해서 이 온기를 횡이 아닌 종으로도 연결합니다.
엄마가 매일 파업 현장에서 밤 늦게 돌아오자 아들 태영은 엄마 몰래 편의점에서 알바를 시작합니다. 이런 아들이 편의점 점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 모습에 엄마는 아들 앞에서 부당한 대우에 대한 큰 소리를 내면서 기죽어 있는 아들에게 자신이 느낀 연대의 온기를 전해 줍니다.
아들과 딸을 위해서 갑작스러운 야근 지시에도 군소리 하나 없이 하던 선희는 그렇게 부당함에 맞서는 당당한 노동자가 됩니다. 선희는 세상에 외칩니다
"저희가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닙니다. 저희의 얘기를 좀 들어달라는 겁니다"
며칠 전 SBS 8시 뉴스멘트가 생각납니다. "우리 청소년의 남과 더불어 사는 능력은 36개국 중에 35등, 부모가 아이에게 남에 대한 관용을 가르치겠다는 62개국 중에 꼴찌. 세계 최고 교육수준을 가진 나라의 현실입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사회적 공감력이 떨어지다 못해 사라지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장기파업 끝에 목숨을 끊어도 돈을 더 받아 내기 위한 떼쟁이라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낮은 사회적 공감능력 속에서 사회적 연대의식은 꺼져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연대의식이 사라지고 있는 세상에 대해서 선희는 강력한 어조로 세상에 우리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염정아의 차분하면서도 뛰어난 연기력이 영화의 몰입감을 더 크게 해주다
배우 염정아를 다시 봤습니다. 이런 배우였나? 예전부터 연기를 힘 빼고도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가벼운 역할만 하는 배우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벼움이 이 영화의 시작에 잘 들어 맞았습니다. 사회에 관심 없고 세상에 관심 없고 오로지 두 자식들에 들어갈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한 평범한 엄마에서 점점 세상의 부조리함을 알게 되고 잘못된 일에는 단호하게 잘못 되었다고 따지는 엄마로 변해가는 과정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잘 담았습니다.
배우 염정아의 필모에서 세 손가락에 들어갈 영화라고 생각할 정도로 염정아는 뛰어난 연기를 보여줍니다. 여기에 혜미역의 문정희의 강단 있는 연기와 인기 아이돌 그룹 엑소의 디오의 순박한 중학생 연기와 같은 편의점 알바생으로 나오는 수경역의 지우, 한공주의 천우희와 우정 출연으로 나왔지만 아주 큰 힘이 되어준 김강우의 바른 모습도 참 보기 좋았습니다. 큰 사건 사고가 없어서 이야기의 높고 낮음의 편차가 심하지 않은 단조로움을 이 훌륭한 배우들이 그 빈틈을 메꾸고 있습니다.
만듦새는 뛰어나지 않지만 꼭 봤으면 하는 영화 <카트>
영화의 전체적인 만듦새는 아주 뛰어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게 비록 현실이라고 하지만 어느 정도 관객이 느끼는 희열 같은 것도 거짓을 만들지 않는 선에서 넣었으면 어떨까 할 정도로 영화는 시종일관 힘든 삶의 모습이 많이 보여집니다.
영화 <한공주>만큼은 아니지만, 영화 상영하는 2시간은 힘을 들이고 봐야 했습니다.
중간중간 코믹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계란으로 바위를 깨야 하는 암울한 현실이 계속 펼쳐지기 때문에 영화적인 재미는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영화는 재미를 위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닌 사회적인 감수성을 일깨우는 각성제 같은 쓴 약 같은 영화입니다. 이런 영화가 마중물이 되어서 해체되어가는 사회적 연대의식이 다시 불타올랐으면 합니다. 사회적 감수성이 전혀 없는 분들에게는 비추천, 을로 살면서 한 번이라도 서러움을 당한 분들에게는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별점 : ★★★
40자평 : 서글픈 을의 삶을 투명하게 담으면서 연대의 온기를 관객에게 전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