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5월 3일 AP통신의 사진작가 빌 허드슨(Bill Hudson)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시 공안 위원으로 있던 극심한 인종분리정책을 펼치는 앨라배마 주 버밍햄에서 놀라운 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
<1963 5월 3일 버밍햄 , 사진기자 빌 허드슨 촬영>
10대 흑인 소년이 경찰견에 물리는 사진입니다.1963년 당시에는 흑인인권운동(1955년 ~ 1968년)이 절정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버틀러에서도 나오듯 1963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케네디 대통령은 흑인 인권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매일 밤 TV 뉴스에 나오는 흑인 인권 운동을 보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빌 허드슨이 찍은 사진은 편집자 짐 랙손에게 넘겨졌습니다. 짐 랙손은 사진을 훑어 보다가 개에 물리는 듯한 흑인 소년의 사진을 발견합니다. 이 사진이 놀라운 것은 개의 잔혹스러운 이빨 앞에서도 부처님 같은 평온하고 평화주의자적인 표정을 하고 있는 소년이 극명하게 대비 되기 때문입니다. 순간의 이미지로 그 현장의 자세한 내막을 전할 수는 없지만 미 정부 또는 인종차별주의자로 대변되는 세퍼트와 그 앞에서도 비폭력주의를 주장하는 듯한 평온한 소년의 얼굴이 크게 대비 되었습니다.
짐 랙손은 이 사진을 유선으로 언론사에 전송하고 뉴욕 타임스는 토요일 판 첫페이지 상단에 3단에 걸쳐 이 사진을 실었습니다.뉴욕타임스만은 아닙니다. 미국의 주요 언론사는 이 사진을 실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이 사진을 보고 크게 놀랍니다. 이는 케네디 대통령 뿐이 아닙니다. 미 전역에서는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이 경악하며 이 사진에 대한 이야기만 했습니다. 달려드는 개에게 비폭력을 주장하는 듯한 이미지에 사람들은 크게 놀라워했습니다.
그리고 여론이 급격하게 바뀌기 시작합니다. 수년 동안 '마틴 루터 킹'과 민권 운동가들이 흑인인권운동을 펼치고 있었는데 이 사진으로 인해 여론이 급격하게 흑인인권운동 쪽으로 흐르게 됩니다. 아니 사람들이 흑인인권운동에 큰 관심을 가져주기 시작 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 . 1950년 . 엘리엇 어윗 촬영>
195,60년대 당시에는 흑인들은 음수대도 따로 쓰고 버스에서도 흑인 좌석이 따로 있었고 학교도 따로 다녀야했습니다. 지금이야 미국의 힘이 다양한 인종과 민족을 용광로 안에 넣고 하나가 되게 만드는 다양성이 힘이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은 극심한 인종차별이 존재했던 곳입니다. 특히, 남부 지역은 노예 해방을 선언했음에도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했습니다.
그런데 위 개에 물리는 흑인 소년의 사진 때문에 여론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여론이 바뀌기 시작하자 위 사진이 세상을 떠들석하게 한 1년이 지나서 미국 의회는 '1964년 시민권법'을 통과 시킵니다.
위 사진 한 장이 세상을 바뀌게 했을까요? 그 대답은 한 장의 사진을 더 소개한 후에 대답하겠습니다.,
<1987년, 연세대, 사진기자 정태원>
위 사진은 87년 6.10 민주화 항쟁을 이끈 사진입니다. 당시 연세대학교 학생이었던 이한열은 연세대 정문에서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전경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귀에서 피를 흘리면서 쓰러집니다. 이 모습을 정태원 사진기자가 촬영을 합니다.
이 사진은 일간지 1면에 실리면서 여론이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사실, 87년 극심한 대학생들의 시위가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학생들만의 시위였지 평범한 대다수의 회사원들이나 당시 3,40대들 아니 대학생이 아닌 20대들도 그냥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어른들끼리 모여서 전두환이 노태우에게 왕위 계승을 하는 식으로 대통령 선거를 간접선거로 한다는 소리에 분노는 하고 있었지만 뭉치지는 못했습니다.
불만은 있을지언정 대들지는 못했죠. 당시는 엄청난 공안정권이었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친구들과 도서실에서 집에 가는 길에 전경이 항상 불심검문을 해서 짜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저 멀리 전경이 보이자 다른 길로 돌아갔더니 득달같이 달려와서는 무전을 치면서 호출을 하더군요.
자초지종을 말했습니다. 너무 검문을 많이해서 돌아서 간 것이라고 말하자 그래도 검문을 받아야 한다면서 혼을 내더니 가버리더군요. 그런 시대가 이 세상에 있었습니다. 서슬퍼런 시대이니 어느 기성세대가 대들겠습니까? 오로지 대학생들만 대들고 있었죠. 다만, 당시 대학생들의 시위가 국민 깊숙히 파고들지 못한 이유는 국민을 위한다기 보다는 사회주의 사상에 물들어서 너무 사상위주의 시위를 했다는 것입니다. 좀 세련되게 정부 비판만 하면 되지 이념까지 외치니 공감대 형성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박종철군 사건과 위 사진 때문에 여론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노태우에게 왕위를 그냥 물려주려는 국민 개무시에 화가 나 있던 기성세대들은 대학생들을 돕기 시작합니다. 넥타이 부대가 나오고 그 보수적인 택시 기사들도 경적 시위로 전두환을 압박했고 결국 노태우 후임 왕이 나와서 대통령 간선제가 아닌 직선제를 하겠다고 6.29선언을 이끌어냅니다.
이제 대답을 하겠습니다.
분명, 위 2장의 사진이 여론을 바꾸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사진을 좋아하고 사진의 힘을 믿습니다
하지만, 사진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사진 한 장으로 사람의 마음을 확 변화 시키긴 힘듭니다. 변화할 마음이 있는 사람이 사진을 보고 변화의 스위치를 키는 역할을 할 뿐 마음의 급격한 변화를 이끌지는 못합니다.
99도까지 끊는 물에 1도를 올려서 팔팔 끓게 하는 역할을 할 뿐 사진은 99도까지 끌어오르게 하지는 못합니다.
흑인인권운동도 1955년부터 끊임없이 해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인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저 흑인소년의 평온한 모습과 이빨을 드러낸 악랄해 보이는 경찰을 보자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위 사진을 보고 보수주의자들은 아주! 잘 물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흑인도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위 사진을 보고 보다 적극적으로 흑인인권운동에 앞장 섰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한열군의 사진이 세상을 변화 시킨 것은 아닙니다. 기성세대들이 당시 전두환 정권에 불만이 없었다면 그냥 과격한 대응이었다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을 것입니다. 전두환 정권 때는 골목마다 전경이 서 있을 정도로 공안정치가 심했고 덕분에(?)치안도 좋았습니다. 여기에 경제성장률이 10% 가까이 되는 고도성장기였습니다. 대학만 졸업하면 오라는 곳은 넘쳤습니다. 고졸도 갈 곳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태평성국이죠. 그러나 인간에게 자유를 억압하면서 주는 태평성국은 지옥입니다. (물론, 그런 통제 사회를 좋아하는 인간들도 참 많지만)영화 '더기버'는 그런 통제사회의 비극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성세대는 내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고 싶었습니다. 이런 불만을 잔뜩 가지고 있었는데 이한열군 사진을 보고 기폭제가 되어서 6.10 민주화 항쟁을 함께 이끕니다. 사진은 세상을 변화 시키지 못합니다. 다만, 그 변화의 방점을 찍고 변화의 속도를 크게 높힙니다.
위 2장의 사진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어도 세상은 옳은 방향으로 갔을 것입니다. 다만 그 변화 속도는 더디었을 것입니다.
지금 이한열군 같은 사진이 나오면 어떨까요? 많은 사람을 분노하게 해도 나에게 직접 영향을 주지 않으면 그냥 조금 화내다 말 것입니다. 마치, 폭탄이 동네에 터졌는데 나만 괜찮으면 괜찮음을 넘어서 오히려 난 안 맞았다는 희열을 느낄 지도 모르겠네요.
그럼에도 언제 또 기폭제가 나타나면 들불처럼 사람들은 들고 일어설 것입니다. 우리들 마음 속에는 99도로 끓는 물이 있으니까요. 그 물을 넘치게 하는 기폭제가 사진이 될 수도 동영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론은 어떤 명징한 기폭제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참고 : 책 다윗과 골리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