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의 시간을 담다공명의 시간을 담다 - 8점
구본창 글.사진/컬처그라퍼

http://photohistory.tistory.com2014-08-21T02:55:340.3810

제가 좋아하는 사진작가들 대부분은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들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한 올해의 작가 중 한 명으로 뽑힌 노순택이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찍는 안세홍 작가, 일본내 조선인 학교를 사진으로 담은 김지연 사진작가를 좋아합니다. 

반면 싫어하는 사진작가도 꽤 많습니다만 밝히지는 못하겠네요. 다큐 사진작가가 아닌 사진작가 중에도 좋아하는 사진작가가 꽤 있긴 합니다. 다만 덜 좋아할 뿐 좋아하는 사진작가가 꽤 있습니다. 그중 한 명이 구본창 사진작가입니다. 



<태초에 시리즈 1995~1996>

대학 복학을 한 후에 사진동아리 활동을 더 열심히 했습니다. 술만 먹고 노는 먹자 동아리가 아닌 정말 사진을 좋아하는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거기에는 앤셀 아담스 같은 즉물 사진에 반한 계기도 있었지만 위 사진도 저에게 큰 역할을 했습니다. 
90년대 중반에도 한국은 여전히 스트레이트한 연출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사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위 태초에라는 사진을 보고 많이 놀랬습니다. 아니 이렇게도 사진을 찍을 수 있나?

아니 이건 사진을 찍은 게 아닌 인화지를 실로 꿰매서 이어 붙인 연출이 가미된 사진이자 그림 같은 사진 또는 창의적인 사진이었습니다. 이 사진에서 영감을 얻어서 그해 가을 교내 전시회때 인화지를 가위로 조각 조각 낸 후 인화기 밑에 뿌려 놓고 인화 노광을 준 후 인화 정착한 후에 다시 조각난 인화지를 레고블럭처럼 재조립해서 불로 붙여서 전시회장에 선보였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아주 좋았습니다. 신기한 인화기법이었고 그것에 대한 질문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한 순간의 치기라고 느껴지기도 하네요. 그러나 그렇게라도 사진에 대한 흥미를 끌 수 있다면 그 방법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큰 영향을 준 사진작가가 바로 구본창입니다. 


80년대 연출사진 물결을 일으킨 구본창

사진작가라는 개념은 한국에서는 오래된 개념이 아닙니다. 당시에는 취미 사진가 또는 사진기자였던 분이 시간이 흘러 사진전성시대가 되고 사진 인프라가 거대해지자 사진작가로 명명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80년대 아니 90년대 초까지도 사진작가라는 명함을 내미는 분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미술계에서는 사진을 인정 한 것은 오래 된 것이 아닙니다. 요즘이야 미술전보다 사진전이 더 많아진 느낌이지만 20년 전만 해도 사진전시회는 많지 않았고 그것도 (지금도 그렇지만) 해외 유명 사진작가나 그룹 사진전이 대부분이었죠. 그럼에도 사진계는 스트레이트한 연출이 없는 다큐식 사진만이 오로지 사진이라고 생각 했었습니다. 이런 사진계에 큰 변화를 일으킨 사진전이 있었습니다

그 사진전은 1988년 워커힐 미술관에서 열린 '사진, 새시좌전'입니다. 이 '사진, 새시좌전'에는 당시 유명한 사진작가 8명(구본창, 김대수, 이규철, 이주용, 임영균, 최광호, 하봉호, 한옥란)의 사진을 전시 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유학파였습니다. 지금도 사진 사대주의가 만연한 한국의 사진계였지만 당시에는 더 심했습니다. 

제대로 된 한국 사진문화가 없던 시절에 해외에서 사진문화를 흡수한 유학파들이 해외의 사진흐름을 서울에 소개합니다. 이 사진, 새시좌전에는 독일의 즉물주의 사진을 흡수한 구본창이라는 사진작가가 있었습니다. 해외파들은 당시에는 금기시 되었던 연출 사진을 소개 했습니다. 일명 메이킹 사진이라고 하는 연출 사진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를 찍는 것을 넘어서 모델과 다양한 도구를 적극 활용해서 자신이 담고자 하는 이미지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사진을 사진으로 담아서 소개했습니다. 

지금이야 연출 사진도 사진이라고 인정하지만 당시는 연출 사진이 터부시 되었습니다. 
이런 연출 사진의 물꼬를 튼 것이 '사진, 새시좌전'이고 구본창이었습니다.  



이 구본창이라는 사진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책이 바로 공명의 시간을 담다입니다. 이 공명의 시간을 담다는 구본창 본인이 쓴 책입니다. 따라서 구본창 작가로부터 듣는 구본창 사진의 이야기가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인간 구본창의 성격과 성향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을 수집하는 사진가 구본창


공명의 시간을 담다의 부제는 시간을 수집하는 사진가입니다. 구본창은 시간을 수집하는 사진가가 맞습니다. 정말 구본창의 사진을 보면 뭔가 정화되는 느낌, 차분해지고 숙연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런 느낌을 주는 이유는 시간 때문입니다.

아무리 재능 많고 돈이 많고 잘 생기고 권력이 많아도 시간 앞에선 인간은 한 줌의 재 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한, 시간은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재능으로도 살 수 없는 고귀한 존재이기에 우리는 그 시간 앞에서면 숙연해지죠. 

책을 넘기면 구본창의 유년시절을 순백의 색으로 담고 있습니다. 구본창은 어려서부터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었습니다. 남들하고 어울려 놀기 보다는 길거리에서 주운 물건들에 대한 집착이 강했습니다. 남들이 버린 것, 남들이 쓸모 없다고 여기는 것을 쓸모 있다고 챙기는 소년이었습니다. 이런 내성적이고 자기 안으로 천착하는 성격 때문인지 한국 사회에서 적응을 하지 못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바로 왕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그는 한국에서 대기업을 다니다가 6개월만에 그만 두고 독일로 미술 유학을 떠납니다. 독일에서 미술을 그리고 사진을 배우면서 사진으로 길을 정하고 사진작가가 됩니다. 그는 독일 사진의 전통인 유형학적이고 즉물주의인 스트레이트한 정물 사진을 차근차근 차분히 배웁니다. 그런 즉물사진은 구본창이라는 사라지는 것 또는 남들이 거들떠 보지 않는 뒤안길의 쓸쓸한 속에서 아름다움을 잘 발견합니다. 이는 그의 성격과도 참으로 잘 부합되어서 그의 사진 정체성이 됩니다. 




이 책은 한국에서 그가 사진작가로 성공하는 과정과 그의 작품 세계를 차분한 어조로 잘 담고 있습니다. 백자 시리즈, 한국의 탈 시리즈, 숨 시리즈 등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즉물적인 성향의 사진을 작가 스스로 소개하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수 많은 관련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아스라한 느낌을 가장 잘 담는 국내 사진작가 중에서는 최고가 아닐까 합니다. 이는 그의 지독할만큼의 낮은 곳을 향하고 피상적인 이미지를 넘어서 보는 피안의 능력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

시간 속에서 점차 잊히고 사라져 가는 것들을 좋아하는 구본창, 그런 구본창을 좋아하는 저도 구본창의 성격과 많은 부분 닮아 보입니다. 



<탈 시리즈>

구본창 사진에는 정갈함도 있습니다. 같은 소재를 찍어도 구본창이 찍으면 다릅니다. 어떻게 이렇게 깊은 느낌을 주는 지 감탄할 정도입니다. 그건 아마도 그 사물 또는 피사체에 들인 시간이 길기 때문이 아닐까요? 또한,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사진관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것도 큰 힘이 되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구본창이 즉물사진만 찍는 것도 아닙니다.  

연출 사진도 적극적으로 찍었고 그의 사진을 보고 88년 당시 사진학과 졸업생들이 졸업 작품전에 출품한 사진 7~80%가 연출 사진이었다고 하니 연출 사진도 꽤 많이 찍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바꾼 사진가 중에 한 명이죠. 




또한, 상업사진도 꽤 많이 찍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태백산맥, 취화선, 서편제라는 영화의 영화 포스터를 찍고 수 많은 패션 잡지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감히 말하지만 그가 찍은 영화 포스터는 가장 멋진 한국 영화 포스터 중에 한 장입니다. 



구본창은 상업사진과 예술 사진의 경계를 구분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상업 사진을 찍으면서도 최대한 사진의 색깔을 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클라이언트의 요구대로 찍어 준 후 클라이언트의 만족하는 상태에서 운신의 폭을 넓히면 자신의 색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즉 태도의 문제이지 상업 사진이라고 낮춰보고 예술 사진이라고 높혀 볼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이 부분은 많은 예술 사진가들이 하는 고민이기도 합니다. 많은 예술 사진가들이 예술 사진만 하고 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러다보니 다음 작품을 하기가 힘듭니다. 한 마디로 다음 작품을 할 돈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학원 강사를 하고 강의나 책을 통해 수익을 내긴도 하는데 이런 고민을 구본창도 했었습니다.

유학을 갔다 온 후에 일거리가 없을 때 상업 사진을 찍으면서 도움을 받고 90년대 중반부터 상업 사진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죠. 

사진가든 건축가든 음악가든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고독의 소중함을 안다. 촬영은 피사체와 단둘이 나누는 내밀한 대확이기에, 그룹으로 다니며 동일한 것을 찍는 활동에서는 자신만의 포커스를 만들기를 기대할 수 없다. 또 진공의 시간을 통하지 않고는 자기 안에 있는 영감을 발견하기 어렵다. 어쩌면 나는 피사체와 그리고 나 자신과 대화하기 위해 사람과의 대화를 끊은 것인지도 모른다

<공명의 시간을 담다 중에서>

구본창이 내면으로의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의 사진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매력이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사진은 필연적으로 외형적인 매체입니다. 즉시적이고 즉흥적이고 무엇보다 화려합니다. 이 매체의 정체성을 역으로 품어내는 작가가 구본창입니다. 다만, 이 책에는 구본창을 바라보는 평론가들의 시선이나 인터뷰가 짧게라도 담겨 있다면 또는 비판의 목소리가 살짝 담겨서 오히려 그 비판으로 인해 구본창의 현재 위치를 조명하는 부분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구본창 사진작가를 알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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