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도도 건축에 대해서 아는 것도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건축에 대한 호기심은 많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우리가 보는 것이 건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건축에는 수많은 이야기와 스며들어 있습니다. 왜? 저기에 저런 모양의 건축물이 있을까? 왜 저 빌딩은 저런 모양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건축에 대한 호기심이 계속 진화하게 됩니다. 건축을 잘 알지 못하지만 어떤 건축은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고 어떤 건축은 뜬금없어 보입니다. 특히, 너무나 뜬금없어서 공해 수준인 건축을 보면 암세포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도시는 건물이라는 세포가 모여서 이루어진 유기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아파트나 우리가 일하는 빌딩과 쇼핑하는 몰링 같은 건물 하나하나가 우리와 함께 숨을 쉬고 우리의 생각을 대변하는 유기체 또는 거울로 생각됩니다.
사진은 최근 종로의 모습입니다. 광화문 교보빌딩 뒤쪽은 피맛골이 있던 자리입니다. 그런데 이 피맛골 골목을 싹 밀어버리고 강남스타일인 네모 반듯한 성냥갑 고층빌딩이 올라갔습니다. 전 이 건물들을 보면서 종로라는 지역의 위치와 역사 그리고 종로의 매력이 무엇인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돈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로 올린 이 건물들을 보면서 인상이 써집니다.
이런 강남 붙여 넣기식의 종로의 현재 모습은 성형 수술을 한 미인의 부자연스러움을 담고 있습니다.
제가 종로를 자주 찾는 이유는 다른 서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구불구불한 골목과 낮은 건물과 한옥 건물이 많기 때문입니다. 복잡하고 불편함이 종로의 매력입니다. 그런데 이걸 싹 밀어 버리고 아파트를 올려버린 듯한 모습에 좀 화가 나네요 이런 건물들은 못난 건축을 넘어 못된 건축입니다. 못난 건축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못된 건축은 도시에 해코지를 합니다. 서울에는 정말 못남을 넘어서 못된 건축이 많습니다. 그런 건축에 대한 쓴소리를 담은 책이 '못된 건축'입니다.
대표적인 서울 건물에 대한 쓴소리, 단소리가 담긴 '못된 건축'
못된 건축의 저자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인 이경훈 교수입니다. 2011년 7월에 출간 한 책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라는 책을 읽은 서울시장이 독서 토론을 했고 비판만 하지 말고 서울시도시계획위원으로 들어와서 서울을 함께 만들자고 했습니다.
저자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으로 서울시를 다시 바라보면서 누구나 말하면 단박에 알 수 있는 서울의 유명한 건물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따스한 칭찬을 이 책 '못된 건축'에 담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책 '못된 건축'은 총 11개 챕터를 통해서 서울 건축물에 대한 비판과 칭찬을 가지런히 담은 책입니다. 책 내용은 서로 독립되고 있기에 관심이 가는 건물들에 대한 내용부터 읽어도 됩니다.
이경훈 교수가 이 책에서 칭찬하고 비판한 건물과 건축 형태는
트윈트리 타워, 서울역, 남대문, 서린빌딩, 고급 호텔, 대형 쇼핑몰, ECC, 래미안 퍼스티지 아파트, 발코니 확장, 땅콩집, 예술의 전당과 국립현대미술관, 옥상정원, DDP입니다.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자주 보고 쉽게 보는 건물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가장 먼저 눈길이 끄는 내용은 서울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서울역 구역사에 대한 건축 이야기를 깔면서 새로운 서울역사의 후줄근함을 질타하고 있습니다. 활 모양의 서울역사를 왜 사람들이 옆구리로 들락거리는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전작인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중요한 건물의 주된 입구는 대칭으로 설계되어 있다. 경복궁이 그렇고 대부분의 사찰이 그렇고 노트르담 성당이 그렇다... 중략... 서울역이 가진 대칭의 중심을 가르며 들어서는 것은 날렵한 고속열차와 백화점뿐이다..... 중략....
어째서 도시와 시민은 그 화려한 대칭의 공간을 옆구리에서만 바라보고 들어설 수 있는가?
<못난 건축 60페이지 중에서>
전에 쓴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를 너무 재미있게 일었던 저로써는 이런 쓴소리가 너무 반가웠습니다. 서울에 대한 칭찬이 가득한 책이 즐비한 가운데 이렇게 대놓고 쓴소리를 담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히, 경복궁 같은 주인이 없는 건물을 넘어서 기업의 건물이나 학교 그리고 호텔 등을 눈치 보지 않고 비판하는 모습은 이경훈 교수의 장점이자 매력입니다
물론 이런 쓴소리에 많은 반발도 있긴 하겠지만 그건 독자나 관계자들이 각자 판단할 문제라고 생각되네요. 사실을 바탕으로 한 건축과 교수의 개인의 주관을 담은 책이 바로 '못난 건축'입니다.
이 책에는 흥미로운 이야기와 건축 이야기가 많습니다. 서울에 있는 한 건물이나 건물 형태를 비판하면서 한국의 건축 이야기만 하지 않고 해외의 건축이야기 또는 그 건물의 원조 등을 소개하면서 건축에 관심 많은 분들에게 궁금증을 해소하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종로에 있는 서린빌딩이나 삼일빌딩의 인터네셔럴 건축 스타일의 원조는 미국 시그램 빌딩이라는 내용과 그 빌딩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흥미를 끄는 내용은 대형 쇼핑몰과 래미안 퍼스티지 아파트입니다
요즘 서울 도심에 속속 등장하는 하나의 미니 도시 같은 몰링에 대한 내용은 우리가 새겨들을 것이 많이 있습니다.
대형 쇼핑몰은 자동차 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서 생겼습니다. 도심의 복잡함을 피하기 위해서 교외에 크게 짓고 사람들이 차를 몰고 찾아오게끔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대형 쇼핑몰은 주차장을 완비하고 창문을 없애서 외부의 날씨와 시선을 차단 했습니다.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탈 도시화를 선택한 것입니다. 문제는 서울입니다. 서울은 대형 쇼핑몰을 교외가 아닌 시내에 있습니다. 코엑스몰이 그렇고 디큐브 시티가 그렇고 타임스퀘어가 그렇습니다. 수많은 대형 쇼핑몰이 시내에 있습니다.
기본적인 상업적 기능을 잃고 쇼핑몰로 몰려드는 자동차들의 통로 역할만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형 마트나 쇼핑몰 주변이 늘 교통 정체로 몸살을 앓는 이유다... 중략...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가게는 쇼핑몰에서는 볼 수가 없다. 쇼핑몰은 진공청소기처럼 거리를 집어삼킨다.... 중략... 거리를 집어삼킨 쇼핑몰에는 혁신도, 창의성도, 자부심도 없다. 거리를 잃은 값비싼 대가다. <못된 건축 156페이지 중에서>
여의도 IFC몰을 보면서 그 크기에 크게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일부러 가고 싶지는 않더군요. 왜냐하면 그보다 집에서 더 가까운 곳에 거의 흡사한 상점과 패턴이 존재하는 대형 쇼핑몰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트에 갈 때 가장 가까운 곳의 마트로 갑니다. 왜냐하면 다른 마트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 10년 후에는 서울 부도심에 대형 쇼핑몰 또는 몰링이 지역 상권을 다 빨아먹어 버리는 초대형 마트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또 치킨 게임을 하다가 대폭발을 할 듯하네요. 이경훈 교수는 이런 암울한 미래에 대한 경고를 차분한 어조로 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이경훈 교수는 국가대표 아파트인 서초동 래미안 퍼스티지 아파트도 매스를 들었습니다. 회사에서 퇴근 후에 차를 멀고 집 근처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지하주차장에 파킹을 한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단 한 사람도 아는 사람 또는 이웃을 만나지 않는 모습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지어지는 아파트들이 지하 주차장을 갖추면서 가뜩이나 이웃과의 대화가 없던 아파트가 더욱더 이웃과의 대화가 사라지고 있다고 개탄스러워합니다. 이 외에도 발코니 확장을 아예 아파트 지을 때부터 염두하고 공사를 하는 현재 아파트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발코니라는 외벽의 개념을 붕괴하고 사용 공간을 늘리기 위한 편의의 부작용으로 냉난방이 좋지 않고 건물 구조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책 후반에는 옥상 정원과 예술의 전당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졸렬함도 비판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비판의 강도가 쎈 글들이 많지만 그 비판의 방향성이 올곧기 때문에 공감이 많이 됩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도시는 자동차가 주인이 아닌 사람이 주인이고 보다 많이 도시인들을 걷게 함으로써 이웃과의 유기적인 관계와 상권이 형성되며 상점이 늘어갈수록 각 상점이 하나의 등대 같은 역할을 해서 범죄율이 줄어든다는 말들은 참 공감 가는 것들이 많습니다. 가장 말미에는 저자가 참여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하 하디드의 건축 개념과 시공의 어려움에도 해낸 한국 시공력의 기술을 칭송하며 DDP가 항간의 많은 비판도 있지만 그냥 막 지어진 것이 아닌 하나하나 주변과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지어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이 DDP에 대한 건축에 대한 이야기는 모르겠지만 아쉬운 점은 있네요 이경훈 교수는 건축은 대지와 용도라고 말하면서도 그 건축의 외형적인 모습과 기술적인 난이도에 대한 칭찬을 하지만 정작 그 DDP의 용도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개관식에 참여하고 DDP를 둘러보면서 느낀 것은 건축학적으로 유의미하고 자랑스러운 건축물일 수는 있어도 그 효용가치나 활용법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시민의 거대한 세금이 들어간 건물을 이렇게 밖에 활용하지 못하나? 하는 아쉬움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듯합니다. 아쉽게도 이경훈 교수는 여기에 대한 내용은 담고 있지 않네요. 이 부분에 대한 아쉬움을 빼면 이 책은 전작인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와 함께 서울 건축 비판서로 꽤 괜찮은 책입니다.
이런 서울 건축 비판의 소리들이 많아질수록 서울을 한 뼘 더 아름다워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경훈 교수의 수많은 지적에서도 아름다운 도시가 되려면 자동차가 주인이 아닌 사람이 주인인 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대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