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을 보려면 주로 상행선을 탑니다. 서울의 중심부인 인사동과 서촌 지역과 삼청동 지역 등에서 전시회를 주로 하고 그쪽에 갤러리와 미술관이 몰려 있습니다. 이번에 현대미술관 서울분관이 개관을 해서 삼청동 인사동 일대는 문화 클러스트가 형성되어 있는 듯 합니다. 한국은 서울 공화국이고 서울은 종로 , 강남 공화국입니다. 특히 문화쪽은 아무리 요즘 강남이 뜬다고 해도 패권은 종로가 가지고 있습니다. 문화 예술의 대부분을 종로가 가지고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니 가장 가까운 전철역은 4호선 평촌역이 가깝더군요. 나중에 알았는데 평촌역이 아닌 인덕권역에서 내려서 안양방면으로 약 3정거장만 지나서 내리고 좀 걸어가도 됩니다. 평촌역에서 내려서 약 20분 정도 걸었습니다. 안양천 지류인 학의천을 건넜습니다. 원래 여기를 전철이 아닌 자전거를 타고 가려고 했습니다. 자전거 타고 자주 지나가는 길이기도 해서요. 그런데 날도 춥고 자전거가 고장도 나고 해서 전철을 타고 갔습니다.
갤러리는 크지 않습니다. 벽면을 큰 걸개 사진으로 덮었네요. 구와바라 시세이 사진전 "격동의 한국"
이 전시회는 안양 A-ONE갤러리와 인천 '사진공간 배다리'에서 동시에 개최 되었습니다.
저는 사진공간 배다리에서 메일링으로 전시 소식을 꼬박꼬박 보내오기 때문에 이 사진전에 대해서 알았습니다.
그러고보면 다른 갤러리도 이런 메일링리스트를 활용했으면 합니다. 사진전 정보를 매번 검색해서 찾아보기 힘들거든요.
갤러리룩스나 갤러리나우, 류가헌도 있나 모르겠네요. 아무튼 배다리처럼 해주었으면 합니다. 제가 있는데 모를수도 있으니 나중에 사진 전문 갤러리 홈페이지에서 알아보고 문의도 해보고 그래봐야겠습니다.
안양 A-ONE갤러리에서는 이 격동의 한국 전시회가 11월 20일부터 12월 19일까지 열립니다.
특이하게도 목요일날 휴관이네요. 아! 그 이유과 사진교술이 열리기 때문이군요.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사진교실이 열리는데 지도교수는 Martin Lee입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 Martin Lee는 계원예술대학교 교수님이신데요. 이 A-one 갤러리 관장님이시기도 합니다. 갤러리 이야기는 마지막에 다시하도록 할께요
전율을 느낀 구와바라 시세이의 격동의 한국 사진전
구와바라 시세이를 아는 일반인들은 거의 없습니다. 사진 좋아하는 저도 작년에 처음 알았으니까요.
그러나 사진가들 사이에서는 많이 알려져있고 존경 받은 사진작가이기도 합니다. 이분을 제가 알게 된 것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라는 책을 읽고 알게 되었습니다. 다큐 사진 좋아해서 도서관에서 우연히 읽었던 책인데요. 그 책은 구와바라 시세이라는 일본인 사진작가의 한국과 베트남 취재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책은 구와바라 시세이의 취재 활동을 조명하고 있는데 재미있게도 이 일본인 사진작가는 베트남과 한국 등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합니다.
아마도 부인이 한국분이라서 한국에 대한 애정이 많은 것도 있겠죠.
사진전은 1965년 사진들이 대부분입니다. 구와바라 시세이 작가님은 최근에도 한국 판문점 사진을 촬영한 사진집도 내는 등 현재까지도 계속 쭉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1965년만 담은 이유가 궁금 했습니다. 1965년에 어떤 일들이 한국에 있었을까요?
먼저 구와바라 시세이 작가님이 한국과 맺은 인연부터 소개하겠습니다
구와바라 시세이 작가님은 1964년 아직 국교가 없었던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옵니다. 1964년 일본의 화보잡지 타이요의 특파원으로 한국에 온 것이죠. 아마도 타이요는 미국의 라이프지와 같은 사진잡지 인듯 합니다. 이 미지의 땅 한국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 와서 1964년만 무려 10만컷이라는 엄청난 양의 사진을 촬영을 합니다. 부산의 하꼬방(판자촌)과 서울 청계천 빈민가는 물론, 기지촌과 격동의 한국의 주요 장면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28살이던 시세이는 2년 동안 한국을 촬영 했는데 나중에는 필름이 없어서 덜 필요한 렌즈 등을 팔면서 필름을 사서 계속 한국을 촬영 했습니다.
이 사진들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1960년대에는 한국의 사진작가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냥 사진기자가 있을 뿐 사진작가라는 개념이 크지 않았죠. 최민식 사진작가 같은 분이 있긴 했지만 1960년대 초반을 기록한 다큐 사진작가는 거의 없었습니다. 있다고 해도 정부의 감시나 검열을 받던 시대라서 시세이 작가님처럼 검열을 피하거나 좀 더 객관화 된 시각의 사진은 시세이 작가님 사진이 유일합니다.
196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웠고 한일협정을 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당시 한일협정을 조건으로 한국은 일본차관을 가지고 들어와서는 포항제철을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적인 철강업체가 되었습니다. 이 한일협정을 한 이유는 먹고 살기 힘들고 기본 자본력이 없다보니 경제개발의 마중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문제는 군위안부 문제나 첨예한 양국의 감정에 대한 것은 모두 깡그리 무시하고 무조건 돈 논리로만 이 협정을 했기 때문에 당시 대학생들은 매일 같이 시위를 했습니다. 지금도 일본은 이 65년 한일협정을 내세우면서 우리는 그때 피해 보상 다 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박정희가 먹고사니즘을 위해서 자존심을 팔아 버린 것이죠. 그러나 대학생들만 반대 시위를 했지 대부분의 기성세대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게 한국이니까요? 먹고 살게만 해준다면 자존심 같은 것 챙기지 않는 사람들이 한국인들이니까요.
대학생 중에서도 이명박 같은 당시 고대생은 오히려 한일협정을 찬성하는 시위를 했고 매판자본을 환영 했습니다.
그리고 1965년은 월남 파병이 시작되던 해이기도 합니다.
▲ 1965년 4.19 5주년 기념으로 침묵시위를 하고 있는 대학생들
사진전의 메인 이미지이기도 한 이 사진을 보시면 구와바라 시세이 작가의 놀라운 미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 이 사진보고 전율이 일어났습니다. 1960년대 다큐 사진이나 기록사진 대부분은 멀리서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입니다. 또한, 사진 대부분이 미학적인 풍미는 많지 않고 그냥 기록한 사진 정도로 느껴지던데 위 사진은 무슨 영화 포스터 같은 비장미가 흐릅니다.
1965년 서울대학생들은 비가 오는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4.19 5주년 기념으로 침묵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비장한 모습이어서 전 조폭들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앞으로 노려보면서 책을 들고 있네요. 만약 저 책이 없었다면 위 사진을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었겠네요. 망원 렌즈로 촬영한 듯한 위 사진은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흡착제로 담아서 사진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전 이 사진 하나만으로 구와바라 시세이 작가님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 1965년 한일협정을 반대하는 대학생들이 경찰에 쫒기는 모습
그리고 이 사진도 보세요. 역동감이 강물처럼 넘칩니다. 강물에 빠진 학생들과 도망가는 학생들의 긴장미도 보이고 자세히 보면 한 학생은 웃고 있습니다. 놀랍고 놀랍습니다. 마치 제가 직접 이 현장을 목격한 듯합니다. 이런 구도와 미학은 당시 한국 사진에서 볼 수 없습니다.
책에서도 밝혔지만 시세이 작가님의 장비가 좋은 것도 한 몫했을 것입니다.
당시 한국 기자들은 망원렌즈가 많지 않았는데 시세이 작가님은 망원렌즈를 적극적으로 활용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건이나 시위 현장 사진만 촬영 한 것은 아닙니다. 판자촌 사진도 꽤 많은데요. 위 사진은 1965년 청계천 판자촌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각각의 인물을 바라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카메라를 발견하고 웃고 떠들고 바라봅니다. 그런데 상단의 어른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거나 못 본듯 하네요. 왼쪽에는 두 자매가 놀고 있습니다. 이런 한 프레임에 3가지 이미지를 볼 수 있는 재미가 있는데 시세이 작가님의 사진은 이런 꼼꼼하게 들여다 보는 재미가 좋습니다.
부산 판자촌 사진도 있네요. 서민과 농촌 풍경, 시위 등 한국의 여러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한국 사진기자들이라면 이런 사진 찍는 것이 금기시 되어 있었겠죠
1965년 거제도 사진
구와바라 시세이 작가님의 사진은 유난히 수직구도가 많습니다. 이런 사진 보통 수평으로 촬영하는데 수직으로 참 많이 담으시더라고요. 수평이었다면 뒤의 배와 어촌 풍경이 다 담기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네요.
이 사진도 참 재미있습니다. 지금이야 겸상이라는 단어가 희미해졌는데 예전에는 아버지와 자식과 아내가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밥상은 따로 차려주었죠. 이게 유교 문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존여비의 폐습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가부장 제도가 확실해서 저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남자들이 처자식 먹여 살리는 책임이 있기 때문에 저런 습속이 자연스럽다고 해도 지금 기준으로 보면 좋은 모습은 아니네요.
A-ONE 갤러리는 1,2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 봤습니다
2층은 테이블과 빔프로젝터 등이 있는데 여기서 사진강의를 하나 봅니다. 시설이 꽤 좋네요.
격동의 한국에서도 1965년은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네요. 한일협정과 함께 월남 파병이 시작 되던 해이기도 합니다.
박정희는 월남 파병이 있기 전에 케네디 대통령에게 우리가 국군을 월남전에 보낼 수 있으니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미국은 한국군을 월남에 파병을 했고 파병의 대가로 많은 달러가 한국에 들어옵니다.
월남전은 솔직히 명분이 없습니다. 공산주의와 싸운다는 명분이요? 그 명분 때문에 전방의 부대를 다른 나라에 보내요? 실제로 당시 김일성은 제2의 한국전쟁을 일으키려고 했다고 하잖아요. 자기 나라도 지키기 힘든 나라가 파병이요? 이건 엄청난 도박입니다. 또한, 젊은이들의 피의 대가로 경제 개발 하는 모습은 매혈입니다.
저 청년이 뭔 죄가 있어서 갑니까? 자유수호 의지천명이라는 개살구 같은 명분으로 젊은이들의 목숨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구와바라 시세이 작가님 사진 중에 가장 유명한 사진이 왼쪽에 보이네요. 이 사진을 본 한국분들 많을 것입니다. 월남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인데요. 파병 군인의 날카로운 눈매가 매섭습니다. 결연함이 그대로 묻어 나는데 이게 바로 시세이 작가님이 찍은 사진이네요. 사진은 크지 않았습니다.
구와바라 시세이 작가님은 65년 말 필름 밀수 협의로 한국에서 쫒겨 납니다.
당시 국정원 같은 정보기관이 한국의 폐부를 찍고 다니는 일본 사진작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이유를 만들어서 추방을 합니다. 그리고 몇년 후에 다시 한국에 옵니다. 계속 한국과 일본을 왔다 갔다 하셨는데요. 이 사진은 1968년에 촬영한 사진이네요
한 가족이 죽은 동생 혹은 오빠 혹은 남편인 듯한 분의 비석 앞에서 멍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젊은이들입니다.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여학생들이 백마부대의 철군을 배웅하기 위해서 나왔는데 쳐다보고 있습니다.
구와바라 시세이의 사진은 강렬합니다. 그리고 생동감이 넘치고 현장감이 느껴집니다. 이런 뛰어난 미학을 보고 있노라면 '세바스티앙 살가도' 사진의 느낌도 납니다. 또한, 그의 사진은 한국이 감추고 싶은 그러나 실존하는 것도 촬영을 합니다
기지촌은 한국의 폐부였고 한국 정부는 이런 곳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화 봉송을 하다가 카메라에 담길 수 있다면서 판자촌을 때려 부스거나 가리기도 했죠. 그게 가려진다고 가려집니까? 가린다고 사라집니까? 시세이 작가님은 이런 한국의 어두운 면도 좋은 면도 다 기록합니다.
사진가는 그냥 기록쟁이입니다. 기록에는 감정이 있으면 안 됩니다. 좋은 것만 담으면 그건 다큐가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담아야 합니다. 셀렉팅 문제는 좀 더 생각을 해야겠지만 일단은 기록해야죠. 그래서 시세이 작가님은 엄청난 양의 기록물을 남깁니다. 당시는 숨기고 싶은 사진이 이제는 우리의 과거의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게 하는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 1965년 7.19일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장례식
전 이 사진을 한참 봤습니다.
그 이유는 이 사진의 주인공 때문입니다. 이승만은 독재자입니다. 기록만 들쳐봐도 온갖 만행과 범죄를 저지른 사람입니다. 부정 선거는 기본, 경쟁자가 생기면 사고로 위장해서 죽이게 하는 등 잔혹한 면도 많았습니다. 6.25때 한강 다리 끊고 도망간 분이기도 하죠. 또한, 반민특위 같은 친일파 색출 작업을 무마 시킨 분이기도 합니다. 한국 현대사의 불행은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부터라고 봅니다. 아니 자주독립이 아닌 외세에 의한 독립으로 인해 남과 북이 갈리면서 부터겠지만 이승만이라는 독재자가 참 많은 부도덕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4.19를 통해서 하야를 했고 미국으로 도망치듯 나갑니다. 그럼 이 독재자가 죽으면 침을 뱉어야 하는데 보십시요.
저 장례인파 보세요. 이건 독재자의 장례식이 아닌 조선의 왕이 죽은 장례식 행렬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보다는 못하지만 그에 비등한 인파가 남대문에 몰려 들었습니다. 전 이 사진을 보면서 독재자건 존경하는 대통령이건 상관 없이 사람들은 대통령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저렇게 떠나는 길을 배웅하는 것일까요?
궁금하네요. 전두환이나 노태우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이 죽으면 어떤 반응을 국민들이 보일까요?
독재자라는 꼬리표는 당시의 식자층인 대학생들이나 독재자라고 했지 대부분의 백성들인 국민들은 이승만의 하야를 아무런 생각 없이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4.19도 학생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지 기성세대는 먼산 구경 하듯 했습니다. 1987년 6.10 민주 항쟁도 박종철군 사건과 이한열군이 최루탄 맞고 죽었다는 명징한 악행이 있었기에 시민들이 동참한 것이지 근본적으로는 나라 시끄럽게 시위하는 것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항상 소수의 개혁파가 시대를 이끄는 것이 한국이었지만 이제는 그 소수인 대학생들이 아무런 움직임을 하지 못해서 이제는 변혁을 꽤하기 힘들어진 듯 합니다.
책상 위에는 사진집이 놓여 있는데 사진집에는 여기에 걸리지 않은 사진들이 가득 했습니다
꼼꼼하게 살펴 봤는데 정말 좋은 사진들이 많네요
이 사진을 직접 보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 사진은 정말 너무나도 강렬합니다. 참고로 사진전은 '사진공간 배다리'와 동시에 진행하는데 전시 사진은 A-ONE과 배다리가 비슷하다고 하네요
에이원(A-ONE)갤러리의 이름이 궁금해서 물어보니
안양의 A와 안양에서 첫번째 갤러리라고 해서 ONE라고 했다고 합니다. 안양에도 갤러리가 있긴 합니다. 있긴 있는데 안양문혜회관 같은 관이 소유한 갤러리가 전부였는데 사설 갤러리는 여기가 처음이라고 하네요
계원예대 사진학과 교수님이 운영하는 A-ONE갤러리 자주 찾아와야겠습니다
인덕원역에서 버스를 타고 2~3정거장 후에 내려서 걸어가도 되고 평촌역에서 내려서 약 20분 정도 걸어도 됩니다.
구와바라 시세이의 사진이 있기에 우리는 1965년 당시 한국의 역동적인 삶들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한국을 오가면서 한국을 기록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시세이 전시회는 많이 선보일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1980년대 시위 장면을 담은 사진전이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