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1학년 겨울 방학 때 집에서 할 일도 없고 해서 운동 삼아서 시작한 것이 아르바이트였습니다. 인덕원 근처에 있는 빵 공장에 저녁에 가서 전국 편의점에 배달할 빵을 배달처 별로 포장해서 넣는 것이었습니다. 일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달의 일을 하고 난 후 월급봉투를 받았습니다. 어리숙한 나이이고 처음으로 내가 노동을 해서 번 돈이라서 꾸벅 인사를 하고 받았습니다. 지금이야 돈이 맞는지 그 자리에서 확인해 봤겠지만 당시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누가 감히 어른 앞에서 빤히 돈을 넘기면서 맞혀볼 생각을 할 20대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 월급봉투를 받고 집에 오는 길에 확인해 보니 돈이 비는 것입니다. 그것도 10일 치인 10만 원이 모자른 것입니다. 다음 날 학교 끝나고 그 공장에 찾아갔습니다. 10만원이 모자란다고 항의했더니 자기는 제대로 다 주었다고 하네요. 제 불찰이긴 하지만 어디 하소연을 할 곳도 없고 그냥 그렇게 첫 노동에 대한 추억은 좋지 않았습니다. 많은 중고등학생들이나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일명 아르바이트생들이라 하는 비정규 인력들은 제대로 월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 번은 아는 여자 후배가 2달간 호프집에서 서빙을 했는데 돈이 없다면서 사장이 월급을 주지 않는다고 하소연을 하더군요. 이에 여름 방학 때 막일이라고 하는 노동일을 했던 동기가 불 같이 화를 내면서 거기 어디냐고 묻더군요
여자후배가 알려주었더니 신기하게도 다음날 월급을 다 받아 왔습니다.
어떻게 받았냐고 하니까 '가스통' 메고 갔다고 하네요. 자기가 노동일 하면서 돈 받아 내는 방법을 배웠는데 그 방법을 쓴 것뿐이라고 합니다. 노동일 하면서 일당 못 받거나 월급을 안 주면 그 방법이 가장 좋다면서요 가스통 메고 간 행동이야 옹호받을 수 없겠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돈을 받아낼 수 없는 악덕 사장들이 세상에 정말 많습니다. 저는 나이가 들수록 세상에는 착한 사람보다 나쁜 사람이 더 많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부모님 앞에서는 착한 사람이지만 자신이 고용한 아르바이트생에게는 법규를 위반하면서 까지 막대하고 법에 정해진 월차도 주지 않는 사장들 이런 쓰레기 같은 사장들이 세상에 참으로 많고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취직시켜 준 것이 어딘데 어디서 최저임금 타령이냐며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 한 알바 구직자와 고용주 사이의 문자 메시지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법정 최저임금인 시간당 4,860원에 한참 모자라는 시간당 4천 원의 시급을 준다고 하기에 알바 구직자는 안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고용주의 훈계 문자가 날아옵니다. 최저임금만 따지는 사람은 관심 없다면서 면접 못 볼 것 같으면 그냥 못 본다고 하지 최저임금 따지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하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이 문구를 보면서 저 고용주만의 생각이 아닌 우리 한국의 대부분의 고용주들이 저런 사고방식으로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연봉은 면접 후 결정 혹은 취직만 시켜주면 감사히 일하겠다는 구직자도 있고 그런 생각으로 구직자를 뽑는 사장님들이 많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나마 기업들은 좀 낫지만 우리 주변의 널려 있는 사장님들인 자영업자 분들이 저런 사고방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맞다면 정말 한국의 고용주들의 사고방식에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네요.
아니? 최저임금을 말하면 왜 예의가 없는 것입니까? 물건을 사고팔 때 가격을 물어보듯 당연히 시급을 물어보고 최저임금 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히려 전 저 알바 구직자의 당참에 저런 젊은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네 10,20대들은 너무 순해 빠졌어요. 아르바이트하고서도 아르바이트비 다 받지 못하기도 하고 받더라도 자신의 권리인 1주일에 1회 유급 휴가가 법적으로 정해져 있고 만약 쉬지 못하면 평일보다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함에도 그걸 모르고 1주일 내내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참 많습니다. 자신이 노동자인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열악한 환경에서 갖은 폭언과 저임금으로 시달리는 알바생 그리고 존재하지만 존재 하지 않는 유령처럼 살고 있는 비정규직, 인간의 인격은 사라지고 돈을 버는 수단으로 전락한 우리네 불쌍하고 처량한 노동자들을 위한 책이 '날아라 노동'입니다.
노동은 천한 것이 아니다. 노동에 대한 인식 전환부터 해야 한다
한국은 80% 내외의 학생들이 대학에 갈 정도로 높은 교육열을 자랑한다.. 중략... 하지만 당신이 아이에게 돈과 시간을 집중하는 이유가 아이를 노동자로 만들기 우해서라고 하면 대부분은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흔들거나 심지어 화를 낸다.
삼성, LG, SK, 현대의 사원이 되는 것과 중소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월급이나 평판에서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노동자라는 점에서는 같은데 말이다.
<날아라 노동 중 22페이지 일부 발췌>
노동자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막일의 표준어라고 알고 있습니다. 즉 육체적인 힘든 일을 사람을 노동자라고 하고 서빙을 보거나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거나 직장에서 서류업무를 하거나 영업을 하거나 학원 강사일을 하는 사람들을 노동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사람은 노동자입니다. 누군가에게 고용된 사람 모두는 노동자이지만 우리는 그런 인식조차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노동에 대한 날 선 시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에 붉은 띠 두르고 고공 시위를 하는 제조업 사람들만 노동자로 인식하고 구멍가게에서 알바를 하는 사람은 노동자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모두가 노동자입니다.
저자 은수미는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노동운동을 띄어든 분입니다. 현재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의원활동을 하고 있는데 자신이 지금까지 경험한 노동에 대한 이야기와 현실적인 문제와 해법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노동에 대한 인식 자체를 거부하고 자기가 노동자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한국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자기 스스로를 누군가에게 고용된 노동자임을 인지하지 못함과 함께 세상에 대한 쓴소리를 합니다. 경영에 참여할 권리도 없으면 책임도 없어야 할 노동자가 경영상 잘못임에도 그 책임을 오롯하게 받아서 강제 퇴직 당하는 현재의 한국 노동 현장에 크게 한숨을 내쉽니다.
또한 사실을 왜곡하면서 귀족노조라는 주홍글씨를 찍게 하는 언론들과 우리들의 시선을 넘어서 대통령이 한 기업체의 파업을 보면서 연봉 6,500만 원인 생산직 노동자가 파업하는 것을 질타하는 그 자체를 크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잘 알아보지도 않고 막말을 하는 사람들. 문제는 그 막말을 하는 사람들이 다름 아닌 노동자들입니다. 서로 연대하지 못하고 야근하기 위해서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저녁 뉴스에 띠 두르고 고공 농성하는 노동자를 보면서 혀를 차는 노동자들에 대한 아이러니와 인식 부재와 혼탁한 시선들도 담고 있습니다. 이런 시선은 이명박 정부가 노동부를 고용부로 이름을 바꾼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떼쟁이라는 시선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으로 협상과 협력의 대상이 아닌 부셔 없애야 하는 시선을 은연중에 담고 있습니다.
노동을 하는 사람의 인격은 사라지고 효율적인 노동만 남은 우리들 노동환경
IMF가 터지자 IMF는 한국의 노동 유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을 했습니다. 당시는 저도 노동 유연성이 뭔지도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잘 압니다. 노동 유연성이란 쉽게 말해서 노동자를 휴지 뽑아 쓰듯 뽑고 한번 쓰고 쉽게 버릴 수 있는 노동자를 많이 만들라는 소리입니다. 97년 당시에는 낯선 단어였던 파견이나 비정규직 등의 단어가 일상화된 시점이 바로 IMF 이후입니다.
기업에게 유리한 노동 유연성이 마치 사회 전체적으로 좋은 것인 양 유포된다. 기업이 주장하는 노동 유연성이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노동 불안이라는 사실은 철저히 은폐된다 <날아라 노동 42페이지 중 일부 발췌>
지금도 보수 언론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한국의 노동 유연성이 높지 않아서 나라 경제가 힘들다면서 헛소리를 하는데요.
그렇게 IMF이후 생산된 현재 비정규직 숫자가 전체 임금 근로자 숫자의 48.7%인 831만 명으로 노동 단체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즉, 임금 근로자 2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라는 것이죠. 비정규직은 노동 유연성이라는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열매이고 누구나 쉽게 따서 사용할 수 있고 다 쓰면 바로 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노동 효율성을 위해 마구 생산한 비정규직이 현재 노동문제의 큰 화두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노동 유연성 문제를 같은 노동자들도 사용자라고 하는 고용주와 똑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같은 노동자인데도 노동유연성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을 늘려야 한다고 동조하는 시선이죠.
저자는 이런 노동 유연성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의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다
저자는 챕터 4장 우리는 대부분 노동자에서 자신이 노동자인지도 모르는 연극배우들이나 우리 주변에 특수업종이나 비정기직이나 비정규직등 4대 보험이라는 사회보험의 울타리에 들어오지 못한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득합니다.
2011년 말 기아차 광주 공장에서 무리하게 근무를 하다가 쓰러진 실습생의 이야기부터 다양한 우리 주변의 힘없는 노동자의 삶을 담아냅니다.
챕터 6 삶과 존재의 위기에 선 비정규직 편에서는 존재하지만 존재하니 않는 사람들인 비정규직의 삶과 함께 왜 비정규직이 힘든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노동조합도 없고 자신의 올바른 권리를 주장하면 잘릴 위험 때문에 쉽게 말하지 못하는 슈퍼을 인 비정규직의 삶도 들어다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정규직이나 파견업종 노동자들의 부당한 해고나 부당함을 원청 업체인 대기업이나 큰 기업에서 해결해 달라고 하면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널 고용하지 않았어" 우린 너를 고용한 파견 업체랑 계약했을 뿐이지"라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파견 업체는 문제가 생기면 그냥 회사를 받아버리기 일 수입니다.
이렇게 비현실적인 노동 구조가 있다 보니 현대차에서 왼쪽 바퀴 조립하는 정규직과 오른쪽 바퀴를 조립하는 비정규직의 월급의 차이가 2배 이상 나는 것이겠죠.
이 같은 대여나 임대는 노예를 임대하는 데서 나왔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주인은 자신의 노예를 다른 이에게 빌려주었다. 중세 시대는 토지를 매개로 토지 관리인 혹은 마름을 통한 대여 행위가 나타난다. 그런 인간 대여가 현대 사회에는 아웃소싱이라는 이름으로 재등장했다. 역사는 참 오래가고 질기게 반복한다.
'날아라 노동 106페이지 일부 발췌'
비정규직은 삶의 위기와 함께 존재의 위기를 겪으며 살아가는 그 무엇들이다. 정확한 이름조차 없이 '정규직이 아니다'라고 지칭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노동의 재구성과 긴밀한 연관이 있으며 전근대인지 근대인지 탈근대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낯섦'을 넘어서는 길일 것이다
'날아라 노동 120페이지 일부 발췌'
한국의 임시직 비율은 OECD 조사결과 칠레, 헝가리, 폴란드, 스페인 다음으로 높은데요. 정부가 이런 비정규직 해법에 대한 제대로 된 처방을 하지 못하고 몇몇 사회 지도층은 야근은 축복이라는 망언을 하며 정부가 100만 해고대란설을 유포하면서 물타기를 하는 모습을 저자는 질타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비정규직이나 정규직이나 모두 포함해서 임금 노동자의 임금 총량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모습을 재벌 및 대기업의 배력이 커진 탓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노동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나 그 주장에 힘이 없어 보이다
이 책의 노동에 대한 인식이나 현재의 비판을 하는 글이 대부분이나 그걸 해결하려는 해법 제시는 좀 미약해 보입니다. 저자는 사회 안전망이라는 복지와 함께 노동자들의 연대를 함께 해야 하고 그전에 노동에 대한 노동자들의 인식 즉 노동 권리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네 노동자들은 이런 인식이 약합니다.
예를 들어서 자신이 야근하는 고달픔은 알아도 마트가 24시간 돌아가길 원하고 치킨이나 피자 배달은 30분 안에 와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내가 어떤 서비스를 강도 높게 요구할수록 또 다른 노동자인 그들은 강도 높은 노동을 하게 되고 결국은 그게 돌고 돌아서 나라는 노동자에게 또 다른 노동자가 강하고 빠른 서비스를 요구하는 돌고 도는 구조를 아는 노동자가 많지 않습니다.
유럽에 가면 은행 업무나 제품 A/S 받는데 한나절을 넘어 며칠 씩 걸리기도 합니다. 자기는 바빠 죽겠는데 은행 창구에서 뭉그적거리는 모습에 유럽인들은 그냥 그 모습을 받아들이죠 또한 철도나 항공사가 파업을 해도 그들의 노동권에 대해서 존중하고 파업을 이해합니다. 그래야 내가 파업을 할 때 그들이 날 질타하지 않고 도와주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노동자가 파업을 하면 무조건 질타를 합니다. 이런 연결 고리를 모르기 때문이죠.
노동자인 시민이 경영 효율성을 좋아하면 바로 그 시민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노동자인 시민이 경비실 노동자의 최저임금 감액 적용에 동의하면 당사자 역시 나이 들어 월 90만 원 받고 일해야 한다는 연관 고리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날아라 노동 83페이지 일부 발췌'
이 책은 해결 법을 어느 정도 제시하지만 강한 어조는 아닙니다. 그 이유가 이 저자 은수미가 국회의원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노동단체나 노동운동가가 쓴 책이라기 보다는 국회의원이라는 어느정도 책임을 지고 법으로 해법을 마련해야 할 책무가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책임 회피 때문인지 노동 운동의 방향성과 계몽은 적고 있지만 강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여당이 아닌 야당 의원이고 주류가 아닌 비주류 의원이 가지는 한계라는 이해도 있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법을 잘 만들면 뭐 합니까 법을 안 지키는 사용자라는 고용주가 경제가 어렵다면서 쉽게 노동자를 싸게 쓰고 버리는 더불어 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노동자가 스스로 자기 권리를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사장님 눈 밖에 나지 않게 모든 고통을 혼자 끙끙 앓는 모습 속에서는 현재 같이 비숙련의 메뚜기 같은 저품질의 노동자인 비정규직만 남발할 것입니다. 책은 이런 악순환이 중산층을 무너트리고 절대 빈곤층을 증가시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실 인식도 제대로 안되고 해법은 있지만 그걸 따르지 않는 사용자와 모든 책임을 아웃소싱 업체에게만 돌리려는 대기업들 그리고 자신이 노동자인지도 인식 못하고 같은 노동자를 비판하는 노동자들과 일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는 노동자들의 저자세 속에서 세계 최고의 강도 높은 노동 속에서 세계 최고의 저효율의 노동생산성의 악순환을 겪은 한국의 미래는 밝지 않습니다. 오늘 더불어 잘살자며 동반성장 위원회에서 중소기업 업종을 지정했는데요. 많은 비판의 목소리가 날아오네요. 80년 저자가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다가 손가락이 미싱에 찝혀서 손톱이 너덜너덜 해지고 피가 옷감에 뚝뚝 흐르자
쌍욕을 하면서 다친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옷감에 피가 떨어져서 못 쓰게 되었다면서 욕을 했던 고용주가 여전히 한국에는 많이 있습니다. 먹고사니즘 때문에 정당한 노동을 하고도 욕을 먹거나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수많은 한국의 노동자들을 대한
각성제가 되었으면 하는 책입니다. 한국의 기업노조가 강성인 이유는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가 적기 때문에 강성으로 나가야 그나마 세상이 바라보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말이 꽂힙니다. 오늘도 콜트 악기 공장 노동자들이 경찰에 강제 연행 되었다는 기사에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같은 노동자들이 대부분인 나라에서는 노동운동이 설 자리도 없고 노동운동이 사라질수록 사용자의 부당한 행동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노동조합을 감시하고 분쇄하려고 사찰까지 하는 기업들이 만연한 나라에서 평생 노동자로 살아가야 할 한국인들. 그들에게 위로의 말도 하지 못하겠네요. 책의 한 인터뷰에서 한 노동자가 말했듯 그 어느 나라보다 많은 공부를 하면서 정작 자신의 노동 권리에 대한 공부를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네요 그러니 법에 정해진 노동자의 권리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것이겠죠.
노동하는 사람은 하나의 도구일 수 있지만 감정을 가진 인격체임을 고용주들이 항상 가슴속에 품고 살았으면 합니다.
좋은 사장님들이 더 많은 세상이 되었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