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권도 없는 저였지만 정치인들은 다 나쁜놈인것을 미리 알아버렸습니다. 어려서부터 정치인들의 행동을 뉴스와 어른들의 말로 전해들어보고 판단해 보면 정치인은 더러운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기만술에 능통하고 이미지메이킹에 능수능란하며 혹세무민의 달인들이었죠.
이런 더러운 무리들이 나라를 논하니 자라가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그러나 한 사람은 달랐습니다.
대형 비리를 저지른 재벌도 5.16 광주항쟁을 총칼로 짖이겨놓은 전직 대통령에게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투사처럼 돌격했습니다. 돈키호테 같았습니다. 남들은 살살하라고 하고 짜고치는 고스톱마냥 대충대충 권력자인 재벌과 전직 대통령을 예우 또는 호위하는 보수정당의 국회의원과 달리 그는 물불 가리지 않고 달겨들었습니다
고등학교때 본 5공청문회의 주인공은 그 사람 노무현 것이였습니다. 아직도 기억납니다. 큰 소리로 준엄하게 꾸짖는 모습이 속이 뻥 뚫렸습니다. 그러던 그가 대통령이 되었고 그리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유일하게 가슴속으로 좋아했던 정치인 노무현은 지금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운명이다! 그 말이 한스럽기만 하네요. 이 고난의 시기, 서민들이 고통스러워 하면서 각자의 방에서 끙끙 앓기만 하는 시기도 운명입니까? 그에게 묻고 싶은 나날들입니다
선물로 받은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아이패드2로 이북을 다 본적이 없습니다. 체험만 했지 항상 종이책을 읽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지난 1주일 동안 조금씩 읽어 보았는데 이북이 생각보다 좋은 장점이 꽤 많더군요. 먼저 밤에 마실 나가서 밤바람 쐬면서 읽을 수 있다는 점과 형광펜, 페이스북 전송 기능등 다양한 기능들이 있습니다.
또한 이 책은 완성도가 무척 높은데요. 중간중간 동영상 자료들을 함께 볼 수 있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동영상과 사진과 글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는 고인이 직접 쓸 수 없기에 유시민 전 의원이 꼼꼼한 기록을 잘 하시는 노무현 전대통령이 쓴 책들과 메모와 인터뷰와 다큐등을 그러 모아서 쓴 책입니다. 글을 잘 쓰는 유시민 전 의원이라서 그런지 이 책은 마치 '노무현'전 대통령이 직접 쓴 책 같다는 생각마져 듭니다.
변호사 노무현
노무현은 잘 아시겠지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노무현은 어려서 부터 불의에 대해서 참지 못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4.19혁명이 있던 60년 2월 이승만 대통령 생일을 앞두고 모든 학교가 대통령을 찬양하는 글짓기 행사를 했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북한 김일성과 김정일만 찬양국가가 아닌 남한도 비슷한 풍경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부당하다고 느낀 노무현은 글짓기를 하지 말자고 선동해서 급우들이 모두 백지를 내게 만들었고 결국 여자 선생님을 울려 버립니다. 이후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토담집에서 고시공부를 하면서 사법고시를 합격합니다. 그리고 평탄하고 밝은 미래가 그를 기다렸습니다.
판사를 하면서 요트를 취미로 하는 등 고위공직자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대학생들이 시위를 해도 그런갑다 하면서 지나쳤습니다. 그냥 그런 평이한 삶을 살던 노무현이 판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합니다. 상고 출신이라서 셈법에 밝아 조세전문 변호사로 명성을 날리면서 꽤 유명해지게 됩니다. 그러던 그가 운동권에 대해서 눈을 뜹니다.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된게 바로 전두환 정권때인 81년 '부림사건'입니다.
부림사건은 사회과학 책을 읽는 독서모임 회원 22명을 계업법과 국가보안법, 집시법 위반 협의로 그들을 구속 했습니다.
당시 81년도는 마르크스 같은 말만 해도 부들부들 떨던 시대였습니다. 말도 꺼내지 못할 정도로 특정한 책을 읽어도 잡혀가던 시기였죠. 뭐 지금도 국방부가 베스트셀러인 책 까지도 금서조치를 하는 모습을 보면 5공이나 현정권이나 도친개친 같습니다.
이 사건을 변호하면서 그는 문재인을 만나게 됩니다.
노무현, 청년들의 눈빛에 흔들리다
삶이 왠지 불편해졌다. 박해 받는 사람들 가운데서 박해 받지 않고 산다는 것, 그런 상황이 안겨주는 불편한 느낌, 인권변호사로 활동할 때도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던 그 낯익은 고통과 죄의식이 다시 찾아왔다.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중에서>
노무현의 유년기나 청년기와 판사시절을 보면 그가 딱히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냥 소소하게 사는 소시민 같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부림사건등의 부당한 폭정에 억압당하는 청년들의 눈빛을 보고 흔들리게 됩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기질이 있다고 하잖아요. 어렸을 때의 그 기질이 노무현에게 다시 발현됩니다. 사실 노무현은 대학교를 나오지 않아서 대학문화도 잘 모르고 당시 대학생들의 정부비판적인 활동을 모릅니다. 또한 민족해방노선이니도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부당한 권력의 행사를 두고 볼 수 없었고 그렇게 노동운동가로 변신을 합니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이 문재인 변호사입니다.
이후 노무현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정치계에 입문합니다. 그를 정치계에 입문 시킨 사람이 바로 '김영삼 전 대통령'입니다.
5공 청문회와 노무현
5공 청문회때 단연코 스타는 노무현 이었습니다. 그는 상대를 봐가면서 공격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정주영 현대 회장이건 전두환 전 대통령이건 바로 쓴소리를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쓴소리의 거대함이 국민들의 울분을 달랬습니다. 노무현을 세상에 알린 첫번째 계기가 되었고 그 기억속의 노무현을 잊지 못하고 그를 대통령으로 국민들이 만들어 주었습니다.
내가 저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괴감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1988년 7월 임시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을 하면서 참담한 노동현실에 대한 분노를 있는 그대로 터뜨려 버렸다. "국무위원 여러분, 아직도 경제발전을 위해서, 케이크를 더 크게 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희생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런 발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니네들 자식 데려다가 죽이란 말야! 춥고 배고프고 힘없는 노동자들 말고, 바로 당신들 자식 데려다가 현장에서 죽이면서 이 나라 경제를 발전시키란 말야!" 국회의원회관 사무실로 수없이 많은 격려전화가 왔다. 그러나 당장 현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중에서>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는 정치인이 지금 있을까요? 새누리당은 청와대 거수기 역활만 하고 있고 야당도 야당다운 야당이 아닌 잔뜩 주눅이 들어서 낑낑거리는 모습입니다.
호남과 경남의 지역주의를 고착화 시킨 김영삼의 3당합당
전 한국이라는 나라가 이해 안가는게 한 두개가 아니지만 가장 이해가 안가는게 경상도는 무조건 새누리당만 찍고 전라도는 무조건 민주당만 찍는 이상한 투표 행태입니다. 전라도는 모두 가난해서 부자도 진보성향의 정당에 투표합니까? 경상도는 모두가 부자라서 소작농과 알바생도 무조건 보수와 부자의 이익을 챙겨주는 새누리당을 찍나요?
이 틀을 꺨려고 하는 정치인은 노무현 이후로는 없고 오히려 그런 천박한 정치구도를 그대로 이용해 먹고 있는 정치인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경상도와 전라도 주민들에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경상도 전라도 구도를 만든 사람은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입니다. 그러나 박정희 때도 부산이나 마산 같은 진보성향이 강한 도시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많았습니다. 4.19도 경상도 지역에서 시작해서 들불처럼 전국으로 퍼졌습니다.
박정희나 전두환 때 까지도 부산 등은 대규모 시위를 하는등 진보 성향의 젊은층이 많았습니다. 또한 지금 야당인 민주통합당의 주류에 있는 국회의원이나 고위직 중에는 경상도 출신이 꽤 많죠. 문재인 대선 후보도 경상도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왜 현재는 부산이나 마산 마져도 보수정당에 표를 줄까요? '운명이다'에서는 그 이야기를 담고 있고 그 이유가 바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끈 3당합당에 있습니다.
3당 합당은 1990년 1월 22일,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약칭 민정당)이 제2야당 통일민주당(약칭 민주당), 제3야당 신민주공화당(약칭 공화당)과 합당을 3당 합당이라고 합니다.
기억납니다. 90년 신문을 펴니 대문짝 만하게 3당 합당이라고 하면서 아버지가 혀를 끌끌 차시더군요. 당시 노태우 정권은 여소야대 정권이라서 어떤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사껀껀 국회에서 제동을 걸기 때문이죠. 이런 이유로 5공 청문회도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김종필 총재와 민정당 총재이자 대통령인 노태우가 함께 손을 잡습니다. 야당이 하루아침에 여당이 되는 초유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새누리당의 뿌리인 민자당이 태어납니다
"이의 있습니다"
노무현이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 외침은 아웃사이더의 외침이었습니다.
이 3당합당은 지역주의를 고착화 시켜 버리는 결정적 한방입니다. 그 이유는 부산 마산등에 있던 진보세력들이 모두 보수의 색으로 덫칠해졌기 때문입니다. 부산에서 김영삼은 광주에서의 김대중의 의미였고 김영삼이 진보에서 보수로 넘어가자 지지자들도 모두 보수가 되었고 지금은 대구와 함께 보수의 대표도시가 되었습니다. 저는 3당합당을 해서 김영상이 대통령이 되면서 그래도 진보정당을 이끈 분이니 진보적인 정책을 할 줄 알았더니 한나라당 새누리당에 이어지는 보수정당으로 변한게 너무 아쉽더군요.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씨는 원래 서로가 서로를 용납할 수 없는 관계였다. 이회창 씨는 대쪽이라는 이미지로 김영삼 대통령의 초법적 국정운영에 반기를 들어 인기를 얻었던 사람이다. 그런 두 사람이 절묘하게 타협을 한 것이다. 그 두 사람으로 하여금 손을 잡게 만들었던 것은 대구와 충청도의 이반이었다.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정치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때까지 조선 건국 이래 600년 역사에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정권교체가 없었다. 권력의 편에 서야만 비로소 권력을 이어받을 수 있었던 역사였다. 권력에 맞섰던 사람 가운데 패가망신 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자손들의 앞길까지도 막아버렸다. 적어도 무사하게 밥이라도 먹고 살려면 권력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시비를 가리지 말고 납작 엎드려 살아야 했던 기회주의 역사가 무려 600년이었다. 결국 이회창 씨도 조순 씨도 권력에 줄을 서야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쪽으로 간 것이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 '운명이다' 중에서
이후 노무현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지게 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우직함이 있습니다. 지역주의 타파하겠다면서 편한 종로를 버리고 한나라당 지역인 부산에 출마를 하고 매번 떨어집니다. 그런 우직함과 진정성에 정치인 최초로 팬클럽이 생기고 그게 바로 '노사모'입니다
대한민국 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는 축구경기와 비슷하다. 보수세력은 위쪽에, 진보세력은 아래쪽에서 뛴다. 진보세력은 죽을힘을 다해도 골을 넣기 힘들다. 보수세력은 뻥축구를 해도 쉽게 골을 넣는다. 나는 20년 정치인생에서 이런 현실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지 않으면 앞으로 진보세력이 승리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 '운명이다' 중에서
대통령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 답게 이 책은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 분량이 상당히 많습니다. 또한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이죠.
노무현 대통령은 극적으로 대통령이 됩니다. 이회창 후보를 넘어서는 인기를 얻다가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가는 중대한 실수를 범하면서 그를 지자하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지지율도 20%대로 떨어집니다.
이후 2002 월드컵 열풍에 인기를 끈 정몽준과 단일화를 성공한 후 정몽준 후보가 지지철회를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이 됩니다. 철저하게 아웃사이더로만 살았던 노무현, 그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됩니다.
아직도 기억납니다. 대통령 당선 후에 명륜동 집까지 취재차량이 붙어서 생중계를 해주던 모습이요. 내가 뽑은 대통령이라서 그런지 그 모습이 너무나 좋았고 그 미소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하지만 대통령 노무현은 성공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의 노른자인 대통령 노무현 부분은 성공과 환희의 이야기 보다는 수많은 난제를 헤처나가면서 느끼는 어려움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한미FTA, 양극화, 부동산 정책, 방폐장,이라크 파병, 탄핵등 상처투성이의 이야기만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노무현 정권때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해결하기 힘든 일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한미FTA나 이라크 파병 같이 지시세력인 진보세력을 떠나게 만들기도 했으며 많은 말실수와 수사법의 세련되지 못함에서 오는 거부감이 대통령 노무현을 무너트리기 시작합니다.
사실 대통령 노무현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지지한 대통령이긴 했지만 그의 수사법이 싫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수적인 시각이 많은지 대통령의 권위 파괴는 좋지만 국회의원 시절의 그 강단있고 패기있는 화법은 대통령과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통쾌함은 있었지만 무릇 대통령이란 권위있고 기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대부분인데 20대 처럼 말을 하니 국민들은 너무나 놀라했습니다.
아직도 대통령이 왕인줄 알고 있는 국민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어쩄거나 그런 투사의 이미지는 대통령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았고 이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그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어쩌면 거대한 반성문입니다. 특히 대통령 시절의 미흡했던 점에 대한 반성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역대 그리고 현재 대통령을 돌아보면 노무현 만한 대통령도 없었습니다. 적어도 노무현 대통령은 부끄러움을 알고 반성하는 대통령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리고 현재의 대통령이 부끄러움을 알까요? 부끄러움을 모르는 대통령이 있었고 국민과의 소통이 안되는 것 아닐까요?
물론 정책오류도 있었다. 나는 부동산정책과 관련하여 유동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당연히 비판받아야 할 일이고 실제로 비판을 받았다. 2005년과 2006년에 유동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바람에 일시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강력한 유동성 규제는 다른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일단은 다른 정책수단으로 관리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유동성 규제를 하지 않고도 부동산가격 폭등을 막을 수 있는지, 부동산 시장에 이상동향이 없는지, 너무나 걱정이 되어서 몇 차례나 경제보좌관과 관계부처 장관들에게 묻고 확인했다. 그때마다 문제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것을 믿은 게 잘못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 '운명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잘한 정책도 많고 못한 정책도 많습니다. 복지나 경제 펀드멘탈을 튼튼하게 한 점은 아주 잘했습니다. 또한 권위주의 타파도 잘 했고요. 하지만 검찰개혁 실패는 너무나 아쉬웠고 부동산 정책은 두고두고 노무현 정권을 비판 1순위가 되었습니다. 노무현 정권때 부동산 가격이 폭등 수준으로 올라갔죠.
이 부동산 정책의 실패는 정확하게 김진표 장관 때문이고 그런 모피아를 장관자리에 앉힌 노무현의 실패였죠.
촌로 노무현이 날 울리다
"야! 기분좋다"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다 내 책임인 것 같았다는 노무현 대통령.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말이 유행했었던 시절의 노무현은 많은 괴로움이 있었고 한나라당에 정권을 내주면서 고향으로 귀향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 도착하마자 한 말이 "야! 기분 좋다"였습니다.
이후 촌로 노무현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중에 퇴임 후에 촌로가 된 사람이 없습니다. 칩거하거나 감옥에 갔다오거나 부하의 총탄에 죽거나 해외로 도망가야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에 함께 공유하는 대통령이 나왔고 사람들은 신기하게 봤습니다. 대통령 노무현과 다르게 허름한 밀집모자를 쓰고 오리농법으로 벼농사를 하는 모습은 한장의 그림이었습니다. 관광명소가 되어버린 봉하마을, 봉하에서 매일 들려오는 수채화 같은 소식은 많은 국민들의 고통의 일상을 잊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전자책 '운명이다'상단에 있는 동영상을 보면서 눈물이 주루룩 흘렸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이 아닌 시골의 농사꾼 같은 아버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노무현의 모습에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존경할만한 어른이 많지 않는 시대에 그의 모습은 아버지이며 시골이며 푸근함이며 구수함이며 막걸리이며 넓은 등이였습니다.
막걸리 한 잔 대접해 드리고 싶은 어르신, 투사 노무현이 아닌 할아버지 노무현이 제 눈동자를 흔들리게 했습니다.
그 짧은 파라다이스는 정치검찰과 전직 대통령 욕보이기를 시도한 현 정권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그의 가족의 잘못을 다 떠안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는 서거 후 나온 수 많은 노무현 관련 서적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인 구어체로 담은 자서전입니다. 노무현의 인품과 그동안 궁금했던 여러정책과 과거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은 실패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도 성공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노무현의 삶은 실패가 아닌 성공입니다. 잠시나마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고향에 돌아와 살면서 해보고 싶었던 꿈을 모두 다 접었다. 죽을 때까지 고개 숙이고 사는 것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재판 결과가 어떠하든 이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20년 정치인생을 돌아보았다. 마치 물을 가르고 달려온 것 같았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원래 있던 그대로 돌아가 있었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다른 데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대통령은 진보를 이루는 데 적절한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것일까?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 '운명이다
원래 그대로 돌아가 있었다라는 말이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네 다시 돌아가고 있습니다. 저 5공화국을 지나 3공화국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 돌아감을 좋아하고 반공의식이 다시 고양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박정희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면 딱 3공화국이 될 것 같네요.
어떻게 바꿔가야 할까요? 어떻게 세상을 바꿔야 할까요? 누가 바꿔야 할까요?
정답은 있습니다. 우리가 바꾸면 됩니다. 그러나 그 길이 너무나 멀고 험해 보입니다. 잠시동안 행복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더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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