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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이 펑펑내립니다.
구두는 아가리를 벌린채 서 있고 남자는 노란옷을 입은 여자를 오늘도 찾고 있습니다.
이름도 모릅니다. 나이도 모릅니다. 어디 사는지도 모릅니다. 남자는 그냥 노란 옷을 입은 여자만이 자신의 병을 치료해주고
이 너절한 삶의 구렁텅이에서 꺼내줄 것 같았습니다.
농약은 외상이 없습니다. 서민적인 자살인 농약을 먹고 자살하기 위해 항상 주머니속에 농약을 가지고 다니는 남자
이 거센 방황이 끝나면 죽을 결심을 수시로 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노란옷을 입은 여자를 만나야 합니다.
병원도 가보고 메리야스 공장앞에도 가보지만 남자는 노란 옷을 입은 여자를 만나지 못합니다.
남자는 새벽에 기차역으로 향합니다. 그 기차역 대합실에서 수근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만석동 또라이' 그게 그 남자의 별명입니다.
그러다 책을 읽고 있는 여자를 만납니다. 다른 사람들은 설설 피하는데 이 아가씨는 남자의 말을 받아줍니다.
낯선 질문에 맑은 얼굴로 받아주는 아가씨, 남자는 이 여자가 노란 옷을 입은 여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은 다 피하지만 이 아가씨는 아저씨를 잘 안다면서 어서 집에 들어가라고 하면서 도착한 기차를 타기위해 표찰구를 넘으면서 손인사를 합니다.
여자는 절름발이였습니다. 그러나 미소는 절름발이가 아니였습니다. 남자는 노란 옷을 입을 여자가 아닐까 생각을 했지만
애인을 만나러 간다는 말에 고개를 돌렸습니다. 노란 옷을 입은 여자는 애인이 있으면 안됩니다. 순수해야 하니까요.
그렇게 또 긴 방황을 하다가 술집에서 한 시인을 만납니다. 그 시인은 이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통하는 것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룻밤을 함께 지내며 다음에는 비오는날 자기가 술을 사겠다고 남자는 말합니다.
또 다시 방황과 노란 옷을 입은 여자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노란 옷을 입은 여자의 주소를 알게 되죠. 그 집을 수소문끝에 찾아갔는데 그 집 딸의 엄마가 딸이 임신했다면서 타박을 합니다. 영문도 모른채 타박을 들은 남자는 임신이라는 사실에 노란 옷을 입었지만 노란 옷을 입은 여자가 아닌라고 생각하고 또 다시 방황을 합니다.
시인은 여동생 이야기를 하면서 울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여동생이 다리를 저는데 남자놈이 다리를 전다는 이유로 시를 쓰는 동생을 버렸고 그 충격에 동생은 자살을 합니다.
남자는 대합실에서 만난 그 여자가 시인의 동생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습니다.
이 소설은 80년 꽃노털인 이외수옹이 쓴 중편소설입니다. 76년 꿈꾸는 식물, 79년 개미귀신 다음에 나온 중편소설이죠. 지금이야 썼다하면 대박을 치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지만 80년대 까지만 해도 이외수는 매스컴에서 자주 나오지는 않았고 도인같은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소설중에 도술을 쓰는 듯한 마르케스 소설에서 나오는 환타지와 현실이 접목하는 소설들이 꽤 있죠
이외수의 이미지인 긴 생머리와 팍 늙은듯한 얼굴은 저에게는 참 기괴했습니다. 마치 도사님이 도술 부리는 방법 같은 책을 쓰나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쓴 책 한두권을 읽어보면 압니다. 외모와 다르게 감수성이 참 맑은 작가라는 것을요. 지금 이외수의 글은 참 밝고 너털웃음이 나지만 예전의 글은 절망, 자기파괴, 음습, 고독등이 주를 이룹니다.
이 겨울나기에서 화자인 남자가 말하는 하숙집 주인은 자기 마누라를 이야기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어려웠던 시절, 글쟁이 남편을 뒷바라지 한 마나님을 묘사한 듯한 느낌도 듭니다. 이 소설속 화자는 이외수 자신이었겠지요. 지금이야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이 없는 유명작가지만 80년 당시만해도 여전히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겨울은 즐기는게 아닌 견디고 고통을 인내해야 하는 계절이라고 인식하던 시절에 쓴 소설 답게 이 소설은 참으로 어둡습니다.
하얀 눈이 아닌 어두운 눈이 내리는 풍경이죠. 소설 속 남자는 파랑새를 찾으러 떠나는 찌르찌르와 미찌르 처럼 실체도 없는 노란 옷을 입은 여자를 쫒는데 그 노란색은 봄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겨울을 나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색, 노란색, 그 노란색에 집착하는 남자는 결국 자신이 발견하고도 자신의 쓸데 없는 아집 때문에 노란 옷을 입은 여자를 단지 노란 옷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애인이 있다는 이유로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외수는 자주 심안을 이야기 합니다. 눈에 보이는게 전부가 아니고 마음으로 보라는 심안, 이 소설속 남자는 그런 심안을 하나 가지고 되면서 소설은 끝이 납니다.
어쩌면 이 소설은 지금 겨울을 나고 있는 수 많은 청춘들과 삶의 무게에 쓰러진 분들을 위한 동화 같은 소설입니다.
항상 농약병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죽기만을 벼르는 그러나 희망을 동시에 찾는 행동을 하는 분들을 위한 우울한 위로곡이죠.
영화 '어쩌면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의 아이들 처럼 기적은 우리 곁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기적은 아무에게나 보이는게 아닙니다. 그 기적을 볼 수 있는 사람만이 기적을 목도 할 수 있습니다.
전 카메라로 그 기적을 찾습니다. 시간을 두고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사물들이 거리가 골목이 나무가 사람들이 소리가 나뭇잎이 지붕이 하늘이 말을 걸어옵니다. 그러면 고독이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수 많은 목소리들이 들립니다. 그럴때 셔터를 누르면 됩니다.
겨울나기를 하는 수 많은 사람들을 위한 우화, 지금의 이외수 글과 사뭇 다른 모습이지만 겨울나기 하던 이외수작가의 이야기도 아주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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